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간/Essay 모음 1

아파트와 유택

여강 최재효 2014. 10. 19. 05:47

 

 

 

 

 

 

 

 

 

 

 

 

 

 

 

 

 

                                 

 

 

 

 

 

 

 

 

 

 

 

 

                    아파트와  유택

 

 

 


                                                                                                                                                                                - 여강 최재효

 

 

 

 

 

 

 30년 전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거나 30년 후 나의 존재를 유추해 보고 싶으면 나는 홀로 찾는

곳이 있다. 그곳은 봄이나 여름보다 지금처럼 하늘이 높고 삭풍이 불어올 즈음 찾는 것이 숙고

熟考하는데 좋다. 늦가을 자신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대개는 고궁이나 조용한 사찰 또는

고급스러운 카페를 찾는다. 또는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바쁜 친구들을

불러내 억지로 탁주잔을 돌리거나 객쩍은 이야기로 쓸쓸함을 달래기도 한다.


 나 역시 한동안 추풍秋風이 불고 만산萬山이 갈색으로 물들 무렵이면 가까운 고궁을 찾아 선

인先人들의 흔적을 살펴보거나 승경勝景의 고찰古刹로 발걸음을 놓아 다향茶香에 취하여 알쏭

달쏭한 대덕大德의 법문法門을 듣곤 했었다. 내가 이곳에 단골손님이 된 때는 불과 사오년 밖

되지 않는다. 어떤 벗들은 나의 기행奇行을 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면 동쪽의 산 정상이 북쪽과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로 흐르면서 남쪽 방향의

능선은 서쪽으로 휘돌아 내려오는 형세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산 정상에 올라가 좌측의 남쪽

능선과 우측의 북쪽 능선을 내려다보면 금빛 닭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동쪽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나의 무지한 시각으로 보면 이곳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의 길지

吉地처럼 보인다. 


 다만 닭이 품고 있는 물상物象들이 이승이 아닌 이미 저승에 든 망자亡者들이 거주하고 있는

유택幽宅이라는 점에서 한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왜 이렇듯 산자가 아닌 망자를

위하여 산자들도 집을 짓고 살기 어려운 명당明堂을 사자死者를 위하여 배려하였을까. 나는 늘

이점이 궁금하였다. 이전에 나는 조상의 음택陰宅을 잘 지어 후손들이 발복發福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시작되었을 거라고 추론推論했었다.


 배낭 안에 들어있는 텁텁한 음료수와 카메라 그리고 과자부스러기가 발길을 더디게 하였다.

늦가을 오후의 상쾌한 가을바람이 폐부肺腑 까지 시원하게 했다. 추모追慕의 집을 지나자 우측

산자락에 중국인 유택단지가 있는데 후손後孫의 행보行步가 끊긴지 퍽 오래된 듯 보였다. 20도

경사의 콘크리트 포장길을 재촉하였다. 서늘한 산기운이 전신을 감싸고돌지만 금방 속내의가

땀에 범벅이 되다시피 했다. 50여분을 인내하니 거대한 공룡처럼 생긴 남쪽 산등성이를 밟을 수

있었다.


 나의 위치가 점점 더 높아질수록 수많은 유택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택만 보이는 게 아니었

다. 산 능선 뒤에 자리한 산자들의 거대한 빌딩 군群이 마치 망자들의 영역領域을 금방이라도

쳐들어 올 기세로 당당하게 서있다. 망자들의 영역 중심부에서 바라보는 산자들의 하얀 아파트

단지와 빌딩들이 석양夕陽에 물들어 오묘하면서도 활력으로 가득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약간의 틈새로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살펴보면 망자들의 유택이나 살아있는 자들의 거대한 빌

딩 군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내 발아래 아늑한 구릉에 작은 집을 짓고 누워서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는 저 망인亡人들 중 상

당수는 한때 나와 같은 하늘아래 숨 쉬면서 부지런히 삶을 살던 분들이다. 그들 중 몇몇은 어느

골목에 있는 선술집에서 나와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하였거나 버스나 전철 안에서 옷깃이 스친

인연도 분명히 있다.

 

 또한 내가 몇 차례 들렀던 자장면집 주인이 있을 법도 하다. 단지 나는 심장이 뛰기 때문에

산자들의 아파트에 누워 있는 것이고 망자들은 심장이 장기 휴식에 들었기 때문에 이곳 차가

운 땅속에 누워 있을 뿐이다. 또한 다른 망인들 대부분은 분신焚身되어 작은 납골 항아리에 담

겨 저 아래 거대한 납골당에 모셔져 영면에 들어 있기도 하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영면永眠에 든 망자들의 마을에 오면 나는 늘 걷는 코스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자주 보던 길가에 위치한 한 기의 유택이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예전

에는 다른 유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상석床石이 놓이고 석주石柱와 장명등長明燈이 세워

져 있었다. 내가 오랜만에 찾은 탓에 그 유택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OOO씨氏 OO공公 지묘之墓라고 쓴 오석烏石도 새롭게 세워진 듯 했다. 유택의 자손이 일확

천금一攫千金의 주인공이 되었거나 조상님 덕에 사업이 크게 흥하였다고 판단되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유택이 깔끔하고 부유층답게 치장된 듯 하다. 역시 저승에 들어도 돈이 있어야 대

을 받는다.


 이승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집을 크고 화려하게 꾸미려고 한다. 저승 사람들의 유택은 이승에

남아있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규모와 장식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승에 있을 때 남긴 재물이

많으면 저승에 들어도 그의 유택이 크고 화려할 테고 빈손이었다면 유택이 없거나 초라할 테

다.

 

 불의不義의 사람이 수십억 호가하는 100평짜리 아파트에 살건 왕의 능묘陵墓처럼 화려한 유

택에 들건 부러울 것이 없다. 어찌 보면 그 같은 행태는 대다수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치욕이며

그 자신의 얼굴에 누워서 침을 뱉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춤을 추는 한적한 산길을 걷다보니 이름 모를 새들이 짝을 지어 머리 위를

날며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그 새들은 산자와 망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었다. 나는 얼른 그 뜻을 정확하게 해독하지 못했지만 대강은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보시오, 나그네. 한 평생 아등바등 살아봐야 저승에 들면 겨우 한 평도 안 되는 유택에 누울

텐데 뭘 그리 헉헉대며 달려가시오.’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

는 청천靑天이 너무나 깊고 평온해 보였다. 한평생 앞만 보며 달려가던 사람들도 유택에 들면

매일 하늘만 바라봐야 한다. 앞만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볼 수 있

는 것도 큰 복이다.


 차갑고 좁은 땅속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나온 인생길을 회고해 보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 얼마나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는가? 나의 기억에도 중년의 계급을 달

때 까지 다양한 이력履歷을 쌓기에 급급했지 자주 하늘을 우러러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을 쌓기에 바쁜 2,30대 연령대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보며 감상에 젖는 일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하여 혹은 미래에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당장 필요한 일은 다양한 스펙을 쌓는 일이다.


 스펙을 쌓는 일보다 더 무게를 둘 것은 사람처럼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다. 아주 쉬우면

서도 간단한 사안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처럼 사는 일은 생각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

파트에 살고 있다고 해서 다 사람은 아니며,  화려한 유택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

해서 모두 고인故人이 아니다.

 

 사람은 그가 걸어온 이력에 의해 노후老後에 또는 사후死後에 평가를 받게 된다. 어머니의 자

궁子宮을 빌어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 구실 못하는 비인간非人間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가짜 인간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인두겁을 뒤집어 쓴 짐승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가 갈수

록 늘어만 가는 현실이 이를 반증反證하고 있다. 사람은 덕德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황금을 먹

고 살려고 한다.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자신이 언제쯤 저승에 들 거란 사실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문

속에서 황금과 기계에 충직한 노예가 된 이즈음 우리들은 양 어깨에 천사와 저승사자를

동시에 두고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로 이승을 하직하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캄

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세월호 침몰사고, 판교 환기구 추락사건, 사건 또 사건, 사건이 꼬리

물고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양 어깨에 천사의 수자보다 저승사자의 수가 많아졌다. 이러한 일련의 불상사는 사람들이 인덕

人德 대신에 황금을 먹고 살기 때문에 일어난다. 


 산자든 망자亡子든 거주하는 단위에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 저 황금빛 석양에 촉촉이

젖은 거대하고 화려한 마천루摩天樓 속에 사는 사람 중에 과연 얼마나 인덕을 베풀고 살고

있을까. 상석을 놓고 석주를 세우고 장명등을 설치한 망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자가 살아생

전에 이웃들에게 인덕을 베풀었을까.

 

 물론 있는 자라고 모두 부도덕한 부류로 매도罵倒하려는 처사가 아니다. 한때 철강 왕이라

불리었던 미국의 산업자본가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나 석유왕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같은 이가 우리 삼천리 화려강산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계를

좌지우지하는 L, J, C, K의 가문에서는 자식 손자들에게 호의호식시키려고 신경 쓰지 말고

쌓아 놓은  황금을 빈손의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풀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짐승처럼 살아가는 자

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큰 것, 좋은 것, 위대한 것, 최고의 것을 지향해온 지난날 우리 모

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망령이 백의白衣 후손들의 착한 인성人性을 수성獸性으로 변질시

다.

 

 평생 수수한 삶을 살아온 농부의 평범한 무덤이 어느 날 조선시대 왕릉처럼 새롭게 단장되

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의롭지 못한 수단으로 돈을 벌거나 정변政變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아들이 오래전에 저승에 든 부모의 묘를 왕릉으로 만들어 놓고 허세虛勢를 부리기도 한다.

보기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같은 치졸한 일탈행위는 저승에 든 부모의 영면永眠을 훼방하

는 불효막심한 일이다.


 한 민족이나 국가 또는 가문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적이 없는 지극히 대다수 평범한 사람은

살아있는 날과 저승에 든 날을 합쳐서 보통 200년 정도면 세인과 후손들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지게 마련이다. 매장문화埋葬文化가 점차 화장문화火葬文化로 변해가는 추세에 따라

조상님을 기리는 제사문화祭祀文化 역시 변하고 있다.

 

 이 추세로 간다면 곧 산자와 망자 사이는 점점 멀어질 것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 돌

에 그리 대단한 족적足跡도 아니거늘 마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 투사鬪士처럼

화려한 미사여구를 적어놓고 당당하게 누어있는 뻔뻔스러운 망자들을 보면 관참시剖棺

斬屍가 떠오른다.      


 인천대교를 황혼黃昏 속에 가둬놓은 저 석양도 오늘 아침 세상을 집어 삼킬 듯 동산에

떠서 이제 기력을 잃고 출렁이는 서해西海로 가라앉고 있다. 석양에 물든 초고층 아파트와

이곳 유택들의 경계가 사라진 듯 하다. 잠시 후면 살아 있는 자들의 고층 아파트는 화려한

명으로 단장하고 밤하늘에 별처럼 빛날 것이며 고인들의 명계冥界는 가로등도 없는 암흑

속에 침잠沈되어 밤새 적멸에 들어 있을 것이다.

 

 석양이 구름 속에 숨는 듯 하더니 이내 여리고 붉은 기운만 토해내고 곧 바다 속으로 빠

렸다. 30년 후면 저 화려한 아파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상당수 사람들이 30년 전 살아 숨

던 이곳 사람들과 이웃이 될 일은 단지 시간상의 문제 일 뿐이다. 또한 그들의 비문碑文에 어

떤 내용이 새겨질지 무척 궁금해진다. 나는 아직 ‘한평생 사람처럼 살았다’라고 쓰인 비문을

보지 못했다. 

 

                                                                                                                                     - 창작일 : 2014.10.18. 18:00      

                                                                                                                                                   부평가족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