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Essay 모음 1

갈매기는 조용히 허공을 날고

여강 최재효 2015. 8. 19. 01:00

 

 

 

 

 

 

 

 

 

 

 

 

 

                                         

                                           진도 팽목항에서 기도하는 필자

 

 

 

 

 

 

 

 

 

 

                           갈매기는 조용히 허공을 날고
                                         - 세월호 희생 靈魂들을 追慕하며 -

 

 

 

 

 

                                                                                                                                                                  - 여강 최재효

 

 

 

 

 

 “얘들아, 너희들 아직도 안 나오고 거기서 뭐하고 있니? 어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

가야지.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팔월의 남쪽 바다는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바다 위에서 따가운 햇볕

지고 하얀 까치놀이 파도에 일렁거리며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일 년이 훨

씬 넘어 찾아간 나그네는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에 어린 학생들의 사진이 타일로 제작

되어 붙어있는 방파제 벽을 붙들고 마치 석고상(石膏像)처럼 두어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방파제에는 나그네처럼 일상에 쫓겨 뒤늦게 휴가를 이용해 잠시 들린 여행객들 스무

정도가 멍하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지난해 늦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흔적들은 많이 지워져 있었다. 통곡소리

도 들리지 않았고, 사고를 수습하는 대원들이나 자원봉사들의 분주히 오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배를 타고 인근 섬으로 떠나려고 모여든 사람들과 갈매기 서너

마리가 일렁이는 바닷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항구 옆에 마련된 임시 가건물로 발

걸음을 옮겼다. 가건물 안에 남해용궁으로 소풍을 떠난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어린

년, 소녀들의 환하웃고 있는 사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죄인의 심정으로 헌화(獻花)하고 아이들 얼굴을 일일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욕

기가 나면서 숨이 막혔다. 활짝 피어나 보지도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간 어린 영혼

들의 해 맑은 미소를 더 이상 바라 볼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와 지난해 비극을 모르쇠

로 일관해온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세상에 독불장군(獨不將軍)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위로 또 어머니와 아버지

가 존재해야 한다. 이렇듯 현재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위로 수백 혹은

수천 세대의 부모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위로 계속해서 족보를 따지고 계파를 따지면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기 까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결국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 가족이 된다.


 인간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그는 신분이 무엇이던 간에 고귀한 생명임에 틀림없

다. 누구나 인연(因緣)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온 것

도 인이요, 훗날 내가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나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인연

기인한다. 즉,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인연에 의해 소멸해 가는 게 우리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자신을 만든 주인인 인간을 해치고 있다. 사람이 편리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만든 문명의 이기(利器)가 인간을 해치는 이 아이러니를 두고 뭐라고

텐가. 저 아이들이 200년 전쯤 태어났다면 일 년이 넘도록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할

일은 아마도 없었으리라. 문명을 우리가 만들어 놓고 그 문명의 도구를 올바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악연(惡緣)이 생겨나고 있다.


 문명의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

손톱만큼의 이득을 더 얻고자 무리하게 선박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선박의 수용 가능

수준을 넘어서 화물을 싣는 행위들로 인하여 세상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인간

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탄생한 문명의 이기들이 인간을 살상하는 흉기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고교시절 나의 수학여행은 보통 관광버스를 타고 설악산이나 경주를 가는 것이 고작

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요즘 우리 아이들은 더 멀리, 더 큰 이동수단을 선호한

다. 더 먼길과 큰 이동수단은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버스나 기관차는 웬만한

사고 아니면 수백 명이 떼죽음 당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대형 여객선과 대형 여객기는 한번 사고가 났다하면 최소 수백 명의 아까운

인명을 앗아가기 일쑤다. 바다나 하늘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육지에서 발생하는 사고

보다 치명적이다. 세계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아프리카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

으로 가려다 배가 전복되어 수백 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기사를 본다.


 또한 중국이나 인도 또는 아프리카에서 안전 부주의로 기차가 탈선하거나 충돌하여

승객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도 종종 들려온다. 일인당 GNP가 3만 달러의 대한

민국에서는 어나서 안 될 슬픈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수원수구(誰怨

誰咎)하랴. 우리들은 일제로부해방되어 지난 70년간 앞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 사이에 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동족상잔(同族相殘)도 겪었고, 한강의 기적도

일궈다. 숨 가쁜 시대를 살아오면서 당시 위정자(爲政者)들의 채찍과 당근이 적절

효력을 발휘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온 국민의 염원이 있

었기 때문에 많은 기적(奇蹟)이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선박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독일 일본을 제치고

전 세계 선박 제조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연근해를 오가고 있는 수 많은 여

선을 비롯한 소형 선박들 상당수가 일본에서 수십 년간 운영하다 낡아서 더 이상

운행하기 곤란하여 운항을 중단한 배들이다. 운항이 중단된 일본의 중고 선박을 한국

의 여객선 회사에서 헐값에 구입하여 대충 수리하여 사용하고 있는게 현재의 실정이

다. 작은 선박 건조는 수지타산이 맞지않아 대형 선박만을 고집하는 우리 선박업계의

현실에 가슴이 쓰리다.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좌초되어 침몰한 세월호 역시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

하야시카네선거(林兼船渠)에서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으로 일본 마루에이 페리

사에 '나미노우에'(なみのうえ)라는 이름으로 18년간 가고시마~오키나와 간을 운

항하다가 2012년 10월 운항을 끝으로 퇴역하였으며, 한국의 청해진해운이 중고로 도

입하여 개수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되었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운항되고 있을 때 589톤이 무리하게 증축되었고, 한국에 수입되

239톤이 더 증축되었다. 2014.4.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는 화물 최

재량 1,077톤의 두 배인 2,142톤의 화물을 싣고 있었다. 어쩌면 해난사고는 예정

었다고 볼 수 있다.

 

 선박을 운영하는 회사나 선원들이 욕심을 내지 않았더라면 고귀한 생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황금 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인해 우리는 뼈아픈 일을 당해야 했다.

이전에도 우리는 연근해 바다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해난사고를 무수히 당한 적이

있다.


 배는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수송하는 역

한다. 배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비행기에 비해 느릿한

속도로 항해하는 호화유람선을 보면 배를 타고 미지의 세상을 유람하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한다. 석양을 등지고 유유히 순항하는 배를 보면 먼 데 있는 사람이 그리워지기

도 한다. 그러나 배를 잘못 운용하여 파라다이스로 가야할 배가 망각의 강을 건너가

기도 한다.


 이제 배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부당한 방식으로 이익을 보려는 마음

사라지지 않는 한 제2의 세월호 사건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눈앞에서 세월호

침몰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른들은 모두 죄인이 되고 말

았다. 믿기지 않는 일을 보고 어른들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어린 영혼들에게

슨 말할 수 있을까.


 의학의 발달로 지금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최소 100세까지 충분히 살 수 있는 시대

살아가고 있다. 100년 중 겨우 15년 정도만 이승에 있다가 어른들의 이기심에 희

생되하늘여행을 떠난 우리 아이들의 원한을 어떻게 풀어줘야 할까. 300여명의

아이들이 에 생산하도록 예정되어 있던 미지의 후손들은 현세의 어른들을 얼마

나 원망하고 있까. 


 사람은 세상에 나오면 언젠가 세상을 버려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

들이 미래에 살아갈 80년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 보상금 몇 푼을 희생자

부모 손에 쥐어주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들 어찌 자식을 잊을 수 있을까.


 300여명의 우리 아이들 미래 80년을 합하며 24,000년이 되고, 그 아이들이 결혼하여

1인당 2명의 자녀를 생산하고 그 자녀들 600여명이 평균 100년을 살 경우 모두 합하

무려 60,000년이나 된다. 세월호는 바다에 떠서 유유히 흐르는 세월처럼 흘러야 하

한순간에 84,000년이라는 황금 같은 미래의 세월을 훔쳐가고 말았다.

 

 300여명의 아이들과 그들 몸에서 생산될 미래의 인적 자원의 손실은 대한민국에게

너무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아이들의 슬픈 이야

가 많이 퇴색되겠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을 때 까지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의

원망외면해서는 안 된다. 희생된 그 아이들은 바로 나의 자식이요, 손녀, 손자들이

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든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위로 10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한민족

모두 일가친척이 된다. 어찌, 내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라고 팽목항에 메아

고 있는 아이들의 비명을 외면하고 지나갈 수 있는가. 매일같이 실시간으로 팽

목항 소식을 전하던 매스컴도 잠잠하다.


 벌써, 잊은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국민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기사 거리가 못

다고 판단한 것인가. 정신없이 남해용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풍을 즐기고 있

우리 어린 아들 딸들을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의 해

맑은 미소를 보고 싶다.


 저 멀리 대형 여객선이 희미한 해무(海霧) 속을 헤치며 남쪽으로 가고 있다.

뚜우-, 뱃고동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련하게 들려온다.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

리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봄 참사를 목격하고 아이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차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팽목항구를 방황하는 갈매기들은 조용히 허공을 날고…….

 

 “얘들아, 너희들 아직도 안 나오고 거기서 뭐하고 있니? 어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

가야지.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 2015.8.1일 18시 진도 팽목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