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異人
- 여강 최재효
허공을 타고 문자들이 날아와
사내를 지워버릴 예정이라고 눈알을 부라린다
무슨 연유로 그를 삭제하려는 걸까
반백년 동안 빈손으로 있었던 불쌍한 그를
백년의 잠에서 깨어난 듯 세상이 흔들린다
잠자고 있는 동안 그는 천국을 보았고
천 길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디디기도 하다가
지금 그의 손에는 겨우 쓰디 쓴 술잔이 쥐어져 있다
세상을 충분히 따라잡지 못한 대역죄인의 처지로
남자는 자주 질책을 받아야 했다
수많은 백안白眼이 두려워 선전善戰하던 중에
그는 또 발을 헛디뎠고 세상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멸을 홀로 봐야하는 서러운 즐거움
불규칙하지만 확실한 심장 박동소리
차츰 희미해져 가면서도 종말을 향한 허무한 기록들
어떤 하나를 위한 혁명이 절실했다
남자의 혈관은 별개의 생生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주변이 눈을 비벼댔다
오히려 남자가 놀라워하는 것은 주변이었다
주변이 재빨리 멀어져 갔다
눈치없는 세상은 깊은 함정을 파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뒤에 그를 그리워할 미친 모호함들
사방에서 비수처럼 날아드는 허망한 문자들
집요한 문자 때문에 한 생生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 창작일 : 2015.1.14.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