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의 달빛(5)
황해의 달빛(5)
- 여강 최재효
장대철은 착잡한 마음을 어찌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또 얼굴에 멍이 들어 앞에 앉
아 있는 불쌍한 아내의 심하게 훼손된 마음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다. R호텔에서 아내를 납치하다 시피해서 차를 태워 데리고 올 때만 해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자신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당하고 매를 맞아 풀이 죽어있는 윤성애를 보자 장대철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은 대로 윤성애에게 몸에 심한 상처를 줄 경우 자신이 돌 볼 수 없는 두 아이들의 처지가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혼이 나간 듯 윤성애는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 천정만 바라보았다. 이씨가 빨리 분위기를 전환시키지 않으면 더욱 분위기가 서먹해 지고 부부가 자칫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 아주머니 그리고 대철이, 일단 한 잔씩 하세. 응?"
이 씨의 요구에 장대철만 소주잔을 들었다. 초저녁부터 마신 술이지만 이전에 마신
술은 이미 다 깬 상태였다. 다시 긴 정적이 감돌고, 무언의 대화가 오고갔다. 이 씨가
그 고요를 다시 깼다.
"아, 이 사람아 부인을 만났으면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 씨가 소주 한잔을 게 눈 감추듯 비웠다. 장대철은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난, 오늘 저녁, 이 형님하고 당신을 응징하려고 왔던 거야. 당신이 운영하는 식당
에서 부터 당신을 미행했지. 그리고 호텔나이트 클럽까지 따라가 방화를 하고, 당신
을 강제로 차에 태워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이나 바닷가로 가서 당신한테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싶었어. 그런데 이미 당신의 마음은 이미 나에게로 부터 멀어져 있더군."
소주 한잔을 마시고 장대철은 말을 이었고 윤성애는 계속 천정만 응시한 채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왜 오늘 밤 당신을 찾게 되었는지 알아? 작년 말 당신이 몹시 보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 걱정이 되서 밤에 당신을 찾았는데 그날 밤 당신이 식당을 나오면서 어디론가 급히 가기에 따라가 봤지. 그날 밖에서 나의 초라한 모습을 차마 보여주기 싫었어. 그래서 당신이 들어갔던 호프집 밖에서 기다렸었지. 나중에 강성채 그 죽일 놈 하고 다정히 나와 호텔로 가는 것을 보고 난 충격을 받았지.
당신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 그놈이 지금의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놈이라고. 그 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리 비참하게 되었다고.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나에게 접근하여 간까지 빼줄 것처럼 굴면서 결국은 나를 파멸로 몰아넣은 놈이 바로 그 강가 놈이야."
멍하니 식당 천정만 바라보고 있던 윤성애의 귀에 남편 장대철의 이야기가 생소하게 들렸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업실패로 행방불명이 되고 난후 자신에게 접근하여 이제는
정부(情夫)가 되어버린 강성태가 자신의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이라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지 였지만 윤성애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남편과 호형호제 하고 자신에게도 형수로서 깍듯하게 대했던 강성태였다. 윤성애는 속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장대철의 한 맺힌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당신이 그 놈과 호텔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을 오늘로 두 번째 목격을 했어.
작년에 그 호텔에서 처음 당신을 보고 호텔객실로 유인한 것도 내가 꾸민 자작극이란
것을 당시이 눈채 챘을 것이라고 믿어. 그래도 난 당신을 믿고 싶었어. 아니, 오늘 밤
당신을 염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 놈과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을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었어. 난 아직도 당신이 그 놈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라고 믿고 싶어. 그 놈은 나를 파멸시킨 놈이야.
당신에게 내 사업이 파멸되기 까지 그 놈과의 거래 내용을 일체 이야기 해주지 않은
것이 당신이 그 놈과 어울리게 했는지도 모르지. 난, 그 때만 해도 금방 자금 압박에서
해방되어 사업이 정상적으로 회복 될 것이라 확신했지. 그러나 그 놈의 계산 된 덧에
걸려 사업이 파멸되게 된 것이지."
윤성애는 남편 장대철이 강성태와 금전거래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윤성애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마치
소설같은 이야기를 하는 남편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그 고민은 그 간의 일련의 사건에 대한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 강성태는 매일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와 호의를 보이
면서 무척 걱정해 주는 행동이 계산 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윤성애는 야구방망
이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 었다.
'그럼 그 남자가 나의 육체를 탐내고 고의적으로 접촉하여 나를 자신의 성적 노리
개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나에게 사업자금을 핑게로 거금을
빌리고, 나를 계속해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시키기 위해 섹스의 희생물로 취급했단 말
인가? 그렇다면 그 남자가 남편의 사업체를 송두리채 빼앗고도 모자라 이제는 내 육
신과 식당을 통채로 삼키려했단 말인가?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윤성애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윤성애는 식탁에 있던 반쯤 남은 소주병을 입 속에 들어 부었다. 옆에 있던 이씨와
장대철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외의 상황에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마지못해 따라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반전 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술을 물마시 듯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 사람아 좀
말리시 게."
이 씨의 말이 떨어지자 장대철은 윤성애의 손에서 소주병을 낚아챘다.
"당신 미쳤어? 왜 이래?"
장대철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주인 여자와 종업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윤성애에게 집중되었다. 시간은 새벽을 넘기고 있었다.
"나, 그냥 내버려둬, 나 술마시고 싶어. 경서 아빠, 나 좀 술마시게 해줘. 제발."
윤성애의 눈에서 눈물이 비오 듯 쏟아졌다.
"나쁜 놈! 개새끼, 내 그냥두지 않을 거야. 죽여 버릴거야."
갑자기 윤성애는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며 식탁에 있던 물 컵을 출입구를 향해 던졌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식당 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 넣었다. 식당 주인과 여종업원들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멍청하게 윤성애를 뚫어져라 바라 보기만 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정신이 든 주인 여자가 달려와 거칠게 항의하며 싸우
려거든 나가라고 했다. 이에 이 씨가 굽실거리며 미안하다며 조금만 더 있다 갈 테니
양해 해 달라며 깨진 물컵 값은 주겠다고 했다.
"이봐, 당신 미쳤어?"
장대철 역시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했다. 평소 나긋나긋하고 눈웃음이 늘
얼굴에 머물러 있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이 일그러져 전혀 다른 여인 같았다. 장대철은 자신에게 얻어맞고 정신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불안했다.
"그래, 나 미쳤어. 미쳤다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이야? 응? 누구 때문이
냐고? 그럼, 당신이 자취를 감추기 전에 왜 나한테 말 안했어? 응? 왜 말 안했느냐고?"
윤성애가 울부짖었다. 장대철은 조금 전까지 원수처럼 미웠던 아내가 이제는 불쌍
해졌다.
"그 건 미안해. 그러나 당신을 친 누이처럼 따르고 당신 역시 그 놈을 시동생 처럼
잘 대해주던 강성태가 인두겁을 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믿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그 놈이 보낸 하이에나 같은 해결사들에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었지. 그래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정리되면 당신한테 사실을 이야기 해주려고 했지.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
장대철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이미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지만 사건의 전후
사정을 알게되어 울부짖는 아내 앞에서 더욱 착찹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윤성애는 회한의 눈물을 뿌렸다. 지금까지 자신을 돌보아 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알고 몸과 마음을 바쳤고 이리같은 자에게 아이들 처럼 매달리며 불륜을 저지른 것에 대하여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무능하고 자신만 살기 위해 가족을 내팽개치고 도망간 남편을 원망하고, 그 허전함을 강성태로 부터 보상 받았다고 스스로 만족해했던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을 파멸로 몰아넣고 육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눈 멀게 한 강성태를
윤성애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악마 같은 자의 마수에 걸려 희희낙락 했던
지난 날이 부끄럽고 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이상 그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강성태의 일거수일투
족에 웃고 울었던 자신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고 싶었다. 그 전에 남편을 파멸시키고
또 자신을 능욕한 강성태에게 철저하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놈을 절대로 그냥두지 않을 테다. 그냥두지 않을 거야."
윤성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남편 장대철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장대철 또한 마음이 무거웠다.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윤성애의 간청에 의해 소주병을 윤성애에게 건네주었다. 다시 소주 한 병이 식탁에
놓여졌다. 윤성애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한 병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이번에는 장대철과 이씨도 그런 윤성애를 제지하지 않았다.
"나, 오늘 죽고 싶어요. 나 건드리지 말아요."
윤성애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그런 윤성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대철이 입을 열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하여 묻지 않겠소. 모두가 내 업인 것을 ……."
장대철이 소주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에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고 있었다.
"당신, 그 놈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잘은 모르나 이제는 예전의 당신으로 돌아와 내가
돌아 올 때 까지. 아니 내가 어디서 자리를 잡고 연락을 할 때 까지 아이들 건사 잘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요.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무엇 하겠소."
장대철은 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하고 깊은 상처를 받은 윤성애를 달래주고자 했다. 새벽이 훨씬 넘은 시각 서서히 아내 윤성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난, 이 형님하고 시내에서 눈을 붙이고 다시 배를 타러 가야하니 당신은 이제 그만 일어나 집으로 가봐요. 어서."
장대철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윤성애는 로봇처럼 넋이 빠진 사람처럼 움직였다.
"내 그놈을 죽여 버릴 거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윤성애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식당을 나섰다.
한편 강성태는 호텔인근에 있는 안마시술소를 찾아 안마를 받고 아가씨와 즉석에서
싸구려 정사(情事)를 나누었다. 안마시술소에서 나온 강성태는 근처 룸싸롱을 찾아 위스키를 마셨다. 강성태는 윤성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속으로 은근히 불에 타죽기라도 했으면 하고 빌었다.
그렇게 된다면 윤성애에게 빌린 돈을 값을 필요가 없고 장대철이 비록 현재는 행방
불명이 되었다하지만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다. 그리되면 자신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드러나게 될 경우 윤성애 역시 자신에게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지 모를 일이었다.
"야, 이년아. 이 오빠에게 한 잔 더 따라봐."
옆에 있던 미스 박의 유방을 주무르던 강성태가 소리를 쳤다. 이미 대취한 강성태는
풋풋한 살 냄새를 맡아가며 환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년이, 죽었을까? 아니면 살았을까?"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혼자만 살겠다고 빠져나온 처지에 늦은 밤 윤성애에게
전화를 걸기가 좀 쑥스러웠다. 다음날 강성태는 주유소에 출근하여 전화를 걸려다
말고 윤성애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성애, 지금 즉시 연락해줘. 당신이 무사한지 무척 궁금해. 사랑해. - 강성태]
어젯밤 자신이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분명 남편 장대철을 만나 술을 마신 것 까지
기억이 나지만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오후 늦게 잠
에서 깨어난 윤성애는 경대에 놓인 하얀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 엄마,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술을 조금만 마시세요 -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 장경서 ]
윤성애 볼에 어느새 뜨거운 액체가 서서히 번져 나갔다. 남편이 사업을 실패하고 두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서 그 동안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이 뼈에 사무쳐 왔다. 거울 속에 윤성애가 아닌 다른 여인이 윤성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젯밤 남편 장대철에게 얻어맞은 흔적이었다. 양쪽 눈두덩도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
다. 그러나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윤성애는 강성태에게 며칠 전 빌려준 돈을 빨리 받아낸 후 복수하리라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성태의 마음에 들게 행동을 해야 했다. 빌려준 돈 뿐만 아니라
빼앗긴 남편의 재산도 되찾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다. 윤성
애는 즉시 강성태에게 휴대폰 메시지를 띄웠다.
[성태씨, 괜찮아요. 난 어제 나이트에서 빠져나오다 약간 찰과상을 입었어요. 오후4시쯤 동인천 K호텔 라운지에서 만나요. 당신의 사랑 - 윤성애]
메시지를 본 강성태 강성태는 피식 웃었다. 간밤에는 윤성애가 불에 타 죽었으면 했던 마음이었지만 호텔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받아본 순간 어젯밤에 채우지 못한 음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성애, 어제는 정말 미안해, 난 당신이 무사히 나이트클럽에서 빠져 나갔으리라
믿었지. 난 빠져 나오다 넘어져서 옷이 다 찢어지고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고. 정말
미안해요."
호텔 라운지에서 윤성애를 만난 강성태는 남자답지 못했던 간밤의 자신의 해동에 대해 변명하느라 침을 튀겼다.
"어머나, 괜찮아요? 정말 큰일 날 뻔 했네요."
윤성애는 마치 자신이 다친 것 처럼 얼굴까지 찡그리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에는 정말 재수가 없었나 봐요. 난 당신하고 뜨거운 밤을 가지고 싶었는데.
정말로 많이 아쉬웠다고."
“어머나? 저도 예상치 못한 일로 대철씨와 헤어진 뒤 얼마 아쉬웠다고요?”
남편 장대철에게 얻어맞은 멍든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교묘하게 감춘 윤성애가 애교가 철철 넘치는 목소리를 내가며 강성태의 눈치를 살폈다.
"참, 성태씨, 어제 내가 당신한테 기가 막힌 정보를 들려주려고 했는데……."
윤성애가 말꼬리를 흐리자 강성태의 눈 꼬리가 추켜올려졌다.
"기가 막힌 정보? 그게 뭔데?"
강성태가 큰 관심을 보였다.
"응, 우리 친정 사촌 오빠가 서울서 증권회사에 근무하는데, 나에게 1억을 투자하면
두 배로 불려준다고 투자를 해보라는 제의를 하셨어. 당신이 알다시피 내가 무슨 돈이
있어? 며칠 전 당신한테 빌려준 돈도 그 오빠를 통해 투자를 해보려고 모아둔 돈이었어. 성태씨, 요즘 사업이 어려운 거 알지만 여유가 되면 투자해봐요. 내가 우리 사촌오빠 소개시켜 줄게요."
윤성애의 제의에 강성태는 반신반의 하는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간단한 메뉴로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객실로 향했다.
강성태가 간밤에 치루지 못한 정사를 아쉬워했으나 하루 만에 제 스스로 몸을 바치는 윤성애가 귀엽기 까지했다. 간밤에 남편 장대철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한 옆구
리가 쑤셔왔지만 윤성애는 내색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한바탕 거친 폭풍이 휘몰아 친 뒤 객실은 조용해졌다. 윤성애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어서 빨리 이 남자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고 남편의 재산도 찾아야 했다. 곤히 누워
숨을 고른 후 윤성애는 강성태의 배 위로 올라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성태씨, 좀 전에 내가 한 말 잘 생각해봐요.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어리석은 일이 되면 내가 가슴이 아플거에요. 얼마나 좋아요. 이런 기회는 일생에 자주 오는 게 아닌데.
그 오빠만 잘 구어 삶으면 자기는 떼돈을 만질 수 있어요. 우리 사촌오빠 구어 삶는
건 내가 책임지고 할 테니. 그리되면 성태씨는 꿩 먹고 알 먹는 잔치에 주역이 되는 거에요. 나에게는 나중에 술 한 잔 진하게 사주면 돼요. 성태씨, 생각해봐요. 네에?"
강성태는 윤성애가 적극적으로 주식투자를 제의해 오자 귀가 솔깃해졌다.
'10억을 투자해서 20억을 단숨에 번다? 그것 괜찮은 장사긴 한데, 내가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서…….'
강성태는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했다. 윤성애는 자신의 제의가 서서히 강성태
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공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짙은 키스로 강성태의 은밀한 부위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강성태의 단단한 물건이
윤성애를 황홀경으로 몰아갔다.
"아 -. 자기야, 사랑해. 난 자기 없으면 못 살아."
윤성애의 신음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메아리 쳤다.
"성태씨, 내일 그 오빠 인천으로 오시라고 할까? 낮에 잠깐 만나서 대충 이야기 들어
보면 되잖아. 이야기 들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둬도 되잖아요. "
윤성애의 집요한 제의에 강성태는 윤성애의 사촌 오빠를 만나겠다고 승낙을 했다.
"일단 믿어봐요. 성태씨를 내가 자기 돈 방석에 앉게 해줄게요. 그래야 내가 빌려준
돈도 빨리 받을 수 있잖아요."
잠시 후 강성태의 넓은 품에 안겨 윤성애는 한 번 더 열락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장대철과 이씨는 일단 배로 돌아갔다. 배로 돌아온 뒤 장대철은 더욱 불안해 했다.
그러나 바다 한 가운데 묶여있는 자신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이 씨는 그런 장대철을
달래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추운 겨울 바다는 장대철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다. 선장은 빨리 돌아온 장대철과 이 씨에게 고마워했다.
윤성애는 강성태를 만나기전 친구를 통해 증권가의 브로커 윤영진을 만나게 되었
다. 윤성애와 윤영진은 강성태에게 되도록 많은 돈을 투자하게 하여 깡통계좌를 만든
후 반반씩 나눠 먹자고 제의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잔뼈가 굵은 윤영진에게 돈만
있고 증권에 대하여 문외한인 강성태 한 사람쯤 등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오빠, 이분이 강성태 사장님이세요. 인사하세요."
윤성애의 소개로 강성태와 윤영진이 동인천 K호텔에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울 S증권에서 일하고 있는 윤영진 팀장이라고 합니다. 이 애가 하도 와달라고 해서 출장을 핑계로 인천에 내려왔습니다. 좋은 투자자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기에. 그런데 강 사장님 만나기를 잘 한것 같습니다. 아주 젊고 멋지게 생기시고 호쾌하신 분 같습니다. 앞으로 강 사장님께서 저를 믿고 투자를 해주신다면
기꺼이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윤영진의 감언이설에 강성태는 기분이 좋았다.
강성태는 우선 실험적으로 5천만 원을 투자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윤영진
에게 연락이 왔다. 투자한 금액이 다행히 승승장구하는 상장 회라서 벌써 두 배 이상의 이익을 보게 되었다는 내용과 강성태의 통장으로 원금을 합쳐 1억2천만 원의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강성태는 조심스러웠다. 이번에는 2억을 투자
해보았다. 십여 일후 3억6천만 원의 원금과 배당금액이 입금 된 통장을 확인할 수 있
었다.
강성태는 자신이 괜한 의심을 하게 되었음을 알고 윤영진을 룸살롱으로 초빙하여
크게 대접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윤성애가 동석을 했음은 물론이다. 기분이 좋아
진 강성태는 처음에 자신이 윤영진을 믿지 않았지만 정확한 정보망을 자랑하는 윤영
진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큰 재미를 보았다며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강성태는 윤성
애에게 다이아 목걸이를 선물했고, 윤영진에게 수고비조로 거금이든 봉투를 전했다.
"윤팀장님 덕분에 제가 보름 만에 2억 원이 넘는 재미를 보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
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윤팀장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내는 것
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강성태가 웨이터에게 손짓을 하자 접대부 아가씨 둘과 밴드가 들어왔다. 한 시간 정도 흥청망청 놀던 윤영진이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자리를 잡자, 본격적으로 강성태에게
미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강 사장님, 이번에 정부의 부동산투기근절대책이 발표된 마지막으로 분양되는 서울 노른자위에 D건설이 분양하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 건설회사 분양 팀에 근무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당첨만 되면 즉석에서 최소한 세대당 5천만 원은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난 그렇게 많은 돈이 없는데……."
강성태가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윤영진이 이틈을 노려 말을 이었다.
"주변에 여유자금이 있으신 친구 분들이나, 지인들이라도 끌어 들이세요. 이번이 황금알을 낳는 마지막 투자입니다.“
강성태는 귀가 솔깃했다. 즉석에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금액을 계산해 보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 5억 원과 친구들에게 빌려서 동원할 수 있는 25억 원이 이삼일내로 조달이 가능했다.
"윤 팀장님 4일내로 25억정도 마련해 볼테니, 힘 좀 써보십시요. 잘 되면 사례는 섭섭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윤영진은 강성태가 잘해야 10억 원 정도밖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의외의 금액에 놀라워했다.
"좋습니다. 전 H그룹 회장님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지요. 3,000억 정도 됩니다. 많은
대학친구와 고향 친구들 중 여유 돈도 굴리고 있어요. 증권과 부동산 투자에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요. 만약 강 사장님이 믿지 못하시겠다면 증권시장에 제 이름 석자만 대면, 금방 저에 대하여 아실 것입니다."
강성태는 천문학적 금액에 놀라워하며 윤영진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아닙니다. 윤팀장님을 못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친구 녀석들에게 빌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을 동원시켜 보겠습니다."
강성태는 구름위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곧 재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윤성애는 자신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철저히 망가져 가는 한 남자의 말로를
보고 싶었다.
"흥, 네 놈이 망해서 나자빠지는 꼴을 꼭 보고야 말리라."
윤성애는 이를 갈았다.
"자, 자 이년들아 뭐하니 우리 조 팀장님께 술 한 잔 따라봐라."
강성태는 신이 났다. 지갑에서 십만 원권 수표를 몇 장 집어 접대부들 브레이져 속으
로 넣어주었다. 룸살롱은 서서히 천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튿날 윤성애와 윤영진은 다시 한 번 철저히 강성태를 파멸시키기 위한 계획을 점검해 보았다. 윤성애는 강성태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에 자신의 식당으로 와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유혹을 했다.
"오케이, 시간 맞춰 갈께. 자기야. 목욕재계하고 기다리고 있어."
강성태의 느물거리는 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나쁜 놈, 네놈의 말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어디 두고 보자."
윤성애는 치를 떨었다.
8시쯤 강성태가 말쑥한 모습으로 식당에 모습을 보였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보였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윤성애를 보자 씩 웃으며 장미를 건넸다. 십 수 년을 남자에게 꽃을 받아 본적이 없는 윤성애는 감격해 하며 오버액션을 취했다.
“자기야, 고마워. 오늘 오후에 새로 들어 온 놈으로 찜을 만들었는데 자기가 맛 좀
봐봐.”
윤성애는 복어 찜을 테이블에 놓으며 강성태의 반응을 기대했다. 유난히 복어 찜을
좋아하는 강성태는 자신의 입맛을 잘 아는 윤성애에게 고마워하는 눈치다.
“음, 정말 죽이는데. 정말 좋아”
강성태는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든 윤성애의 수고에 답해
주었다. 윤성애가 강성태의 칭찬에 살짝 강성태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이 질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지만 윤성애는 아랑곳 하지 않았
다. 강성태는 윤성애를 이용해 한 몫 잡아 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25억 원을 내일 중으로 마련하여 윤영진을 만나 볼 심산이었다. 아무래도 윤영진을
만나기 전에 윤성애의 마음을 확실히 잡아놔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이 어쩌면 자신
에게 찾아 온 일생일대의 찬스일지도 모른다고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는 강성태에게
윤성애는 섹스를 나누는 정부(情婦) 이상의 가치를 두려고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강성태는 식당은 일하는 아줌마들에게 맡기고 어디 가서 자신과 사업 이야기를 하자며
윤성애를 유혹했다.
“성태씨, 어디 가려고?”
“응, 장수동 공수부대 입구에 요즘 새로 생긴 라이브카페가 있는데 언제 한번 가봤는
데 분위기도 괜찮고 음식도 고급스러워. 가수들도 노래를 잘하더라고 그래서 당신
하고 가보려고.”
강성태는 질척한 눈길을 던졌다.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시흥방향으로 질주하며
바람을 갈랐다.
통나무로 지어진 2층의 대형 라이브카페 주차장에는 수 십대의 고급 자가용들로
만원이었다. 홀 1층에는 중장년층의 손님들로 가득했다. 웨이츄레스 안내로 강성태와
윤성애는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20대중반의 무명가수가 이광조의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을 애절하게 부르고 있었다. 강성태는 스카치위스키 한 병을 주문했다.
“성애, 아무래도 부동산 쪽은 좀 그래. 그냥 주식에 투자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당신 오빠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봐. 요즘 정부에서 투기근절 차원에서 투기자
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진다고 들었어. 아무래도 불안해.”
윤성애는 강성태가 자신들의 음모를 눈치 챈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해했다.
“그럼, 오빠에게 그렇게 말할게. 당신이 부동산보다 주식에 투자하기를 원한다고.
걱정하지 마, 성태씨.”
윤성애는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강성태의 마음을 확고히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빠가 말한 대로 한 25억 원을 투자 해 볼 생각인데 그 정도면 어느 정도
돈을 불려 주실 텐가?”
윤성애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성태씨, 잘하면 100억 원대 까지 만들 수 있을 거야. 그 오빤 주식에 귀신이야. 귀신. 절대로 안심하라고.”
무명가수는 나훈아의 노래를 부르고 나자 실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래서, 내일 직접 오빠가 근무하는 회사에 돈을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당신도
같이 가자고.”
윤성애는 의외의 상황에 당황해 했다. 사촌 오빠라고 한 윤영진은 증권가 근처에서
기생하는 브로커였다. 윤성애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휴대
전화로 윤영진에게 내일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 갈 테니 출장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다급해진 윤영진은 자신이 잘 아는 K증권 여의도지점 김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자신이 그 회사 직원인 것처럼 할 수 있도록 연극을 해달라고 부탁 했다. 양주
두병을 마신 강성태와 윤성애는 라이브 카페를 나왔다. 강성태가 윤성애를 데리고
최근 모텔촌으로 유명한 소래포구 건너편 월곳으로 가려고하자 윤성애는 현재 꽃물이 나오는 기간을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하자 강성태는 약간 불쾌한 기색을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다음날 여의도 K증권사 투자 상담실 윤성애와 강성태는 윤영진을 기다리고 있었
다. 의심이 많은 강성태는 윤영진이 근무하는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곧이어 윤영진과 명패를 착용한 K증권 회사원 복장을 입은 여직원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물론 여직원도 윤영진이 밖에서 데리고 온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어이쿠, 강 사장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윤영진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여직원이 커피 잔을 내려놓고 나가려고 하자 윤영
진이 자신을 찾는 전화가 오면 상담실로 연결해 주고, 혹시 지점장님이 찾으면 바로
연락해 달라며 증권사 직원처럼 행동하며 강성태를 믿게 만들었다.
“윤팀장님, 25억 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강성태는 액면가 1억 원짜리 수표 스물다섯장이든 봉투를 윤영진에게 건넸다. 돈
봉투를 건네는 강성태의 손이 약하게 떨렸다. 윤영진은 최근에 상장된 회사 중 한두
군데를 작전세력들과 짜고 일을 벌인다면 10일 내로 두 배 이상을 건질 수 있다는 말과 잘 되면 두둑한 사례를 은근히 요구하는 말까지 해가며 강성태를 안심시켰다.
"이렇게 빨리 준비를 하시다니, 과연 강사장님이십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윤 팀장님."
"저애 부탁도 있고하니 제가 최선을 다해 서너배는 이윤을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윤영진의 기분 좋은 말이 강성태를 기쁘게 했다.
몇 칠이 지나고 윤영진은 강성태에게 작전이 예상대로 아주 잘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K증권 여의도 지점 김 대리에게도 만약 누가 자신을
찾는 전화가 오면 외근중이라는 답변을 부탁한다는 치밀함을 보였다. 윤성애는 강성
태에게 친정어머니가 병이 나서 며칠 간 다녀오겠다며 아이들과 잠적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