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酒邪
- 여강 최재효
아무도 찾는이 없는
빈거貧居에 누워 박주薄酒로 목을 축이네
인생 반을 살다보니
사람보다 무생無生 벗들이 더 좋아라
낮에는 태양과 구름을 마주하고
밤에는 별과 달을 가까이하니
갈등葛藤도 없고 악연 맺을 일 없어
원루寃淚를 닦을 사정이 없어 좋아라
크게 취하여 기쁘게 노래하여도
오로지 반기는이 나 한사람 뿐이라
인정人情을 끊지 못해 떠나간 사람이여
그대가 어찌 봄밤 호사豪奢를 알겠는가
청주淸酒가 있어 삼라의 도道가 살아 있고
탁주가 있어 인정을 나눌 수 있는데
때에 따라서 도와 정을 멀리 두기도 하다가
주선酒仙의 경지면 합치기도 한다네
술을 즐김에 유정有情의 경계가 없고
여흥餘興을 나눔에 피차彼此가 있으리
한잔 술로 생生을 노래하고
주지酒池에 빠져 전세轉世를 논해보세
살펴보면 인생은 살아있는 것도 아니도
죽은 것도 아닌 단지 중음中陰이라
자랑할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치는 자나
한산寒山에 돌부처가 무에 다를까
술이 있으니 사람흉내 내고
술이 없으니 비인非人을 부끄럽게 여기네
백년 후 걸어온 발자국 세어보면
갈지자 걸음에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리
- 창작일 : 2014.03.22.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