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Essay 모음 1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여강 최재효 2014. 11. 30. 23:43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 여강 최재효

 

 

 

 


 
 나는 발길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끝이 없는 터널

걷는 느낌이다. 걷다가 왼쪽과 오른쪽을 바라보면 회색빛에 물

든 환영幻影만 보인다. 그 환영의 실체를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저 멀리 희미한 빛 한 줄기가 내 앞길을 인도하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어둠

터널에서 빠져 나왔을 갑자기 하얀 빛이 쏟아지며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겨울을 부르는 비가 내리고 있다. 얼마 전, 새로 마련한 집 침실

창문에는 녹의 차양遮陽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슬비가 내려도

나는 이불속에서도 창밖의 상태를 추측할 수 다. 몸이 흠뻑 적

어 있다. 요즘 들어 자주 악몽惡夢도  아니고 선몽善夢도 아닌 것

숙면을 방해한다.

 

 습관처럼 시간을 확인해 보면 보통 새벽 4시나 5시쯤이다. 출근

을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 날 때 까지 두세 시간 누워서 금 전에

내 무의식을 지배했던 한편의 흑백 무성영화無聲映畵를 음미해

본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꿈속에서 생생하게 보였던 것들이 아

무리 애를 써보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벌써

치매증상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본다. 정말로 돌아보면 아

것도 없다. 오로지 백화현상白化現狀이 있뿐이다.

 

 해도 달도 별도 심지어 나 자신도 뒤안길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공포가 몰려온다. 두려움에 떨면서 이불속으로 몸을 숨긴다.

아무리 몸을 숨겨본들 나를 감출 수 있을까. 조락凋落의 시기

그럴 수도 있으리라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며칠 전 나는 인천대공원 후문에 있는 수령樹齡 800년 된 은행

나무를 촬영하기 위하여 찾은 적이 있었다. 10일전 갔을 때 그 마

을 수호신守護神은 아직 완전한 노란 색이 아닌 중간 중간 푸른

이 감돌고 있었다. 대략 10일 지나면 금빛으로 치장된 멋진 수

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짐작하였다.

 

 나의 예상은 간밤의 세찬 풍우風雨로 인하여 빗나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앙상나뭇가지만 몇 장 찍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야 했다. 진작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루 24시간 중 나는 지금처럼 아무도 나를 속박하지 않고 또

한 어느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 여명黎明이 은은하게 세상을

감싸고 있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 이 시간 큼은 내가 나 자

신과 대화를 할 수 있고 지나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금쪽같은

이기도 하다.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 새벽 황금시간대에 비라도 내리면 금상

첨화錦上添花가 된다. 차양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며 추억을

추하게 만드는 빗방울이 고맙기만 하다. 이런 시간에 나는 시

時空을 넘나들며 시간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 내가 겨우 지천명의 중간쯤 지나왔다고 해서 기껏해야

백년전의 일이나 회상할 수 있다고 단정한다면 큰 오산誤算일

있다. 나의 시간 여행은 나를 중심으로 이전 100억 년 이후 100억

쯤에 한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고 하니 지구

기기 그 이전 까마득한 세월을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간다. 수천 억

개의 크고 작은 별들과 가스, 먼지, 암흑물질黑物質이 모여 만

들어진 우리 은하銀河를 통과하는데 빛의 도로 10만년의

어마어마한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나 2014년 미국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제작하여 요즘

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영화를 보면

구에서 220만 광년 거리의 안드로메다은하까가는데 1~2

면 가능하다. 내가 특수장비特殊裝備를 타고  블랙홀(Black Ho

le)로 들어가 화이트(White Hole)로 나오면 된다.

 

 이 통로가 바로 그 유명한 웜홀(Worm Hole)이다. 웜홀이

괴물은 시공을 초월한 우주 공간 여행을 가능케 해준다. 이

홀은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다. 물론 어

아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 동원돼야 가능한 일이다.


 기분이 좋은 날 나는 하룻밤에도 여러 차례 우주 공간을

고 다닌다. 허영가득한 아름다운 고대 에티오피아 왕비

카시오페아(Cassiopeia)를 만나 밀애를 즐기기도 하고 그의

귀여운 딸 안드로메다(Andromeda) 공주를 유혹하여 하룻밤

풋사랑을 아쉬워하며 질탕하게 놀다 동틀 무렵 지구로 돌아오

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냥꾼 오리온(Orion) 성좌星座 가운데 쓸쓸히

머물고 있는 삼태三台星을 불러 거나하게 술을 마시며 그

을 위무하기도 한다.


 페르세우스(Perseus)의 애마愛馬 페가수스(Pegasus)를

시 빌려 타고 삼천대천의 광활한 우주에서 질서를 어지럽히

있는 큰곰이나 전갈 같은 악한惡漢들을 혼내주기한다.


 또 어떤 날은 천상天上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 큰누이, 큰형

님을 모시고 내 고여주 한 가운데를 흐르는 여강驪江 가에

서 뱃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붉은 꽃비가 미풍微風에 휘날리는

가운데 의자왕의 3천 궁녀들을 초빙하여 함께 군무群舞를

기도 한다.

 

 현세의 일로 머리가 아프거나 우울할 때 특별한 이유도 없이

헤어진 첫사랑의 J를 만나 가슴 아팠던 그간의 이야기를 쏟아

내면서 답답한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한다.


 어쩌다 음주가무飮酒歌舞로 혼몽昏懜할 때는 노자老子와 맹

자孟子를 찾아가 무위자연無爲自然 인간의 근본 성정性情에

대하여 밤새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범인凡人의 생각에 하룻밤에 시공을 뛰어넘어 온 우주를 휘

젓고 다닌다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고

서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이력履歷이 쌓이다 보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다고

망상妄想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망상이나 상상이 없

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못한다.


 종교, 철학, 과학, 수학 등 인류문명을 주도해온 학문들

상에서 기인起因하여 인간 세상을 풍족하게 하였다. 희뿌

새벽녘에 혼자만의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현상 세계가 아닌 가

상假想의 세상 혹은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행복이

다.


 이웃이나 동료 혹은 이해관계가 맞물린 인연들을 해코지하

나 압제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악기惡氣로 가득한 생각을 씻어

버리면 세상은 제법 살만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안길을 회

억回憶하거나 자신의 이력서를 다시 읽어보려 하지 않는다. 오

로지 앞만 보고 나가려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나가려고

습관에는 늘 불행이 함께한다. 중년의 위치에 있으면 나온

길을 회고回顧해 봐야 한다.


 우리 은하는 2억5천년 마다 한번 자전自轉한다. 그 회전

방향이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태양계 행성들의 공전空轉 방향

이며 지구의 자전 방향이기도 하며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시

바늘의 진행 방향이기도 하다.   

 
 사람이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는 습성은 4만 세대

걸쳐 우리 몸에 박혀있는 유전자 때문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우리 은하나 태양계 혹은 지구의 회전 향과 같은

향으로 회귀回歸하려는 자기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없다.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허공만 있을 뿐이다.  인류의 시간과 연관된 60, 24, 30, 

12, 365 따위의 수치는 달과 지구, 태양의 직임을 보고 인간

이 만들어낸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길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막대에 눈금으로 표

된 수천억의 조각으로 잘게 쪼개진 시간이라는 공간속에 잠

시 흔적을 남기고 소리 없이 사라져갈 뿐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천지가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한 번의 겁

에 비하면 점도 되지 못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지구의 시

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壽命에서 모든 주사물을 파악

하려는 시도는 참으로 무책임하며 책임피에 불과하다. 


 그래서 조물주는 후세後世를 낳게 하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당대當代에서만 호의호식好衣好食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족쇄를 채워놓았다.


 할아버지가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그 후대도 존경을

받는다. 그 반대의 경우는 말해 무엇 하랴. 여명의 시간에 이불

속에서 과거로 역행하거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이유는 나의

희미한 뒤안길을 보고 싶어서였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퍽 나쁘지 않다. 3,40년 전의 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해 보거나, 500년 혹은 2,000

년 전 우리 조상들 또는 더 거슬러 올라가 호모에렉스(Home

Erectus) 시기에 반인류의 출현을 생각해 보면 나의 존재가

결코 미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뿌리를 뒤돌아보고 원류原流를 종종 음미해 본다

인생 한 백년이 외롭거나 두렵지 않다. 나를 낳아준 부모,

 같은 하늘아래 숨 쉬고있는 형제자매, 주변의 친구와 지인

그리고 동료들. 우리는 우연히 지금 시대에 태어나 사는 게

아니다.


 지금 내 뇌리로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도 우연히 내 이마

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나는 이미 수백 년 전에 혹은 수천

후에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나는 과거에 원한을 품고 죽은 어느 억울한 원혼冤

의 환영幻影일 수도 있고 이미 미래세에 태어나서 살아가

있는 어느 사람의 과거세일 수도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없다. 왜 사람들은 지난 세월을 잊으려하는 것일까. 과거에 안

좋은 기억이 많다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과거의 또 다른 누구의 미래이며 앞

로 또 다른 그 누구의 과거를 살아가고 있다. 앞만 바라보

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삶은 어쩌다 자신의 뒤를 돌아

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꽃 피는 봄날 연인戀人이 되었다가 세상에 속아 이별의

쓰라린 눈물을 흘린 경험있거나 이해관계 속에서 타의他意

에 의해 원한을 품게 된 사연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자주 뒤돌

아보면서 아픈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자신이 만든 웜홀을 통

하면 누구든 전세前世, 현생現生, 미래세未來世를 돌아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옛날에 읽었던 동화童話나 전설, 신화 같

은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 되새김하거나 자신이 동화속 주인공

이 돼야 한다. 앞만 보고 나갈수록 태산 같은 짐은 점점 더 쌓

여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처럼 웜홀을 통해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며 온 우주를 돌아

보는 일도 꽤 흥미진진하다.


 어느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일직선상에 존재하고 있

다. 눈앞의 영리營利에만 자신을 붙잡아두고 하루하루 살아가

는 사람들은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다보니 있었던 과거도 없

다.


 그런 삶은 어쩌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집, 내차, 내 돈, 내 마누라, 내 자식, 내 재산......,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잠시 흔적만 남길 뿐이며, 그 흔적도 30년이 지나면

세상에서 잊혀진다. 북망산 중턱에 태산만한 왕릉王陵에 허언

虛言과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치장된 비문碑文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의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하늘, 구름, 바람, 해, 달, 별, 땅, 나무, 새, 나무, 불, 물......,

즉,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만들어 놓은 잠시의 허상虛像일

이다. 100년 후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보면 명확해 진다.


 그때도 지금처럼 겨울비는 내릴 테고 하늘에 해와 달은 변

함없이 빛나리라. 나는 허리를 서늘케 하는 바람을 막으려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유년의 나와 100년 후의 나를 찾아 몽

夢道를 떠나련다. 과연 내 뒤안길에 무엇이 보일지 희망

과 의문을 품고서.

 


                                               - 창작일 : 2014.11.3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