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새벽길에 서서
가을 새벽길에 서서
- 여강 최재효
한잔에 취하여 세사(世事)를 잊고 밤길 걷는데
풍우(風雨) 물러간 자리에 황금빛 길이 열렸네
호시절 기화요초(琪花瑤草)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혼자 걷는 밤길에 행여 사람들 만날까 두려워라
특별히 뛰어난 재주 없어 고개 숙이고 살아가니
매일이 나그네 세상에서 퇴임(退任)하는 날일레라
천지를 금침(衾枕)삼아 동서로 방황하고
하늘 아래 강하(江河)는 주지(酒池)되어 태평했었지
청춘에 걷는 길은 모두 방초(芳草) 가득했고
어지러운 발길 멈춘 곳마다 나의 집이라 할만 했지
풍만하던 푸른 육신 간데없고 뼈만 남아 곤궁해지니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 백 명 중 한 두명 뿐이네
바람 불어 금빛 행엽(杏葉) 휘날려 길가에 쌓이니
두 손에 한가득 영화(榮華)를 끌어 안아보네
잠시 후 첫눈 내리면 세상 오탁(五濁) 사라질 테고
허전한 심사(心思) 가눌 길 없어 차가운 잔 잡겠지
미련하여 처음부터 꽃길 잘못 걸었음이여
불청객 같은 황혼 초입에 들어 자주 밤길 걸음이여
텅 빈 새벽길에 휘파람 소리 퍼지는데
미로(迷路) 밝혀줄 효성(曉星)은 언제쯤 나오려나
- 창작일 : 2015.11.14. 03:30
[주] 오탁 - 세상에 있는 5종의 더러움이다. (1) 겁탁(劫濁). 사람의
수명이 차제로 감하여짐. (2) 견탁(見濁). 부정한 사상의 탁함이
넘쳐흐름. (3) 번뇌탁(煩惱濁). 사람의 마음이 번뇌에
가득하여 흐려짐. (4) 중생탁(衆生濁). 사람이 악한 행위만을 행하여
인륜 도덕을 돌아보지 않고, 나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5) 명탁(命濁). 인간의 수명이 차례로 단축하는 것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