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달
슬로베니아 달
- 여강 최재효
분홍 꽃잎 물결에 떠다니고
하얀 꽃잎 밤이슬 젖어 풀밭에 누웠는데
달빛에 물든 이국異國 청년
빛바랜 연가戀歌 하얀 벤치에 앉아 있네
황금 같은 호시절 허망하게 저물더니
하룻밤 사이에 봄도 저만치 가버렸네
고향의 춘화春花도 바람에 날리고 있을 테지
나그네 춘심春心은 그대로 인데
엊그제 금침衾枕 속 언약이 허망하게 깨진 뒤
꽃의 유혹도 눈에 들지 않았지
부질없이 목이 메고
원루寃淚가 모여 바다가 되기도 했다네
천만리 이국에서 새벽달 보니
마치 천년 몽인夢人을 뵌 듯 하여라
비록 귀밑머리 회색으로 변하였지만
지축地軸이 흔들리면 용암도 토해내리니
타국의 요지瑤池에 춘수春水 가득하니
고금古今의 인연 슬며시 뒤돌아 보는데
한 사람은 슬로베니아에 있고
다른 홍실 매듭은 멍든 흉중胸中에 있네
끊어진 인연의 끈은 가시덩굴 같은 것
봄꽃 다 떨어지고
호숫가에 버들잎 더 푸르기 전에
저 허공의 임 새롭게 단장하는 날 불 밝히리
손 내밀어 오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등 떼밀어 보낸 적도 없었지
행화유수杏花流水에 하얀 달 춤을 추니
나그네 그림자도 따라서 일렁이네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