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4. 7. 26. 13:59










                                          







                          월하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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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동은 낙랑국 공주 최애랑과 고구려로 돌아 왔다. 물론 돌아
올 때 낙랑왕 최리가 호동에게 선물로 준 일명 자명고라 불리는
북을 가지고 돌아왔다. 무휼은 호동이 가져온 자명고를 받고 무
척 기뻐하였. 애랑 앞에서는 아무소리 하지 않았지만 무휼은
호동에게 곧 낙랑국으로 쳐들어 갈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태왕 무휼의 명령에 따라 고구려는 대군大軍을 압록수에 집결
시키고 낙랑국으로 쳐들어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무휼은 호
동이 낙랑국에서 함께 온 애랑의 입장을 고려하여 곧바로 명령
 내리지 않았다.

 왕후는 호동이 아름다운 낙랑국 공주를 데리고 오자 매우 신경
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아비 무휼에게 사소한 일에도 불평불만
을 쏟아내며 트집을 잡았으며 시비들을 시도 때도 없이 매질을
하기도 했.

 호동이 낙랑국 공주 애랑과 아침저녁으로 왕후에게 인사를 드리
러 갔지만 왕후는 호동과 애랑을 만나주지 않았다. 낙랑공주의 출
현으로 무휼은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졌으며 왕후의 노골적인
투정은 날로 더해만 갔다.

 태왕,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적국에 가서 비밀병기를
부수고 돌아오라고 했더니 어디 낡아빠진 북하나 가져와서 임무
를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하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소첩 
보기에 그 북은 가짜가 분명합니다. 태왕께서 호동에게 감쪽같이 속
으셨다고요.

 그리고 무영단이란 실체는 아예 알아내지도 못했다는데 그동안 낙
랑국에 머물면서 그 잘난 낙랑공주를 껴안고 밤낮 오입질만 했나봅
니다. 나는 그런 출신도 증명되지 않은 이상한 여자를 며느리로 들일
수 없습니다당장 그년을 쫓아버리세요.
 오랜만에 왕후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된 태왕은 왕후의 투정에 골
머리가 아팠다

 , 왕비, 내가 보기에는 그 북이 자명고가 분명해요. 낙랑공주와
호동이 백년가약을 맺고 시집으로 살려고 왔으니 너무 구박하지 말구
. 그 아이를 가만히 보니 상당한 미색으로 우리 호동이와 천생연분
같습니다. 이왕 일이 이리되었으니 왕비가 넓은 마음으로 낙랑국 공
주를 며느리로 대해주세요.

 -, 소첩은 절대로 그년을 며느리로 인정할 할 수 없어요. 아무리
여자가 좋아도 그렇지 고구려에 데리고 와서 부모에게 먼저 알리고
혼인 승낙을 받아야 하거늘 먼저 자기들 끼리 할 짓 못할 짓 다해
고 이제 와서 부부로 인정해달라는 처사는 개, 돼지도 하지 않는 일
입니다. 그리고 소첩이 보기에는 그년은  촌닭으로 보이는데 무슨 미
색이란 말입니까?
 왕후의 투정을 태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왕비, 곧 우리 고구려 군사들이 낙랑국을 칠거요. 이제 낙랑국에는
자명고가 없으니 낙랑국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호동이를 믿어
보세요. 아무리 그 아이가 왕비 몸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 하나 나에
게는 아들입니다. 너무 그 아이를 미워하지 마세요.

 태왕께서 행여 호동이 에게 훗날 왕위를 줄 생각을 하고계신다면
큰일이 날것입니다.
 왕후는 무휼에게 거침없이 속내를 내보였다.

 아니, 왕비,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해보셔요. 호동이는 정비正妃도 아닌 갈사국에서 온 무지렁이
여인이 낳은 태왕의 서자庶子입니. 소첩이 낳은 아이가 비록 나이
는 어리다 하나 우리 아들이 장차 태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태왕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그러니 행여 호동이를 태자로 앉힌다거나 또
는 다른 엉뚱한 계획을 가지고  신다면 하루빨리 폐기하셔야 합니
.

 왕비, 함부로 그런 말 하시면 안 됩니다.
 함부가 아닙니다. 저는 이 나라 왕후로 당연히 할 말을 하고 있습니
.
 왕후는 무휼에게 조금도 지지 않았다.

 왕비가 벌써 그 정도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제 태어난
얼마 안 되는 아이로 내 뒤 이을 생각이라면 호동이가 왕비에게
눈엣가시가 되겠어. 그러나 호동이 그동안 짐을 따라 다니면서 공을
많이 세웠어. 또한 최근에는 낙랑국의 보물인 자명고 까지 가져왔어.

 이제 자명고가 없는 낙랑을 정복하면 그 공은 호동이 에게 돌아갈 것
인데 그리되면 왕비와 연나부椽那部 사람들은 크게 반발할 거야. 자칫
잘못하면 낙랑국을 정복하고 난 뒤에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겠어.
일을 어찌한?

 태왕 무휼은 왕후를 껴안고 오랜만에 운우지정을 나누면서도 머릿
속에는 호동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호동이 국내성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편치 못했다. 자신이 처가인
낙랑국에서 가져온 자명고로 인하여 낙랑국이 정말로 멸망한다면 아
내인 낙랑공주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호동은 아버지 무휼 
왕의 명에 따라 옥저로 파견될 당시만 해도 하루 빨리 낙랑국의 비밀
병기를 파괴하고 낙랑국을 복속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경국지색의 가인佳人을 아내로 맞이한 다음부터 호동의 마
음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낙랑국을 쳐서 멸망시키는 것 보다 두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
이 백성들에게 훨씬 이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낙랑국에서 곡
식을 수입하고 대신 고구려는 낙랑국에 모피나 말 또는 농기구를 
출하면 두 나라 백성들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무휼은 자명고를 손에 넣자마자 낙랑국을 칠 준비
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막상 낙랑국의 자명
고를 고구려로 가져왔지만 곁에 자신을 믿고 고구려까지 따라온 낙
랑국 공주 애랑이 불쌍해 보였다.

 또한 계모이면서 호동의 마음속 정인情人인 왕후 송씨의 견제가
날로 심해갔다. 호동과 애랑이 왕를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려 하
여도 막무가내로 거절하였다. 호동이 어쩌단 궁궐에서 왕후와 마
면 왕후는 호동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척 지나가곤 하였다.

 국내성에 자신의 편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애랑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들도 호동을 보면 예의상 인사만 할 뿐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궁인들과 시비侍婢들 조차 호동을 우습게 여
기는 것 같았다

 호동이 지나가면 끼리끼리 모여 호동을 비웃거나 차마 입에 올려
서는 안 되는 말까지 서슴없이 떠들어 댔다. 호동은 자신이 고구려
의 왕자가 아니라 거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지만 애랑
 생각하여 꾹 참고 또 참았다.

 만약 궁인들에게 화를 낸다거나 매질을 한다면 곧바로 태왕이나
왕후에게 트집을 잡힐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 있었다. 태왕 무휼이
낙랑국을 칠 준비에 국내성 전체가 한창 바쁠 때 왕후가 호동에게
사람을 보냈다. 마침 낙랑공주 애랑이 곁에 없었다.

 왕후가 아직도 나를 자신의 노리개쯤으로 알고 있단 말인가.
야하나 아니면 거절해야 하. 나는 이제 나 혼자가 아니다. 나에
게는 사랑하는 애랑이 있지 않은가. 가면 안 돼. 애랑을 배신할 
없어. 나를 믿고 고구려까지 왔는데 내가 또 계모를 만난다면 애랑
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절대로 만나면 안 돼. 만나려면 애랑과
함께 만나 정식적으로 인사를 하고 모자母子 관계로 만나야 해.

 호동이 왕후의 초빙을 거절하자 왕후는 다시 사람을 보내 호동
을 불렀다. 호동이 거절하였지만 왕후는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호
동을 불렀다. 호동이 계속 왕후의 부름을 거절할 경우 애랑이 왕
후의 부름을 거절하는 자신을 의혹의 눈초리로 볼까 두려웠다.

 왕자, 이 어미가 그렇게 보기 싫으셨어요?
 , 그게 아니라. 소자의 곁에 애랑이 있어서 왕후를 뵙기가......
 사내대장부가 그까짓 여인의 시선이 무서워 주저하다니 호동왕자
답지 않아요.

 왕후, 소자가 미령하와 그리되었습니다. 송구합니다.
 호동은 왕후 앞에서 쩔쩔맸다.

 , 이리 앉으세요. 장가를 들더니 의젓해지셨습니다. 오랜만에
이 어미가 아들에게 술 한 잔 대접하려고 합니다. 낙랑국에 가서 자
명고를 가져왔으니 곧 낙랑국이 무너질 테고 그리되면 왕자는 고
구려 왕자이면서 일등 공신이 되는 겁니다. , 받으세요.

 왕후, 공은 모두 아버님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소자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왕자기 이제 철이 들었나 봅니다. 당연히 아버님에게 공이 돌아
가야 하지요. 그래그 낙랑에서 온 여인은 어떤가요? 이 어미보다
예쁘던가요? 밤일도 잘하고요? 내 얼핏 보니 그 여인의 엉덩이고
풍덕하고 젖가슴도 풍만해 보이던데. 왕자는 참으로 좋겠습니다.

 왕후는 비아냥거리며 호동을 희롱하였다. 대낮인데도 왕후는 거리
낌 없이 술잔을 비웠다. 금방 술병이 비워졌다. 시녀가 새 술병을 들
고 왔다.

 ......
 아무리 그 여인이 예쁘다하나 나보다 더 할까? , 이리가까이 오
세요. 어미가 오랜만에 자식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그런답니다.

 왕후, 어머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 방안에는 우리 둘만 있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
 왕후, 이러시면......

 왕후는 술 냄새를 풍기며 호동을 껴안으며 강제로 입을 맞추려했
. 왕후의 집요함과 취향을 잘 아는 호동은 왕후에게 모든 것을 맡
겨야 했다.

 , 무서운 여인이로다. 어찌 벌건 대낮에 이런 천인공할 일을 저
지를 수 있단 말인가이 여인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는 도대체 무엇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거
. 아들이 아버지의 여인과 이렇게 부정한 관계를 끊지도 못하고
이어가야 하다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이 여인을 장차 어이할꼬.

 왕후는 반쯤 정신이 나간 여인처럼 호동을 끌어안고 몸부림 쳤다.
침상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장면을 시녀가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나는 왕자 어미이며, 왕자는 나의 아들이니 어미가 하자는 대로
따르면 됩니다.
 왕후마마, 자식이 어찌 어미를 ......

 천륜으로 맺어진 어미가 아니니 염려 없지요.
 , 내가 어떻게 하다 이런 악녀의 마수에 걸렸단 말인가.

 왕후는 점점 거세게 타오르는 정염의 불꽃 속에 자신을 내던졌다.
대낮에 젊은 남녀의 애정행각은 멈출 줄 몰랐다. 절륜한 왕후의 격
렬한 몸짓은 몰래 훔쳐보는 시녀들의 신음소리를 유발하였다.

 공격하라. 단숨에 쳐들어가 낙랑왕 최리를 붙잡아야 한다.
 무휼은 며느리인 낙랑국 공주 애랑이 국내성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낙랑국 국경을 넘었다. 고구려 군이 낙랑국의 국경
을 넘었지만 국경을 지키던 낙랑국 군사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자명고가 사라지니 이제 낙랑국은 망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낙랑국은 고구려 땅이 되었다.
 낙랑국에는 예쁜 처자들이 많다는데 이번에 출정하면 색시를 얻을
수 있으려나?

 무휼은 낙랑국 군사들이 고구려 군을 보자 모두 도망치자 낙랑국
을 금방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고구려의 장수
들은 서로 공을 차지하려고 앞 다퉈 낙랑국 심장부로 진격하였다.

 이십 여리에 걸쳐 길게 이어지는 고구려군의 행진은 경쾌해 보였
. 군사들은 낙랑국에 자명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의기양양했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곧 낙랑국의 도읍지에 거의 도착할 때 쯤 긴 
협곡이 나타났다. 좌우에 높은 산이 있고 길이는 십여 리쯤 될 것
같았다.

 태왕, 협곡입니다. 낌새가 이상합니다.
 앞서나가던 군관이 태왕 무휼에게 보고하였다.

 무엇을 겁내느냐? 낙랑국에는 이미 자명고사 사라졌다. 빨리
협곡을 통과하여 낙랑국 도읍지를 공격해야 한다.

 전군 빠른 속도로 협곡을 통과한다.
 고구려 군사들이 협곡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산
좌우측 봉우리에서 불화살이 올랐다.

 전군 공격하라. 돌을 굴리고 통나무를 던져라. 고구려군은 독 안
에 든 쥐다. 한명도 살려두지 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태왕, 낙랑국 군사들이 협곡 좌우에 숨어 있었습니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 이게 어찌된 일이나? 낙랑국에 자명고가 없는데 어떻게 낙
랑국 병사들이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이냐? 

 태왕, 저기 낙랑국 군사들이 새카맣게 몰려옵니다. 이제 전진하
기도 글렀습니다. 빨리 퇴각명령을 내리십시오.

 좌우 협곡 위에서 돌과 통나무 화살이 쏟아졌다. 고구려군사들은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돌과 통나무 그리고 화살을 맞고 나뒹굴었
.

 호동이가 가져온 자명고가 고구려에 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낙랑국왕 최리가 호동이에게 선물로 준 북이 자명고가 아니면 왕비
말대로 가짜란 말인가?

 전군 후퇴하라. 빨리 이 협곡에서 빠져나가라.
 무휼은 눈물을 머금고 고구려 군에게 퇴각명령을 내렸다. 고구려
군은 우왕좌왕하다 순식간에 군사 절발을 잃었다

 고구려 놈들이 도망친다. 한 놈도 놓치지 말라.
 도망치는 고구려군 뒤를 낙랑국 군사들이 추격하였다. 겁을 집어
먹고 도망치던 고구려 군사들은 낙랑군의 창칼에 어육이 되었다.

 태왕, 이일이 어찌 된 것입니까? 호동이 낙랑국에서 자명고를 가
져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낙랑국이 어찌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
었답니까?
 국상이 무휼에게 따지듯 물었다.

 짐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이다. 돌아가서 자세히 알아봐야
겠습니다.
 이것 참. 왕자가 조국을 속인 게 분명합니다.
 
 무휼은 군사의 반 이상을 잃고 비참하게 후퇴하고 말았다. 국상
과 군관들 그리고 군사들에게 망신을 당한 태왕 무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호동이 그 북을 낙랑국왕이 선물한 자명
고라 하였다. 자명고가 없는 낙랑국이 어찌 나의 출정을 미리 알 수
있었단 말인가? 호동이 아비인 나를 기망하였단 말인가? 아니면
낙랑왕 최리가 호동에게 가짜 자명고를 진짜라고 속이고 선물하
였나?

 그러나 자신의 딸까지 고구려로 보낸 최리가 호동이에게 가짜 자
명고를 선물로 줄 리가 있나? 만약 가짜 자명고를 주었다면 자신의
딸 목숨이 위태로 진다는 것을 최리가 모를 리 없을 텐데.

 태왕 무휼은 국내성을 돌아오는 내내 호동과 낙랑공주를 어찌 처리
해야할지 고민하였다.

 이놈, 네가 감히 아비를 욕보이려 하였느냐? 네가 가져온 가짜 자
명고 덕분에 아비의 군사 수만 명이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었.
찌된 일인지 말 해보거라.
 무휼은 국내성에 돌아오자 곧바로 호동과 낙랑국 공부 애랑을 문
초하였다.

 아버님, 그 북은 장인께서 틀림없는 자명고라 하였습니다.

 이놈아, 네가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낙랑왕이 너에게 가짜 자명
고를 주었겠느냐? 그리고 너는 고구려 왕실로 시집온 몸으로 어
찌하여 가짜 자명고를 가져왔느냐? 네가 가짜 자명고를 가져오면
무사할 성 싶었느?
 태왕은 호동과 애랑에게 화를 내며 다그쳤다.

 아버님, 소자 분명히 자명고를 가져왔습니다. 어쩌면 그 자명고
는 낙랑국에 또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
 , 네놈이 감히 아비를 가지고 놀려고 하는구나.

 아버님, 소녀는 이제 낙랑국 공주가 아니라 고구려 태왕이신 아
버님의 며느리입니다. 지아비가 가져온 북은 자명고가 맞습니다.
낙랑국에 자명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자명고는 아버님이 알고
있는 것 처럼 외적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우는 북이 아닙니다. 북에
귀신이 붙어있지 않고서야 어찌 북이 저절로 울릴 수 있단 말입니
?

 , 네가 아무리 나의 며느리라 하여도 시아비를 능멸한 죄는 용
서받을 수 없다.

 아버님, 낙랑국에 애초에 자명고는 없었습니다. 친정아버님이 외
침이 두려워 궁궐에 북을 하나 걸어 두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불이 운다고 소문을 낸 것이 오늘 이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지아
비가 가져온 북은 친정아버님이 곁에 두고 있던 북이 맞습니다.

 다만, 고구려나 옥저 또는 한나라 사람들이 아버님이 가볍게 흘린
말을 사실로 믿은 것일 뿐입니다. 한 아버님께서 제가 국내성에
있는데 어지 매정하게도 낙랑국을 쳐들어가실 수 있는 겁니까?
무 하십니다. 지아비를 벌하지 마세요. 지아비는 아무 잘못이 없습
니다.
 낙랑공주 애랑은 시아버지 무휼에게 당당하고 거침없이 말하였다.

 낙랑국 사람이 아닌 자들은 모두 멍청이였구나. 짐이 너의 말을
믿으란 말이냐?

 아버님, 저희 낙랑국은 주변의 강대국들 틈에 기여 있기 때문에 항
상 군사들이 훈련을 하고 적의 외침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낙랑국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쳐들어간다하여도 낙랑국 군사들은 
금방 알아차리고 신속하게 전쟁 준비를 하기 때문에 외침을 잘 막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아비와 저를 탓할 것이 아닙니다.

 -, 저애가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호동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겠
. 우리 고구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구
. 그래.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너희 나라에 가짜 자명고가 없
다는 것을 믿고 함부로 전쟁에 나선 나의 불찰도 한몫 했지.’  

 네가 이 시아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구나.
좋다. 짐은 언젠가 너의 친정을 복속하고 말 것이다. 나는 너를 국
내성에 둘 수 없다. 속히 낙랑으로 돌아가거라.

 무휼의 명령에 호동과 애랑은 크게 놀라워하며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이 없었다

 아버님, 소녀는 고구려 왕자와 혼인을 하였습니다. 호동왕자와
혼인한 소녀를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시면 낙랑국과 혼인정책을
깨시겠단 말씀이신가요? 또한 소녀는 호동왕자 없이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버님, 소자는 아버님 명에 따라 낙랑국왕을 만났고 애랑과 혼
인을 하였습니다. 이제 와서 낙랑공주를 쫓아내시겠다는 말씀은
너무 무정하십니다. 소자는 아버님께서 애랑을 낙랑국으로 돌려
보내신다면 애랑의 말대로 소자도 애랑과 함께 낙랑국으로 가겠
습니다.

 뭐라고? 너는 고구려의 왕자인데 네가 왜 낙랑으로 간단 말이냐?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였습니다. 지어미가 가면 자연 지아비도
가야되는 거 아닌지요?
 , 네가 말 한번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아버님, 소녀는 고구려에서 한평생 살기 위하여 왔습니다. 소녀를
고구려에서 살도록 해주십시오.

 아버님, 애랑을 내치지 말아 주십시오.
 호동과 애랑은 무휼에게 엎드려 빌었으나 무휼은 굽히지 않았다

네가 시아비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당장 짐을 싸서 낙랑으
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번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네가 어떤 참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니 어서 속히 너의 친정으로
돌아가라.

 아버님, 너무하십니다. 낙랑국을 복속하시려 지아비를 일부러 저
희 부녀에게 접근시키고 있지도 않은 자명고와 무영단을 파괴하시려
하시다니요? 저희 부부는 아버님의 욕심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
습니. 저희들도 아버님 자식입니다.

 짐의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아버님, 너무 하십니다.

 애랑이 흐느끼며 무휼에게 애걸복걸하였지만 무휼의 반응은 싸늘
하기만 하였다. 애랑은 할 수 없이 낙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무휼
의 말대로 국내성에 있을 경우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
.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애랑을 보면 잡아먹을 듯 달려
들기도 하였다. 애랑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낙랑국으로 돌아가기
로 마음먹었다.

 애랑, 미안합니다. 내가 변변치 못해 그대를 낙랑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조만간 내가 낙랑으로 그대를 찾아가겠습니다.

 왕자님, 왕자님과 소녀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 합니다. 적국
의 왕자와 공주가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요? 아버님께서 저
희 낙랑국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소녀와 왕자님은 불안
한 인연일 뿐입니. 혹여 아버님께서 평정심을 찾으시고 낙랑국
에 대한 미련을 버리신다면 소녀를 찾아오세요. 소녀, 왕자님께
서 낙랑국에 오시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애랑, 미안합니다. 내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낙랑국을 복속하시려
들지 말고 사돈나라로 인정하시어 두 나라가 평화롭게 살 수 있도
록 간청을 하겠습니다. 공주는 내가 낙랑국에 갈 때 까지 마음 편하
먹고 기다리고 계세요.

 왕자님...., 소녀의 인생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빨리 오셔요.
 애랑, 미안합니다.
 호동과 애랑은 국경 근처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한참동안 떨어
질 줄 몰랐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