* 창작공간/Essay 모음 1

살아가는 이유

여강 최재효 2017. 10. 10. 23:41













                               










          살아가는 이유는


                                                                                                                                                        - 여강 최재효








 해마다 추석 전 이맘때가 되면 나는 똑같은 의문 속에 나 스스로를 옭아 매놓고

제념(諸念)의 오리무중(五里霧中)을 헤맨다. 우주, 종교, 철학, 인류의 삶 등 거창한

주제의 의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소박한 소제(小題)도 아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형제들과 힘들게 일을 마친 나는 한동안 먼 산을 바라보거나 무심하게 청산(靑山)

위를 흐르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답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의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을 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

다. 홀로 동문서답(東問西答)에 만족해하기도 하고 끝 모를 나락으로 빠져들어 혼란

만 가중시키기도 한다.


 처음부터 해답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도 아니다. 제법 연륜(年輪)이

쌓이다 보니 문득 문득 무시로 생겨나는 한심한 질의(質疑)에 허망하게 웃으며 진저

리를 치기도 한다.  


 ‘나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구도 선뜻 답변해주기 난해한 질문이 틀림없을 것 같다. 석가모니와 예수 그리고

공자나 소크라테스도 이 처럼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받으면 다양한 해석을 내놓겠지

만 만인(萬人)에게 흡족한 답을 주기는 어려울 듯 싶다.


 물론 불문(佛門)에 귀의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이나 인연설(因緣說) 등을 인용

하여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답변할 테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성경(聖經)의 천지

창조나 그의 조상들의 계보(系譜) 등 진중한 구절(句節) 등을 인용하며, 그럴 듯한

대답을 하리라. 또한  유교적 관습에 뿌리가 깊은 사람들은 공맹(孔孟)의 거룩한 어록

(語錄)을 열거해 가면서 설득하려 들 테다.


 그러나 나처럼 특정한 신앙심이 없거나 잡념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15도

쯤 갸우뚱 거리며, 무심하게 지나가는 구름만 바라보면서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를

기대하리라. 


 정처 없이 흐르는 구름은 그냥 구름이고, 창천(蒼天)을 나는 새는 그냥 새일 뿐이다.

그것들은 회색빛의 나그네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 상관이 없기에 내 눈에는 무척

이나 자유롭게 보인다.  


 그렇다면 구름이나 새들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면 어떨까. 삼천대천(三千大千)을

집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체들에게 자유라는 게 있을까. 삼라만상

(森羅萬象)에 자유란 있을 수 없다. 


 단지, 자유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이다. 나의 동공(瞳孔)에 흔적을 남기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저 구름이나 새들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구속되어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저들과 동일하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나나 그대가 자유로운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연설

에서도 멀리 있을 테고, 천지창조와도 상관이 없다. 그 같은 자유를 정의하기 위해

서는 인류가 아직 상상해 내지 못한 또 다른 종교나 신앙심이 발현 되야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랜 세월 인류가 갈망해온 진정한 욕망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탈출하여 저 창공을 흐르는 구름처럼 진정 자유롭게 되는 게 아니었을까.


 그 자유에는 나는 없고 너 역시 없으며, 조상(祖上)이나 부모형제 미래의 자식들

이나 후세들도 없다. 오로지 무의식 같은, 무게 없는 희미한 존재의식만 있으면 된다

고 할 수 있겠다. 혹은 그런 생각을 하거나 그럴 것이라고 하는 사상 자체도 사치

스럽다.


 사람들은 왜 허공을 가로질러 나는 구름이나 새가 자유로워 보인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투영시키려는 욕심에서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먹구름이 하늘을 대부분 덮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도 식어 버리자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묘소 한쪽에서 형님들이 탁주를 마시며 서로를 위로 한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므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머니

자궁에서 나왔지만 비인간(非人間)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가끔은 그들이 부러

울 때도 있다.


 지극히 무료한 범인(凡人)의 틀에서 말하는 비인간이라는 명제(命題)는 틀렸을지

도 모른다. 다이아몬드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이유는 천지에 널려있는 잡석(雜石)

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보석이 아무렇게나 넘쳐난다면 보석은 이미 보석이라 할

수 없다.


 지구가 생성된 지 45억년이 지났다. 나는 하필이면 21세기 초반 지금 이 순간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최씨 문중(門中)에서 태어나 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운이 좋아

100년 전이나 500년 전, 혹은 3,000년 전 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앗으로 나왔

더라면 어떠했을까.


 물론 평생을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온상 속의 화초처럼 살다 갔으리라. 그 반대

의 경우도 사람이었을 테니 그 인생도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삶의 질이 다를

뿐.


 누구든지 현재 자신의 성정(性情), 신분, 사회적 위치, 모습, 성질, 주변인, 가족 단위

구성원 등등은 모두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고관대작(高官

大爵)으로 현세를 살거나 혹은 살인마(殺人魔)가 되어 형(刑) 집행일을 받아 놓고 감

에서 세상을 저주하며, 살아가더라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바는 아니다.


 지금의 나는 이미 현재의 삶으로 태어나기로 이전부터 세상과 약정(約定)되어 있었

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감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했던가.


 나는 군대 입대하기 전날 나의 트레이드마크인 장발(長髮)을 미련 없이 잘라버렸다.

이제까지 살던 세상과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탐스럽던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나의 존재가 이어질 수 없었다.


 징병제(徵兵制)로 인하여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병제(募

兵制)의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으리라. 지금의 나는 내가 태어나게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람답게 살아야 먼 훗날 또 다른 내가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거나, 왜 지금처럼 배를 곯아야 하는지 혹은

분에 넘치는 호사(豪奢)를 누리게 된 연유가 불분명하다면 그것이 잘 못 태어난 반증

이 된다. 길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하나에도 생겨난  이유가 있다. 하물며

사람에서랴. 


 위의 기술(旣述)은 최소 200년 이후 고도의 문명사회가 돼야 가능하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만년 또는 십만 년 이상을 살게 된다. 


 생체(生體)에서 기계로, 다시 기계에서 기계로의 끊임없는 의식의 이전으로 말이다.

인간이 감히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게 되고 그 도전이 받아들여 진다. 신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되면서 가능한 일이다. 


 상상 속에서 그려지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우리의 환인

(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들이 새롭게 창조되기도 한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있고 주변인들이 있다. 내가 병이 들어 죽거나 예상치 못

한 사고로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세상도 없다. 다만,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전혀 다른 환경에 존재할 뿐이다.


 경기도 여주시 점봉동 소재 모둘기 고개, 멱곡동의 청마루, 능현동의 배실 등 다섯

군데 흩어져 있는 조상님들의 묘소(墓所)에 기고만장하게 자라던 잡초들을 시원하게

벌초(伐草)하고 나서야 나는 심장의 고동(鼓動)에 귀를 기울였다.


 내 심장의 고동은 수천만 년 동안을 멈추지 않고 이어왔다. 이 고동은 저 거만한 태

양이 초신성(超新星)이 될 때 까지 이어지리라.


 나의 심장이 뛰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존귀하다. 싸구려로 심장의 박동을 놀리

는 이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나는 이른 봄이나 겨울에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날 오

후 집에서 가까운 인천 부평가족공원에 간다. 물론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형 납골당에는 나 보다 훨씬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 한 송이 꽃이 되어  항아리

에 담겨 배시시 웃고 있다. 순간 나의 양 볼에 뜨거운 액체가 흐른다. 


 너무 미안하여 죄인이 된 심정으로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뛰쳐나와 한참동안

창천을 응시한다. 그들의 못 다한 소중한 몫을 나를 비롯한 주변의 현세인(現世人)들

이 해야 한다.


 심장 박동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나는 사람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죽마

고우(竹馬故友)나 주변 지인들에게 나는 입버릇처럼 사람이 정말로 귀한 꽃이라고

한다. 


 거리에 나가보면 이슬을 머금은 싱싱한 생화(生花) 대신 조화(造花)가 순진한 시선을

사로잡는다. 벌 나비가 찾아드는 꽃이 아니라면 살아 있다하더라도 사는 게 아니다.





                                                                                             2017.9.16. 오후
                                                                                                 고향 경기도 여주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