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1. 1. 21. 00:30

 

 

 

 

 

 

 

 

 

 

                   

 

 

 

 

 

 

 

 

 

                         울지않는 새(終)

 

 

  

                                                                                                                                                                                     - 여강 최재효

 

 

 
                                                 終


 
 “여사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밤새 비가 내려 날씨도 쌀쌀한데요. 원장

님께서 불공만 드리시게 하고 얼른 모시고 오시라고 하셨어요. 요즘 들어 여사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원장님과 주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만

하면 부처님께서 여사님의 간절한 소원을 다 아셨을 거예요. 이제 그만 일어나

세요.”

 

 김인희 실장은 대웅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에서 구부럭 구부럭 절을 하는 S를

바라보며 안타까워 입술을 씹었다. 우란분절(盂蘭盆節)을 맞아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로 사찰 안은 몹시 북적거렸다. 거의 한달 동안 S의 자식들은 매일같이

S에게 찾아와 서로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애걸을 하였지만 S는 어느 자식의

집으로 가지 않았다.


 김 실장은 S를 마치 친정어머니 모시듯 S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보살

며 S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 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원장은 아예 김 실

S만 전담하도록 S의 비서로 임명하였다. 병원 측의 배려에 S는 감동하면서

신이 이승에 살아있는 그날 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병원의 배려를 기대하

며 머물러 있겠다고 마음 먹었다. 병원에서는 병원 본관이 아니 별관에 S를 위한

한 별도의 독실을 마련하여 김 실장과 함께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병원에서는 S의 자식들이 찾아와도 함부로 S의 병실내로 들어갈 수

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아무리 자식들이라 하여도 S가 휴식을 취하는 중이거

나 또는 자식들 만나기를 원하지 않을 때는 병원 직원들은 완곡한 방법으로 S

의 자식들을 돌려보냈다. S의 태도에 자식들은 충격을 받았다. S가 왜 자식

들을 만나려하지 않는 지 자식들은 각자의 잣대로 해석하며 행여 S가 엉뚱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였다.

 

 자식들은 마지못해 S의 입원료를 꼬박꼬박 지불하면서 병원측과 S에게 불만

을 쌓아 갔다. 며느리들은 병원에서 무슨 흉계를 꾸밀수도 있다며 남편들을

달달 볶아댔고, 두 사위들은 마누라에게 병원측의 의도가 뭔가 자세히 알아

보라며 매일 밤 아내들을 못살게 굴었다. 


 “여사님,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이러다 감기 드시겠어요. 여름 감기는 정말

오래가요.”


  S는 김 실장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S는 노구(老軀)를 괴롭히며 을 하였다.

S의 이마에 땀방울이 아롱아롱 맺히면서 얼굴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김 실장

은 더 이상 S가 고집을 부리며 부처님에게 절을 할 경우 쓰러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김 실장은 S의 팔을 부축하며  절하는 것을 만류하자 그제야 자

리에 앉았다.


 “김 실장님, 내가 얼마나 부처님에게 절을 했나요?”

 S의 하얀 얼굴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실장이 얼른 부드러운 실크

손수건으로 S의 이마에 포도송이 처럼 맺힌 땀방울들을 닦아냈다.


 '김 실장의 손길이 두 며느리의 손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S는 살포시 미소지으며 김 실장의 등을 다독거렸다.


 “30여 분을 절을 하셨으니 백오십 회 정도 절을 하셨어요. 여사님, 더 이상은

안돼요. 건강도 안 좋으신데 이러시다가 쓰러지기라도 하시면 어쩌시게요.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김 실장의 재촉에도 S는 자리에 앉아 불경(佛經)을 펼쳐 놓고 조그만 소리로

읽고 있었다. 김 실장은 얼른 일어나 차에서 따뜻한 화차를 가지고 왔다.


 “김 실장님, 주지 스님은 오셨대요?”

 S는 비록 김 실장이 자신의 둘째 딸 정도의 나이지만 깍듯한 태도로 김 인희

실장을 존대했다.


 “제가 다시 가서 알아 볼게요. 20분 전만 해도 출타하시어 아직 안 들어오셨다

고 했어요. 오늘이 우란분절이라 바쁘신가 봐요? 제가 얼른 다녀올게요. 여사

님, 이 쌍화차 드시고 계세요.”

 김 실장이 종무소(宗務所)로 달려가자 S는 다시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

經)을 읽고 불경 관련 서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목련이 육신통을 얻어 부모를 구출하여 은혜를 보답하려고 도안으로써 관

하니, 그의 어머니가 아귀지옥에 태어나 음식을 보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하

여 있음으로 목련은 가슴 아프게 슬퍼 이를 구제하려하였으나 구출할 방도

를 몰라 부처님께 말씀하니,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7월15일 승자자시(僧自

恣時)에 7세의 부모 및 현재부모를 억념(億念)하여 액난을 당하고 있는 부모

 

들을 위하여 음식백미와 오과(五菓)와 분기(盆器)와 향유와 연촉(挻燭)과 상

부와구(牀敷臥具)를 갖추어 10방의 대덕중승을 공양하라고 가르치시니 목련

이 가르침에 따라서 그리하니, 그날 목련의 어머니는 일체의 아귀고를 벗어

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석가모니불. 보살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

는지요? 이 땡중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육십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스님 한분이 대웅전으로 들어서 S를 향해 공

손히 합장하였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스님으로 법력(法力)이 보통 수준은 넘어 보였다. 스님의

요청으로 S는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로 자리를 옮겼다. 대웅전 좌측에 있는

요사채는 학승(學僧)들과 수도에 정진하는 기타 수님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나무석가모니불, 혜공(慧空)스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다시 인사 올립

다. 제가 마음은 늘 이곳에 두고 사바의 번뇌에 빠져 자주 부처님을 찾지

했습니다. 용서하세요.”

 S가 주지 스님인 혜공에게 삼배(三拜)를 드리자 혜공도 얼른 일어나 맞절로

S를 공손히 맞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사는 것이 다 그렇지요. 누군들 번뇌에서 자유롭겠습니

? 보살님, 얼굴에 오탁악세의 때가 많이 묻어있어요. 그간 풍파가 많으신

합니다. 어디 편찮은 데라도 있으신지요?”

 혜공은 S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스님, 저 한 평생 살면서 여느 여인들처럼 한 남자를 만나 지어미로 삼다가

인연이 아닌지 다른 인연을 만나 아들 딸 낳고 잘 살았어요. 그 인연으로 태어

난 그 가지들을 건사하느라 지금껏 숨죽이고 지내왔어요. 남들은 제가 농사를

잘 지었다고 하지만 전, 전 실패자에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뿌린 씨앗들을 모

두 제 뱃속으로 거두어들이고 싶습니다.

 

 제 여생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미래에 희망이 있고 목적의식

이 확실해야 하는데 저는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고 목적도 없답니다. 사바세

계 중생들의 삶이 한낱 연극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저는 그 연극 무대 위에서

꼭두각시처럼 지난 한 평생을 허비하였고요. 이제는 이리떼 같은 피붙이들도

소용없고, 손자 손녀들도 다 필요 없다는 생각만 자꾸만 들어요.

 

 오늘은 저를 이승에 나오도록 해주신 아버님과 어머님을 위하여 불공을 드

리러 왔답니다. 두 분 저승에  든지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살아 생전에 출가외

인이란 핑계로 효도를 못 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답니다. 마침 오늘이 우란분절

이라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스님도 뵙고 싶었

어요. 하필이면 가장 바쁜 날 이리 모시게 되어 송구합니다. 어머니는 저 때문

에 무진 마음 고생을 하셨어요.

 

 지금도 밤잠을 못 주무시고 시집간 딸을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수심 가득한

얼굴이 떠올라요. 어떻게 해야 제가 살아생전에 두 분께 못한 효도를 할 수 있

을까요.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도 잘 몰랐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

가 참으로 불효막심한 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S는 손수건으로 조용히 눈물을 찍어 냈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보살님, 이 광대한 삼천대천(三千大千) 우주에서

누가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거나, 누가 누구와 부부의 인연을 맺는 다거

나 혹은 누가 누구의 목숨을 거둔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랍니다. 이 우

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우연이란 없는 것이지요. 모두가 일체유심조에

서 기인하여 지어진 업(業)에 의한 필연이지요.

 

 보살님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생전에 못한 효도를 생각하여 눈물

을 흘리는 일도, 보살님이 자식들로 인하여 번뇌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는 일

도 모두가 예정되었던 일이며 보살님은 그 예정된 일을 이승에서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역시 보살님의 전세(轉世)에 걸친 업(業)으로 인한 결과

입니다.


 저 하늘에 떠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나 우리 머리 위로 하루에 한번 지

가는 해,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우리 주위를 돌며 밤에 나타나는 달, 무수히

어지는 유성우(流星雨), 이 땡중과 보살님, 저기 연꽃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

하고 계신 석가모니부처님, 저 밖에 무수한 인총(人總)들, 이 대웅전 뜰 앞에

피어있는 무수한 꽃들, 보살님의 자녀들, 이 절에서 기르고 있는 주인 잃은 강

지들, 모두가 얽히고설킨 염부주(閻浮州)의 필연적 인연들입니다.


 지금 보살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네 명의 자식들은 한때 보살님의 원수

(怨讐)일 수도 있고, 혹은 오래전 보살님의 본 모습일 수도 있으며, 또는 보살

님의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은 짐승들의 정령이 보살님의 자식으로 환생한 허

상(虛像)일 수도 있습니다. 삼천대천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겁(劫)의 시간을 두고

돌고 또 돌며 성주괴공(成主壞空)을 반복합니다.

 

 이 현상 세계에는 우리 인간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생각할 수도

고, 볼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기(氣)가 있습니다. 그 기에 의해 이 땅이 유

되면서 태양을 돌고 태양은 은하 가운데를 도는 것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일

정한 주기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도는 행성들도 모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가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그 기 가운데 인간이 생겨나고, 부부가 되고, 부모 자식 간의 천륜(天倫)이

어지며, 다시 그 자식이 부모의 입장이 되어 자식을 낳고 양육하는 것이지요.

자식은 은혜(恩惠)이면서 동시에 불행의 씨앗일 수가 있습니다. 보아하니 보

살님께서 자식들 문제로 크게 곤욕을 치르고 계신 듯 합니다.

 

 가만히 두십시오. 머릿속에 온통 똥으로 가득한 그들에게 아무리 금과옥

(金科玉條)같은 성인(聖人)의 말씀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이랍니다.“

 혜공의 거침없는 법문(法門)에 S는 두 눈을 꼭 감고 합장한 채 경청하고 있

었다.


 “스님, 어떤 새가 새장에 갇힌 채 울지도 못하고 박제된 새처럼 하루 종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새는 조만간 가슴에 멍이 들고 그 멍이 병

이 되어 스스로 날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참으로 안 된 일

이지요?”

 S는 주지인 혜공의 달덩이 같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무석가모니불. 삼천대천 세상에서 새로 태어난 것도 그 새의 전생의 업(業)

에 의한 것이요, 날지 못하고 울지 못하는 것도 그 새의 업에 의한 것입니다. 그

대로 새장에 갇혀 한번 날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나 죽을 을 다하여 새장을

깨고 나오는 것도 그 새의 예정된 삶입니다.”

  혜공의 법문은 청산유수 처럼 거침이 없었다.


 “스님, 새가 어떻게 예정된 삶을 알 수 있을까요?”
 “나무관세음보살, 새의 지금의 상태는 곧 과거세(過去世)와 미래세(未
來世)

의 좌표(座標)입니다.”


 ‘좌표? 좌표가 무슨 말일까?’

  S는 주지의 이야기에 잠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해 보고 미래를 예측

해 보았다. 과거는 어제일 처럼 뚜렷하게 다가왔으나 미래는 안개 속의 일처

럼 느껴졌다.

 

 “스님, 좀 쉽게 말씀해주세요.”

 S가 목마른 표정으로 혜공의 얼굴을 바라았다.


 “새가 현세(現世)에서 새로 태어난 것은 전세(前世)의 새가 될 업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가 새장에 갇히게 된 것도 이전의 새의 행동에 기인한

이지요.

 

 즉,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현재의 안위(安慰)에 만족하고 길들여진

까닭입니다. 그 새가 다음 세에도 새로 태어나고 싶으면 그냥 새장에 앉아서

종말이 올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혜공의 법문에 S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얼굴에 하얀 미소를 지었다.


 “스님, 제 어머니를 위하여 불공을 드렸어요. 오늘이 우란분절인데 제가

공드린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정말로 큰 영향이 있을까요?”


 S가 다시 주지스님에게 법문을 요청하자 혜공은 조용히 염주 알을 굴렸다.

이윽고 혜공이 법문을 시작하였다. 그의 법문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청아하고

맑은지 S는 정신을 가다듬고 혜공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 담았다. 


 석가모니 부처님 십대 제자 중에 목련존자(木蓮尊者)의 어머니가 생전에

악업(惡業)을 많이 지어 죽어서 지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존자는 어머니

가 아귀지옥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고 너무 가

슴이 아파 어머니를 구제하려고 하였으나 구출할 방도를 몰라 부처님께

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7월15일 승자자시(僧自恣時)에 7세의 부모 및

재부모를 억념(億念)하여 액난을 당하고 있는 부모들을 위하여 백미와 오과

(五菓)와 분기(盆器)와 향유와 연촉(挻燭)과 상부와구(牀敷臥具)를 갖추어 십

방의 대덕중승을 공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목련존자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서 그리하니, 그날 목련의 어머니는 일체

의 아귀고(餓鬼苦)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불교에서의 우란분

의 시초랍니다. 목련존자께서 이 처럼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遷度)를

위하여 대덕중승(大德衆僧)에게 봉시한 것이 본보기가 되어 인도에서는 해

마다 자자일에 행해지게 되었지요.

 

 자식이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공덕으로 부모가 생천(生天)한다는 것과 달

리 불승(佛僧)에게 세상의 감미를 다하여 공양한 공덕으로 현재의 부모와

선망칠세(先亡七世)의 부모가 모두 아귀고를 면한다는 것은 불교적 효도

바꾸어 설한 것이지요. 효의 극치는 부모를 지옥에서 구출하는 것이지만

불문에서는 아귀지옥로 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불교는 삼보 중에서 공덕을 쌓는 것이 부모고(苦)를 감하는 유일한 길

입니다. 지장경(地藏經)에 보면 선망부모가 이 세상에서 선업을 닦지 못하

고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후손들이 선망부모를 위하여

공덕을 지으면 그 공덕의 칠분의 일은 망령(亡靈)에게로 돌아가고 대분(大分)

은 후손들에게 돌아온다고 한 것을 보더라도 공덕을 쌓는 일이 얼마나 중요

한 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 반드시 우란분재에 동참해야한다고는 생각할 수

으나 공덕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덕은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

무엇보다도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 공덕으로 부모가 지은 죄를 멸할 수

으며 자 자신도 그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칠세부모란, 곧 모든 부모라는 뜻 입니다. 불교의 교의로 볼 때에 일체의

유정이 나의 부모 아닌 것이 없지요.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체가 나이며 자타불이(自他不二)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계실 때에 아난 등의 제자를 거느리시고 남쪽으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백골을 보시자 다섯 번 땅에 엎드려 경건이 예배하시

었습니다.

 

 그 백골이 과거세에 나 자신 일수도 있으며 나의 부모일 수도 있기 때문입

니다. 이 땡중이 오늘 보살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요?“


 혜공은 빙레 웃으며 S를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S는 울고 있었다.

공은 S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염주 알을 굴리며 묵묵히 앉아서 지장경을 읊

다.


 如是我聞 一時佛 在忉利天 爲母說法 爾時 十方無量世界
 여시아문 일시불 재도리천 위모설법 이시 시방무량세계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석가모니불. 스님, 제 가슴 속에 폭풍

우가 일고 천둥 번개가 치고 있어요. 제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오늘에서야 그 죄를 알았습니다. 내 남편, 내 자식, 내 집, 내

땅, 내 손자들, 내 몸, 내 영혼 등. 이 죄업들을 모두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스님, 오늘 너무 고맙습니다.”

 

 S가 일어나 혜공에게 절을 하려고 하다가 그만 쓰러졌다. 김 실장이 얼른

달려들어 S를 방에 편한 자세로 눕혔다. S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

러내리고 있었다.


 S가 우란분절을 맞아 절에 다녀 온 뒤 S의 상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간신히 죽을 입에 넣을 수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스스로 일어나 앉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병원장은 매일 하루 세 번씩 S에게 직접 진찰을 하며 상태

를 점검하였다. S의 자식들은 철저히 통제되어 S를 마음대로 접견할 수 없

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아침, S는 김 실장에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K변호사와 부산에 있는 오빠 그리고 두 아들과 딸들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10시 S의 요청으로 사람들이 S의 독실로 안내되었다.


 “태성아, 태균아, 태진아, 태희야, 나는 너희 어미고, 너희는 내 귀한 아들딸

들이다.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라. 이 말은 내 유언이나 마찬가지란다.

부디 이 어미의 말에 이의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들이 이 어미의 뜻을

존중해 주리라 믿는다.”

 

 S의 말에 사람들은 바짝 긴장하였다. 몰라보게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를 보

자 태균과 태희는 ‘어머니, 어머니’하며 울음부터 터트렸고, 태성과 태진은

마치 소가 닭처다 보듯 무덤덤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S

의 상태가 불안해 보였다.


 “얘야, 누워있지 그러니? 네 상태가 아주 안 좋아 보인다.”
 “오빠, 괜찮아요. 아직은 앉아있기에 충분한 힘이 있는걸요?”

 S의 친 오빠의 손을 잡고 하얗게 웃었다. 오누이는 너무 정다워 감히 두 사람

이 속삭이 듯 나누는 정담에 끼어들 수 없었다.


 “어머니, 오늘 저희 남매들과 외삼촌 그리고 변호사님을 왜 모이시게 하셨

어요? 며느리들은 부르시지 않고요?”

 태성이 마음이 급한지 외삼촌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말하였다. 큰 아들의

말에 S는 곁에 있는 아들 딸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변호사님, 준비되었지요?”
 “네에, 여사님, 말씀하세요.”


 “내 전 재산은 현재 내가 입원해 있는 M병원에 기증한다. 단, 내가 살아있

을 때 까지 나의 일상을 책임질 것이며, 나의 기부한 재산은 내 이름을 딴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치료비에 쓴

다. 이 모든 법적사무 리는 K변호사와 이 병원 김 실장이 맡는다.” 


 S의 말이 끝나자 네 남매들크게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곧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태균과 태희는 S의 품에 얼굴을 묻고 크게 소리 내어 울며, 그간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S의 오빠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동생

을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김 인희 실장은 S의 발언에 감격하며 조용

히 눈물을 고 있었다.

 

 

 

 

 


                                                                                                                                      - 끝 -

 

 

 

 

 

 

 

 


                             _()_  긴글 읽어주신 임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곧 다른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신묘년 한해도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소서.

 

 

                                                                                  2011.1.21. 00:30

                                     

                                                                    인천 소래포구에서 여강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