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4. 7. 6. 19:43

 

 

 

 

  

 

 

 

                                                           

 

 

 

 

 

  

 

                                                                                우왕후

 

 

  

                                                                                                                                                                                 - 여강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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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기 왕자와 공손탁의 아들 공손강 그리고 비류부의 고추가高鄒加가 이끄

는 3만 대군이 동이 트기도 전에 국내성을 향해 물밀 듯 쳐들어 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데 국내성은 새벽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적군이 국내성 가까

이 올 때 까지 고구려 군사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발기 왕자는 연우

자가 선태왕 남무가 죽자 다음날 태왕의 지위에 오른 것에 분개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패한 사실을 생각하면 부아가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때는 경우 군사 300명으로 연우 왕자와 우왕

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하여 궁궐에 난입하였다가 실패하였지만 지금

은 요동의 공손탁이 빌려준 군사 2만과 비류부의 농민군農民軍 1만영을

합친 대군이었다.


 “자, 이제 우리의 목표가 저 앞에 있소이다. 공손장군은 군사 일만 명으로

국내성 좌측을 공략하고 고추가 대인께서는 군사 일만으로 우측을 나는 나

머지 군사로 중앙을 치겠소.”
 발기 왕자가 앞으로 나서자 공손강은 발기 왕자를 제재하였다.


 “발기 왕자, 내가 중앙을 맡을 것이니 왕자는 군사 오천 명으로 좌측을 맡

아주시오. 중앙은 고구려 정예 군사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니 군사가 더 있어

야 하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내가 맡아야 마땅하오.”
 “그리하시오. 아무려면 어떻소이까?”


 국내성은 중앙문을 중심으로 좌측은 지세가 험하여 군사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고 우측 역시 길이 없어 숲속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았

다. 공손강의 음흉한 계략을 전혀 모르고 있던 발기 왕자와 비류부의 고추가는

군사를 이끌고 안개가 자욱한 국내성에 접근하였다.


 “군사들은 나를 따라 성의 좌측을 공략한다. 성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가라.

고구려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도륙하라.”
 발기 왕자는 앞장서서 달리며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좌측은 지세도 험하고 성벽이 저렇게 높은데 사다리를 걸쳐 놓아도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네.”


 “사다리 두 개를 이어 붙여야 성에 기어오를 수 있어. 하나로는 불가능해.”
 “한나라 요동의 군사인 우리가 철옹성 같은 국내성에서 싸우다 죽으면 개죽

음이나 마찬가지다. 적당히 발기 왕자의 눈치나 보다가 뒤로 후퇴하자. 성벽

아래서 있다가 고구려 군이 쏘는 화살에 맞는다. 고구려 군을 우리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어.”


 발기 왕자가 이끄는 요동군은 소리만 질러대며 화살이나 날릴 뿐 성벽에 기어

오르려 하지 않았다. 수백 개의 사다리를 성벽에 걸쳐 놓았으나 기어오르는 병

사는 서너 명 뿐 모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발기 왕자가

사다리에 올라가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한나라 군사들은 알 수없는 소리로

지껄여 댔다.


 “어서, 성벽을 기어 올라가라. 주저하고 있다가 고구려 군에게 다 죽는다.”
 발기 왕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 위에서 호박돌이 떨어지고 화살이 빗

발쳤다. 한나라 군사들은 일부러 사다리에 기어오르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방패로 몸을 가리며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발기 왕자는 목이 쉬어라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한나라 군사들은 점점 뒤로 몸을 빼기만 할 뿐이었다.


 “아우야, 너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너와 나는 피를 나눈 형제다. 발기는

비록 형이라고 하지만 배가 다른 형이고 나를 죽이려 한다. 너는 이 길로 달려

가 발기를 맞아 싸워서 사직社稷을 지켜라. 국상은 계수와 협력하여 난국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네가 어떠한 전략전술을 사용하여도 좋

니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다오.” 


 연우 태왕은 간밤에 우왕후와 마신 술로 머리가 띵했다. 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연우 태왕은 동생 계수와 국상 을파소를 불렀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발기 형님을 힘을 쓰지 못하게 짓밟아

버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역시 너는 내 동생이다.”


 “태왕 폐하, 계수 왕자는 고구려 최고 전사이며 병법을 아주 잘 아는 장수입

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소서. 소신 계수 왕자와 각 나부의 군사들을 연합하여

다양한 전술로 적군들을 물리치겠습니다.”


 국상 을파소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이미 한차례 발기 왕자를 쫓아낸 적이 있

는지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계수 왕자, 국상, 상황을 봐서 발기를 죽여도 좋아요. 이제 그자는 고구려의

골칫덩이입니다. 이 기회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환이 남게 될

테니 철저히 짓밟아 놔야 합니다.”


 “왕후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발기 형님은 오기만 살아 있지 꾀가 없습니다. 제

가 달려가 적군을 박내겠습니다.”


 “왕후마마, 계수 왕수 왕자는 일당백입니다. 또한 손자孫子를 능가하는 전략가

이기도 하오니 너무 심하지 마소서.”


 연우 태왕과 우왕후는 계수와 국상이 믿음직스러웠다. 연우 태왕은 칼을 잡는

일에 능숙하지 못했지만 계수 왕자는 아버지 신대왕神大王의 무골武骨 기질을

닮아 어려서부터 병장기兵仗器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다. 아버지 신대왕은 일찌

감치 막내아들의 자질을 알아보고 병법兵法과 무술을 가리켰다. 유능한 선생을

붙여 병서를 익히게 하고 무예에 뛰어난 무사를 스승으로 두어 계수를 무인으

만들고자 노력 하였다.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계수 왕자는 고구려 제일의 전사戰士이며 전략가로

성장하였다. 국내성에서는 계수 왕자와 대적할 무사가 없었다. 그러나 계수

왕자와 을파소는 발기 왕자가 이끌고 온 군사의 상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

계수왕자와 을파소가 성루에 올라 전황을 살폈다.


 ‘아, 이거 보통일이 아니구나. 지난번에는 겨우 군사 삼백 명으로 궁궐을

치려하여 간단히 쫓아냈지만 이번에는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구

나. 큰일이다. 어떻게 막아내야 하나? 국내성에는 겨우 이만의 군사가 있

을 뿐인데.’
 계수 왕자는 형 발기 왕자가 이끌고 온 적군을 보고 탄식하였다.


 ‘이번에는 발기가 어디서 군사를 많이도 출동시켰구나. 쉽지 않겠는

데......’
 을파소의 얼굴빛이 변했다.


 “성의 중앙을 사수死守하라. 중앙을 잘 사수하면 적군이 힘이 빠져 물

러갈 것이다. 화살을 잘 조준해서 쏴라. 돌은 적군의 머리를 맞추고 성벽

을 넘어오는 놈들이 없도록 하라.”


 “왕자님, 남문으로 쳐들어온 적군들이 비류부 소속 군사라 합니다.”
 “뭐라고? 비류부 소속군사? 군사들이 얼마나 된다 더냐?”
 ”일만 쯤 됩니다.”


 “왕자님, 발기 왕자님이 이끄는 군사들이 북문을 공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군사가 얼마나 되느냐?”
 “대충 오천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발기 형님이 비류부와 요동태의 손을 잡았단 말이지? 중앙을

공략하는 놈들의 숫자가 대략 일만 오천쯤 되니 모두 삼만의 군사들을 몰

고 왔구나. 그동안에 발기 형님이 요동태수와 비류부를 만나 연합전선을

구성하느라 한동안 잠잠하였었구나. 그러나 한나라 놈들과 비류부 군사

들이 말이 통하니 연합전선을 펼친다하여도 큰 성과는 얻기 힘들겠구

나. 좋다. 한번 싸워보자.’


 계수 왕자는 을파소와 앞으로의 전술에 대하여 논의 한 뒤에 긴급하게 작

전회의를 열었다.

   
 “나는 태왕의 명을 받들어 국내성의 모든 병력을 지휘하게 되었소. 적군은

삼만의 군사로 북쪽과 중앙, 남쪽 세 갈래로 공략해오고 있소. 국내성은 견

고하여 저들이 쉽게 넘어오지 못하오. 다행히 저들이 아직 동문을 공략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은 빠른 시일 내로 국내성을 함락하려고 할 것이니 우리

는 해가 저물 때 까지 저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야음을 틈타 적군을 기습하려

하오.


 모든 군관들은 나의 명령이 있을 때 까지 방어에만 전력을 다하기 바라오.

우리 국내성에는 이만의 군사 밖에 없으니 성 밖을 나가 저들과 맞붙으면

우리가 절대 불리합니다.


 해가 지면 우리는 삼군으로 편성하여 적군을 기습하는데 제일군은 계루부

소속 군사들로 편성하여 내가 맡고 제이군은 연나부椽那部 소속 군사들로

연나부 고추가가 지휘하며, 제삼군은 환나부桓那部 소속 군사들로 환나부

고추가가 맡도록 하시오.


 각부에서는 정예군사 오천 명씩 선발하여 특공대를 만들어 놓도록 하고

국상은 관나부貫那部 고추가와 협력하여 성에 남아있는 군사들을 독려

여 성을 단단히 방어해주시오. 해가 지면 각부에서 선발된 특공대들은 완

전무장하여 동문에 집결해 있으시오. 특공대는 모두 검정색 옷으로 갈아

입고 일인당 불화살 열 개를 준비하도록 해주시오.
 

 이번 전투에서 패하면 우리 고구려는 끝장이오. 또한 국상은 발 빠른 전

사 다섯 명을 가장 가까이 주둔하고 있는 아군에게 보내어 지원군을 요청

하시오. 이번 전쟁은 지난번 같지 않습니다. 발기 왕자가 요동태수 공손탁

과 비류부의 군사를 끌어 들였습니다. 비류부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나 한

나라 요동군은 용맹하기로 소문난 군사들입니다.


 지휘체계가 일사분란해야 하니 각부 고추가와 군관들은 나의 명령에 신속

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국내성이 함락되면 우리 모두는 죽은 목숨입니다.

정신 단단히 차리고 전투에 임해주기 바랍니다. 작전회의 내용은 극비입니

다. 외부에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합니다.”


 국상과 각부의 고추가들은 계수의 명령을 받으며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

다. 이미 여러 차례 계수 왕자는 전장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상태였다.


 “공격하라. 우리의 지난날 설움을 이번에 설욕해야 한다. 남문은 다른 문에

비해 낮아서 공격하기 쉽다. 절대로 물러나지 말고 공격하라. 사다리를 걸치

고 성벽을 기어올라라.”


 비류부 군사 일만을 지휘하는 고추가의 한 맺힌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

랐다. 그러나 국내성은 만만하지 않았다. 고구려의 도성답게 적군 한명도

용서하지 않았다.


 “대인, 성을 수비하는 병사들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사다리를 올라타고

기어올라도 거의 전멸을 당하고 있습니다.”
 비류부의 군사가 고추가에게 소리쳤다.


 “포기하지 말라. 이번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화다.”

 비류부 고추가는 군사들을 독려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대인, 아군의 희생이 너무 큽니다.”
 “군사는 입 다물라. 어찌 독려는 하지 못할망정 재수 없는 소리만 하느냐?”
 비류부 고추가는 군사에게 눈알을 부라리며 성질을 냈다.


 “대인, 이대로 가다가 아군이 크게 손해를 입을 겁니다. 도성을 지키는 고구

려 군사들이 예상외로 너무 강합니다.”
 “허허, 그 입 다물라고 했다.”


 남문을 공경하는 비류부의 군사들은 성을 지키는 고구려 군사들이 죽기 살

기로 대응해 오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전군, 일단 후퇴하라.”
 비류부 고추가는 군사 반 이상을 잃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나의 명령이 떨어지지 전에 절대로 물러나지 마라. 국내성을 깨면 고구려

는 우리 차지가 된다. 절대 물러나지 마라.”


 국내서 중앙을 공격하는 중군의 수장 공손강은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휘하 군관들도 공손강의 눈치를 보며 공격을 독려하였지만 국내성은 꿈쩍

도 하지 않았다.


 “장군,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성을 함락시키기 어렵습니다. 다른 묘안을 강

구해야 합니다. 아군의 군사가 상당수 부상을 입거나 전사하였습니다.”
 공손강의 책사策士가 조언을 하였지만 공손강은 못 들은 척하며 전투를 독

려하였다. 해가 중천에 올랐다.


 국내성 안은 조용하였지만 국내성을 공격하는 발기 왕자의 연합군을 함성

을 지르고 북을 치며 공격하였지만 소득이 없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발

기 왕자의 좌군, 중군, 우군은 이렇다 할 전과戰果 없이 해가 기울자 다급해

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발기의 좌, 우, 중군은 상당수의 병력손실로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루 종일 공격과 후퇴가 반복되면서 군사들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단 비류수 근처로 물러나 진을 친 다음 내

일 새벽에 다시 국내성을 치도록 합시다.”
 발기 왕자가 작전회의를 소집하였다.


 “우리가 후퇴할 경우 고구려 군들이 추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멀리가지 말

고 이 근처에서 진을 치도록 합시다. 우리 비류부의 우군은 야음을 틈타 성

벽을 기어 올라갈까 합니다.”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비류부 고추가는 고구려군의 추격이 두려웠다. 이

미 공성攻城에서 상당수 잃었기 때문에 전의를 상실하여 이판사판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비류부에 돌아가 질책을 받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좋

다고 판단하였다.


 “아니오. 오늘밤은 반달이 있어 새벽까지 군사를 움직이면 고구려 군에

게 발각될 수 있소. 오늘은 일단 비류수로 퇴각하였다가 내일 동이 트기 전

에 다시 공격하는 게 좋을 듯 하오.”  


 공손강 역시 오늘 전투에서 병사들을 상당수 잃었기 때문에 멀리 퇴각하

여 전의를 가다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좋습니다. 일단 전군을 비류수 근처로 이동시키고 부상병을 치료하고 전

열戰列을 정비한 다음 내일 새벽에 다시 국내성을 공격하기로 합시다. 이동

할 때 고구려 군이 추격할지 모르니 조용히 퇴각해야 합니다.”


 “발기 왕자, 퇴각은 내가 지휘하는 군사가 많으니 우리 중앙군이 먼저 하

겠소이다. 그다음 좌군이나 우군이 퇴각하면서 고구려군의 추격을 경계해

주시오.”


 ‘저런 약삭빠른 놈. 제 놈만 살자고 하는구나. 저러니 한병漢兵을 믿을 수

있나?’
 비류부 고추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국내성은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성

주변에 적군의 시신과 적군이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병장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태왕 그것 봐요. 발기의 군사들이 크게 손실을 입고 물러났잖아요. 내일,

모레, 글피 그리고 열흘 아니 백일을 우리 국내성을 공격하여도 발기는 절

대로 국내성을 함락시키지 못해요. 우리에게는 계수 왕자가 있잖아요. 걱정

하지 마시고 이 잔이나 받으세요,”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발기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의 사랑은 절대로 훼손되지 않을 겁니다.

안 그래요? 태왕?”


 “그야 당연하지요. 감히 누가 감히 우리 두 사람의 달콤한 사랑을 훼방 논답

니까?” 
 은밀한 왕후의 침궁寢宮에 연우 태왕과 우왕후가 다정히 마주 앉았다. 국상

으로부터 적군이 물러갔다는 보고를 듣고 난 뒤라 태왕과 왕후는 안심이 되

었다.


 “그러나 저들이 내일 다시 몰려올 것이오.”
 연우 태왕은 왕후가 술잔을 들며 근심이 가시지 않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올 테면 오라고 하세요. 그까짓 오합지졸들이 달려와 국내성을 공격하여도

소용없을 거예요. 계수 왕자와 우리 고구려의 용맹한 군사들이 있는 한 저들

은 한 발짝도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해요.”


 “그렇겠지요. 나에게 그런 동생이 있다는 게 큰 행운입니다.”
 “태왕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홍복洪福이에요. 이번에 적군을 물리치고 나면

계수 왕자에게 큰 상을 내리세요.”


 “암, 그래야지요. 그러고 말고요.”
 “태왕, 이것은 옥저에서 진상한 진미珍味랍니다. 한번 맛 좀 보세요.”


 왕후가 고래 고기 찜을 젓가락으로 집어 연우 태왕 입에 넣어주었다. 두 사람

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는 데 밖에서 궁인이 아뢰었다.


 “태왕 폐하, 계수 왕자님 드셨습니다.”
 “계수가? 밤이 깊었는데......”


 “형님, 발기 형님의 군사들이 비류수가로 퇴각하여 진을 치고 있습니다. 소제

小弟가 야음을 틈타 기습전을 펼칠까 합니다.”
 “하루 종일 적군과 싸우느라 피곤할 텐데?”


 “지금 하늘에 반달이 떠있어 지금은 위험하니 달이 선산으로 완전히 기우는

축시丑時에서 인시寅時 사이에 기습전을 펼칠까 합니다. 그때는 적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각이라 경계도 소홀할 것입니다. 저들의 허를 찔러 단숨에

몰살시키고자 합니다.”


 “음-, 묘안이기는 하나 위험할 텐데...... 군사 몇 명을 출동시키려 하느냐?”
 “계루부, 연나부, 환나부에서 각각 군사 각 5천명을 선발하여 3군으로 편성

하였습니다. 또한 세작細作과 척후병斥候兵을 이미 비류수가에 은밀히 잠입

시켜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아군이 일만 오천 명이라. 적군이 삼만 명이라고 하였더냐?”
 연우 태왕은 군사의 수가 적군의 반 밖에 되지 않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듯

했다.


 “적군은 삼만 명이나 오천 명쯤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고 하루 종일 전투에

시달려 몹시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달이 지면 북문으로 소리 없이 빠져 나가

비류수까지 달려가려 합니다. 대력 여기서 세 식경 정도면 됩니다.”


 “하여튼 병법에 능한 너에게 전권을 주었으니 각 나부의 사람들과 협력하

여 기습전을 펼쳐 보아라. 승전보가 날아들기를 기대하겠다.”
     

 “형님 폐하, 고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 둘 밖에 없는 피를 나눈 형제다. 이복형제들은 안중

에 두지 말라.”
 “왕자, 이번에도 저번처럼 공을 세워 형님을 기쁘게 해드리세요.”


 “왕후마마,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반달이 완전히 서산 아래로 모습을 감추자 천지사방은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바로 앞 사람의 형체조차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일만 오천의 고

구려 정예 군사들은 국내성 북문을 소리 없이 빠져 나왔다. 척후들로부터 적

군의 동태가 수시로 계수 왕자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적군 역시 국내성 근처

정탐병을 보냈으나 새벽이 되어도 국내성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모두 돌

아가고 말았다.


 “각 장군들은 들으시오. 척후에 의하면 비류수가 적군의 진영陣營은 지금 조

용하다고 합니다. 어제 하루 종일 전투에 시달린 병사들이 모두 곯아떨어진 듯

합니다. 지금부터 가급적 소리 나지 않게 비류수 까지 속보速步로 달려가야

합니다. 두 식경을 달리면 비류수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를 적의 매

을 대비하여 비류수 근처에 도착하면 동서북 방향으로 흩어져 적 진영에 접

근해야 합니다.


 내가 계루부의 특공대와 북쪽에서 접근하고, 연나부 고추가는 서쪽에서,

환나부 고추가는 동쪽에서 접근하여 내가 불화살을 하늘 높이 쏘면 일시에

불화살을 날리고 번개같이 기습을 하는 겁니다. 기습할 때는 모든 병사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적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비류부의 병사들은 비정규 농민군農民軍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 요동

의 한나라 군사들은 잘 조련되었으니 반격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습이 시작

되면 적군의 군마를 탈취하여 밖으로 빼내야 합니다. 적군이 말을 타면 우리

가 위험합니다.”


 계수의 전략에 각 나부의 고추가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국내성을 빠져나

온 고구려의 특공대는 3군으로 나누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빠른 속도로 비

류수가를 향해 달려갔다. 지독한 훈련과 실전 경험이 풍부한 고구려 정예병

들은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비류수로 달렸다.


 “발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대오를 정비하면서 달려라.”


 “각 군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
 계루부, 연나부, 환나부의 정예군 일만 오천은 바람처럼 비류수로 달려가는데

사기가 충천하여 금방 투가 시작되면 적군을 집어 삼킬 듯한 기세였다.


 “장군, 소신이 방금 점을 쳐보았는데 오늘밤에 하늘에서 불똥비가 내릴 것 같

다는 점괘占卦가 나왔습니다.”
 “불똥비?”


 책사策士의 말에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있던 공손강이 무엇인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젯밤 하늘에서 불똥이 떨어지는 악몽을 꾼 적이 있는데 책사의 점괘가 그

렇게 나왔다고?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똥이 뭘 의미할

까?’


 “책사,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똥이 뭘 의미하는 것이냐?”
 “장군, 아무래도 조짐이 안 좋습니다. 불똥은 고구려군의 불화살을 의미합

니다.”
 “어제 전투에서 고구려 군이 불화살을 쏘지 않았다.”


 “장군, 불화살은 밤에 쏩니다.”
 “그, 그렇다면 고구려 군이 밤에 기습이라도 한단 말이냐? 척후병들의 보고에

의하면 국내성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고 했느니라.”


 “장군, 그것은 우리 측이 보낸 정탐병을 속이기 위한 전술일 수 있습니다. 지

금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라 고구려 군이 칠흑 같은 야음을 틈타 우리를 기습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큰일이구나. 이곳은 뒤에 비류수가 있으니 적이 기습을 한다면 우린 꼼

짝없이 당하고 만다.”
 “그러합니다. 배수진背水陣이라 우리가 절대 불리합니다.”


 “안되겠다. 비류부 소속 군사들 모르게 우리 요동군은 서쪽으로 이십 리 물린

다. 책사는 어서 명령을 하달하라. 비류부에서 눈치 못하게 해야 한다. 어서.”
 “잘 생각하셨습니다. 속히 군사를 서쪽으로 빼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없다. 빨리 군사들과 군마를 이동시켜라. 어서. 어째 기분이 좋지 않다.”

 “장군, 넉넉히 사십 리 밖으로 물리세요. 만약 고구려 군이 오늘밤 기습을 한다

면 이십 리도 불안합니다.”
 “그래, 책사 말에도 일리가 있다. 군사들은 사십 리 밖으로 철수시켜라.”
 “군사들은 지금 즉시 이곳에서 서쪽으로 사십 리 밖으로 철수한다.”


 공손강은 신속하게 자신이 지휘하는 요동군遼東軍을 현재 주둔하고 있는 비류

수 가에서 서쪽으로 40리 밖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발기 왕자와 비류부 고추

가는 공손강이 이끄는 요동군사들이 바람같이 빠져나간 상황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공손강의 요동군이 모두 빠져나간 뒤 계수가 이끄는 계루부 군사들

비류수 북쪽에 집결하였다.


 “불화살을 쏴라.”
 계수의 명령에 불화살 한 개가 캄캄한 하늘위로 솟구쳤다.


 “용감한 연나부 군사들이여, 불화살을 쏴라. 비류부 군사들을 하나도 남김없

이 태워버려라.”
 연나부 군사를 이끄는 고추가의 명령에 오천 개의 불화살의 비류수 서쪽 밤하

늘을 밝혔다. 


 “환나부 군사들은 불화살을 날려라. 모두 태워버려라.”
 동쪽에서 쏜 5천의 불화살도 비류부 군영에 떨어졌다.


 “계루부 전사들이여, 불꽃을 날려라.”
 동, 서, 북 세 방향에서 날아오는 불화살에 비류부 군영은 거대한 불꽃 속에 묻

혀 활활 타올랐다.


 “앗, 고구려군의 기습이다.”
 “고구려군의 기습을 막아라.”
 “퇴각하지 말고 고구려 군을 막아라.”


 “비류부놈들을 모두 쳐 죽여라.”
 “발기 왕자를 찾아라.”
 “비류부 군마軍馬를 다치지 않게 밖으로 몰아내라.”


 “발기놈을 잡아야 한다.”
 깊은 잠에 떨어져 코를 골던 비류부 군사들은 칼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도망

치느라 바빴다. 퇴로가 차단된 비류부 군사들은 비류수로 뛰어 들어야 했다.


 “발기 왕자, 고구려군의 기습입니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기, 기습이라고요? 연우가 쳐들어 왔단 말이오?”


 “경황이 없습니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빨리요.”
 새벽 출전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어 코를 골다가 잠에서 깬 발기 왕자는

무엇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허둥대다가 겨우 빠져 나와 말

에 올랐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척후병들은 고구려군사들의 기습이 없을 거

라고 하였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이럇-. 발기 왕자는 말을 몰아 비류군 진영을 빠져 나갔다, 사방이 어두워 어

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불타는 비류부 진영을 뒤로하고 발기는 무작정 달

렸다.


 “저기다. 저기 발기 놈이 도망간다. 저놈을 쫓아라.”

 “앗. 들켰다. 이랴-.”


 발기 왕자는 쉬지 않고 말채찍을 휘둘렀다. 발기 왕자를 따르는 기마병은 아

들 박고博古와 병사 십여 명이었다.


 “발기를 생포하라. 죽이면 안 된다.”
 “산채로 잡아 태왕 앞에 대령해야 한다.”


 “아, 천지신명이시여, 정녕 이 사람을 이렇게 버리시나이까? 고추모 대왕의

혈손인 이 발기가 이렇게 쫓기다 어이없이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겁니까? 고구

려가 여인의 치마폭에 휩싸여 치욕을 당해도 되는 겁니까? 아버님, 할아버님,

소손을 구해주소서. 소손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발기 왕자는 말을 달리며 울부짖었다.    


 “왕자님, 발기가 지금 우리 군사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째 한라 군사는 한명도 보이지 않는 게요?”


 “아마도 이미 비류수를 빠져나가 요동으로 향하고 있을 것입니다. 요동군을

지휘한다는 공소탁의 아들 공손강은 꾀와 재주가 많은 자라고 알려져 있습니

다.”
 연나부 고추가가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말하였다.


 “나의 목표는 불쌍한 비류부의 농민군이 아니라 요동의 한나라 군사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빨리 알아보라.”


 계수 왕자는 혹시 한나라 요동군이 우회하여 국내성을 진군하였다면 허를 찔릴

수도 있었다. 계수는 발 빠른 군사들에게 말을 주어 국내성 주변을 샅샅이 살피

라고 하였다.

 

 ‘요동군사들이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약삭빠른 놈

들이다. 어떻게 내가 올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그놈들이 국내성으로 향하지

않아야 할 텐데......’


 “왕자, 염려하지 마십시오. 요동군들은 어제 하루 종일 전투를 치르느라 지쳐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 요동을 향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곳

으로 올 때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국내성으로 향했다면 분

명 우리와 마주 쳤을 것입니다.”

 계루부의 고추가는 나름 공손강의 행동을 예측해 보았다.


 “왕자님, 요동군사들이 서남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음-, 다행히 국내성 방향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요동군사들 목적지가 어디란

말인가? 서남쪽이라면 구려句麗, 하양, 도성, 장령, 서안평西安平이 있는데......,

나는 일단 발기 형님 뒤를 쫓아야 겠다. 요동군사들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는

그들을 추격하면 안 되겠어.’


 야음을 틈탄 고구려군의 기습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비류부 군사들은

비류수로 뛰어 들어 익사하거나 고구려군의 기습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계루

부, 연나부, 환나부 군사들은 거의 다치지 않았다. 완벽한 승리였지만 한나라

요동군을 놓친 것이 아쉬웠다.


 “각 부에서는 전과를 보고하시오.”
 “계루부에서는 비류부 군사 이천을 베었고 전리품으로 군마 사백 필을 노획

하였습니다.”
 “연나무에서는 일천을 베었고 군량미 이백 섬을 노획하였습니다.”


 “환나부는 일천을 베었고 군마 백 필을 노획하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1만의 군사를 지휘하던 비류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비류부는 발기 왕자의 편에서서 연우 태왕에 맞서다가 5부 연맹체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나는 발기 군사 오백을 거느리고 발기 왕자의 뒤를 쫓을 테니 각부의 수장들

은 군대를 정열하여 국내성으로 돌아가시오.”
 “왕자, 요동군들이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계루부 오천군사들을 데리고 가시

지요.”


 “아닙니다. 우리가 노획한 말이 오백 필이니 오백 명이면 충분합니다.”
 계수 왕자는 계루부 소속 군사 오백 명을 차출하여 말을 달려 발기 왕자의 뒤

를 쫓았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전쟁은 고구려의 대승을 끝

이 났으나 요동군을 격퇴시키지 못한 것이 고구려군 지휘관들에게는 찜찜했

다.


 “장군, 군사들이 좀 지치기는 하였으나 충분히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군

이 요동을 떠날 때 태수님께서 발기 놈을 돕는 척하다가 말머리를 돌려 구려

句麗, 하양, 도성, 장령, 서안평西安平 등 고구려 서쪽 지역을 접수하라고 하셨

습니다.”
 공손강의 책사가 앞으로 달려 나와 말하였다.


 “음-, 그렇다면 잠시 쉬었다가 닥치는 대로 고구려의 촌락과 읍성邑城을

친다.”
 “과연 장군이십니다. 태수님께서 무척 즐거워하실 겁니다.”

 
 “전군은 들어라. 요동태수이신 나의 아버님께서 대군을 이끌고 양평陽平

을 떠나 우리와 합세하기 위해이리로 오고 계신다. 장졸들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한다. 병사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말에게도 물과 먹이를 충분하게

주도록 하라.”


 “장군, 지금쯤 발기 놈이 똥줄이 빠져라 도망치고 있을 테지요?”
 ‘그놈은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우리를 끌어들여 태왕의 자리를

으려 다니. 호랑이를 불러들인 셈이지.”


 “그놈이 허둥지둥 대며 고구려 군에게 쫓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우리 몫만 챙기면 된다. 아버님과 나는 처음부터 발기 놈의 청의 들

어줄 생각이 없었다. 우리 동군은 발기를 돕는 척 하다가 옛 우리 한나라 영

토였던 요동의 일부분을 되찾으면 그만이다. 나는 그 발기 놈이 태왕이 되건

말건 관심이 없다. 그놈은 성질만 괴팍했지 꾀가 없다. 그놈은 아미 이번에 목

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형제끼리 골육상쟁이라니 참으로 재미있을 거 같다.


 “이번에 태수님께서 예전에 고구려에 빼앗긴 땅을 수복하면 유비와 조조 또는

손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도모하실 만 합니다. 유비는 촉蜀을 세우고 조조는

위魏 건국하였으며, 손견은 오吳를 세워 한나라를 사실상 삼분할 하였습니다.

다만 요동은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니 이번에 고구려에게 빼앗긴 땅을 수

복한 뒤에 나라를 건국하시면 될 것입니다.”
 책사는 입 발린 소리로 공손강의 비위를 맞추었다.


 “책사가 제법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구나. 아버님께서는 조조, 유비, 손견처럼

대의를 품고 계시다. 멀지 않아 나라를 건국하시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실 것이

야.”


 공손강은 공손탁의 서자庶子였다. 본부인에게서 자식이 없자 공손탁은 적자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무도 출중한 공손강을 후계자로 삼았다.  


 “왕자님, 저기보세요. 말 열 필 쯤 되는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습

니다. 분명히 발기왕자 일행 같습니다.”


 계수 왕자가 일행 오백을 이끌고 전속력으로 가다가 바로 눈앞에서 발기 왕자

일행을 발견하였다. 화살을 날리면 금방 맞힐 수 있는 거리였다.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화살은 쏘지 말라. 전속력으로 달려라.”
 결국 발기 왕자 일행은 비류수와 비류수의 지류支流인 배천裵川에서 맞닥뜨렸

다.


 “군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투항하지 말라, 거짓말이다.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다.”


 “발기 형님, 나요. 나 계수 아우입니다.”
 계수 왕자가 투구를 벗었다.


 “아니,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
 발기 왕자는 막내 동생 계수를 보자 크게 놀라워하였다. 발기 왕자와 계수 왕

자 사이에는 크게 반목反目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연우 형님의 명을 받고 형님이 일으킨 반란을 잠재우려고 왔소. 비류부

군사들은 모두 전멸되었고, 공손강이 이끄는 요동군사들은 제 나라로 돌아갔

습니다. 이제 투항하시오.”


 “아우야, 너도 잘 알다시피 네 형 연우가 형수 우부인과 짜고 나의 왕위를 탈

취하였다. 나는 도저히 그 두 연놈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나를 데리고 가

려거든 나와 나를 따르는 군사들을 모두 죽이고 데려가라.”


 “발기형님, 형님 한 분만 투항하면 됩니다. 가엽은 박고 조카와 죄 없는 군사

들을 왜 죽이려고 합니까?”


 “계수야, 너는 나의 동생이다. 한번만 못 본 척 하고 나를 보내다오. 나는 절

대로 네형과 형수를 용서할 수 없어. 나중에 내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나의 왕

위를 되찾으면 너를 후히 중용하마. 그러니 이번만은 못 본척 해다오.”


 “안 됩니다. 태왕의 자리가 그리도 탐이 나십니까? 태왕은 하늘이 내리시는

자리입니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 졌습니다. 투항하시고 연우 형님과 왕후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십시오. 그리하시면 목숨은 보전하실 수 있습니다.”


 발기 왕자를 따르던 군사들은 슬그머니 말에서 내려 투항하였다. 계수 왕자

의 무예 실력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발기 형님, 이제 조가와 형님 밖에 안 남았습니다. 어서 투항하십시오.”
 ‘난 절대로 투항 못한다. 내 어찌 고구려의 왕자로 동생에게 투항하여 내 왕

위를 빼앗아간 연우에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냐? 여기서 너와 일전을 거루

고 싶다.”


 “발기 형님, 안 됩니다. 형님은 저와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조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 마시고 어서 투항하세요. 제가 연우 형님과 형수에게

잘 말씀드려 형님을 용서하도록 돕겠습니다.”


 “난 절대로 투항 못한다. 차라리 네 손에 죽을지언정 투항은 못한다.”
 발기는 노발대발하며 계수 왕자를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계수 작은 아버지 말씀대로 하세요." 

 “이놈아, 너는 가만히 있어라. 네가 뭘 안다고 나서느냐?”


 “발기 형님, 조카 말이 맞습니다. 어찌 우리 형제끼리 칼을 겨눈답니까? 어서

투항하시고 연우 형님께 용서를 비세요. 그까짓 자존심이 다 뭡니까?”


 “너는 배알도 없느냐? 너도 왕자이거늘 어찌 내가 연우에게 고개를 숙인단 말

이냐? 그리고 우씨 계집은 고구려를 건국한 우리 고씨 가문을 거덜 낼 년이 분

명하다. 나는 절대로 투항 못한다.”


 발기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은 계수 왕자의 적수가 못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 계수도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계수는 서서히 형

제간의 해서는 안 될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발기 형님은 연우 형님과 형수님을 욕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발기 형님이

더 나쁩니다. 어찌하여 왕위를 찾겠다고 한나라의 군사를 끌어들였습니까?

왕위 때문에 조국을 팔아먹는 매국노賣國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까? 하늘

과 조상님 보기 부끄럽지 않습니까? 왕위가 그렇게 좋습니까? 형님이 아

리 변명을 하셔도 외세를 고구려에 끌어들인 일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놈들이 누군지 모르십니까?”
 계수 왕자의 말에 발기 왕자는 한동안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아버님, 계수 작은아버님 말씀이 옳습니다. 어서 투항하세요.” 
 “형님, 어서요.”
 “나는 절대 투랑 못한다. 아우야, 우리 한판 겨뤄보자.”


 “발기 형님-.”
 “아버지, 투항하세요.”


 발기 왕자의 아들 박고는 울면서 발기 왕자에게 투항하기를 애걸하였지만

발기 왕자는 듣지 않았다.


 이얍-. 발기 왕자는 장도長刀르르 휘두르며 계수 왕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형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계수 왕자가 칼로 발기 왕자의 공격을 막아내며 소리 쳤다. 아무리 발기 왕

자가 계수 왕자를 공격하려고 들었지만 매번 칼이 빗나가고 말았다. 오백여

군사들은 침을 삼키며 형제가 싸우는 장면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럇-. 계수 왕자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던 발기 왕자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냇가로 달려들었다. 말이 깊은 내를 건너다 앞발을 헛짚어 넘어지면서

발기 왕자가 물에 처박히고 말았다.  


 “앗-, 형님.”
 “아버지-.”
 계수 왕자와 박고가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해모수 천제시여, 추모왕이시여, 고구려의 수많은 조상님들이시여. 이 못

난 후손 이곳 배천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나이다. 부디 고구려를 지켜주소

서. 잠시 권력에 눈이 멀어 외세를 끌어들였습니다. 이 못난 후손을 용서하

소서.”


 발기 왕자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니 장검으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순식

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른 사람들이 손을 쓸 수 없었다.


 “형님, 그까짓 자존심이 무엇이관데 이리 허망하게 목숨을 버린답니까?”
 “아버지, 아버지-.”
 계수 왕자가 목이 반쯤 잘려 나간 형 발기 왕자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박

고의 울음소리가 계곡에 길게 메아리 쳤다. 병사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반쯤

엎드려 고구려 왕자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비록 반란을 일으키기는 하였지만 동생에게 억울하게 태왕의 자리를 강탈

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발기 왕자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계수 왕자는 형

발기 왕자를 배천가에 임시로 매장하고 환궁하였다.


 “여봐라.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다. 내 동생 계수 왕자 짐을 겁박했던 발

기 왕자와 그에 동조하였던 비류부 일파를 모두 처단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

끌었다. 모두 마음껏 마시고 오늘의 경사를 즐기도록 하라.”


 “역시 계수 왕자는 고구려 최고의 장수입니다. 시동생이지만 정말로 자랑

스럽습니다. 오늘은 우리 연나부椽那部 사람들도 마음껏 마시고 승리를 자

축하세요.”


 연우 태왕과 우왕후는 비류부를 제외한 모든 나부의 사람들을 궁중에 불러

축하연을 개최하였다.


 “태왕폐하, 만세.”
 “왕후마마, 만세.”


 “계수왕자, 천세.”
 각 나부那部의 고추가들은 이번 승리가 마치 자신이 세운 전공인 양 거드름

을 피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우야. 오늘같이 기쁜 날 왜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앉아만 있느냐? 속이

불편한 게야? 자, 이번에 정말로 애썼다. 이번 승리는 네가 세운 것이다. 이 형

의 술을 받거라.”
 연우 태왕은 계수 왕자에게 술을 따랐지만 마시지 않았다.


 “아우야, 이 형이 따른 술이다. 속이 안 좋더라도 한잔 정도 마셔 보거라.”
 “폐하,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무슨 말이든 해보거라.”
 계수 왕자는 연우 태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왕후께서 비록 선왕의 유명遺命으로 형님을 태왕을 세웠더라도, 형님께서

예로써 사양하지 않은 것은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경의 의리가 없었던 까

닭입니다. 신은 태왕의 미덕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발기 형님의 시신을 거

두어 임시로 안치했습니다. 태왕께서 만일 어진 마음으로 악을 잊으시고 발

기 형님을 상례喪禮로써 장사지내면 누가 태왕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

까? 신은 감히 못할 말을 하였으니  관부官府에 나아가 죽기를 청합니다.”


 “짐이 불초하여 의혹이 없지 않았다. 지금 아우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짐의

과오를 알겠다. 아우는 자신을 책망하지 말기 바란다.”
 연우 태왕이 웃는 낯으로 계수 왕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페하, 신의 마음을 알아주시니 목숨 바쳐 폐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아우는 걱정하지 말라. 발기 형님을 배령裵領에 후하게 장사지낼 것이다.

이제는 내 잔을 받아라.”


 계수 왕자는 연우 태왕이 따르는 술잔을 받으며 눈물을 삼켰다. 전승을 축하

하는 연회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폐하, 급보입니다.”
 하루 종일 축하연 자리에서 신하들이 따르는 잔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시느라

대취한 연우 태왕은 우왕후의 무릎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슨 일이오?”

 “태왕폐하께 아뢰옵니다.”


 “폐하는 지금 자리에 드셨어요. 급한 일 아니면 내일 아뢰도록 하세요.”
 “왕후 마마, 화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계루부와 연나부의 고추가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우왕후의 처소를 찾았

다. 요동태수 공손탁과 그의 아들 공손강이 우리 강토인 개마蓋馬 구려句麗,

하양, 도성, 둔유, 장령, 서안평西安平, 평곽군을 점령하였다고 보고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소신들이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겠나이까?”  
 

 ‘아, 나의 욕심이 나라의 반쪽을 잃게 하였구나. 그 지역은 우리 고구려의 곡

창지대이며 서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요지인데 졸지에 요동태수에게 빼앗기다

니. 이일을 장차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역사는 오늘의 이일을 두고 과연 무엇

이라고 기록할 것인가? 나 한 사람의 욕망으로 인하여 나라가 반 토막 나고 말

았으니 후세 사람들이 나를 두고 무슨 욕을 해댈까?’


 우왕후는 침전에서 나와 멍하니 서산으로 기울어지는 달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왕후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였으나 왕후는

꼼짝하지 않고 서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