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山
- 여강 최재효
오늘에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네
한 평생 시간이라는 허깨비한테 쫒기고
신기루 같은 황금에
억울하게 구속당했다는 사실을
반생半生을 넘어버린 지금 이 순간
어찌할 명분도
몸부림칠 이유도 상실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눈 쌓인 저 허망한 산을 바라볼 수 밖에
싯다르타의 설산이라면
예수의 산상수훈의 장소라면
한 겨울에도 나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훌훌 벗었으리라
한 여름에도 뼛속까지 얼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꿀 먹은 벙어리 처럼
열리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네
그래도 오늘 겨우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은
눈 먼 자의 흉중胸中에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고 험한 설산이
희미하게 투영된 흔적이 있는 것이라네
안도의 한숨이 나오네
- 창작일 : 2012.1.4. 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