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4. 7. 23. 18:43

 

 

 

 

 

 

 

 

 

                                                 

 

 

 

 

 

 

 

 

                                                                  월하무정

 

 

                                                                                                                                                                - 여강 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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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동은 옥저에서 만난 낙랑국왕樂浪國王 최리崔理의 딸 애랑愛娘

과 혼례를 치루고 신혼의 단꿈에 져 있었다. 낙랑국왕 최리는 거의

매일같이 호동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주연

에 참석할 때 호동은 꼭 애랑을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주연에서 뿐만 아니라 낙랑국 궁궐에서도 많은 사람의 부

러움과 시심을 샀다. 호동은 석 달이 넘도록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오

로지 밤낮으로 애랑을 끼고 뒹굴었다. 술과 여인의 체취體臭에 취해

있던 호동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현재의 상태를 생각해 보

았다.


 나는 부왕의 지엄한 명을 받고 낙랑국을 수호하고 있는 비밀병기를

찾기 위하여 거짓으로 낙랑국 주 애랑과 혼인을 하였다. 내가 낙랑

국 궁궐에 온지 벌써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낙랑국의 비밀병기인

자명고自鳴鼓와 무영단無影團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내가 낙

랑국의 비밀병기를 찾아내 파괴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명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했다. 또한 무영단의 실체를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허송세

월만 보내다가 돌아가면 아버님은 나를 가만 두지 않으실 테지.

 ,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왕자님, 무엇을 고민하세요? 어제 오늘 왕자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보기 민망하옵니다. 무슨 일 있세요?
 아무것도 아니오. 고향이 그리워 잠시 옛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 왕자님두 원. 어린아이처럼 고향 생각이라니요? 이제는 고향

보다 소녀를 더 각하셔야 해요.


 고구려 보다 애랑이를 더 생각하라? 그렇지 애랑이 나의 아내가 되었

으니 마땅히 그리해야 겠지. 그러아버님께서 눈이 빠지게 나의 소식

을 기다리고 계실 텐데.


 왕자님, 오늘 보름날인데 곧 보름달이 떠오를 거예요. 우리 달구경

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소녀가 시비들을 시켜 동산 정자각亭子閣에 주안상을 마련하였사옵

니다.


 그래요? 마침 목이 칼칼하던 차였습니다.
 호동은 낙랑공주와 다정하게 정자각에 올랐다. 호동은 국내성에 있을

때 정월 대보름날이면 돌아가어머니와 달구경하던 추억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내가 이리되지는 않았을 텐데. 또한 어머니가

갈사국이 아닌 한나라나 힘 있나부那部 출신이었다면 나는 벌써 태

자의 자리에 앉아 제왕의 도를 닦던지 아니면 아버님을 따라 다니며

쟁을 수행하며 아버님의 총애를 받고 있을 텐데.


 어머님, 소자 빠져나오기 어려운 음모의 늪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낙랑

국 공주와 원치도 않은 혼인을 치루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

. 찌해야 소자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는지요?


 왕자님, 달님에게 무슨 소원을 비셨어요?

 , 공주와 내가 오래오래 함께 살면서 아들딸 많이 낳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어머나소녀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왕자님, 고구려에 가지마시

고 소녀와 낙국에서 살면 안 되나요?


 고구려는 나의 조국입니다. 낙랑국은 나의 처가가 되고요. 공주는 고

구려의 며느리입니다. 고구려 왕자와 낙랑국 공주가 부부가 되었으니

서로 양국을 오가며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해야겠지요.


 왕자님, 저는 낙랑을 떠나기 싫어요. 영원히 이곳에서 왕자님과 살

고 싶답니다.


 공주, 나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공주를 사랑하고 그 사

랑이 변치 않게 하기위해서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 해야 할 일이 고구려에 있나요? 아니면 낙랑에 있나요?


 고구려와 낙랑국에 반반씩 있습니다.
 낙랑국에 반이 있으시다면 소녀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요.
 호동에게 술을 따르던 애랑이 눈빛이 반짝거렸다.


 애랑, 내가 고구려에 있을 때부터 들은 소문이 있어요. 낙랑국에 자

명고가 있다면서요? 그리고 무영단이란 무리가 있어서 낙랑국에 변고

가 생기면 귀신같이 알고 그 무영단 무리들이 해결한다고도 들었습니

. 공주, 자명고와 무영단에 대하여 나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겠어요?


 나는 그 두 가지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두 가지가 아마 낙랑국

의 보물인 듯 한데 내가 공주를 사랑하는데 장차 방해물이 될까 두렵

니다. 그 두 가지의 실체에 대하여 내가 알아야 하겠어요. 나에게 알

려주세요. 요즘은 불안해잠도 오않는다오. 혹시나 내가 잠자는

동안 무영단의 무리들이 나를 해치기라도 할까 두렵답니.
 호동은 술잔을 비우고 진지한 모습으로 애랑에게 애걸하였다.


 행여나 왕자님께서 낙랑국의 보물이 탐이 나서 소녀와 혼인을 치른

것은 아니실 테?


 , 그럴 리가 있겠소? 사내대장부가 어찌 그런 사소한 것에 연연한

단 말이오. 나는 다만 그대와 내가 낙랑국에 있는 동안 그 무영단인가

뭔가 하는 무리들에게 위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라오.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낙랑국에는 자명고도 없고

무영단도 없답니다. 많은 사람들낙랑국에 자명고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데 우리 낙랑국에는 자명고가 없답니다.


 우리 고구려 사람들도 낙랑국에는 자명고가 있어 외적이 침입하면

저절로 운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람이 없을 정도랍니다. 공주 말대

로 정말로 낙랑국에 자명고가 없다면 다행입니다.
 다행이라고 하셨나요?


 , 아니오. 나 혼자 그냥 해본 말이오. 신경쓰지마오.
 소녀도 왕자님 말씀대로 다행이라고 봐요. 정말로 낙랑국에 자명

고가 있다면 벌써 랑국은 세상에서 사라졌을 거예요.


 아니, 애랑, 자명고가 있다면 낙랑국이 사라지다니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나는 공주의 말을 얼른 아듣지 못하겠습니다.


 낙랑국에 자명고가 있다면 그 자명고를 노리고 한나라나 부여 또

는 고구려 같은 힘센 나라들이 우리 낙랑국을 가만히 두었겠어요?


 자명고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소? 자명고는 외적이 침입하면 북이

저절로 울려 외적이 낙랑국 국경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낙랑국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도록 하지 않소?


 왕자님, 소녀는 낙랑국 공주입니다. 이 궁궐에서 십년 넘게 살았지

만 자명고를 본적이 없답니다.


 , 그것참 이상하구려. 고구려 사람들은 낙랑국에 자명고가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답니다.


 아니에요. 왕자님과 고구려 사람들이 무엇인가 잘못 알고 계셔요.

소녀의 말을 믿어주세요. 하늘에 세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낙

랑국에는 자명고가 없어요. 정말입니다. 왕자님께서 행여나 있지

않은 자명고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이제부터 미련을 버리시고

오로지 소녀 한 사람만 신경써주세요.


 -, 애랑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어요. 하지

만 나는 자명고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생긴 신물神物인지

꼭 구경하고 싶었답니다.


 , 이분은 분명 우리 낙랑국의 자명고와 무영단의 실체를 파악하

러 온 고구려의 첩자諜者, 아니 왕자가 분명해. 지난 석 달 동안 고

구려에서 함께 온 왕자의 수하들은 늘 눈을 번뜩이면서 궁궐을 돌아

니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어.


 나와 아버님이 옥저에 갔을 때 왕자님이 우리 일행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분명한거야. 궁궐에 묻혀 밤에

는 나의 육신을 탐하고 낮에는 술에 취해 있었으나 항상 자명고가

어디 있는지 찾고 있었던 거야.


 아버님이 침전寢殿에 북을 하나 매달아 놓고 사람들에게 소문을 낸

것이 이제는 주변의 모든 나라에는 낙랑국에 자명고가 있다고 믿게

된 거야. 사람이 북채로 쳐야 소리가 나는 북을 자명고라고 소문을 낸

아버님이 만든 자작극에 어쩌면 낙랑국의 운명이 달려있을 지도 몰.


 있지도 않은 자명고를 소문낸 아버님의 저의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도 잘 모르겠어. 지난해에도 한나라 왕자가 우리 낙랑국에 와서 자명

고를 보여 달라고 떼를 쓰고 가더니 이제는 고구려 왕자도 찾아왔어.

그러나 고구여 왕자는 이미 나와 백년가을 맺은 나의 지아비가 아

닌가?


 그 지아비가 우리 낙랑국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으니 이일

을 어찌한다. 아버님에게 말씀드려아버님 침전에 매달려 있는 보

잘 것 없는 북을 왕자님에게 보여드리게 할까? 아니면 그 북을 왕자

에게 선물로 드리라고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왕자님은 나와 아버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텐

버님께 말씀드려 왕자님에게 그 북을 선물로 드리라고 해야겠

. 그리하면 왕자님은 엉뚱한 것에 신경 쓰지 않으실 거야. 선물도

하고 왕자님의 사랑도 받고, 우리 낙랑국에 대한 의심도 풀고, 그야말

로 일거양득이 되는 거야.


 왕자님, 우리 낙랑국에 자명고라 불리는 북이 하나 있기는 해요.

그 북을 왕자님에게 선물로 드리도소녀가 힘써 볼게요.
 , 그래요? 조금 전에는 자명고가 없다고 했는데?


 소녀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왕자님이 궁금해 하는 자명고의 실체

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아하, 그래요? 그럼, 낙랑국에 자명고가 있긴 있는 거네요?
 , 맞아요. 분명히 자명고라고 불리는 물건이 있어요.


 애랑, 내일 그 물건을 나에게 꼭 넘겨주세요. 내 그 물건을 가지

고 고구려로 돌아가아버님께서 크게 상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

되면 공주도 나와 함께 우리 고구려로 가서 살 수 있을 겁.


 네에. 꼭 그리하겠습니다.
 , 그럼 자명고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으니 마음 편히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자님, 소녀의 잔을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달이 휘영청 밝은 날밤에 곁에 미인을 두고 술

잔을 기울이니 내가 마치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왕자님께서 그리 기분이 좋으시다니 소녀도 마음이 가볍습니다.

자님, 오늘은 소녀가 특별히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낙랑공주 최애랑의 임기응변에 넘어간 호동은 자명고를 손에 넣으

면 곧바로 고구려로 달려아버지 무휼에게 자랑을 하기로 마음먹

었다. 사람의 손으로 두드려야 소리가 나는 북을 지아비에게 내주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낙랑공주 최애랑은 무영단의 실체를 숨기기 위하여 있지도

않은 자명고를 마치 사실인 양 믿는 지아비 호동에게 넘겨주고 낙랑

국의 진짜 보물인 무영단을 숨길 수 있었다.


 무영단은 낙랑국왕 최리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비밀단체로 3천여 명

으로 구성된 전국적인 규모였다. 영단의 조직망은 궁중내부는 물론

낙랑국 전체에 깊게 뿌리가 내려 낙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게 파악하여 최리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또한, 무영단은 고관대작들의 비리와 백성들의 일거수일투을 면

밀하게 감시하고 분석하여 최리에게 알려 낙랑국왕이 국정을 운영

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무영단의 가장 큰 공적은 외적의 침입 사실을 즉각 파악하

여 최리에게 보고함으로써 낙랑국 사들이 적의 침입을 손바닥 보

듯 파악하여 미리 함정을 파놓거나 복병을 숨겨놓아 적군을 쉽게 격

시키도록 도우는 일이었다.


 무영단의 최고 우두머리는 낙랑국왕 최리였지만 실질적으로 움직

이는 사람은 최리의 이복동생인 최필崔弼이라는 자였다. 최필은 최

리에게 아들이 없다는 사실에 장차 자신이 낙랑국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무영단 운영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최필은 낙랑국 조정과 전국 요소요소에 비밀조직원을 심어놓아

매일 전국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은 물론 장차 문제가 될 수 있는

일까지 파악하여 손을 써서 해결하거나 분석하여 낙랑국왕 최리

에게 보하여 최리가 낙랑국을 다스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낙랑국왕 최리와 애랑 그리고 조정의 몇몇 대신들만 무영단의 존

재를 알고 있었다. 무영단의 비밀조직 단원들은 늘 검은색 옷을 입

고 다니며 주로 밤에 움직이기 때문에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무

영단이란 호칭이 붙었다.


 공주, 저 달을 좀 보세요. 우리는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으로 두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에 습니다. 부부는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합

니다. 부부사이에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부부사이에 신뢰는 무

너지게 되고 이별을 고할게 될 것이에요.


 나는 그대를 낙랑국의 공주가 아니라 영원히 내 마음속의 정인

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저 달님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인연을 지켜주실 겁니다. 고구려와 낙랑국은 서로 의존하고 협력

하는 사이가 돼야 해요. 그 전제조건이 바로 나와 공주가 진정

사랑을 향유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서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호동의 말에 낙랑공주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왕자님, 고맙습니다. 작은 나라 공주가 대국大國의 왕자님과 혼

인을 맺은 것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랑국에 큰 영광이 분명합니

. 소녀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왕자님을 지아비로 모시며 뒤에

서 조용히 내조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공주, 고마워요. 달님이 바라보는 정자각에서 그대와 부부의 언

약을 하니 나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리가 앞으로 어떤 처지가 되

더라도 서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만은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합니

. 역시 저 달님께 맹서하건대 내가 죽는 그날까지 그대를 사

랑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을 것이며, 저승에 들더라도 그대를 사랑

하며 영원히 함께 할 거요.


 왕자님, 고맙습니다.
 아니오. 지아비로서 당연히 해줄 수 있는 말입니다.


 소녀, 갑자기 왕자님의 말씀을 들으니 눈물이 납니다. 아름다운

밤에 왜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어.


 공주,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하겠습니까? 공주는 무조건 내가

하자는 대따르면 됩니다. 먼 훗날 내가 고구려의 태왕의 자리

에 오르면 공주는 왕후가 되는 것이고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

들이 내 뒤를 이어 태왕의 자리에 앉게 될 겁니다.


 내가 장차 고구려의 왕후가 된다? 그렇지 당연한거야. 나의 지

아비가 고구려의 왕자이니 내가 장차 구려의 왕후가 되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 왕자님이 옥저에 온 일과 나와 백년가약을 맺은

일에는 분명 어떤 음모가 있을 수 있어.


 그 음모란 왕자가 낙랑국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하는 일일거야.

고의 실체는 이해시켰으니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무영단의

실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말하면 안 . 왕자에게 낙랑국을 지탱

시켜주는 무영단의 실체에 대하여 알려주면 낙랑국은 끝장이 날게

뻔해.


 낙랑국이 사라지면 나는 낙랑국의 공주도 아니고 한낱 여염집 처

자에 불과하겠지. 그렇게 되면 과연 왕자님이 지금처럼 나를 사랑

해 주실까? 아닐 거야. 절대로 패망국의 공주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

. 러나 왕자님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면 나는 어떻게 행동

해야 하지?


 그냥 다소곳하게 지어미 노릇을 하면서 무영단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있어야 하나? 아아, 괴롭구나. 아버님께서 아무것도 파악

해보지 않고 고구려 왕자라고 무조건 혼인을 시키더니 나만 고통을

당하게 되었구나.
 애랑은 비단 수건으로 남몰래 눈물을 찍어냈다.


 공주, 이번에는 내 잔을 받으세요.
 왕자님, 고마워요.


 고맙긴요? 지아비가 지어미에게 술 한 잔 따르는데요.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이 정자각 주변에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

으니 선계仙界가 따로 없습니다.


 이 정자각은 낙랑궁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곳이랍

니다. 아버님께서 가끔 대신들과 어울술을 드시거나 시를 읊

조리시는 장소랍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나도 애랑을 위하여 근사한 시를 한수 읊어

야 겠습니다.
 소녀, 기대하겠습니다.


 애랑은 주변에 있던 시녀들을 내려가도록 하였다. 정자각에는 애

랑과 호동 둘 뿐이었다.


 기대해보세요. 공주가 저 북으로 장단을 맞춰주세요.
 호동은 잔을 비우고 애랑을 한번 바라보고 눈을 지그시 감더니 낭

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投我以木瓜(투아이목과-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니 
    報之以瓊琚(보지이경거-  나는 패옥를 주었소
    永以爲好也(영이위호야-  영원히 좋은 짝이라 생각해서입니다 
    ......
    

 , 정말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보름달이 천지를 환하게 비춰주는

밤에 마치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랑시같아서 소녀 너무 감동

입니다.
 애랑은 호동이 읊어준 시에 그만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그리 칭찬해주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시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위

衛風의 시로 제은 모과木瓜라고 합니다. 후렴구를 빼서 약간 수

정하여 읊어보았습니다. 공주가 듣기 좋다면 한수 더 겠습니다.


 왕자님, 어쩌면 소녀와 취향이 같을까요. 소녀도 어릴 적부터 시서

詩書를 가까이 하였습니다. 이번에소녀가 답신하는 의미에서 소

녀의 마음을 담은 시를 낭송할까 합니다.


 , 공주에게도 문향文香이 있었군요. 좋습니다. 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읊는 시가 몹시 궁금합니다. 어서 시작해보세요.


 혹시 중간에 끊기거나 목소리가 안 좋으면 말씀하세요.
 아니오. 아니오. 공주의 시 읊는 소리는 금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일거요. 괘념치 말고 어읊어보세요.


 호동은 술잔을 들고 달빛을 받아 뽀얗게 미색美色을 발산하고 있

는 낙랑국 공주 애랑을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애랑은 비파를

끌어안고 몇 번 튕겨보더니 애잔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였다.

호동은 자신 신선의 세계에 있는 착각을 할 정도로 몽롱한 상태였다.  

 

    子惠思我(자혜사아-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褰裳涉溱(건상섭진-  나는 치마를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겠어요
    子不我思(자불아사-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豈有他人(기유타인-  어찌 나에게 다른 사람이 있을까요

 

 애랑 역시 시경에 있는 정풍鄭風의 시, 건상褰裳을 읊었다. 노래를

하는 중간 중간에 목이 메는지 애랑은 잠시 노래를 멈추기도 하였다.

노래가 멈추면 호동은 애랑의 곁에 다가가 살며시 애랑을 안아주었

. 애랑은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호동은 애랑의 등을 다독거

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애랑, 사랑하오. 우리 사랑은 영원할 거요.
 ......


 계속 하세요. 내가 춤을 추지요. 이렇게 좋은 밤에 미인이 있고 술

이 있는데 단지 춤이 없어 좀 허전니다. 내가 공주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리다.

 

    子惠思我(자혜사아-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褰裳涉洧(건상섭유-  나는 치마를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

                                    겠어요

 

 호동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애랑은 춤추는 호동을 보면

서 가슴이 찢어질 듯 쓰렸다. 비록 적국의 왕자이지만 초야初夜

치르고 백년해로를 약속하였으니 정성을 다해 지아비의 뜻에 따

고 평생을 같이해야 하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언제 다시 호동이 무

영단에 대하여 물어올지 알 수 없었다. 애랑은 노래를 하면서 복받

치는 설움을 참아내고 있었다

 

     子不我思(자불아사-  그대가 나를 날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豈有他士(기유타사-  어찌 나에게 다른 남자가 있을까요

 

 비파 소리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읊는 낙랑공주 애랑의 사랑 노

래에 호동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애랑이 이미 호동의 속내를 알

고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인내하며 호동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에 호동은 미안함과 함께 자신이

고구려 왕자라는 신분이 구차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대의를 위한

일이지만 마음 여린 낙랑국의 공주 애랑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내대장부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새벽이 되도록 두 사람의 사랑가는 끝날 줄 몰랐다. 호동이 사랑

가를 부르면 애랑도 역시 사랑가로 응수하였다. 정자각 아래에 있

는 시비들은 두 사람이 부르는 사랑노래를 들으면서 졸기도 하고

하품을 해대며 주연酒宴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어떤 시녀는 정

자각에 살며시 다가가 호동과 애랑이 질펀하게 노는 모습을 질투

의 시선으로 훔쳐보면서 투덜대기도 하였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