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Essay 모음 1

시간의 향기는 점차 엷어지는데

여강 최재효 2015. 10. 6. 00:04

 

 

 

 

 

 

 

 

 

 

 

 

                                   

 

 

 

 

 

 

 

 


             시간의 향기는 점차 엷어지는데

 

 

 

 

 

                                                                                                                                                           - 여강 최재효

 

 

 

 “시간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없는 걸까? 나는 시간

구속당하고 싶지 않다. 시간에서 탈출한 자유인이 되고 싶다. 제발 나를 구속하

지 마.  제발…….”

 “여보, 왜 그래요? 악몽(惡夢)을 꾸셨어요? 잠꼬대를 다하고…….”

 

 새벽 3시45분이다. 빠끔하게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밤을 잊은 귀뚜라미들의 합창

리가 들려온다. 나의 허망한 소리에 아내도 잠을 설친 모양이다. 오늘이 주말이길

망정이지 평일 같았으면 회사에 출근해 오전 내내 눈꺼풀의 무게에 짓눌리고 수시로

나오는 하품을 주체하지 못할 뻔 했다.

 

 내가 악몽이라도 꾼 줄 알고 놀란 아내의 등을 토닥거리고 함께 꿈속에 들어 무릉

도원(武陵桃源)을 가보자고 유혹했다. 금방 아내의 쌔근거리는 소리가 온기와 함께

전해진다. 하지만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의 영상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하고 나는 밤

잠을 설치고 말았다.

 

 요즘 들어 나는 부쩍 시간에 대하여 골몰(汨沒)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시간이란 무엇

일까. 나는 막연히 시계의 시침(時針)과 분침(分針)이 째깍 째깍 소리를 내며 하루를

24시간, 한 시간을 60분, 일분을 60초, 하루를 86,400초, 일 년을 31,536,000초로 잘게

분할한 시간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방향과 목적지도 모르면서 흐르고 있는, 세상의

하찮은 하나의 부속품이 아닐까.

 

 나의 세상 지위가 지천명(知天命)의 중간임을 감안한다면 나는 1,734,480,000초의

연속선상에 서있다. 꽤 어마어마한 숫자 같지만 매주 토요일 밤에 추첨하는 로또의

1등 당첨 금액보다 작거나 비슷하다. 그렇지만 내 몸에 17억이라는 단위가 숨어 있

다니 어찌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까.

 

 시간에도 속도와 향기가 있다. 나의 유년의 시간은 정말로 너무나 느리고 지루하여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통상 두세 살 정도를 더하곤 했다. 나의 무미건조한 시간이

우보(牛步)로 흐를 때는 6월의 농염한 장미나 한여름 복사꽃이 뿜어내는 향기 같은

것은 맡아 볼 수 없었다.

 

 길고 긴 시간의 동굴을 빠져나와 제법 사내다운 면모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나는 시

간의 속도감에 취하고 마약 같은 시간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나는 홀로

간의 속도감이 주는 쾌감과 시간의 진한 향기를 내 주변인과 공유하기 위하여 두주

(斗酒)를 불사하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거나, 어긋난 시간에 가슴을 치면서 전전

반측하였다.

 

 허술한 가장(家長)이 되면서 나는 내 몸에서 태어난 두 딸들의 풋풋한 시간과 30대

청장년의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딸들의 여린 시간은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고

하루 24시간도 부족한 나의 모호한 시간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딸들의 시간이 봄

볕을 받으며 걸어가는 병아리 같은 시간이었다면 나의 시간은 눈 쌓인 광야를 달리는

야생마 같은 시이었다.

 

 야생마가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에 흥분한 나는 가죽 채찍을 휘둘러 댔다. 매혹적인

야화(夜花)나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장화(墻花)의 손짓에 나의 말초신경은 극도로 예

민해졌고 시간은 광속(光速)으로 흘렀다. 저 멀리 아득하게 지나간 나의 시간 무덤이

태산같지만 향기는 예전에 비해 훨씬 미미했다.

 

 “선생님, 위(胃)에서 악성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 윤00 친구, 간밤에 급서(急逝)함. 유가족에게 위로 전화 요망 / 점봉초등학교

30회 회장 ] 


 이제 막 지천명의 문턱에 든 나의 뇌리에 박힌 의사의 진단과 전파를 타고 온 무거

운 문자는 충격적이었다. 한쪽 면만 보고 너무 멀리 달려온 듯도 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주지(酒池)에서 허우적댄 세월이 너무 많은 탓일 게다. 공들여 쌓은 짧지 않은

시간의 탑들이 거짓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동시에 모래도 어 먹던 죽마고

우(竹馬故友)의 명복을 빌었다. 처음으로 명계(冥界)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시간이

주어졌다. 배를 가르고 병상에 누워있는 나의 양어깨에 천사(天使)와 저승의 차사

(差使)가 앉아서 나의 복(福)의 량(量)을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나의 시간은 화수분이었다. 그러나 저승 문턱을 다녀온 뒤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천수(天壽)는 찰라(刹那)며,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지난 50년 동안 허비한 세월을 회억(回憶)해 보았다.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어쩌

면 하루나 이틀 혹은 겨 1년 정도 일수도 있다는 판단에 이르자 몸이 후끈 달아

올랐다.

 

 목욕을 하고 나는 나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세월에 찌든 퀴퀴한 살 냄

새 밖에 나지 않았다. 한때 나의 향기에 취해 따르던 무수한 가인(佳人)들은 모두 어

디로 갔을까. 그들도 나처럼 하루 24시간, 일 년365일 살면서 자신들은 마치 1,000

쯤 살겠다고 허망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의 내 몸은 대략 17억 3천 4백만 개의 초(秒)가 모여서 이루어 졌다. 운이 좋아

서 100년산다면 나의 몸은 31억 5천3백 6십만 초의 조각들로 구성되리라. 내 몸

에 천문학적 숫자의 시간이 모여 나(我)라는 한 신체가 형성되었다. 나는 결국 시간

과 세월이 만든 숫자의 집합체요, 잠시 존재하는 유령(幽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1억이라는 숫자도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수유(須臾)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된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의 껍데기가 태산처럼 쌓였음에도 향기는 점차

약해지고 있어서 무척 당황스럽다. 중년이라는 계급장을 단 나의 몸에서는 만추

(晩秋)의 방향(芳香)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야 맞다. 향기가 없다면 어찌 살아

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있어 내가 있다.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내 후세들, 먼 미래의 내 혈손

들이 있어 존재의 의미가 있다. 나는 수백만 년의 장구한 시간이 만든 피조물(被

造物)이라고 할 수 있다. 180만 년 전 지구상에 거주했던 호모-엘렉투스(Homo

Erectus) 쯤을 대략 한정하여 나의 조상이라고 하여도 이의(異意)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또한 잠시도 휴대폰 없이 살 수 없는 지금의 호모-스마트쿠스(Homo

Smartcus)인 나와 미래세의 후인(後人)들은 현재의 내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태양계와 삼천대천의 모든 은하와 모든 우주가 소멸되어 다음번 빅뱅(BigBang)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시간의 공유는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 시간은 분명히 영원불멸

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잠시 그 시간의 사이에서 흔적만 남기다 아침 이슬처럼

사라질 뿐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시간을

본 사람이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이작 뉴턴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나는 시간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은 물시계나 해시계 또는 별들의 움직임을 보았을

뿐이다. 나의 지난 세월은 시간이 손목시계나 벽시계 또는 휴대폰 안에 있다고 믿고

살았던 무명(無明)의 시기였다.

 

 지난 50여년을 나는 시간에 철저히 구속당하면서 속아 살았다. 남아있는 나의 잔인

한 시간들에 의해 역시 억압받고 구차한 삶을 이어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자조(自

嘲)와 탄식(歎息)이 춤을 춰야할 것 같다. 그리고 100년이 훨씬 지난 어느 시점에서

살펴보면 나라는 존재의 시간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파악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지평선에 끝이 보이지 않는 무량수(無量數)의 낡은 시간 조각들만 일렬로 서있을

뿐이다.

 

 하늘의 천사와 저승의 사자(使者)는 영원으로 향하는 시간의 조각들을 세면서 어느

시점에 살았던 00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주었다 회수했는지를 계산할 따름이다.

그들은 아담과 이브에게, 아브라함에게, 예수에게, 플라톤에게, 마케도니아의 알렉

산더왕에게, 공자(孔子)에게, 박혁거세(朴赫居世)에게, 양귀비(楊貴妃)에게, 당나라

두보(杜甫)에게, 고려 태조 왕건에게, 세종대왕 그리고 현재의 나와 미래에 태어날

나의 후세들에게 얼마만큼 시간의 조각들을 주고 빼앗을 것인지를 전세(轉世)를 통

해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태란습화(胎卵濕化)의

형태로 생명을 받고 나온 모든 것에는 향기가 풍긴다.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강한

향기가 나야 한다. 경우에 따라 냄새가 전혀 나지 않거나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나는 직선적인 시간 위에서 살고 있다. 평생을 공부한 사람들조차도 시간은 둥굴

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직도 그 자신이 현대 문명인의 범주에서 시초로

파악하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Homosapienssapiens)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비문명이나 근대 이전의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은 원(圓)

의 개념으로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이 지나면 낮이 되고, 봄-여름-가을-겨울이

순환되고 24절기가 있어 자연스럽게 시간이 반복적이며 둥굴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직선에 조율되어 있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시간은 영원으

로 향하고 있는, 무한(無限)의 잘게 쪼개진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전중후(前中後)는 일직선 위에 놓인 시간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

이 생각했던 시간이 기차의 바퀴라면 나의 시간은 바퀴가 달리고 있는 철로에 비견

된다.

 

 점, 선, 공간을 달리고 있는 3차원적인 내 시간의 진행은 식은 죽 먹기였다. 지난

50여년의 발자취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어느 절대자에 의해 창조

(創造)되었다는 이론에 기인한 결과라 하겠다. 지구의 시간은 창조론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하여도 우주적인 시간은 지구인이 만든 시간에 속박되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리 은하에는 수천 억 개의 별이 있고, 우리 우주에는 수천 억 개

의 은하가 있다. 지구는 우주에서 파악했을 때 한 점 티끌만도 못하다. 그런 작은 공

간에서 인간이 계산해낸 시간으로 우주를 파악하는 일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사론(私論)이지만 우주는 우리 우주 하나 뿐이 니라 수천 억 개의

다중적 우주가 존재한다. 광대무변(廣大無邊)한 현재 속에서 나의 소중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공간(時空間) 혹은 시공(時空)이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하나의 구조로

묶은 4차원 모델로, 상대성이론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물리학적으로

시공간은 공간과 시간을 합친 수학적 모델이다. 이를 통해 우주는 커다란 은하와

소립자의 단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공간의 3차원 벡터를 확장

하여 4차원 벡터인 x=(ct,x,y,z)로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c는 빛의 속도이고 따라

서 ct의 단위는 거리의 단위가 된다.

 

 요즘의 우리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어느 한

세상도 만만하지 않다. 눈을 감고 있으면 곧 죽음의 신(神)이 달려든다. 이제 우리

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의 관리라고 할 수 있다. 시간 관리의 실패는 곧 인생

의 실패를 의미한다. 자신이 한량(閑良)이라고 생각하고 수동적인 생을 산다면

둥근 시간을 선호할 테고, 그 반대의 경우는 직선적인 시간을 선호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집합체인 나는 현실에 존재하기도 하고 유령 같기

도 하다. 나의 옛 시간은 나의 조상들이 영유하고 있고 나의 미래 시간은 나의 후

손들이 소유하고 있다. 선량한 인생을 살아온 자에게는 반드시 향기가 난다. 그러

나 시간을 무시한 자의 시간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나의 시간은 나에게 한정된 게 아니다.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그 어느 것에도

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울면 세상이 울고, 내가 미소를 지으면 역시 세상이

행복해 진다. 나의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 것처럼 나의 시간의 냄새도 단절되지 않

는다. 유방백세(流芳百世)는 세상 모든 사람의 이상(理想)이요, 무지한 나의 꿈이

기도 하다.

 

 창문이 덜컥거리며 흔들린다. 솔공(蟀公)들도 잠자리에 들었는지 조용하다. 단지

바람이 이따금 차양을 흔들고 지나칠 뿐이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

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도 없고 별도 보이지 않는다. 허공에 시간만 소리 없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휙이익-, 소리를 내며 짓궂은 추풍(秋風)이 창문을 흔들어 댄다. 먼동이 은은히 터

오고 있다.

 

 “여보, 안 잤어요? 밤새 몸을 뒤척이는 것 같던데…….”

 “으응,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이 안 와서…….”

 “이젠, 완전한 자유인이 되신 거예요”

 혼자서 도원(桃園)에 다녀왔는지 아내는 살포시 웃으며 내 품을 파고들었다.

 

 

 

 

                                                                                                                                    - 창작일 : 2015.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