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단편 - 남쪽나라 바닷가에

남쪽 나라 바닷가에(소서노 어하라 미추홀 도래기) - (3)

여강 최재효 2016. 11. 26. 14:13
















                                                                   








  


                       남쪽 하늘 바닷가에(3)

                                                  소서노 어하라 미추홀 도래기






                                                                                                                                                                        - 여강 최재효










                                                                        3



 “어머니, 고구려를 떠나온 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곳 어하라(於瑕羅)에 나라를

워도 될 듯 싶습니다.”
 “어머님, 온조 아우의 말이 맞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어머니의 영도력(領導力) 아래

에서 일치단결하여 커다란 정치적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어머님께서 우리 형제와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이곳 어하라에 오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만,

그 모든 난관을 헤치고 지금 같은 집단을 이룬 것은 어머님의 확고한 의지와 많은 추종세력

들의 충성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나라를 선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다. 우리가 나라를 선포하기 전에 폐하께 알려 승낙을 받아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절

대 입조심해야 한다. 명심하거라.”
 소서노는 두 아들들의 말을 가로 막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40대 초반에 접어든 소서노는 지난 5년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그 옛날 고조선의 제후국이

었던 번조선(番朝鮮) 땅인 어하라는 참으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 비록 서쪽에 한나라가

있었지만 소서노의 집단을 적대시 하지 않았다. 소서노는 외교술에도 능해 한나라와 우호적

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허허허허, 과연 소후로다. 짐이 그동안 소식이 없어 늘 걱정하였는데 사신을 보내와 어하

라를 짐에게 넘긴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도다. 여봐라, 소후가 보낸 사신들을 후하게 대접

하고, 소후의 나라를 어하라라고 정식으로 명명하라. 또한 소후에게 관직을 내리겠다. 우리

고구려의 재상인 노객(奴客)이란 벼슬을 내림과 동시에 어하라 지역을 다스리는 수장(首長)

의 의미로 그 지역 이름과 같은 어하라라고 공식적으로 명명(命名)하도록 하라.”


 “폐하, 노객의 벼슬만 내려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허허, 그대는 소후가 탐탁하지 않은가 보구려. 짐이 한번 내린 명령은 절대 거둘 수 없소

이다.”
 추모왕을 추종하는 계루부 소속의 한 대신이 추모왕에게 한마디 하였다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성은이 하해(下海)와 같습니다. 저희 어하라 백성들은 모두 고구려 백성이나 마찬

가지 옵니다. 소후와 어하라 만백성들은 폐하의 처분(處分)을 알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소서노가 파견한 사신들은 추모왕에게 고개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렸다.


 “짐은 대고구려 뿐만 아니라 어하라까지 얻었으니 장차 고구려를 대제국으로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동부여뿐만 아니라 낙랑, 물길(勿吉), 읍루(挹婁), 옥저(沃沮), 동예(東

濊), 두막루((豆莫婁), 한나라 등 주변 모든 국가들을 정벌할 것이다. 짐이 못하면 짐의 아들

들과 손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주변국들을 모두 복속(復屬)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 어하라는

스스로 짐에게 바쳤으니 짐은 어하라 백성들은 친 자식처럼 돌볼 것이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서노의 사신들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렸다. 추모왕의 전교(傳敎)에 고구려 조정에서

는 왈가왈부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지엄한 추모왕의 조치에 대놓고 말하는 자가 없었다.

유리태자와 예씨부인 역시 추모왕의 전교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어쩌지 못하고 속

으로 끙끙거렸다. 추모왕의 전교는 고구려와 감정이 좋지 않았던 어하라 백성들에게 마음

의 안정을 찾게 해주었다. 어라하 사람들은 언제 고구려 병사들이 어하라를 짓밟을지 모르

는 상황이어서 늘 불안해 하였다.


 “뭣, 뭣이라고? 그게 정말이냐? 정말로 폐하께서 나에게 고구려 재상의 벼슬인 노객으로

봉하셨단 말이지? 또한 나를 어하라를 다스리는 임금과도 같은 명칭인 어하라에 책봉하셨

다고?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로다.”
 소서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치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쳐대며 기뻐하였다.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비류와 온조 그리고 많은 대신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버님 폐하께서 어머님에게 그런 조치를 취하셨네요. 우리 어하라 만백성에게는 십년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어머니, 소자 비류 경하 드립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노객 벼슬 하사와 어하라 책봉에 축하드립니다. 하오나 소자 걱정도

있습니다. 행여 아버님께서 우리 어하라 백성을 노예 취급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온조의 얼굴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온조야, 네가 아버님 성심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구나. 아버님은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나에게도 약조하신 바 있으시다.”
 “네에? 약조요?”
 “그건 나중에 차차 말해주마.”


 “......”
 소서노를 비롯한 어하라국의 대소신료를 비롯한 만백성들은 소서노의 반응에 묘한 기분

이 들었다. 추모왕이 어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속국으로 보는 시선에

속이 편치는 않았다.


 “우리가 그럼 고구려의 속국이 되는 거여? 그것참, 소서노 어하라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

다니까.”
 “이보게, 함부로 입 놀리지 마시게.”


 “나라님들이 하시는 일이네. 우리 어하라 백성들은 모르는 척 하면 되는 거네. 고구려가

어하라에 쳐들어 올 일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 그래?”
 “나도 모르겠네. 뭐가 어찌되어 가는 것인지 말이야”


 소서노어하라는 심신의 안정을 얻자 어하라국 통치에 자신이 있었다. 먼저 주변국들과

외교문제를 신중히 다루며 그들에게 환심을 사고 싶었다. 가장 힘이 막강한 한나라와 관계

개선이 시급하였다. 한나라 관리들이 찾아오면 소서노어하라는 많은 재물을 주면서 그들의

환심을 샀다. 소서노어하라에게 매수당한 한나라 신하들은 소서노의 집단을 보잘 것 없는

무리로 황제에게 보고하는 등 한나라 조정이 소서노 집단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였다.


 소서노어하라는 한나라와 한나라가 세운 낙랑(樂浪), 현도(玄菟), 임둔(臨屯), 진번(眞蕃)

등 한무제 유철(劉澈)이 설치한 한사군과 고구려, 부여 등 주변국들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

고 있었다. 소서노 집단이 주로 취급한 물건은 어하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소금이었

다. 그 당시에 소금은 가장 매력적인 특산품이었다. 가장 양질의 소금을 생산하는 지역은

고조선의 후예들이 건너가 살고 있는 남삼한 중 마한(馬韓) 중서부 지역이었다.


 마한은 54개 소국(小國)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한 54개 소국 중 가장 세력이 강한

목지국(目支國)의 진왕(辰王)이 맹주 역할을 하며 마한뿐만 아니라 진한(辰韓), 변한(弁韓)

까지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진한과 변한은 매년 진왕에게 사신을 보내 공물(貢物)을

바치며 진왕의 환심을 사려하였다. 마한 54개국 중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은 마한의 중심

지라 할 수 있는 황해에 인접하여 대륙과 무역을 하고 있는 소국이었다.


 어하라국의 입지적 조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소서노어하라는 두 아들

과 대신들과 자주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상의 하였으나 묘안을 찾지 못하였다. 한나라와

고구려의 양대 강국의 틈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서노어하라와 대신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당장은 추모왕의 비호(庇護)아래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고령의 추모왕이 급서(急逝)

하는 날에는 어하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었다. 소서노어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유리

태자가 고구려의 황위(皇位)를 물려받을 경우 어하라국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신세를 면

할 수 없게 된다. 추모왕의 첫째부인인 예씨는 분명 유리를 부추겨 어하라를 정벌케 하거나

속국으로 만들어 백성들을 함부로 징발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재물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나라 또한 고구려와 잦은 충돌로 인하여 어하라국에게 수만금의 전쟁비용을 요구할

지도 모를 상황이기도 하였다. 겉으로는 어라하국에게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한나라 황제

의 속내를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최근에는 오랜 기근(饑饉)과 질병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대소신료들은 들으시오. 이곳 어하라는 우리가 고구려 다음으로 건국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 년 중 대부분의 날씨가 해풍이 실어오는 습기로 인하여 춥고 차갑습니다.

토지는 비옥한 편이나 몇몇 종목을 제외하면 다양한 농작물의 소출을 기대하기 어렵습

니다. 또한 오랜 가뭄에 백성들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여 나는 남쪽 아리수 근처 위례

지역으로 진출하여 나라를 다시 열까합니다.”


 “어하라, 이곳을 개척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단지 날씨가 안 좋다하여 나라를 옮기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사료됩니다. 뜻을 거두어

주소서.”


 “어하라, 아니 되옵니다. 남쪽은 이미 마한, 진한 등 3개 나라가 건국되어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사옵니다. 뜻을 거두어 주소서.”
 “어하라, 두 대신들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 어하라의 많은 백성을 무슨 방법으로 아리수

지역까지 데리고 가시려 하십니까? 패수와 대수 그리고 압록수와 살수, 아리수까지 가는데

고구려, 낙랑국, 대방, 마한 소국들과 마찰이 불가피 할 것이라 봅니다. 어하라, 뜻을

거두어 주소서.”


 “어하라, 마한의 위례까지 수 천리 거리입니다. 남녀노소를 데리고 그곳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부디 재고하여 주소서.”


 “이보시오들, 나 비류는 어머니의 뜻에 절대 찬성하는 바이오. 어하라에서 마한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소이다. 제일 편한 방법은 뱃길로 가는 것이요. 육지를 이용할 경우

대신들의 말대로 고구려나 낙랑국과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봅니다. 나는 이미 뱃길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고 말하

세요.”
 비류의 말에 안 된다고만 말하던 대신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비류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꼭 육지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뱃길을 이용하는 방법이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신들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남삼한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준

비를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온조의 말에 소서노어하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신들은 들으세요.”
 “네에, 어하라 하명하소서.”


 “일 년 내로 어하라를 떠나 남삼한으로 갈 채비를 해주세요. 물론 원하는 백성들도 함께

갑니다. 해보지도 않고 반대만 하는 대신들은 용기가 없거나 이곳에 안주하여 장차 고구려나

한나라에 주구(走狗)가 될 자라 알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하라를 떠나 남삼한으로 이주할

거라는 이야기 또한 외부로 알려지면 곤란합니다.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것을 하명합니다.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 것입니다. 명심들 하세요.”
 소서노어하라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다는 신하는 없었다.


 ‘헐~, 혼자 다해먹네.’
 ‘이것참, 여자 혼자 모든 걸 주무르고 있네. 나라가 잘 될까 몰라.’
 ‘이 사실을 주몽대왕이 알면 가만 안 둘 텐데......’
 대신들은 차마 말을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신들 간에는 소서노어하라의 결정을 두고 옥신각신하며 언쟁을 벌이기도하고 뒤로 소

서노어하라에 대한 이상한 말을 퍼뜨리는 자들도 있었다. 비류와 온조는 정탐꾼들을 풀어

어머니 소서노의 일을 방해하려 들거나 음해를 획책하는 자들을 가려내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자 잠시 조정의 대신들은 납짝 엎드려 눈치만 보았다.


 또한 어하라국이 남삼한으로 이주한다는 소문이 주변 국가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입단속에

철저를 기하였다. 소서노어하라는 백성들에게는 남삼한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 공포하려

고 마음먹고 있었다.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 이외에는 누구도 믿지 않으려 하였다. 어라하국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구려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어라하국이 남삼

한으로 이주하려는 계획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평범하게 흘러만 갔다.


 “어머니, 하명하신대로 장정 백여 명 탈 수 있는 배 일백 척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내달이면

모든 건조 작업이 끝날 것 같습니다. 또한 아우가 마한의 우체모탁국에 파견했던 세작(細作)

들도 돌아와 보고하기를 만약 대군단(大軍團)을 배에 태워 황해 건너 남하하여 혈구진(穴口

鎭)에 잠시 머물며, 주변 여러 나라의 상태를 살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혈구진에 잠시 머무르며 정세를 살피라.”


 “네, 어머니, 또한 세작들이 아리수(阿利水) 하구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위례에 가는 항로도

파악하였으며, 혈구진에서 조금 더 남하하면 미추홀(彌鄒忽)이란 곳에 커다란 포구가 있는데

동시에 백여 척의 배를 정박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비류가 그간의 정황을 소서노어하라에게 설명하였다.


 “어미도 무척 궁금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너희들이 고생 많았다. 어미는 특히 우체모탁국에

관심이 많구나.”
 얼마 전에 소서노어하라는 비류에게 배를 건조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또한 둘째 아들 온조에게

무예에 뛰어난 무사 10여명을 선발하여 남삼한(南三韓)에 파견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세작을 파견한 목적은 남삼한 중에서 소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함

이었다. 지금의 어하라 지역도 살기는 좋은 곳이었으나 소금 생산이 부족하여 주변 여러 나라

들과 무역을 하는 소서노어하라 입장에서는 좀 더 양질의 소금 생산지가 절실하였다.


 “어머니, 우체모탁국은 마한 54개국 중 가장 양질의 소금을 많이 생산하는 곳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백성들의 수는 일만 명이 채 안 되며, 나라의 면적 역시 우리 어하라에

비하면 십분지 일도 채 안 되는 면적입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어업과 농사에 종사하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의 수도 매우 형편없어서 아리수를 거슬

러 위례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어하라의 용감한 군사 삼, 사천명 정도면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조의 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온조의 말을 듣고 있던 소서노어하라의 눈에서도 빛이

났다.


 “우체모탁국은 그 옛날 대륙에서 살던 동이족의 분파인 모인(牟人)과 탁인(涿人)들이 제(齊)

와 진(秦)에게 쫓기자 바다를 건너 마한의 중심 지역에 정착하여 세운 나라로 알고 있다. 즉,

그곳 백성은 우리와 같은 혈통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우리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 따뜻하고

살기 좋은 남쪽 지역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워야 할 것이지만 우체모탁국은 이 어미가 가고

자하는 지역은 아니다. 다만 그 지역은 소금이 생산되고 상업적으로 주요한 지역이라 그곳을

정복하던지 혹은 매수하여 점차 아리수 중심으로 진출하여 위례(慰禮)를 점령하는 게 이 어미

의 목적이란다.”


 “아우야, 혈구진에서 아리수를 거슬러 올라 위례 지역까지 올라갈 경우 마한의 병사들

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어서 자칫 위례에 도착도 못하고 전쟁이 날 우려가 있단다. 내 생각

에는 세작들의 말처럼 혈구진에 잠시 머물며, 마한 중부의 여러 소국(小國)들의 정세를 살피

다가 소금이 많이 난다는 우체모탁국의 미추홀 지역으로 상륙하는 게 좋을 듯 하구나. 


 미추홀은 바닷가라서 사람도 많이 살지 않고 물이 짜서 농사도 잘 안 된다고 알고 있다.

또한 그 지역에 아주 훌륭한 포구가 있는데 동시에 배 백여 척이 들어갈 수 있다니 천혜의

요지가 아니냐? 그 포구를 이용해 위례지역으로 진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 비류의 방안대로 하는 것이 상책일 듯하다. 온조야, 형 말대로 하자.”


 “네, 어머니. 그리하겠습니다. 하오나 소자는 기마병 일천 명을 이끌고 패대를 건너고 압록

수와 살수를 넘어 아리수 하류인 미추홀로 진출하겠습니다.”
 “온조야, 육로로 간다고? 나와 형 그리고 백성들과 뱃길로 가지 않고 육로로 간다니?”


 “어머니, 세력을 분산시키려는 작전입니다. 만약 뱃길에 이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한 방책입

니다. 배로 갈 경우 잠시 육지에 정박할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육지의 타국 군대와 마

찰이 생길 경우 제가 후방에서 지원을 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제가 형님과 전서구(傳書鳩)를

이용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겠습니다.”


 “오오, 과연, 과연 내 아들 온조로다. 네가 평소에 병법서를 가까이 두더니 많은 책략을 가지

고 있구나.”
 “어머니, 온조 아우의 뜻이 참으로 가상합니다. 허락하시지요.”
 비류 또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동생이 챙기니 참으로 감격하는 눈치였다.


 “온조야, 그리 하거라. 날쌘 기마병 일천을 내줄 테니 그리 하거라.”
 “어머니, 고맙습니다.”
 온조 역시 자신의 부하를 시켜 마한의 우체모탁국의 정세를 염탐하게 하였다. 온조는 바닷

길 보다 고구려, 낙랑국, 대방, 마한의 소국들을 경유하여 최종 목적지인 위례로 진출하고 싶

어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를 경유하면서 수많은 강과 하천 그리고 크고 작은

준령(峻嶺)을 넘어 수 천리 위례까지 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기에 육로를

적극 추천하지 못했다.


 “이 어미 역시 얼마 전부터 우리가 남삼한으로 진출하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만

에 가까운 나의 백성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를 하고 육지로 고구려, 낙랑국, 대방, 마한의 여

러 소국을 경유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 부담이 크다. 고구려는 폐하께 잘 말하면 경유할 수

있겠지만 낙랑국 최씨 왕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 올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 우리는 낙랑국과 일전(一戰)을 불사(不辭)해야 할 것이야. 싸움은 우리에게 절대

불리하다. 우리는 장정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아녀자 노인 등 많은 유민(流民)이

있으니 낙랑국과 전투가 벌어질 경우 이들이 대부분 희생되고 말 것이다. 비류의 말대로 바닷

길을 열어 남삼한 중 우체모탁국을 공략해 보는 게 상책(上策)일 것 같구나. 온조는 기마대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남하하도록 하여라.”


  “어머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저번에 온조 아우의 육로 진출 건도 아주 틀린 방법은 아니

나 마한 중심부인 우체모탁국까지 남하하는데 무리가 따를 것 같습니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아우와 상의하여 육로와 바닷길 개척에 묘안을 짜보겠습니다.”
 “그래, 네가 나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구나. 온조와 대신(大臣)들과 의논하여 우리 어하라

백성들이 남삼한으로 이주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하여라.”


 소서노어하라는 일만에 가까운 남녀노소가 수 천리 머나먼 남삼한의 중심부 위례까지 진출

하는데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이주하는 인원이 소수라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을 뱃길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것 역시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조가 육로

로 배가 남하하는 속도를 따라 동시에 남하한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자들 정성을 쏟아 어하라 백성들이 남삼한에 무사히 안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이 어미는 너희 형제의 능력을 믿는다”


  비류와 온조는 배 건조에 박차를 가했다. 수시로 대신들과 남삼한으로의 이주 문제를 두고

토의를 하고 지혜를 모아 대책을 만들었다. 우선 50여척의 배에 장정들과 잘 훈련된 병사들을

태우고 식량과 병장기(兵仗器)들을 싣기로 하고 나머지 50여척에는 아주 나이가 많은 연령층

을 제외한 남녀 백성들을 태우기로 하였다. 백성들과 살림도구를 실으면 배가 무거워 항해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기에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싣도록 하였다.

 
 드디어 기원전 19년 가을 소서노는 두 아들과 대소신료(大小臣僚)와 병사 그리고 백성 등 일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배가 대기하고 있는 작은 항구에 도착하

였다. 어하라에 남아있는 백성들은 나중에 다시 배편을 이용해 남삼한으로 이주시킬 예정이었

다.


 “우리 어하라 백성들은 이제 따뜻한 남삼한의 땅으로 간다. 이곳에서 그곳까지 가는데 보름은

걸릴 것이다. 백성들은 차가운 바닷바람과 파도를 조심해야 한다. 식량도 넉넉하게 준비하였으

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대소신료를 비롯한 지도자와 장군들은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챙겨야

한다. 자, 출항하라. 나발을 불고 북을 울려라.”


 소서노의 명이 떨어지자 100여척의 배들이 길게 대오(隊伍)를 형성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진 커다란 깃발을 배 선두에 꽂았다. 삼족오를 뱃머리

에 꽂은 이유는 자신들이 고구려의 계통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항해 도중에 해적이

나 다른 나라 선박과 마주칠 경우 고구려 계통의 대선단에게 감히 대적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

였다.


 “자, 나의 충성스러운 기마대는 나를 따르라. 우리는 선단의 흐름에 맞춰 육로로 간다. 가는

길에 고구려, 낙랑, 대방, 마한 소국들을 차례로 경유할 것이다. 백 명 단위로 조를 짜서 남하

한다. 이동은 주로 밤을 이용한다.”
 천명의 날랜 기마대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동쪽으로 사라졌다.


 패대 지역을 떠난 100여척의 대선단은 유유히 황해를 건너고 있었다. 소서노어하라의 대선단

이 육지에서 수백 여리 떨어질 즈음 소서노어하라는 선상에서 제를 올릴 준비를 시켰다. 뱃머

리에 단 삼족오 깃발이 힘차게 펄럭거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마고(麻姑) 할미여, 칠성신(七星神)이시여. 황해의 용왕님이시여. 모년모월(某年某月) 정월

초삭을 넘은 열사흘, 대어하라국존왕소서노(大於瑕國尊王召西弩)는 창파(蒼波) 위 거선(巨船)

에 향전(香奠)을 갖추어 삼가 아뢰옵니다. 생각하옵건대 구천(九天)은 창창하고 구원(九原)은

망망한데 할미와 칠선신은 어디 계시옵니까.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들은 님의 인자함을 말하나 그 그윽한 인자로움을 모르며,

남들은 그 엄함을 알지만 그 도덕의 엄함을 모르옵니다. 인자로움은 족히 뒷 자손을 어루만질

만 하고 엄하심은 족히 선열들을 이어 받을만 하시건만, 어찌하여 직접 나투시어 가르침을

주시지 않는지요.


 바람은 옛 나무에 슬피 울어 예고, 달빛은 빈 문간에 조상할 때 소녀 나아가 님을 뵈온들

누가 하늘의 도의(道義)를 가르치며 천도를 이끌겠나이까. 지난 세월 졸본의 오랜 인연을

끊고 참담한 삶을 산 것을 생각하면 창자가 찢어지며, 님을 찾는 울부짖는 소리에 천지가 따라

울고 피눈물은 바다를 이루옵니다. 온 천하의 슬픔과 온 세상의 비참함이 이에서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아, 슬프옵니다.


 소녀는 이리하여 외로운 그림자로 떠돌면서 산하(山河)을 이불삼고 바위를 베개 삼아 님

뵙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월은 물 흐르는 듯하여 옛 단순호치(丹脣皓齒)는 멀리 가버리고

하나뿐인 거인(巨人)마저 잊어버리니 하늘에 부르짖어 보았으나 하늘은 높아 대답이 없고

땅을 두드리니 땅은 두터워 호소할 길 없사옵니다. 두 아들과 백성들의 뜻을 모아 어하라에

안주하였으나 사방의 호전적 무리들이 무시로 노리고 있어 백성을 거두어 배에 올라 남쪽

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희 무리가 마한 땅 우체모탁국 미추홀에 무사 안착하도록 도와주시고 이후에도 환인님과

 환웅님 그리고 단군님 혈통을 이은 우리들이 장차 남삼한에서 대제국을 건국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비록 소찬(素饌)이오나 사양하지 마시고 굽어 살피소서. 여인의 몸으로 불안

한 마음에 천번 절하고 백번 잔을 올리오니 흠향(歆饗)하소서.  


 하얀 비단옷을 입은 소서노어하라가 축문(祝文)을 읽고 나서 북두칠성을 향해 절을 올렸다.

뒤에 서있던 비류와 대소 신하들 역시 소서노어하라를 따라 절을 올렸다. 제관(祭官)이 큰 소

리로 숫자를 세고 북을 울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계속하였다. 제사는

새벽이 지나 동이 터올 즈음 까지 이어졌다. 



 하늘이 소서노어하라의 기원(祈願)을 알아차렸는지 풍랑도 일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았다.

소서노어하라의 대선단이 마한국의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낙랑국(樂浪國)의 인접 해안에 이

르자 식수가 바닥이 났다. 소서노어하라는 오백 명의 장정을 뽑아 별동대(別動隊)를 조직하

여 황금덩이를 주고 육지로 파견시켰다.


 “저기, 이상한 사람들이 온다.”
 해변을 경계하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는 소서노어하라의 신하들입니다. 남삼한의 마한으로 가던 중 식수가 떨어졌습니다.

돈을 드릴 테니 물 좀 주십시오.”
 “여봐라, 이자들의 행색과 태도가 이상하다. 모두 잡아서 데리고 가자.”


 “이보시오. 저기 바다 위에 대선단이 보이지 않소? 우리가 잡혀간 사실을 알면 저 배안에 있는

수천 명의 군사들이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상륙할 것입니다. 그러니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

시오.”
 소서노어하라가 보낸 병사가 바다를 가리키자 낙랑국 병사들은 본체만체하고 소서노어하라

군사들을 잡아갔다.


 “너희들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
 낙랑국 군관인 듯한 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다.
 “저희들은 소서노어하라를 모시고 남삼한의 마한국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그만 식수가 바닥나

물을 사러왔습니다.”


 “뭐라, 물을 사겠다고? 그래 몇 명이 먹을 물이냐? 몇 통이나 사려고?”
 “네, 사람 수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물은 삼천통 정도 사려고 합니다.” 


 “삼천통 씩이나? 험-, 우리 낙랑국은 물 한통에 만 냥을 받는다.”
 “네에? 물 한통에 만 냥이라고요?”
 “이놈이 귀가 먹었나? 그래, 물 한통에 만 냥이다. 삼천만냥 준비해왔느냐?”
 “이보시오. 물 한통이면 한 냥이면 충분하거늘 한통에 만 냥이라니요?”


 “허어, 이놈 봐라. 사기 싫으면 그만 두거라. 그리고 네놈들이 우리 낙랑국의 허락도 없이 어찌

상륙하였더냐? 너희는 법도를 모르느냐?”
 낙랑국 군관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이틈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속셈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자 소서노어하라의 별동대는 낙랑국을 밟은 대가로 500냥을 치르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뭐라고, 물 한통에 만 냥을 달라고? 그 군관놈이 미쳤구나. 내가 가서 그놈 목을 따고 물을

가져오겠다. 별동대는 병장기를 준비하고 나를 따르라.”
 비류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비류야, 안 된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우리는 충분히 예견하였다. 며칠을 참아보자. 물이

없어 사람이 죽기야 하겠느냐. 다행이 약간의 물이 있으니 밥할 때 쓰는 물 이외에는 아껴야

 한다. 생쌀을 먹을 순 없지 않느냐?”


 “네, 어머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마한 우체모탁국 미추홀인 것을 잘 알

고 있습니다.”
 소서노어하라의 대선단은 식수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남하할 수밖에 없었다. 후미 선단

50여척에 탄 남녀 수천명이 물이 부족하자 불편을 호소하였다. 이틀이 지나자 식수가 아주

바닥이 나고 말았다. 백성들은 물을 달라고 외쳤고 소서노어하라와 관리들은 당황하기 시작

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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