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꽃
검은꽃
- 여강 최재효
드디어 나는 마귀 같은 그것을 꺾고 말았어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그 더러운 것을
밑바닥도 보이지 않는 음습한 우물 속으로
던져 버리고 육중한 쇠뚜껑을 덮어 버렸지
적어도 천년 동안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거야
지난 암흑 같던 처참한 세월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정도는 자비慈悲에 불과해
사각의 해골 모양을 한 그것은 분명 악연이야
그것은 사람의 육즙肉汁을 먹이로 하지
앙상한 나를 한번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지긋지긋한 천년 감옥에서 탈옥한 기분이야
빌어먹을, 그런데 (이유도 없이)우울해
텅 빈 뱃속에 독주毒酒를 정신없이 퍼붓고
용암을 채워 넣어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우물 위에 태산 같은 바위를 올려놓았어
그것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을 빼앗겼어
화병에 꽂아놓고 밤낮으로 애지중지하였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였지
그것이 사악한 독기를 품고 있는 줄 몰랐으니까
그것이 없어진 지금 홀가분하면서도 쓸쓸해
그런데, 제발 이게 꿈이 아니길 빌어
세상이 혼란하니 매파媒婆도 헷갈리나봐
집집마다 그것이 유행처럼 자생하고 있으니 염병, 말세末世가 맞기는 맞는거야
- 창작일 : 2012.2.8.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