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4)
물망초(4)
- 여강 최재효
4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기훈과 경상도 깊은 산골에서 쉬지 않고 달려 온
지연이 설악산 S사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지고 초승달이 서천에 쓸쓸히 떠
있었다. 어줍은 태도로 지연이 종무소 문을 두드렸다.
“말씀하세요.” 중년의 여인이 창문을 반쯤 열고 지연과 기훈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법명이 혜목이라고 하시는 스님이 계신지요?”
“혜목 스님이요?”
“네에.” 지연은 여인의 얼굴을 보고 마른침을 삼키며 속으로 제발 혜목스님이
이 절에 있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 스님은 두 시간 전쯤에 서울로 떠나셨는데요.”
“네에? 두, 두 시간 전이라고요? 서울 어디로 가셨는데요?”
“그런데 그 스님을 왜 찾으시는데요?” 여인은 지연과 혜목스님 사이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나?’하는 의심스러운 시선이었다.
“지금 그 스님을 애타게 찾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은 이승에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혜목스님에게 꼭 전해드려야 하는 편지가 있어서요. 혜목 스님 휴대
전화 번호라도 알 수 없을까요?” 기훈이 여인에게 편지 봉투를 내보이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스님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지니고 계신데 혜목스님은 휴대전화를 가지
고 있지 않습니다. 수도하시는데 방해가 되신다고 하세요. 스님은 아마 도봉산
자락에 있는 C사로 가셨을 거에요. 워낙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아 다니시는 분이
라서 일정한 목적지가 없으시지만 이맘 때면 꼭 그 사찰에 들리시거든요.” 여인
은 천천히 말면서 두 눈을 껌벅거렸다.
“아아, 이럴 수가. 두 시간 차이로……” 지연이 탄식하며 훌쩍거렸다.
“지연아, 빨리 속초시내로 나가보자. 아직 서울 가는 고속버스가 있을 거야. 혹시
아니 버스터미널에서 혜목 스님을 만날 수 있을지.” 기훈이 지연의 팔을 잡고 주
차장으로 가려고 하였다.
“아니야, 두 시간 전이면 혜목스님이 벌써 버스를 타고 지금쯤 원주나 여주쯤 가
셨겠다. 차라리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강남고속버스터미날로 나가서 속초에서
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스님을 찾아보라고 하면 될 거야.”
“죄송하지만, 그 스님이 정말로 서울로 가신 거 맞죠?” 지연이 여인에게 확답을
받고 싶었다.
“확실할 거에요. 그러나 한편으로 자유분방한 스님 성격으로 봐서 서울에 안 갈 수
도 있어요.” 여인은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훌쩍이는 지연의 눈치를 살폈다.
“네에? 서울에 안 가실 수도 있다고요?” 기훈이 눈을 찡그렸다.
지연은 기훈과 서둘러 S사를 빠져 나와 속초시내로 달렸다. 고속버스터미날에
는 여름휴가철을 맞이하여 이동하는 젊은 남녀들로 붐볐다. 그러나 아무리 지연
이 터미날 주변을 둘러보아도 혜목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행 고속버스는 서
너 편이 더 남아 있었다. 기훈과 지연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터미널 주변 식당을
둘러보았으나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승차권 판매 여사원에게 물어도 잘 모
른 다는 답변 뿐이었다.
“지연아, 우리 뭐라도 먹고 와서 서울 가는 고속버스가 모두 끊어질 때까지 터
미널에서 기다려 보자. 혹시 아니? 스님을 만날 수 있을지?”
“그래, 그게 좋겠어. 하지만 저녁은 햄버거나 빵으로 대신하자.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혜목스님이 나타나실지도 모르잖아.”
“서울행 버스 출발하려면 아직 사십 분도 더 남았어.”
“그래도 안돼. 여기서 기다리자.” 지연이 고집을 피우자 기훈이 빵과 음료수를
한 아름 안고 왔다.
‘아아, 엄마, 어떻게 해요. 엄마가 찾는 스님이 조금 전 이곳에서 서울로 떠났다
고 하는데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스님을 꼭 찾아 뵙고 엄마 편지를 전해드릴게
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연은 앙상한 주희의 얼굴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지
연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대전화로 주희에게 안부를 전하고 서울 친구에게 연락
해 얼른 강남고속버스터미날로 나가보라고 하였다. 만약 이번에 혜목스님을 만나
지 못하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늘 집에만 있던 주희는 어느 날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에 나가보았다. 저녁 손님
을 받기 위하여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종업들은 남편이
식재료를 구입하러 시장에 갔다는 말만 할 뿐 누구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
았다. 주희는 두 시간쯤 남편을 기다리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오후 4시경 주희는 또 식당에 들렸다. 그러나 역시 남편은 보이지 않고
종업들은 이틀 전과 똑같은 말만 할 뿐이었다. 그날도 주희는 두 시간 동안 멍하
니 남편을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주희는 남편이 너무 일에만 전
념하느라 고생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평소 남편이 좋아하는 보신탕을 준비
해서 식당을 찾았다. 이번에는 저녁 시간대에 식당을 찾았다.
저녁 6시가 넘었는데 남편은 식당에 없었다. 종업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남편
이 어디 갔는지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 주희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
으나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밤 10시가 다 되어 주희 남편은 술에 취해 비틀거
리며 식당에 나타났다. 뜻 밖에 아내를 보자 남편 영인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
해 보였다.
“오늘, 고향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 그런데 당신이 웬일이야? 내가 당신은 집에
서 편히 있으라고 말했잖아. 당신처럼 고운 여인은 이런데 올 게 못 되는데. 자자,
안으로 듭시다. 우리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주희 남편은 어딘가 모르게
평소의 모습이 아닌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당신 술을 잘 마시지 않으시잖아요? 오늘은 그냥 일찍 들어가요. 나머지는 종
업원들에게 맡기고요.” 주희는 남편의 행동에 뭔가 이상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무슨 소리야, 밤 12시는 넘겨야 끝나는데. 영업 끝날 때까지 주인인 내가 지켜
야지.” 영인은 큰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말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런 분이 이렇게 술에 떡이 되어서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에 들어와요?” 주희
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
“오늘 같은 일은 일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다 알
아서 하니까.” 영인은 자꾸만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주희는 남편에게 간다는 말
도 없이 식당을 나와 집으로 와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한달 후 어느 날 오후, 주희는 다시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
에 나가 보았다. 영인은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종업원들에게 남편 영인은
점심 때 밖에 나가서 방금 전에 들어왔다고 했다. 주희 잠든 영인의 곁에 가만히
앉아서 살펴보니 술 냄새가 진동하였다.
주희는 아무래도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고 남편이 벗어
놓은 윗옷 안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명함이 두 장 손에 집혔다. ‘붉은 장미’라고
쓰인 명함 뒷면에는 묘령의 여인 연락처가 있는데 살롱을 운영하는 여인 같았
다.
주희는 남편이 사업상 손님을 만나기 위하여 들린 주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일반 커피숍 안내 명함이었다. 주희는 남편에게 왔다 갔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종업원들에게 당부하고 식당을 나왔다. 영인은 저녁 때가 되어
일어났다. 집에 돌아 온 주희는 독주(毒酒)를 꺼내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술에 취하지 않았다. 브랜디 한 병을 다 비우자 그제야 세상이 흔들리는
듯 했다.
‘나쁜 놈, 나를 두고 딴 년하고 놀아나? 나를 철저히 집에 가둬두고 제 놈은 나
가서 계집질을 하고 다녀? 말끝마다 하나님을 찾으면서 딴 년하고 놀아나다니.
분명해, 어쩐지 요즘 벗어놓은 와이셔츠에서 야릇한 향수 냄새가 난다 했더니
뒤에 딴 년이 있었구나. 내 어떤 년인지 모르지만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사랑하던 남자를 가슴에 묻고 제 놈과 부부로 살기로 하였으면 나에게 최
선을 다해야지. 몰래 딴 년을 만나? 그것도 벌건 대낮에. 아아, 내가 멍청한 년이
지. 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여 순진하게도 사랑하는 남자를 버리다니. 나는 천벌
을 받을거야. 천벌을...... ’ 주희는 영인이 집에 왔을 때 이미 대취하여 잠이 들어
있었다.
다음날 주희는 점심 때쯤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에 나가 보았다. 주희는 열명이
넘는 종업원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주방 아주머니를 밖으로 불러내 그간의 남편
의 행적에 대하여 꼬치꼬치 물었으나 여인은 잘 모른다며 엉뚱한 답변만 하였다.
주희가 어르고 다독거리며 여인을 안심시키며 겨우 남편의 행적에 대하여 대충
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은 이 삼일에 한번씩 묘령의 여인이 몰고온 고급승용
차를 타고 점심 때쯤 나가서 오후 6시쯤 들어온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주희는 다음날부터 식당 근처에서 숨어 남편을 태우러 오는 승용차를 기다리기
로 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오후 1시경 외제 승용차가 식당 앞에 정차하더니 곧 남
편이 기다렸다는 듯 승용차에 올라 탔다. 주희는 택시로 남편이 탄 차를 뒤쫓았다.
승용차는 강남의 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탄 차가 호텔로 들어가자 주
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지나
가는 행인들은 울고 있는 주희에게 동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
렸다.
“내 너희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나쁜 연놈들,” 주희는 이를 갈면서 호텔
프런트로 갔다. 주희는 방금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간 승용차 번호를 대면서 승
용차에서 내린 남녀가 들어간 객실을 알려달라고 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아무리 떼를 쓰고 별의별 협박을 하여도 호텔 직원들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주희는 할 수없이 주자창 출구 근처에서 남편이 탄고 들어간 승용차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남편이 탄 승용차가 호텔에서 나왔다.
사방이 이미 어둑한 상태라 주희는 차 안의 사정을 살필 수 없었다. 주희는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달렸다. 주희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남편 영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윽고 남편이 말쑥한 상태로 점잖을
떨면서 식당에 나타났다. 주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나타난 남편의 넙적한 얼굴
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아니, 당신 또 나왔어?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쉬고 있으라니까.” 영인은 지나
가는 말투로 주희에게 말했다.
“살림할 게 있어야 하지요. 나도 이제 당신처럼 공사다망 했으면 좋겠어요.” 아내
의 응답에 가시가 들어있음을 직감한 영인은 아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
주희를 바라보는 영인의 싸늘한 시선에서 주희는 절망이라는 단어를 발견해 내
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당신, 나에게 뭐 할 말 있어?” 영인은 뒤가 켕기는지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없어요. 나처럼 집 지키는 강아지 같은 여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내가 당신에게 살림에 필요한 생활비는 넉넉하게 주지 않소?”
“나는 집 지키는 강아지에요. 당신이 한 달에 한번 주는 생활비는 너무 과해서
다 쓰지 못해요. 이제는 집 지키는 것도 지겨워요. 내일부터 수영장에 다닐 거
에요. 다니면서 바람도 쐬고 친구도 사귀고 해야겠어요. 그래야 당신이 주는 그
많은 돈을 다 쓰지요. 이젠 이 생활이 지긋 지긋하다고요.” 주희는 오늘 하루 있
었던 충격적인 일을 영인에게 욕을 해가며 덤벼들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우리가 사흘 동안 경상도와 강원도 그리고 서울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는데 결국 이천호, 아니 혜목스님을 만나지 못했어요. 엄마, 미안
해요. 으흐흐 흐흐……” 지연은 그사이 겨울나무처럼 앙상하게 변한 주희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 사람이 스님이 되었니?”
“네에, 엄마. 미안해요. 편지를 전해드리지 못해서요.” 지연이 훌쩍거리며 눈물
을 닦았다. 딸의 이야기를 듣고 주희는 목이 메었다.
“어머님, 저희가 그 분 고향에 찾아 갔을 때 그 분 먼 친척 되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그분 친척이 알려준 S사에 갔더니 이천호라는
분이 스님이 된 게 틀림없었어요. 그러나 이미 그분께서는 그 절에 안 계셨어요.
설악산 S사에 계신다기에 부랴 부랴 달려 갔더니 우리 도착하기 두 시간 전에
서울로 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연이 친구에게 급히 연락을 하여 강남고속버스터미날로 나가서 속초
에서 오는 고속버스에서 혜목스님을 찾으라고 하였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어요.
아마 그분은 다른 교통편을 이용한 듯 했어요. 할 수 없이 저희는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 설악산 S사에서 알려준 대로 서울 도봉산 자락에 있는 암자와 사찰을 뒤
져보았지만 끝내 혜목스님을 만날 수 없었답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대신 그분이 자주 들린다는 C사에 어머님의 편지는 맡겨
놓았습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꼭 전해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조만간 그분이
찾아 오실 거에요.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꼭 오실 테니까요.” 기훈이 숨도 쉬지
않고 주희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 고맙구나. 너희들이 너무 애썼다.”
“엄마, 내일 우리가 다시 도봉산 자락에 있는 암자들과 사찰들을 모두 뒤져 볼
거에요. 그러니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지연이 주희의 뼈마디만 잡히는 손을
살며시 잡았다.
“아니야. 그만하거라. 그 사람과 나의 인연은 어쩌면 20년 전 정리가 된 것인지
도 모르겠구나. 이미 인연이 다한 사람을 억지로 찾으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일
이지. 그냥 둬라. 인연이 아직 다 하지지 않았다면 볼 날이 있겠지 뭐.” 주희의
손이 파르르 떨리자 링게르병에 들어있던 이름 모를 약들이 출렁거렸다.
“엄마, 흐흐흐흐흐흐……”
“다 큰 여자 애가 남자친구 앞에서 울긴.”
“어머님, 반드시 저희들이 혜목스님을 찾아서 모시고 오겠습니다.”
“아냐, 억지로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있어요.” 주희는 간신히 말하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아아, 천호씨, 나를 얼마나 원망하셨으면 이 속세를 버리고 불제자가 되셨는
지요? 어떻게 해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천호씨, 으흐흐흐흐……’ 주희는 옆
으로 돌아 눕더니 앙상한 어깨를 들썩거렸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