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상
- 여강 최재효
할머니, 회초리는 들지 마세요
지금은 그때와는 아주 딴판이거든요
행여, 손자가 밥 먹듯 조반(朝飯)을 거르고 출근하여도
제 손으로 빨래를 해도
심지어, 수탉 대신 암탉이 홰를 쳐도
책임지지 못하실 바에는
그저, 모르는 척 하셔야 합니다
세상 대세(大勢)가 그런 걸 어찌 하겠어요
이 손자는 이미 마음을 비웠습니다
요즘에 하루 세끼 얻어먹는 손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조선시대 나라님보다 더 복받은 인생일 테죠
할머님께서 이 땅에 일찍 태어난 것이
어쩌면 불행이라면 불행이지요
하루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지구 회전 바퀴에 누군가가 몰래
기름칠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마누라 얼굴 보는 시간이
무척 지루했고
아이들과 밤하늘 별을 바라보는 시간도 있었지요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두레밥상에 빙 둘러 앉아 밥 먹던 그 시절이
뼈저리게 그립습니다
할머니, 이 손자 이십여 년 전에
가장(家長)이 된 이후에
한번도 그런 밥상에 앉아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그렇다고 바쁜 손자며느리 혼내지 마세요
- 창작일 : 2006. 2. 27일 발표 작품 수정 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