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1. 6. 3. 01:00

 

 

 

 

 

 

 

 

 

 

 

 

 

            

 

 

 

 

 

 

 

 

 

           가리봉동(5)

 

 

 

 

                                                                                                                                                                                         - 여강 최재효

 

 


 “휴우-, 최 과장, 한잔 해. 목도 축여가며 이야기 해야지.”
 “고마우이.” 박 과장이 재성의 빈 잔에 탁주를 따랐다.


 “나 같으면 동네 한번 휙 돌아보고 포기했겠네. 어떻게 그 많은 집들을 다 뒤지고

니나? 참으로 자넨 무모한 면이 있어. 아무리 애인이 보고 싶어도 그렇지. 늦은

밤 까지 찾아 헤매다니. 자넨 참으로 독한 사람이네.”

 박 과장이 잔을 들어 재성에게 건배를 하자는 시늉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으로 멍청했어.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지 500여장을 만들어

가리봉동 버스 정류장이나 전봇대, 골목길, 동네 수퍼 등 여자들이 갈만한 곳에 방을 붙이면 될 것을, 내가 왜 그런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거야, 최 과장이 그 아가씨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컸기 때문에 그렇지.”
 “사랑이 뭔지. 그 놈에 사랑......”


 “나는 한편으로 최 과장의 그런 순수한 열정이 부러우이. 나도 그런 추억이 있었으면

좋았것을......”


 “에이, 그런 추억 두세 개 있다가는 사람 피가 말라 죽었을 걸세.”   
 “그 나이 때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았지. 요즘 젊은이들 좀 봐. 애인에게 배신당했다고 혹은 부모에게 꾸지람 좀 들었다고 귀한 목숨을 미련 없이 버리잖아. 아무튼 나는 자네의 그 열렬한 사랑이 부러우이.”

 재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탁주잔을 비웠다.


 “최 과장, 밤 11시야 얼른 나머지 이야기를 듣고 싶네.”
 “박 과장, 아무래도 오늘 다 못할 것 같네. 내일 마주 들려주면 안 돼?”


 “허, 나를 이야기 속에 들어가게 해놓고 그만 둔다고? 에이, 이 사람, 그러지 말고 얼른 하세. 오늘 밤을 새더라도 자네 사랑이야기를 다 들어야겠어. 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계속 하시게.”
 ‘허, 그 사람. 내 생각은 안 하나? 이거 참.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재성은 목을 축이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301호라는 표지가 붙은 다세대주택 첫집 초인종을 눌렀다. 두 번, 세 번, 네 번, 초인종 버튼을 열 번을 눌러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세 번 두드리고 돌아서려 하자 현관문이 열렸다. 20대 후반의 여인이 양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문을 열었다. 방금 무슨 일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땀이 얼굴에 배어 있었다. 여인은 상당히 짜증스러운 듯 나를 훑어보았다.


 “누구세요?”
 “실례합니다.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별꼴이야 정말. 한창 열을 내고 있는데 이상한 사람이 훼방을 놓네. 아휴, 짜증나.”

 여인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을 흘기고 문이 부서져라 꽝하고 닫아버렸다.


 ‘빌어먹을 인심하고는......’

 나는 돌아서서 302호 초인종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댔다.


 “누구요?”

 이번에는 남자의 무거운 톤이 들렸다. 남자는 문을 빠끔히 열고 나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한 달 이상 면도를 하지 않은 듯 수염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저어, 실례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원, 별일도 다보겠네. 오늘은 왜 이리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귀찮게 하나

그래? 이집에는 나와 팔순의 우리 어머니 밖에 없소이다. 집을 잘못 찾았수. 다른데 가보슈.”

 남자는 외모와 달리 말투는 후덕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실례합니다. 이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 없어요.”


 “저어, 실례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나 밖에 없수.”


 “실례합니다. 이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에는 그런 아가씨 없어요.”


 “아주머니, 혹시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있기는 있는데 이름이 다르네요. 화숙이란 여잔데 술집에 나가고 있어요. 나이는

삼십 초반이고.”


 “실례합니다. 이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남자들만 살아요. 다른 데 가서 알아 봐요.”

 나는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자 허공에 대고 화연이 이름을 부르며 하소연 하였다.


 “화연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응? 대답 좀 해봐. 너는 내가 이렇게 눈밭을 헤매

너를 찾고 있는 걸 알기나 하는 거니? 화연아, 제발 어디에 있는지 대답 좀 해봐.

화연아......”

 빈집 몇 가구를 제외하고 연립주택을 모두 방문하였지만 화연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눈은 그쳤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면서 온 몸이 서서

히 얼기 시작하였다.

 

 발도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어 있었다. 밤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지만 나는 화연이

찾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연립 주택 아래 단독주택 단지를 뒤져보기로

하였다. 대개가 1층의  구조인데 2층 집도 더러 보였다. 새로 지어진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집도 있고 허름한 집도 있는데 화연이 성격으로 보아 오래 된 집보다 새집에 화연이 세 들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2층 양옥집으로 다가갔다. 내가 막 2층집을 향해 가려고 할 때 골목 저쪽에서 두 명의 여자들이 걸어왔다.


 ‘혹시? 화연이와 화연이 언니?’ 나는 얼른 옆집 대문에 바싹 붙어 두 여인의 동태를

유심살폈다. 분명히 20대 아가씨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기도를 하며 두 아가씨가 화연이와 이 언니이기를 바랐다. 10미터, 5미터, 2미터. 내 앞을 지나가는 두 아가씨들은 나의 기대와 환상을 깨고 말았다. 나는 크게 실망을 하고 2층집 초인종을 눌렀다. 서너 번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구요?”

 안에서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없소.”

 남자는 문도 열지 않고 한마디 하고 들어가 버렸다. 옆집 옆집 또 그 옆집. 2,3층

연립주택 보다 한 가구가 거주하는 주택들은 쉽게 다니며 초인종을 눌러댈 수 있

었다.


 이제는 경사가 심한 언덕 위에 있는 집들을 돌며 화연이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언덕 위자리한 집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데 하얀 겨울옷을 입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처럼 보였다. 나는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밤 11시가 넘자 지나다니는 사람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맨 꼭대기에 있는 집부터 초인종을 눌러댔다.


 “거 누구요?”
 “여기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누구요?”

 기침을 심하게 하는 할머니가 안채 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나요?”
 “없수. 이집에는 우리 두 늙은이 밖에 없수.”

 할머니는 기침을 심하게 하며 뭐라고 혼로 중얼거리며 문을 닫았다.


 “누구세요?”
 “실례합니다만, 이 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 없어요.” 


 “누구세요?”
 “이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사람을 찾는다고 그래?”

 50대 아저씨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실례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지 않나요?”
 “그런 사람 없어요.”
 “이 집에 혹시 화연이란 아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안 살아요.”
 “밤늦게 실례합니다만, 이 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안 살아요. 늦은 밤에 별일을 다보겠네.”


 “늦은 밤에 실례합니다만, 이집에 화연이란 아가씨가 살고 있지 않나요?”
 “그 여자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인데요?”

 인터폰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는 드디어 화연이를 찾는가보다 하고

기뻐했다.


 “아예, 저는 화연이란 아가씨 남자 친구입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떨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빌어먹을, 그 년은 내 마누라야 임마. 그리고 한 달 전에 애새끼들 놔두고 집을

나갔다구.”

 인터폰에서 술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 오늘은 더 이상 안 되겠다. 그러보니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도 없겠는 걸.“

 나는 부리나케 큰 도로를 향해 걸었다. 경사진 도로를 거의 다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이쿠-”

 나는 눈썰매를 타 듯 3-4미터 쯤 미끄러지며 구르다가 어떤 집 담벼락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히고 말았다. 마치 야구방망이로 맞은 듯 정신이 잠시 멍했다.


 나는 누가 볼까봐 있는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걷다보니 머리가 너무

아팠다. 순간 머리에 손을 대자 미끈한 액체가 손가락에 묻었는데 자세히 보니 피였

다. 피를 보는 순간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버스는 이미 끊어지고 없었다. 시계는

12시를 알리고 있었다. 길가에 호프집이나 주점을 제외하고 소규모 상점들은 거

다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아, 이일을 어쩐다? 집에서 누님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술집에 들어가 전화기를 빌려 쓸 수도 없으니. 빨리 택시라도 잡아타고

가야겠어.’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막 이지러지기 시작한 달

빛을 뿜어 내며 세상을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달님, 화연이가 정말로 이 가리봉동에 살고 있는게 맞나요? 화연이, 화연이가

보고싶어 죽겠어요. 달님, 오늘은 너무 늦어 집에 갑니다. 내일 다시 올거에요. 내일

화연이를 찾지 못하면 내일 모레, 그래도 못찾으면 글피, 그 그필, 한달, 두달, 일년,

십년, 아니 백년이 흐른다고 해도 저는 이 가리봉동에 또 올거에요. 화연이가 보고

싶어 죽겠어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 내려 점퍼에 온통 핏자

국으로 얼룩졌다. 

 

 30분 정도 통증과 추위에 떨면서 나는 ‘빨리 택시를 보내 달라’며 믿지도 않는 하나

님과 부처님을 찾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멀리 구로동에 공장 밀집지역을 향해 걸었

다. 머리에서 계속 피가 흘러 얼굴 전체에 피로 범벅이 되다 시피 하였다. 공장지대

가까이 가니 택시들이 보였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길 가운데로 나가서 택시를

세웠다. 깜작 놀란 택시기사가 택시를 세우는데 택시가 한쪽으로 미끄러지며 간신히

멈췄다.


 “택시, 영등포요.”
 “아이고, 손님, 갑자기 뛰어나오면 어떻게해요? 사고날 뻔 했어요."

 택시기사는 아마 내가 자신의 손님이 아니었으면 나에게 욕을 퍼부었을 것 같았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영등포로 가주세요."

 "크게 다치셨나봅니다? 얼굴에 피 범벅이네요. 여기 휴지 있어요. 영등포 어디에요?”
 “네에, 영등포 당산동입니다.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담벼락에 부딪혔어요.”


 나는 휴지로 얼굴을 닦고 다친 머리 부위를 휴지로 꾹 눌렀다. 피가 계속흘러잘못하면 택시 시트에 떨어질거 같아 나는 머리 상처부위를 세게 눌러야 했다.


 “저런, 저런. 빨리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택시기사는 뒷좌석에 탄 나를 백미러로 쳐다보며 동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길이 미

끄러워 택시도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참, 택시비. 여기서 당산동까지 택시비가 엄청 나올 텐데. 지갑에 겨우 3천원 밖

에 없는데 어쩌지?’

 나는 택시미터기를 바라보며 요금이 올라갈 때 마다 가슴이 철렁 철렁 내려앉았다.


 “아저씨, 여기서 당산동까지 요금이 얼마나 나와요?”
 “글쎄, 눈길이라서 평소보다 더 나올 거 같은데. 일단 가봐야지 뭐.”

 택시 요금이 내가 가지고 있는 돈보다 많아지자 나는 숨이 가빠지면서 심장이 콩

닥거렸다.


 “아저씨,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아니, 학생, 집이 당산동이라면서? 여긴 신도림인데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
 “택시비가 삼천 원 밖에 없어요.”

 나는 주눅이 들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하였다.


 “......”

 택시기사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걸어가야겠어요.”


 “학생, 그냥 타고 있어요. 내가 삼천 원만 받을 테니. 머리에서 피가 나오는데 어떻게

집에까지 걸어가려고?”

 나는 택시기사 아저씨가 마치 하나님 같다고 생각하였다.


  S아파트 입구에서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에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택시에

서 내려 걷자 머릿속이 흔들리면서 통증이 전해져 한 발자국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나는 최소한의 보폭(步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까지 오는데 20분 이상이 걸렸다.

 

 초인종이 울리자 누이가 뛰어나오며 현관문을 열었다. 벽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

고 있었다. 누이는 나를 야단치려고 벼르고 있다가 내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상태를

보자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힌 듯 부르르 떨었다.


 “얘, 너, 너 이게, 이게 어찌된 일이야? 왜 얼굴이 피범벅이 된 거야.”

누이는 금방 울음을 터트렸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누이는 나보다 세살 위인

데 어릴 때 부터 남동생인 나를 끔찍이 위했다. 내가 학교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 내가

집에 들어 올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 잠을 자곤 했다.


 “누나, 미, 미안해.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면서 벽에 부딪혔어.”

 누이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나의 머리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피딱지를 닦아내다 말

고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연고나 바르고 하룻밤 자고 나면 금방 나을 거라

고 했지만 누이는 막무가내로 병원을 가자고 하였다. 나는 누이와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머리뼈에는 크게 이상이 없

는 걸로 나왔습니다만 한 일주일 정도는 꼼짝하지 말고 누워 있어야 합니다. 걸어 다니면 머릿속이 흔들려 두통이 심할 겁니다. 우선 찢어진 부위를 꿰매야 합니다.”

 의사는 누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나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일주일? 아아, 안되는데. 성탄절 이전에 화연이를 찾아내야 하는데, 일주일씩이나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다니.’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다음 날 오후에 긴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곁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큰형님 내외분이 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측은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면서 간간이 눈물을 찍어냈다. 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콧날이 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살 때 양잿물을 마시고 죽을 뻔 한 자식을 살려내신 어머니였다. 또한 다섯살 때 큰

누이 시집가는 날 누이를 따라갔다가 누이네 집 툇마루에서 얼어 죽을 뻔 한 막내아들이었다. 내 머리에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내가 실눈을 뜨자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이 녀석아, 어떻게 하다가 이리 된 거여? 눈이 내리고 길이 미끄러우면 집에 일찍 들

어올 것이지 새벽까지 어디서 뭘 한거여?”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울먹였다.


 “그래, 머리가 아프지 않니?”

 아버지는 내 허벅지를 주무르며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에, 죄송해요. 제가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하는데......”

 나는 누워서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도련님, 큰일 날 뻔 했대요. 자칫 뇌를 다쳤으면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 천

만다행이래요. 열다섯 바늘이나 꿰맸어요.”

 형수는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나에게도 들려주며 당분간 병원에서 상처가 완

전히 아물 때 까지 입원해 있으라고 했다.


 ‘아아, 화연이, 화연이는 이대로 나에게서 멀어지는 건가? 안 돼. 절대로 나는 화연

이를 포기할 수 없어. 내가 병원에서 나가면 다시 가리봉동으로 갈 거야. 나는 절대

로 화연이를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화연아, 도대체 어디있는거야. 나는 흐르는 눈

물을 가족들이 보지 않을 때 슬며시 닦아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