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立
- 여강 최재효
한 달에 한번 타인에게 머리를 맡긴다
생명을 맡긴다
앙심을 품은 자라면 내 목숨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
소름 끼치는 가위질 소리
머리카락을 난도질하는 기계소음
잔털 미는 독사의 혀 같은 면도칼
여인이 남정네 목숨을 좌지우지한다
참으로 묘한 요즘이다
수년째 머리를 맡기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거울 속에 비쳐지는 여인의 미간이 꿈틀대며
찰나에 안색顔色이 천변만화한다
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여인의 얼굴에 복사꽃이 피었다
내 머리 위로 복사꽃 향이 떨어진다
내 목숨이 한달 더 연장되었나 보다
거울 속에 서너살 어린 낯선 사내가 나를 본다
우리는 인사대신 미소를 나누었다
- 창작일 : 2011.8.11.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