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의 달빛(3)
황해의 달빛(3)
- 여강 최재효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으셨군요. 전 그런 것도 모르고 저만 힘든 줄 알았습
니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니야. 나에게 자네가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그냥이요.”
“아이들만 불쌍하지요. 엄마가 없으면......”
장대철은 잠시 집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아빠를 그리고 있을 남매를 생각했다.
장대철이 쫓기듯 멍텅구리 배에 은거한 사실을 아내와 아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
었다. 두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타고 흘러 내렸다.
‘강성태, 이 새끼, 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다. 절대로......’
장대철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갑판에서 일어나 바닷바람을 가슴으로 안아보았다.
사방이 온통 까맣다 못해 마치 검정물감으로 칠해놓은 듯 했다. 간간히 파도 소리
만 들릴 뿐이었다. 안에서는 아직도 파티를 하고 있는지 가끔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저씨, 바람이 찬데 그만 들어가시지요?”
“아니 이 사람아 내 이야기 듣다말고?”
“아니요, 듣고 싶은데 감기 걸리실까봐.”
“내 몸은 강철이야, 그런 걱정 말고 이리와 앉게. 이왕 내 속내를 보였으니 모두
까보여야 할 게 아닌가?“
“고맙습니다. 그 이후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겠군요. 아저씨”
“당연하지. 마누라가 저 세상에 간 뒤 나는 세상을 염세주의적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어. 거의 매일을 독한 술로 시간을 보냈어. 그렇게 몇 년을 허무하게 보내
고 나니 이게 아니다 싶더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지. 그런
데 집안에 여자가 없으니 살림이 말이 아니더군. 그래서 아이들 에게 내가 다시
새 엄마를 얻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찬성을 하더군. 마누라 죽고 5년
뒤 그 여자와 결혼을 했지.“
“그 여자요?”
“응, 그 여자”
“어떤 여잔데요?”
“외모는 천사 같은데 속은 악마였어.”
“악마요?”
“응, 세상에 그런 악마도 없을 거야.”
“자네 미안하지만 안에 들어가서 소주 한번만 내오시게. 내 과거를 생각하니
술이 없으면 못 배기겠어. 특히 오늘 밤은 더욱더.“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아저씨. 안에서도 많이 드신 것 같은데.”
“괜찮아, 내 뱃속은 강철이라고 하지 않았나. 강철.”
주연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선장은 보이지 않고 나이롱 박이 무슨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지 젊은 축들은 웃기도 하고 박수치 치며 즐거워했다. 주방에
서 회 한 접시와 소주 두병을 들고 막 나오려는데 나이롱 박이 장대철을 불렀다.
“어이, 대철이 어디 갔었어? 아니 어디서 또 술판이 벌어진 게야?”
“아니, 그게 아니고. 안이 너무 더운 것 같아서 갑판에서 이씨 아저씨와 한잔
하느라고.“
“이리와 내 잔 받고 가게.”
나이롱박이 소주를 따라주면서 이제부터 진짜 불타는 이야기가 시작될 테니
듣고 가라고 잡았다.
“에, 여러분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경력
에서 가장 화려한 이야기 한 토막을 하겠어유. 혹 재미없다면 가서 주무셔도 뭐라
고 하지 않을게유. 맘대로 하세유.“
얼굴이 불콰해진 젊은 사람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어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고 뜸을 들이느냐고 안달하는 눈치였다.
“그럼, 잘 들어봐유. 그러니까 내가 이 배를 타기 1년 전쯤인데 년말연시라 나의
황금어장에는 늘씬하고 기가 막힌 인어(人魚)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더군. 그 날이
아마 크리스마스이브 전전날 쯤 될 거여. 밤 11시쯤 되자 늘씬한 인어 둘이 약간
취기가 있어 보이는 상태로 어장에 들어오더라고. 여자 둘이 들어오면 뻔할 뻔자
아닌가? 가만히 동태를 관망했지.
춤은 추지 않고 술만 마셔대더군. 그래서 슬슬 작업에 들어갔지. 웨이터 편에 쪽지
를 써서 보냈지. 그런데 말이야. 제군들, 나중에라도 만약에 나이트클럽이나 카바
레 같은데 가서 인어들을 유혹하고 싶으면 고전적인 방법을 쓰면 요즘엔 전혀
안 먹혀.
나는 말이야. 좀 교양이 있어 보이거나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나면 웨이터한테
쪽지를 쥐어 보내지. 그 쪽지에는 말이야, 그럴 듯한 문구를 써야 하네.“
나이롱박이 잠시 소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참을성 없는
청중들은 독촉을 한다.
“어떻게 써야하는데요?”
“깨끗한 메모지에 영어로 그럴듯하게 써서 보낸다고.
“그, 그럴듯하게?”
마른 침을 삼키고 있던 젊은 축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Please, May I help you tonight? I'm free. If you give me your time , I'll be a knight of you through all night. ] 라고 쓰거나 [ 類類相從 ] 또는 [ 伯樂一顧 ] 라고 잘 써서 곱게 접어 웨이터 편에 보내면 십중팔구는 호감을 나타내거나 스스로 접근하게 되어있네.“
“아니, 아저씨, 그렇게 어려운 말을 우리처럼 무식한 놈들이 어떻게 써먹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아.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 뜻이 뭔데요?”
“그건 나도 잘 몰라, 그저 젊은 애들이 써주니까 몇 장 복사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아마, 그 영어가 내가 돈이 많으니까 당신에게 맛있는 거 사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던데, 그리고 한문은 까막눈인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끼리끼리 놀자’
하고 ‘내가 너를 알아봤다’ 뭐 대강 이런 뜻이라고 하더군.“
순간 술좌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래서 그날은 영어로 된 쪽지를 웨이터 편에 그 두 인어들에게 보냈지.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쪽지가 왔는데 통 무신 소린지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대학물 먹은
웨이터한테 물으니까.
‘That's Ok. We'll trust you. If you make us to ride Rainbow, We‘ll give you
a long and hot night.'는 자신들을 춤으로 홍콩가게 해주면 인어 회(膾)를 맛보게
해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다시 메모지에다가 크게 Ok라고 10번을 써서 보냈지. 그날은 그 쪽지 덕분
에 내 생에 최고의 날이었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물찬 제비 한 마리를 불러서 2:2로 홀 안을 휘젓고 다녔지.
인어들이 초짜라 지르박, 탱고, 블루스로 내 마음대로 통제를 했더니 요것들이
우리 둘에게 마음을 남김없이 주더라고. 암튼 카바레에서 나와 2차를 갔는데 정말
로 교양 있고 부유한 남편을 둔 인어들이라 씀씀이도 다르더군. 마지막 3차는
각자 파트너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지. 나는 내 파트너와 샹그릴라로 떠나고
내 친구인 물 찬 제비는 인어를 업고 마카오로 떠났고. 암튼 나머지는 제군들
상상에 맡기겠어.“
“에이. 그렇게 운만 떼고 이야기를 멈추는데 어디 있어요? 끝까지 다 해야지요.“
“맞아요. 나이롱박 형님, 순전히 거짓말 같다.”
“아니야. 정말이야. 실화라구.”
“그럼, 그날 있었던 이야기 다 해주세요.”
“좋아, 그럼 할 수 없지. 내 이야기 듣는 도중에 화장실을 가거나 불같이 용솟음
치는 욕망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런 건.”
술좌석의 청중들은 나이롱박의 무용담에 마른침 삼키는 소리 만 낼 뿐 숨소리
조차 함부로 내지 못했다.
“좋아, 나는 그중 우리나라의 굴지의 K그룹의 중역을 남편으로 둔 인어와 눈이
맞았지. 남편은 유럽 출장 중이라 하더군. 뻔 하잖아. 마음 맞는 남녀가 마지막
으로 직행하는 코스는 어딘지.
내가 한강변 모텔로 가려고 하자 남산에 있는 H호텔로 가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인어 뜻에 따르기로 했지, 뭐. 그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체위와 기술을
총 동원해서 그 인어를 최소한 10번은 실신 시켰을 거야. 다음 날 오후가 되서 일
어 나 보니. 여인은 없고 연락처와 큰 거 몇 장이 담긴 봉투가 머리맡에 있더군.
침대는 거의 부서져 있었고.“
“우와……, 역시 나이롱박 형님은 끝내 주네요. 나중에 그 비법을 저희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인지 뻥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쥑이네유.”
“나에겐 그런 기회가 언제 오려나? 염병.”
선원들은 입맛을 다시며 한마디씩 내 뱉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전화가 왔는데, 거시기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래서 만났더니
그날이 되었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서 여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더군. 하긴
그날 인어 몸속에 쏟아 부운 나의 고단위 생산물이 어마어마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산부인과에 데리고 가서 말끔히 처리를 해주었지.
한 달에 서너 번은 그 인어를 만나 충견(忠犬)이 돼 주었지.
내 제비 친구도 그 후로도 자주 그 인어를 만났는데 결국 그 인어는 이혼을 하고
말았다고 하더군. 뽕잎 만 먹던 누에가 솔잎을 맛을 봤으니 뽕잎을 찾겠어? 뻔할
뻔자지. 나중엔 내 파트너가 나에게 중형차를 뽑아 주더군. 거의 육개월 만났나.
그 남편이 프랑스로 파견 근무 나간다면서 같이 따라 나가더군. 그 인어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생각을 하며 몸을 비비 꼬고 있을 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곳에서
거대한 녀석들의 거시기를 예뻐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나이롱박이 말을 마치자 선원들은 재미있다며 또 다른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
기도 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안에서 잠시 잡혀 있는 바람에.”
“제가 한잔 올릴게요. 안주도 가져왔어요.”
“날씨가 제법 차구먼, 자, 자네도 한 잔 들게.”
“아저씨, 재혼 한 여자 분이 악마라고 하셨잖아요? 상당한 미인이었다면 아저씨
에게 축복이셨을 텐데요?“
이씨는 자작으로 소주 한잔을 다시 따라 단숨에 넘기고 다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더니 멍하니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은 좀 잔잔해졌지만 체감온도는
더 내려간 듯했다. 안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말 못할 사연을 가슴 속에
묻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노랫가락도 구슬프게 들렸다.
“자네 처는 어떤가?”
“담배꽁초를 바다로 튕겨버리고 이씨가 입을 열었다?”
“네에?”
“자네 처는 미인인가 이 말이야?”
순간 장대철은 강성태에게 헤프게 웃던 아내 윤성애의 도툼하고 빨간 입술을
그려보았다. 어디 내놔도 남들에게 빠지지 않는 미모를 지닌 윤성애를 두고 장대
철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아이 같았다. 언제 하이에나 같은 남자들이 아내를 유혹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네에, 한 인물 합니다.”
“여자는 말이야, 특히 얼굴이 반반하고 색기가 자르르 흐르는 여자들은 꼭
사고를 저지르지. 아니면 이미 저질렀거나 또는 현재진행형일 수 있어. 남자들
은 그저 얼굴 예쁜 여인들은 보면 사고체계가 마비되어 여인에게 농락당할 수
있지. 세상의 남자들은 명심해야 해. 가급적 미인 마누라를 아내로 삼지 말라
고 말해주고 싶군. 반드시 꼴값을 하더군.“
“의미 심장 한 말씀이시네요.”
“자네가 아름다운 화초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 손을 탈까 걱정이 되어 아무
리 감추려고 해도 그 화초는 스스로 햇빛을 보려고 하거나 타인의 손에 의해 바람
을 쐬게 되지. 그것이 얼굴이 좀 반반한 여인들의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속성
이야. 절대로 자신의 미모를 어두운 골방에 쳐 박혀 썩히려들지 않는데 문제가
있어.
요즘 TV나 영화에서 좀 얼굴값을 한다하는 애들 보면 말이야, 뒤가 구리지 않은
애들이 얼마나 되겠어? 어느 가수하고 어느 탤런트가 결혼을 합내하고 각종 매스
컴들이 난리를 치지. 그런 커플 보면 2-3년 내로 반 이상이 이혼을 하더군. 서로의
성격이 잘 맞지 않는다거나 금전적인 문제로 부부간의 트러블이 잦아서 그렇다고
그럴 듯한 핑계를 대지.
그러나 그건 구실일 뿐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지. 남자가 자신의 미모 유지와
사회활동의 제약요소로 변질되면 헌신짝처럼 버리지. 아니면 남녀의 아래가 잘
맞지않거나 말이야. 그게 비록 연예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
나는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병폐야. 조강지처라는 말은 조만간 사전에 나올
테지. 나도 화초를 잘못 키우는 바람에 이리 되었다네.“
“네에? 화초를 잘못 키우시다니요?”
“재혼한 여자는 이혼녀였었네. 나 보다 20살이나 어린. 물론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미인선발대회에서 뽑히기도 했던 아주 보기 드문 미인
이었어. 서울서 명문대학도 나오고, 나 같은 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여자
야. 그 여자와 결혼하고 6개월 정도 흘렀을까? 어느 날 느닷없이 식당을 모두
처분하고 운수사업을 해보자는 거야.
나는 식당업계에서 성장해서 장차 전국을 커버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구상
하고 있었지. 왜 거 있잖은가? 00치킨이나 00피자가 전국 체인망을 가지고 있
는가. 그런 걸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여자는 자신이 잘 아는 먼 친척뻘 되는
분이 시내버스회사를 운영하는데 사업운영을 잘 못해서 큰 적자를 내고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거야.“
“그래서요? 아저씨가 그 버스회사를 인수했어요?”
“내가 무슨 수로 알지도 못하는 버스회사를 인수하겠어?”
“그럼?”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아내는 언제 자료를 모았는지 그 버스회사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내게 보여주더군. 회사사장의 인적사항부터 그 회사의 재무
구조까지 세밀하게 조사한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나의 관심을 사려고 하더군.
더욱 놀란 것은 언제 연구를 했는지 내가 그동안 전국 요지에 투자해 놓은 토지
는 물론 서울의 건물과 토지의 가치평가까지 해 놨더군.
나는 속으로 은근히 놀라면서 한편으로 빈틈없는 그녀의 성격에 혀를 내둘
렀지. 내가 계속해서 아내의 제의를 거부하면 곧 이혼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
였어. 그 회사의 채무를 일부변제하면 운영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거야. 이미
그 회사가 거래하는 은행의 고위관계자와 상담이 어느 정도 이루어 진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점점 그 버스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내 전 재산을 처분한
금액으로 충분히 그 버스회사를 인수 할 수 있겠더라고. 며칠을 심사숙고 끝에
식당업을 접고 매각한 돈으로 그 버스회사를 인수하기로 했지.“
“아, 잘하셨네요. 그럼 기업체사장님이 되신 거군요?”
“난, 그때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일임 하다시피 했어. 내가 회사 운영에 대해 뭘
알아야지. 그 여자는 대학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하더군. 아내가 대표이사가
되고 나는 허울뿐인 회장 자리에 앉게 되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2-3일 한번 회사에 나가 아내로 부터 회사 전반에 대해
브리핑을 받는 게 전부였어. 실은 아내가 아니라 S 전무가 늘 브리핑을 했지.
그 S전무라는 그놈, 그놈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네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요?”
“허어, 세상에. 그 놈이 다름 아닌 아내의 정부(情夫)였다네.”
“네에? 정부요?”
“그렇다네, 아내가 숨겨놓은 쥐새끼 같은 내연의 남자 말일세. 난 집에 있거나,
친구들과 칠 줄 모르는 골프나 치거나. 여행을 다녔지. 젊은 아내가 모든 걸 알
아서 하니 내가 회사에 나가서 뭐 할게 있어야지. 아내는 하루에도 몇 차례 전화
를 걸어왔지. 회사의 자질구레한 일부터 내 식사까지 챙겼어. 이 제와서 생각하
면 그것이 모두 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계략이었지.“
“계략이요?”
“내가 회사일이 궁금해 자주 회사에 나가면 서로 불편 할 것 같으니까 나에게
환심도 살 겸 회사운영이 잘 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위한 교묘한 간계였어.
차차 나는 회사 일에서 멀어지고 모든 권한은 아내가 쥐고 있었어.“
“아, 그렇게 된 것이 아저씨가 잘못 된 원인이 되었군요.”
“나중에는 해외 버스회사의 운영 실태를 연구한다면서 해외를 자주 들락거리
더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S전문가 그놈하고 같이 나간거야. 그놈도 영화배우
처럼 키가 후리후리하고 잘 생긴 놈이었어. 내가 회사를 가면 그놈은 고개를
90도로 숙이지. 인상도 퍽 좋았고.
그놈은 아내의 친척뻘 된다면서 아내가 전무로 기용했어. 나는 아내의 말을
100% 믿었기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아야지. 회장이라 자가 뭐 시시콜콜 따질
게 있나? 두 마리 고양이에게 통째로 생선을 내준 거지.
회사가 1년 반은 그럭저럭 잘 굴러갔어. 나는 관공서로부터 이런 저런 단체
위원입네, 무슨 자문이네 하는 감투를 여럿 쓰게 되었지. 높은 공무원들이 내
앞에서 설설 기는 것을 보니 참으로 살맛이 나더군. 두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
유학을 보냈지.
회사 대표이사가 아내고 대부분의 동산과 부동산은 내 지시 없이는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해놨지.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두 연놈들이나
보다 한 수 위더라고. 잘 굴러 가던 버스회사가 어느 날 부도를 맞게 되었다는
거야.“
“부도요? 왜요? 부인께서 운영을 잘 하셨다면서요?”
“회사가 부도나자 회사운영에 참여했던 아내와 S전무 그리고 간부들은 자취
를 감추었어. 내가 경제사범으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 받는 과정에서 모든 전말
이 드려났지. 기가 막히더군. 여러 은행에서 내 소유의 모든 동산과 부동산을
담보로 어마어마한 자금을 끌어다 썼더군. 그리고 그 많은 돈을 두 연놈이 빼돌
리고 연기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아니, 부인의 친정 부모형제들도 있었을 게 아니에요?”
“왜 찾아가지 않았겠나. 그러나 이미 모두 출국해버리고 없더군. 그들은 아내
의 친부모 형제도 아니었어. 2년 가까이 살면서 난 아내의 이름도 모른다네.“
”무슨 말씀인지?“
“아내의 주민등록번호는 남의 것이었으니까.”
“아, 철저히 당하셨군요.”
“처음부터 두 연놈이 나를 말아먹기 위해서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인 거야.”
“저런. 나쁜 놈들이 있나.”
“두 년놈, 철저히 신분을 위장했더군. 모든 게 가짜였어. 아직도 난 그 두 연놈의
이름 석 자 조차도 몰라. 내가 헛살았지. 헛살았어.“
“그럼, 죄송한 질문이지만 부부관계는 안하셨어요?”
“결혼 후에도 부부관계를 가지려고 하면 몸 컨디션이 안 좋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때가 되었다, 기분이 안 좋다. 이러저런 핑계를 대며 잠자리를 피하더라고.
2년 가까이 살면서 부부관계는 손에 꼽을 정도 였다네.“
“너무 큰 대가를 치르셨네요. 아저씨.”
이씨는 두 번째 소주병 마개를 열었다. 자작을 하더니 연거푸 석잔 을 마셔
버렸다.
“아저씨, 이제 그만 마시고 일어나세요. 날씨가 너무 차요.”
“그럼세. 인생은 잠시 꿈을 꾸는 걸세. 세상에 너무 애착을 두지 마시게나.
죽으면 다 소용없다네. 뼈 빠지게 일해 돈벌어봐야 나중에는 그 돈 쓸 놈이
따로 있다네. 그게 인생인 거 같으이.
아마 그 연놈들도 해외 어디 나가서 잘 살고 있겠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나와
똑같은 신세가 될 거라 믿네. 신이 살아있다면 말이야. 인간은 누구나 뿌린
대로 거두게 돼 있거든. 난 그것을 믿네.“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아저씨.”
“그런데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뭔가? 그게?“
“유학 갔다는 자녀분들은 어찌되었고요? 또 파산한 이후 아저씨는 어쩌다
이 배를 타시게 되었는지요?“
“그 두 아이에게는 다행히 내가 숨겨 둔 동산이 좀 있어서 두 아이들에게 주고
나는 감옥에서 2년을 살다 나왔어. 감옥에서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 했었지만 목
숨만큼 질긴 게 없더군.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나는 무지막지한 놈들에게 납
치를 당했어. 무조건 내 입을 틀어막고 어디론가 데려 가더군. 아내, 아니 그 연놈
들이 내 명으로 거액의 사채까지 끌어다 쓴 거야.
사채업자들이 누군가 그 놈들이 단돈 일원이라도 손해 보는 놈들이 아니잖아?
나에게 협박을 하면서 당장 돈을 내놓으라는 거야. 생각해보게 교도소에서 나온
놈이 무슨 돈이 있겠나? 나는 며칠간 감금 된 상태에서 얻어맞고, 고문을 당하고,
거의 인사불성이 되자 그놈들이 한 달 내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갚는다는 조건의
각서를 쓰게 하고 나를 풀어 주더군.
늘 한두 놈이 내 뒤를 밟았지. 그러나 이 세상 천지에 나를 반겨주는 곳은 한군
데도 없더군. 아이들은 다행히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력으로 삶을 꾸려가
고 있고 나는 그 놈들의 감시의 눈길을 피해 이곳으로 오게 된 걸세.“
“아, 저와 비슷한 경우로군요.”
장대철은 강성태가 깡패들을 동원하고 자신의 인쇄소로 찾아와 자신에게 폭력
을 행사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돈이란 인간에게 유익하게 쓰이지만 부정하게
쓰일 경우 인간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인지 장대철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속으로 절규했다.
남녀가 한 몸으로 엉겨 태초에 조물주가 빚어놓은 작품처럼 활화산 보다 뜨
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너무 뜨거운 열정으로 인하여 객실 안은 한 여름
의 무더위를 능가했다. 수컷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온갖 재주로
암컷을 어르고 달래며 마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듯 요소 요소를 손가락으로
지분거리자 암컷은 묘한 신음 소리를 질러댔다.
한 바탕 천둥 번개가 지나가자 담배를 꼬나물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강성태
는 침대에 널브러져 쾌락의 여운을 음미하는 윤성애의 어깨를 살며시 만지며
속삭였다.
“성애, 어땠어?”
귀가 간지러울 정도의 달콤한 입김이 윤성애를 자극했다.
“성태씨, 너무 좋았어. 사랑해”
윤성애가 강성태의 허리를 껴안았다.
“너무 걱정 마, 자기가 급하게 쓸 자금인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내가 운영
하는 식당을 담보로 해서라도 친구들에게 빌려 볼게.”
윤성애는 강성태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웠다.
“고마워, 꼭 보름 후에 갚을 테니 안심해.”
강성태는 윤성애의 조각 같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성태씨, 나, 나 다시 뜨거워 졌는데......”
윤성애는 다시 강성태의 음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