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終)
강화도 장화리 일몰 - 필자 직촬
물망초(終)
- 여강 최재효
終
“나무관세음보살. 실례하겠습니다. 여기가 주희씨 병실이 맞는지요?” 영인이 병
실 문을 열자 혜목스님이 합장을 하며 영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네에. 맞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영인의 싸늘한 시선이 혜목스님을 아
래위로 훑어 내렸다.
“나무관세음보살, 빈도 혜목이라 합니다. 속명은 이천호입니다.”
‘천호씨가?’ 주희는 남편에게 가려 밀짚모자만 보이는 혜목스님이 이천호라는 것
을 직감하고 병상(病床)에서 내려오려고 하였다.
“천호씨, 저에요. 저, 주희가 여기 있어요. 천호씨-,”
주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혜목스님이 머리칼도 거의 다 빠져
하얀 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주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혜목스님은 일정한 거리에
서서 하얗게 화장한 주희의 모습을 보면서 넋이 빠져있는 듯 했다. 주희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혜목스님 두 눈에 어느새 뜨겁고 촉촉한 물질이 흘러내
리고 있었다.
‘아아, 주희야, 나야. 나 이천호가 왔어. 20년이 훨씬 넘어서 이렇게 네 앞에 다시
나타났어. 나를 원망해도 좋고 몽둥이로 내 육신을 두들겨 패도 좋아. 나는 네가 어
느 남자 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게 어찌된 거야? 나는 옛날의
이천호가 아닌 불제자가 되었어. 주희야, 내가 어찌해야 할까?’
혜목스님은 선뜻 주희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이고 무언(無言)
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님의 손에는 염주가 들려져 있는데 염주 알을 돌리지 못
하고 꽉 쥐고만 있었다. 영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병실
을 나가버렸다.
“천호씨, 어떻게 하시다가 불문(佛門)에 귀의하셨어요? 저 때문이지요?”
주희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연이 예쁘게 칠해준
아이샤도우가 녹아 눈물에 섞여 흘러내렸다. 주희가 병상에 앉아 어쩌지 못하고
울고 있자 혜목스님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무관세음보살, 빈도 이제야 보살님을 뵙습니다.”
“천호씨, 저에요. 저 주희라고요.”
“나무관세음보살.”
눈물이 두 눈에 글썽한 혜목스님은 부르르 손을 떨면서 주희의
앙상한 손을 잡아 주었다.
“주희-.”
“천호씨.”
“미안해. 나를 용서해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때 내가 불문에 귀의하 지 않았
으면 나는 이승에 없었을 거야.”
주희의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손등 위로 혜목스님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천호씨, 어디 갔다 이제 오셨어요. 저에게 오시는 길이 20년 넘게 걸렸어요.
천호씨, 보고 싶었어요. 제가 죽게 되니까 천호씨를 만나게 되네요. 흑-,”
주체할 수 없는 희열과 그리움으로 범벅이 된 주희는 울음 참고 있다가 화산이 용
암을 토해내듯 오열하고 말았다.
“미안하구려.”
“미워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알아요?”
“나무관세음보살, 미안하구려.”
주희가 큰소리로 울자 혜목스님은 조용히 염불을
하였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수리 수리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무상심심 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혜목스님이 염불하자 주희도 울음을 그치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주희는 늘
남편이 하나님과 예수를 찾는 기도를 들어 온 터라 불경이 어색했지만 혜목 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에 어느덧 깊은 바닷속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염불을 하는
혜목 스님의 두 눈에는 촉촉한 액체가 소리 없이 흘러내렸고, 주희의 양 볼 위로도 계
속해서 뜨거운 액체가 번지고 있었다. 병실 문 밖에는 지연이 안에서 들려오는 혜목
스님의 염불소리를 들으며 흘쩍거렸다.
‘엄마, 엄마의 첫 사랑인 이천호씨 혜목스님이 오셨잖아요. 그 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고 가슴 태우던 이야기들을 모두 하세요. 전 알아요. 엄마의 이승 시간이 얼마 남
지 않았다는 것을요. 오늘밤을 새워서라도 엄마 가슴에 태산처럼 쌓인 한을 모두 풀
어 내세요. 엄마, 사랑해요.'
지연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옆에 서서 딸애가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
던 영인은 가슴이 미어졌다.
‘어떻게 한다. 집사람 부탁을 들어줘야 하나 아니면 무시해야 하나. 막상 부탁 을
들어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환자를 데리고 바닷가를 간다고 하면 병원서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할 텐데. 그러나 며칠 살지도 못할 사람 소원을 무시하자니 집사람 죽고
나면 내가 두고두고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나를 괴롭힐 텐데. 어찌 하나? 그래 들어
주자.
들어준다고 했으면 들어주는 게 남자답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이 까까머리
중한고 무슨 일을 하겠어? 본래 두 사람이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내가 중간에 껴서
20년 넘게 두 사람을 갈라놓았으니 나에게도 일말의 도덕적 책임이 아주 없는 것
은 아니지.
아내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부탁인데 두 애들을 봐서라도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
군. 그래야 나중에 두 딸들 앞에서도 약간은 떳떳할 거고. 그런데 가을에 바다에
가서 뭘 보겠다는 걸까? 단순히 파도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은 아닐 테고. 그것 참
알 수가 없네. 집사람을 앰블런스로 이동시키려면 간호사와 의사를 대동시켜야 할
텐데.
가격도 만만치 않겠군. 까짓 거 쌓아두고 쓰지 못하고 있는 게 돈인데 뭐. 마지막
가는 사람 소원 들어 주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까. 아무튼 병원 측과 상의를 해봐야
겠군.’ 영인이 캄캄한 창 밖을 바라보며 석고 상 처럼 서 있을 때 지연이 영인에게
다가왔다.
“아빠, 뭘 그리 골몰하세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다.”
딸에게 속내를 들켜버린 것 같아 영인은 잠시 당황하였다.
“아빠, 혹시 엄마가 아빠에게 뭐 부탁하신 거 있으세요?”
지연은 엄마가 혜목스님을 만났으니 혜목 스님을 그냥 돌아가게 하지 않을 것
이란 짐작을 하였으나 주희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었다. 영인의
굳은 표정을 보고 지연은 엄마가
분명히 어떤 주문을 하였을 거라 짐작했다.
“얘야, 엄마가, 엄마가 아빠한테 이상한 부탁을 하더구나.”
“이상한 부탁? 아빠, 그게 뭔데요?”
“글쎄, 네 엄마가 그 혜목스님인가 뭔가 하는 사람하고 강원도 정동진 바닷가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구나. 네 엄마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영인이 허탈한 모습에 지연은 아빠가 측은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빠 영인의
경제력이면 얼마든지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고도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아빠,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부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동안
엄마가 아빠한테 부탁 같은 거 한적 없었잖아요. 저도 따라갈게요. 아빠가 꼭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실 거라 믿어요.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셔야 해요. 만약 아빠가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저희 두 딸들은 두고두고 아빠에게 엄마의 부탁했던 일을
들먹거릴 거에요. 그러니 아빠 제발 부탁 드려요.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지연이 영인에게 주희의 심정이 되어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네가 그렇게 사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빠는 방금 전에 네 엄마의 마지막 부탁을 들
어주기로 결정했단다.”
“아빠, 고마워요. 아빠, 제가 부탁 한가지 더 해도 돼요?”
“뭔데?”
“엄마가 혜목스님과 정동진 바다로 가면 지혜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그 애는 지금 내일모래로 다가온 수능고사 때문에 눈코 뜰새 없잖니.”
“물론 저도 잘 알아요. 그러나, 그러나 어쩌면 엄마가 바닷가에 가시면 다시는 엄마
의 살아있는 모습을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래요. 지혜한테는 내가
이야기 잘 해놓을게요. 그 애는 워낙 공부를 잘해서 수능고사를 안 봐도 수시 일차에
합격할 거에요. 전 그 애 실력을 믿어요 아빠.”
지연이 차분한 어조로 영인을 안심시켰다.
“그렇다면 그리하자구나. 흠-“
영인은 대학입학 시험준비를 하는 둘째 달 지혜를 데리고 가자는 큰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아내가 큰딸 아이 말대로 바닷가에서 숨을 거둔다면 둘째
딸이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임종을 못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 고마워요. 어제 이미 제가 지혜한테 이야기 해놨어요. 언니가 전화하면 얼
른 이리로 달려오라고요.”
“그 애 담임선생님한테도 미리 이야기 해놔야 하지 않니?”
“아빠, 염려하지 마세요. 지혜담임선생님께도 미리 말씀 드려놨어요.
“그, 그랬니? 네가 아주 영특하구나.”
“지혜 담임선생님도 엄마가 현재 위중하시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실 거에요. 지혜
가 먼젓번에 담임선생님께 대충은 말씀을 드렸다고 했어요.”
“그, 그랬니?”영인은 지연의 마음 씀씀이에 대견해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칫 자신
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딸들의 시선에 큰 부 담을 느
꼈다.
“천호씨,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해요.”
“아니오, 사람의 외모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주희는 이천호가 비록 속세를 떠나 불자가 되었 지만 예전에 사랑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면서 지난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묘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몽
실몽실 피어 오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20년 전 그대는 나와 꽃과 나비 같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이 였습
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대와 나는 여러 가지 많은 이승의 혹을 매단 채 살아 가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을 향한 그대의 마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삼라만상은 고정불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다가 저승에 든 영
가(靈駕)라 할지라도 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기 마련입니다. 나는 지금 20년 전
의 그대와 20년이 지난 그대의 두 모습을 동시에 보고 있습 니다. 또한 현 시점에서
20년이 지난 후의 그대를 보고 있습니다.”
“천호씨, 지금부터 20년이 지난 뒤의 제 모습이라니요?”
주희는 혜목스님의 알쏭달
쏭한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그대가 비록 다시는 회생불가한 병에 걸려있더라도 그대의 영
혼은 영원합니다. 지금의 그대의 모습에서 불심(佛心)이 보입니다. 불심이란, 모든 생
명체에 깃든 부처의 무량한 마음입니다. 비록 한번도 부처를 본적도 없고 부처의 마음
을 헤아려 본 적이 없다 하여도 이미 그대 가슴에는 자비스러운 불심이 가득합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대에게 무상심심미묘(無上甚深微妙)하며 수승(殊
勝)한 연기(緣起)로 이 빈도와 맺어 졌었습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은 상호의존적이고 동시에 생겨났다가 동시에 사라지므로, 독립적으로 자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이 빈도와 그대 사이에 맺어진 연(緣)을 억지로 끊으려고 한
것에서부터 그대의 눈물이 시작된 듯 합니다. 참으로 잘못된 이 빈도의 행동으로 그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꼬이고 꼬인 사바의 연을 이제라도 홀가분하게 풀어
내야 합니다. 내 비록 불제자가 되어 심산유곡을 바람처럼 떠돌며 부처의 말씀을 가
슴에 새기고 염불을 외며 부처가 되려고 하였지만 늘 그대를 내 심저(心底)에서 깨끗
하게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바와 인연을 끊고 오로지 염불만 외운다고 다 부처가 되
는 것은 아닙니다.
사바의 잡다한 인연들이 단지 정진(精進)하는데 방해가 되기는 하지만 이 풍진 세상
과 모든 일체의 연을 끊고 수도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있어야 도량이 있고 중이 있으며 부처가 있지요. 세상이 모두 중
과 부처만 존재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세상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와 무생물에 불심(佛心)이 있고 연기(緣起)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어 외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사자후
(獅子吼)는 삼라만상과 불성에 대한 상관 관계를 설파한 금과옥조입니다.
이제 너무 늦은 감은 있지만 그대를 이리 다시 만나니 무량한 측은심(惻隱心)이 우러
나는 것을 주체할 수 없답니다. 그대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도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은 숙연(宿緣)에 따른 것이랍니다. 이 시점에서 이 빈도가 그대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지나간 해묵은 연을 모두 털어내는 일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빈도가 그대를 위하여 어찌했으면 좋을지 말씀해보세요.”
혜목스님은 물 흐르듯 법문(法門)을 쏟아냈다.
“천호씨, 아니 혜목스님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어요,”
“나무석가모니불, 그 소원이 무엇인지요?”
“혜목 스님, 저와 강원도 정동진 바닷가를 가주세요.”
“네에? 정도진 바닷가를요?”
“네에. 마지막으로 스님과 20년 전 우리가 떠오르는 아침 해를 정동진에서 봤던 기
억을 되살리며 다시 한번 붉은 태양을 보고 싶어요.”
주희는 혜목스님의 손을 잡고
갈구하는 듯 눈물로 촉촉히 젖은 얼굴을 들어 혜목스님을 올려다 보았다.
“나무약사여래불. 그대의 병세가 지금 너무 위중하다고 알 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
기서 어떻게 그 먼 정동진까지 갈수 있단 말이오?”
“스님, 애 아빠가 병원 측에 부탁을 할거에요.”
“나무석가모니불, 이 빈도가 그대와 함께 바닷가를 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데 이
렇게 거꾸로 매달려 있는 링게르병에서 그대의 목숨을 이어주는 약물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불안하고 위중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동을 하려고요?”
혜목스님은 난
감한 듯 양 미간을 찌푸리며 주희 병세를 유심히 살폈다.
“혜목스님, 염려하지 마세요. 애 아빠가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스님과 바닷가를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거에요.”
주희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져가는 듯 했다.
“나무대비관세음보살.”
혜목스님은 주희를 측은한 듯 내려다 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속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사장님, 그건 안 됩니다. 환자는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자칫 이동중에
운명하실 수도 있습니다.”
“원장님, 제 아내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저는 남편으로서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
습니다. 경비가 얼마가 들더라도 꼭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요.”
영인은 정치권
에 줄이 닿는 인사의 소개로 병원장을 만나고 있었다.
“사장님, 그럼 이렇게 합니다. 우리 병원의 규정상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를 위
독한 환자를 의료시설이 없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일은 불가합니다만, 고위층 인사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하니 서울서 먼 동해대신 서해 쪽으로 장소를 변경해 보는 게 어
떤지요? 다 같은 바다이니 환자에게 정서적 감흥을 느끼는 데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
을 듯도 합니다만.”
원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영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장님, 고맙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그리하도록 설득해 보겠습니다.”
영인도 아내의
입장에서 시간이 거리는 동해보다 가까운 서해가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만약에 병원이 아닌 바닷가에서 부인께서 운명을 달리 하실 경우 제반 모든
책임을 우리 병원에서는 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네에, 잘 알겠습니다.”
영인의 비감한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우리는 앰블런스와 기사, 간호사, 의사 각 한 명씩 그리고 필요한 제반 시설을 준비
하겠습니다.”
“원장님, 고맙습니다.”
영인의 설득으로 주희는 영인의 의견대로 동해 대신 서해로
장소를 바꾸기로 하였다.
혜목스님은 밤새 주희의 병실에서 주희를 병간호 하며 밤을 지새웠다. 불제자에서
옛 연인으로 돌아와 주희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었다. 혜목스님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
구하고 주희의 상태는 더욱 악화돼가고 있었다. 진통제에 의존해 시시각각 조여오는
죽음보다 더한 통증을 주희는 견뎌내고 있었다. 주희는 자주 움찔거리며 통증을 이겨
내느라 초인적인 인내를 감내하고 있었다. 주치의 진찰과 약물투여 등 긴급 조치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후 3시가 넘어 앰블런스 한대와 승용차 한대가 병원을 빠져 나
갔다.
행선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고 소문난 강화도 장화리였
다. 주희가 누워있는 대형 앰블런스에 혜목스님과 의료진이 타고 있었고 승용차에는
영인과 두 딸들이 동승했다. 서울서 강화도 장화리 까지는 대략 2시간 거리여서 의료
진들도 다소 안심이 되는 듯 했다.
늘 병실 안에서 생활해온 주희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와 세상 풍경이
신기한 듯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였다. 혜목 스님이 주희를 비스듬하게 앉게 하고 팔
로 주희를 반쯤 안고 있었다. 바싹 마른 건초더미처럼 가벼운 주희의 육신을 안은 혜
목 스님의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스님, 너무 편해요. 저 이렇게 스님 가슴에 안겨 이승을 뜨고 싶어요. 제 소원 들
어주세요. 흑-.”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아닙니다. 죽다니요? 그대는 아직 이승을 뜨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그대가 낳은 피붙이들은 어찌하라고 그런 생각을 해요?”
“천호씨, 혜목스님-, 지금도 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는 거죠?”
“나무관세음보살. 빈도는 비록 불제자라고 하나 역시 사람입니다. 불제자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도 불심의 발현입니다. 타인들이 뭐라고 하건 이 빈도
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심정으로 그대의 아픈 마음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혜
목스님은 조용히 눈물을 닦으면서 주희의 앙상한 손을 잡아주었다.
쏜살같이 달린 두 차량이 강화도 해안에 도착하였다. 가로변에는 펜션과 민박집들이
요소에 들어서 있었다. 몇몇 사진사들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일몰의 휘황한 광경을 촬
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석양을 감상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듯 했다.
앰블런스는 주희가 석양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목 좋은 곳에 주차하였다. 의사와
간호사는 한시도 주희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주희의 호흡이 급격히 가빠
지면서 맥박의 횟수도 떨어지고 있었다. 의사는 영인에게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자
고 하였다.
“여보, 나요. 정신이 들어요?”
영인이 의식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주희에게 말을 걸었다.
“저, 괜찮아요.”
주희가 희미하게 눈을 뜨고 영인을 바라보았다.
”의사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해요. 당신 자칫하다가 큰일 날 것
같아 불안하오.”
“안돼요. 전 죽어도 여기서 죽을 거에요.”
주희는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영인에게 간신히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엄마, 안돼 죽다니 누가 죽는다는 거야?”
병원에서 앰블런스를 따라오면서부터
울고 있던 주희의 둘째 딸 지혜가 울먹였다.
“지혜야, 울지마. 엄마 괜찮아. 지연아, 엄마 괜찮아.”
연과 지혜 자매가 곧 이승을 떠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애들아, 여기 혜목스님도 계신데 나는 마음이 편하구나. 엄마 괜찮으니 울지마.
엄마는 혜목스님과 너희들이랑 석양을 보고 싶어.”
얼굴이 파리하게 변한 주희가 두 딸들의 손을 잡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어머니는 다시 좋아지실 겁니다.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주희의 두 딸들 보며 혜목스님은 안심을 시켜보려 하였지만 엄마의 병세가 급격
히 악화되고 있는 것을 목격한 두 딸들은 금방이라도 주희가 숨이 넘어갈까 봐 어
쩌지 못하고 초조해 했다. 의사의 지시에 의해 앰블런스 안에는 주희와 혜목스님
그리
고 의료진만 남았다.
“천호씨, 저기 좀 봐요.”
주희가 거대한 불덩어리를 가리켰다.
“나무일광보살마하살, 저 일몰과 그대 그리고 나는 모두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 일몰은 다음 생에 또 다시 찬란한 태양으로 태어나기 위하
여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입니다. 죽음은 곧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전초입니다.”
이글이글 타며 마치 바닷물을 모두 증발시켜 버릴 것 같은 거대한 불덩이가 주희
와 혜목스님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의료진은 시시각각 떨어지고 있는 호흡과
맥박을 체크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사장님, 여기 이렇게 있다가 사모님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지금 너무 위험
합니다. 산소호흡기를 다시 부착하려고 하는데 사모님께서 거부하고 계십니다.
빨리 병원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의료진 말에 다급해진 영인은 주희에게 병원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지만 주희는
간신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강하게 거부하였다.
‘아아, 이러다 저 사람 여기서 죽게 생겼구나. 이 일을 어찌하나?’
두 딸들도 주희에게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주희는 거절하였다. 주
희는 눈을 감았다.
가늘게 쉬는 호흡과 뛰는지 안 뛰는지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맥박은 희미했다.
“이 일을 어찌하나? 이대로 가다간 한 시간도 넘기지 못할 것 같은데……”
의사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어쩔줄 몰라 했다.
“주희, 주희 눈을 떠봐요. 어서요. 저기 저 석양을 봐요. 내 생애 저렇듯 아름답고
장엄한 일몰은 처음이오. 20년 전 나와 그대가 정동진에 가서 보던 그 일출보다 백
배는 더 장엄하고 아름답소. 주희, 저기 좀 봐요.”
혜목스님이 주희를 안다 시피하여 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기는 붉은 해를 가리켰다.
“천호씨, 고마워요. 사랑해요. 저는 저승에 들어도 당신을 사랑할거에요. 천호씨-.”
주희는 숨을 헐떡거리며 혜목스님 귀에 대고 간신히 한마디 한마디 토해냈다.
“주희-, 안돼, 주희……”
“천-호-씨, 사-랑-해-요.”
주희는 간신히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주희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안돼, 주희, 주희……”
혜목 스님은 주희를 소리쳐 불렀지만 주희
는 의식이 없었다. 급히 의사가 주희의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김간호사 어서, 어서. 환자 가족들을 부르세요.”
“주희, 주희, 정신 차려요. 주희……”
“엄마, 안돼요. 정신 차리세요. 엄마, 엄마……”
지연이 혜목스님 품에 안겨 있는 주희를 흔들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엄마,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엄마, 안돼요. 엄마 눈 떠보세요. 엄마. 엄마아-.”
지혜는 주희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여보, 지연엄마, 눈 좀 떠보오. 내가, 내가 다 잘못했소. 그러니 눈 좀 떠보오.
여보, 지혜엄마-“
영인이 아무리 주희를 흔들어도 주희는 눈을 뜨지 못했다.
“선생님, 울 엄마를 살려주세요. 울 엄마 이렇게 돌아가시게 하면 안돼요. 선생
님, 제발, 제발 울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지연이 의사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의사는 다시 한번 주희의 상태를 점검해보고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의료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여보……, 전지전능하사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제 아내를 살려주
십시오. 저로 인하여 제 아내가 죽게되었습니다. 이 못나고 어리석은 양을 긍휼히
여기사 죽어가는 어린양을 음습한 사망의 숲에서 나오도록 도우소서."
영인이 다급한지 하나님을 찾았다.
“엄마아……”
갑자기 영인과 지연 지혜 자매의 울부짖는 소리가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울려 퍼
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어머니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계십니다. 가족들이 울면 안 됩니다.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빈도가 염불을 할 동안 여러분들도 합장한 채 염불을 따라 하십시
오.”
혜목 스님은 가족들에게 울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바랑에서 목탁을 꺼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 끝 -
_()_ 긴글 감상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조만간 다른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1. 2. 13. 15:30
인천 소래신도시 뜨란채에서 여강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