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6)
동행(6)
- 여강 최재효
지연이 딸 성미의 휴대전화 문자를 받고 평소보다 일찍 귀가하였다. 뜻밖에
지훈이 거실서 TV를 보고 있다가 지연이가 들어오자 현관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평소에는 아내가 집에 들어오던지 나가던지 신경을 쓰지 않던 지훈이
였다.
지훈은 무엇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고 아내가 시장 봐온 짐까지 받아
주었다. 입가에서 달콤한 포도향이 풍기는 것으로 보아 홀로 와인을 마시고 있었
던 것 같았다. 지훈은 집에 있을 때 자주 이태리 산 와인을 즐겨 마시곤 하였다.
지연은 오히려 지훈의 예전 같지 않은 행동에 불안을 느꼈다.
“성미는 들어왔어요?”
“응, 제 방에서 공부하고 있어. 내가 과일을 깎아서 넣어 주었어. 당신,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연말이라 카페가 무척 바쁠 줄 알았는데. 그러보니 당신 헤어스
타일도 바뀌었군 그래. 전보다 훨씬 더 예뻐 보이는데.”
지연은 딸애가 공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간식을 만들어 주려고 주방으로 갔다. 딸이 좋아하는 닭강정을 만들어 주려고 지연이 닭을 사왔다.
‘아니, 이 남자가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이상하네.’
“여보, 닭은 이리 줘. 내가 정리할 게. 닭 강정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성미가 닭
강정을 아주 좋아하지. 술 안주로도 그만이지. 오늘 오랜만에 당신 손맛을 보게
되었군.”
지연은 닭 강정을 만들어 케이크와 음료수를 딸 방에 넣어주었다.
“고마워요. 당신이 주방 일을 다 도와주다니. 처음보네요.”
“나야 늘 도와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도와주지 못했지.”
“암튼 고마워요. 그런데 큰 애는 전화 없었죠?”
“성훈이? 그 앤 새벽이나 돼야 올 텐데. 고등학생이니 좀 늦겠지.”
“엄마, 고마워요.”
“고맙다니? 엄마에게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성미야, 미안해. 그 동안 엄마가 돈
번다고 매일 밤늦게 들어와서 우리 딸 간식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어. 앞으론
가급적 일찍 들어올게.”
“엄마, 고마워.”
“또, 그 소리.”
지연은 딸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카페를 운영한다고 거의 매일 새
벽에 들어와 두 아이들이 제대로 저녁을 먹었는지,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못했었다. 성미에게 간식을 챙겨준 지연은 조금이나마 딸에
게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여보, 이리와. 나하고 와인이나 한잔 하자고. 혼자 마실려고 하니 심심하군."
“좀 씻고요.”
“얼른 나와. 닭 강정 다 식으면 맛이 떨어진다고.”
지훈은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장식장에서 레미마틴(Remy Martin)을 꺼내왔
다. 지훈이 즐기는 코냑인데 다른 코냑은 잘 안마시면서 꼭 레미마틴만 즐기는
습성이 있었다.
‘아니, 저이가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생전 안하던 행동을 하는 거지? 평소대로
행동하면 난 더 편한데. 이상해. 혹시 무슨 냄새라도 맡았나?’
지연은 낮에 두 번의 정사를 떠 올렸다. 변호사 M은 행동이 부드럽고 고도의
테크닉으로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아 지연은 안심할 수 있었지만, 김승호는
야생마 같은 면이 있어 일을 치른 후에서 거울로 하반신 앞뒤를 살펴보아야
했다.
지연은 샤워를 하고 아래 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젖가슴에 승호의 희미한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박박 문질렀다. 지연이 보랏빛의 섹시한 나이트
가운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지훈은 벌써 눈이 풀린 듯 했다.
“당신도 한잔 하지.”
“한잔만 할게요.”
“술 많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도 되는데......”
지훈이 언더락스잔에 얼음을 채우고 코냑을 따른 뒤 콜라를 약간 부었다.
지훈이 지연이 좋아하는 브랜디 콕을 만들어 건넸다.
“자, 우리 오랜만에 건배하자고. 연말이고 하니, 연말 기분도 내야할거 아냐?”
지연이 지훈과 술을 마시면서도 유쾌하지 않았다. 자꾸만 죄인이 된 것처럼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부부라고 하지만 함께 잠을 자주 자지 않기 때문에 지연
은 지훈에게 남편이라기보다는 하숙생 같았다.
어쩌다 지연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 강제적인 지훈과의 섹스는 즐거움 보다
고통으로 끝나곤 했다. 얼마 전 지훈과 색다른 섹스를 가진 이후로 지연은 더욱
지훈을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지훈이 방에서 잠이 들면 지연은 딸 방에서 자던지
또는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곤 했다. 물론 빈방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함부로 빈방에 들기도 눈치라 보였다.
공영방송 TV에서 연말이라고 연예대상이니 가수대상이니 하는 밍밍한 내용만
방영하고 있었다. 지연이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지훈이 채널을 돌렸다. 위성방송
시청이 가능하여 지훈은 자주 성인프로그램을 즐기곤 하였다. 지훈이 거의 포르
노에 가까운 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추었다.
지연은 딸아이가 혹시 벌컥 문이라도 열고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딸의 방에도
화장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였다. 지연은 지훈에게 성인 영화를 보려
면 방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였다. 지훈이 거실의 티브이를 끄고 싫다는 지연을
억지로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난 포르노 안 봐요. 당신이나 보세요.”
“허허, 포르노가 아니라 어른들이 사랑하는 장면을 보는 건데 왜 그래?
당신이 애들도 아니면서.”
지훈은 거실로 나가려고 하는 지연을 방에 있도록 하였다. 노골적인 성애(性
愛) 장면이 화려하게 화면을 수놓았다.
한 장면이 묘한 신음소리와 함께 TV에서 흘러나왔다. 지연은 두 눈을 꼭 감았
다. 지연은 대학교수라는 남자가 야한 성인영화에 몰두하고 있는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지훈은 남녀 포르노 배우들이 절정을 맞이하며 신음소리를 토해 낼 때 자신도
은밀한 부위를 주무르면서 신음을 토했다. 지연은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꾹 참고 누워 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성인 배우들이 흘리는 신음소리는 지연을 괴롭혔다.
낮에 M과의 정사(情事) 장면이 영상으로 떠올랐다. M의 거대한 그것이 눈앞
에서 아른 거리기도 하고, 김승호의 탄탄한 가슴과 엉덩이가 오버랩 되면서
서서히 지연이는 의지와 상관없이 혈관이 덥혀지기 시작하였다.
‘안 돼, 안 돼. 이 남자가 혹시 나에게 이상행동을 유발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이런 영화를 보고 있는지도 몰라. 침착해야해. 아무리 남편이지만 내가 싫어
하면 강제로 섹스를 시도하더라도 그건 무효야. 아니지 강간이지, 강간. 난 이
남자가 싫어. 정말로 싫다고. 내 몸은 오로지 승호씨나 철민씨 혹은 M만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지금 이 남자는 아냐. 아무리 남편이라도 싫다고.’
지연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훈이 거실로 나가더니
마시던 코냑 병을 가져왔다. 지연이 잠자는 척 하고 있자 혼자서 나머지 코냑
을 마셨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아메리카 사내들의 공동 연인인 젠나제임스와 테라패트
릭의 신음이 끝난 것은 지연이 깜빡 잠든 새벽 2시쯤이었다. 지훈은 지연이
잠든 것을 보고 희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훈이 아내의 나이트가운을 벗기고
얼른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발에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자신도 옷을 몽땅 벗어버리고 욕망을 키웠다. 술에 취해 잠에 빠져든
지연의 탱탱한 알몸이 희뿌연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훈은 아내의
은밀한 부위를 집중 살펴보았다.
‘분명해, 흥신소 직원이 오전에 그리고 초저녁에 아내가 호텔에서 남자와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받았는데, 혹시나 했더니 그 보고가 틀림없는 거 같군.
그러나 네가 아무리 나에게 도망가려고 하여도 너는 내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것이 확실하다고.
어느 놈이 잠시 너를 빌려간 것일 뿐 너의 소유권과 너를 탐하고 즐길 수 있
는 권한은 나에게 있다고. 국가에서 인정해준 권리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
는 강력한 권한이야.’
지훈이 빨갛게 이글거리며 단단해진 욕망을 잠자는 아내에게 토하려고 할 때
지연이 눈을 떴다.
“어머나? 지금 당신 이게 뭐하는 거예요?”
“가만, 가만있으라고. 당신이 소리 지르면 아이들이 잠에서 깰 수 있다고.
조용히.”
지훈이 다시 잔뜩 부풀어 오른 욕망을 지연이에게 들이밀자 지연은 결사적
으로 반항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지훈이 얼른 지연의 입을 막았다. 입으로 막았어도 비명은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때 독서실에서 막 집으로 돌아오던 아들 성훈이 안방
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살금살금 방으로 접근하였다.
“이년, 나는 네 남편이야. 너는 남편인 나의 말을 들어야 해. 알겠어?”
지훈이 가죽 채찍으로 지연이의 둔부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나쁜 새끼, 너는 남편이 아니야. 네가 언제 남편 노릇 제대로 했어? 매일
비실비실 대다가 문만 더럽혔지. 난 너처럼 비루먹은 강아지는 죽어도 싫
다고.”
악에 바친 지연이 아이들도 의식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 것이 주인 허락 없이 도망가려고 하면 안 돼지. 넌 나의 허락 없이 어디도 갈수 없어. 명심해. 이년아.” 지훈이 지연을 괴롭히면서도 끝까지 김승호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이년, 네가 아무리 나에게서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 쳐도 너는 내 것이야.
“야, 이 새끼야. 빨리 이 수갑 풀어, 빨리.”
지연이 악을 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도 지훈은 실실 웃으며 욕망을 채
워 나갔다. 문 밖에서 엄마 아빠의 싸우는 소리에 충격을 받은 성훈은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성미도 방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심하게 다투는 소리에 두 아이들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지훈은 지연이에게 하얀 욕망을 토해 놓고 잠이 들었다. 지연은 아침
이 되도록 한 숨도 자지 못하고 흐느꼈다. 지연은 다음날 늦은 오후까지 침대
에서 뒹굴며 어떻게 하면 남편과 가장 합리적인 이혼을 할 수 있을까를 궁리
하였다.
“김 차장, 이리 앉아요.”
“네 전무님, 고맙습니다.”
김승호는 아침 일찍 전무이사로부터 호출을 받고 전무실로 달려갔다. 전무이
사는 회사의 실질적인 실세였다. 대표이사는 주로 해외에서 일을 한다면 대표
이사의 동생인 전무이사는 국내 및 그룹 내 인사 관련 일을 총괄하다 시피 하
였다.
그 만큼 전무이사의 권한은 막강했다. 정계, 금융계, 재계, 법조계, 관계(官界)
등 마당발로 통하는 전무이사는 비록 기업인이기는 하나 외부기관에서도 무시
하지 못하는 인사였다.
“요즘, 업무에 수고가 많아요. 대외 협력업체들과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업무는
사운이 걸린 일이라 내 특별히 김 차장을 신경 쓰고 있어요.”
“아닙니다. 다 전무이사님께서 보살펴 주긴 덕분입니다.”
혹시 이 사람 잘 아나? 내 대학 동창인데 천하대학교 교수지. 지금 학계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친구야.” 지훈의 명함이 전무이사 손에 들려 있었다. 승호는 머리가 띵하면서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내 아침 일찍 김 차장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고 내 친구일로 불렀네. 자네
‘헉-, 이, 이 사람 명함이 어떻게 전무님 손에?’
“이 친구와 어제 술 한 잔 했는데 자네 이야기를 하더군.”
“네에? 제, 제 이야기를요?” 순간 김승호는 긴장하였다.
“이 친구가 종로에서 자네 승용차를 받았다며? 그 친구는 법 없이도 살 사
람이야. 앞으로 우리나라 학계에서 떠오르는 별이 될 사람이고, 내 부탁함
세. 적당히 보험처리하거나 합의를 보도록 하게. 차 운전 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있는 거 아닌가?”
김승호는 말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 네, 네, 전무님, 그리하겠습니다.”
“차암, 오늘 저녁에 그 친구가 나하고 자네를 초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
는데. 나는 선약이 있어. 그러니 자네가 내 안부도 전할 겸 만나서 술 한 잔
하게. 그리고 세상은 너무 빡빡하게 살면 안돼요.”
계셨더라면 자네가 좀 더 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김승호는 등에 식은 땀을 흐리고 전무실에서 나와 지하에 있는 휴게실로 내려갔다.
“네에, 잘 알겠습니다. 전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고맙네. 김 차장, 이제 곧 승진할 때도 되었지? 자네 처 작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놈이 전무이사님과 그런 사이란 말인가? 세상 참 좁아도 너무
좁구나. 그러나 그놈이 우회적인 수법으로 전무님 입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
저의가 뭔가? 그리고 그놈이 어떻게 나의 정체를 알아냈을까?
그놈을 만나러 갈 때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늘 택시를 타고 갔고, 그놈에게
전화를 할 때도 공중전화를 이용하였고, 지연이 에게도 내가 별도의 전용
휴대폰을 사줘서 나의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었는데. 거참 이상한 노릇일
세......’
김승호는 두려웠다.
지훈과의 싸움에서 늘 공격적인 입장에 있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런데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자칫 잘못하면 이제까지 쌓아온 성이 순식간에 무너
질 수 도 있었다. 지훈이 전무에게 우회적인 수법으로 말을 하였다면 전무는
단순히 자동차 접촉사고로 알 고 있을 것이지만 만약에 지훈이 전무에게 자신
의 입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자기 합리화에 이용하였다면 김승호는 코너에
몰릴 수도 있는 입장이었다.
김승호가 자신의 아내 순지를 이용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는 속셈을 전무
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자신의 미래는 끝장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면 그만이지만 김승호는 회사에서 배운 기술과 노하우로 개인 사업
체를 차린 경우에도 회사에서 맺은 인맥들과는 절대적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수십 년간 쌓은 자신의 이미지가 지훈이
입을 잘못 놀릴 경우 김승호의 미래는 불투명하게 될 수도 있었다. 세상은 넓
은 것 같으면서 참으로 좁다는 것을 김승호는 뼈저리게 느꼈다. 독불장군은 있
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김승호의 등에서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아아, 혹시, 혹시 전무님이 내가 그놈에게 아내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고, 계속해서 그놈과 아내의 부적적한 관계를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이 회사에 발을 붙일 수 없어. 전무가 나를
어떻게 볼까?
아내의 정조를 팔아 돈을 챙기려는 파렴치한 놈으로 볼 게 뻔한데. 정말 환장
하겠구나. 그리고 내가 그놈의 아내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는 것 까지 전무가
알고 있다면 난, 난 이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당할 것이야. 어쩌면 좋을까? 미치
겠네......’
김승호가 망상에 빠져 있을 때 승호의 휴대전화가 진통했다. 처음 보는 번호
였다.
‘혹시 지연이 남편? 가만,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김승호의 휴대전화가 계속 진동하였다. 휴게소 여직원이 김승호에게 눈치를
주었다.
“여보세요? 김승호입니다.”
“아, 김승호 차장, 오랜만이오. 잘 있었소?”
김승호는 순간 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지훈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던 그 비굴한 태도가 아니었다.
‘김승호 차장?’
“누구세요?”
“나, 지연이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김차장, 혹시 전무이사에게 내 이야기 들
었지요?”
“아, 네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 동안 별일 없으셨고요? 죄송합니다. 자주
안부인사도 못 올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저어, 김차장, 오늘 저녁 기간 좀 내주시오. 내가 김 차장에게 저녁을 대접
하고 싶어서요.”
“네네, 고맙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대접해야죠.”
김승호가 전화 통화를 끝내기도 전에 지훈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 다. 김승호는 테이블을 탁탁 치면서 노발대발하였다. 휴게실 직원이 김승호의 이상행동에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여섯시에 K호텔 지하 한정식 집에서 봅시다.”
“이런, 이런 개자식을 보았나.”
전화를 끊는 걸보니 나에게 대항할 충분한 힘이 있다는 건데. 도대체 저놈이 무엇을 믿고 나에게 이리 무례하게 구는 걸까? 전무 하나만 믿고 그렇게 무례 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지연이, 지연이가 그놈에게 모든 것을 탈어 놓은
‘아아, 보통 놈이 아니구나. 분명 저놈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하대를 하고
건가?’
김승호는 물 잔을 단숨에 비웠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지연이는 그놈을 경멸하고 있어. 절대 나와의 이야기
를 그놈에게 모두 털어놓을 리가 없어.’
김승호는 지방에 있는 협력사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회사에서 나와 바로 지
연이를 호텔로 불러냈다.
못해. 난 자기하고 통화해도 자기가 사준 전화기로 하잖아. 그리고 우리는 꼭 낮에 만났잖아. 서울 시내도 아니고 택시를 타고 서울 외곽으로 나가서 식사
“자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남편이 어떻게 우리사이를 알아? 절대 알지
하고 호텔가고......”
“우리 그이가 자기를 절대 알 리가 없어. 안심해 자기야.”
‘이런, 이런 빌어먹을 여자들이란 이렇게 단순하다니까. 이러니 여자들은
복잡한 일에 한계가 있는 거야. 지금 제 남편이 나와의 어떤 관계인 줄도 모르
고 태평하게 있으니 원. 지연이는 말을 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그놈이 어떻게 나의 정체를 알아냈을까? 도대체......’
“자기야, 그저께 글쎄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
“아저씨? 아니 교수님께서?”
“응, 그 고상한 교수님께서 말이야. 글쎄.......”
지연이는 지훈의 변태적인 성도착증에 대하여 시시콜콜한 것 까지 이야기 하였다. 지연이는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 지 이야기 중간에도 깔깔거리며 웃 기도 하고 지훈의 가학적 변태행위를 흉내 내기도 하면서 떠들어댔다. 그러나 지연이의 이야기는 하나도 김승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연이
“글쎄? 어떻게 했는데. 우리 예쁜 지연이를......”
김승호의 단단한 가슴을 파고들면서 김승호의 욕망을 지분거렸다.
‘혹시, 지금 내가 이 여자하고 호텔에 든 것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아아,
무서운 놈이로다.’
김승호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었다.
나와. 알았지.” 나 좀......” 김승호는 지연이의 요구도 무시한 채 호텔에서 빠져 나왔다. 김승호가 호텔 에서 나왔을 때 검은 안경을 쓴 젊은 사내 두명이 김승호가 택시를 타고 시야 에서 사라질 때까지 주시하고 있었다.
“자기야, 왜 그래? 왜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나 이제 시동이 걸렸는데.”
“지연아, 얼른 나가야해. 빨리 옷 입어. 그리고 나 나간 뒤에 십분 있다가
“승호씨, 나, 나 좀 어떻게 해주고 나가. 나 지금 열 받았다고. 응, 자기야.
“치이~~, 도대체 남자들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갑자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왜 그러는 거야.”
지연이는 투덜거리며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자위
로 욕망을 식히긴 하였지만 대변보고 난 뒤 밑을 닦지 않은 것 같아 찝찝한 기
분으로 호텔을 빠져 나왔다.
당연히 로비에서 기다릴 줄 알았던 김승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연
이 아무리 기다려도 승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승호가 사준 지연이의 휴
대 전화가 울렸다.
“승호씨, 어디야. 객실에서 먼저 빠져 나왔으면 로비에서 기다리지 않고서.”
“여보, 나요. 당신 지금 어디야? 집 아니야?”
“어머나, 다, 당신이 어떻게 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지훈이었다. 지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심장이 벌렁거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김승호에게는 끝내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지연은 한 시간쯤 로비에 앉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아침 일찍 학교
간다고 나간 지훈이 거실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여보, 아침에 어딜 다녀오는 거야? 방학기간이라 대충 일마치고 왔어.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지연에게 물었다.
“아, 그래요? 경진이. 경진가 좀 보자고 해서 경진네 집에 다녀왔어요.”
“그 친군, 잘 있고? 그 친구 남편은 늘 해외에 있다면서? 그 친구 남편 이름이
승호인가? 그런데 어떻게 아침에 집에 있나보군.”
“당신 그런데,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어요?”
지연이 간신히 물었다.
가니까 당신 책상에 휴대폰이 있어서 누구 거냐고 물었더니 지배인이 당신 거
“당신은 공사다망 하니까 전화 두 개를 쓸 수도 있겠지. 언젠가 낮에 카페에
라고 하더군. 그래서 알았어.”
“그래요?”
지연은 두 개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다보니 김승호가 아닌 사내들과 은밀히 만
날 때 김승호가 사준 전화기는 카페에 두고 다녔다.
“여보, 나 아직 아침도 못 먹었는데......”
“그, 그래요? 그럼 기다리세요. 금방 차릴게요.”
지연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아침밥상을 차렸다.
“당신은 안 들어?”
“전, 생각 없어요. 당신이나 드세요.”
지훈은 느긋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지연이를 침대로 잡아끌었다. 다
른 때 같으면 반항을 했을 지연이 지훈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
분고분 했다. 지연의 손과 발에 으레 수갑과 족쇄가 채워지고 아침부터 아
파트 10층에서 은은한 신음과 비명이 새어 나왔다.
늦은 오후까지 지훈은 지연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거의 초주검이 되다시피 한
지연이 카페에 나온 시간은 오후 6시가 가까워서였다.
“김차장, 먼저 이것 좀 보시오. 그리고 오늘은 혼자 나왔지요?”
K호텔에 승호가 정확히 6시에 나타났다. 지훈이 먼저 나와 있었다.
“이게 뭐죠?”
잔뜩 주눅 든 김승호가 지훈이 내민 서류 봉투를 바라보며 지훈의 눈치
를 보았다.
끼고 대낮에 호텔 드나드는 사진이고, 이건 당신이 내 마누라와 그 짓하는 비디 오테이프지. 여기 이것은 김 차장이 내 마누라 만난 일시, 장소, 행위
“이건, 김 차장이 내 마누라와 키스하는 장면이고, 이건 내 마누라와 팔짱
등이 상세히 적혀있는 자료고......”
김승호는 얼굴이 금방 하얗게 변했다.
“교수님, 어떻게 이런 자료들을......”
“이게 다 당신이 나한테 전수해준 방법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오. 내 친구
가 김 차장 상관이니 친구와 이 비디오 테이프를 감상하면 엄청 재미있어 할
거야.”
지훈은 콧구멍을 쑤시며 거들먹거렸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제가 교수님을 몰라 봤습니다. 용서
하십시오.”
김승호는 지훈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허허, 이거 왜 이러시오. 점잖은 대기업 김 차장님께서.”
지훈은 소주 한잔을 따라서 김승호에게 주고 건배를 하자고 하였다. 김승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지훈을 따라하였다.
“교수님, 제가 졌습니다. 저와 있던 모든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님아 일언은 중천금을 위하여.”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