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선묘낭자에게 보내는 연서
당나라 선묘낭자에게 보내는 연서
- 영주 부석사 선묘각 앞에서 읊다 -
- 여강 최재효
불두佛頭가 되었습니다
신라의 사내로서 내가 나를 어찌할 수 없는 몸인 것을요
두 별이 하필이면 동시에 사선斜線을 그었을까요
인연이란 우연히 맺어지는 게 아니라지요
백천만겁百千萬劫은 찰라刹那라고 할 수 있고
찰라가 또한 천만억겁千萬億劫이라 할 것을요
그대, 이미 법문法門에 취해 있지 않았던가요
육도六道의 수레바퀴 안에서 각자가
헤아릴 수 없이 돌고 또 돌다가 마주했습니다
춘심春心은 본래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듯이
불경佛經 갈피 속에 언제나 그대의 미소가 있었답니다
단단한 생각이 곧 신앙이고 생명이라 할 수 있지요
잠시 스친 시선 속에 백 년의 눈물이 어렸고
바람 같이 사라진 환영幻影에 천년 긴 세월
그리운 눈부처가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두 사람 가는 길이 다른 것이라 변명하기에는
이승이라는 공간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간이라는 단어는 희롱戱弄이라 할 수 있답니다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면 만사가 밝게 보인답니다
두 개의 심상心想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면
차안此岸에서 바랄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때가 되면 육신은 사라지고 허영虛影만 휑하니 남는 것
그래서 유한有限의 삶은 더욱 값진 것 아니던가요
아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대 신묘함이여
나의 사랑이여
내가 윤회의 바퀴를 천만번 돌려도
천만번 남몰래 내 뒤에 그림자로 남아 있을 아픔이여
내 이름이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흔적도 없어진 나의 허명虛名을 그리워할 가련한 이국의 여인이여
- 창작일 : 2016.8.27.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