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
- 여강 최재효
한가위를 맞아 친정을 찾은 자매姉妹도
깊이 잠들지 못한 듯 했다
어머니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밤새도록 누웠다 일어나길 반복하면서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거친 세월들을
힘들게 반추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어머니와 나란히 눕고
막내아들, 막내딸, 셋째 누이
그리고 형제와 자매 순서로 누웠다
점봉리 86번지에서 출발한 꿈의 푸른 열차는
밤마다 아홉 개의 별 사이를 달렸다
반세기가 꿈결처럼 흐른 지금
은하수를 누비던 푸른 열차는 멈추었고
별 셋은 영원히 우주의 미아가 되고 말았다
낯선 여자의 남자가 된 막내아들
다른 가문의 며느리가 된 두 딸, 외손녀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노모老母는
차마 믿기지 않는 듯 길게 한숨을 토하며
선잠이 든 남아있는 혈육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고 있었다
나는 동창이 여명에 촉촉이 젖을 때 까지
어머니 몰래 뒤척이며
혹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옛집에서의
행복한 단잠을 설치고 말았다
- 창작일 : 2011.9.13. 06:00
[주] 1. 미수 - 88세
2. 선잠 - 깊이 들지 못하거나 흡족하게 이루지 못한 잠
3. 점봉리 86번지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에 소재한
필자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