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10. 1. 16. 20:41

 

 

 

 

             

                

 

        

  

 

 

 

 

           동행(5)

 

 

                                                                                                                                                                        - 여강 최재효

 

 


 

 여태껏 외출하였다가 한 번도 아침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아내 순지의

행동에 분명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 김승호는 아내의 뒷조사를 시작하였다.

거금을 들여 아내의 휴대전화를 복제하여 그때그때 아내의 휴대전화로 들

어오는 문자의 내용을 모두 기록하였고, 통화내용까지 빠짐없이 수첩에

적어 놓았다.

 

 김승호는 흥신소에 의뢰하여 아내가 지훈을 만나는 장소에 미리 나가있도

하여 두 사람이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자료를 확보토록

하였다. 그러나 한두 달은 승호가 바라던 장면의 사진은 찍히지 않았다. 김

승호가 애타게 바라던 사진은 순지가 지훈과 밀애를 즐기기 시작한 지 3개

후쯤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내가 지훈과 팔짱을 끼고 러브호텔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진이었다. 김

승호는 결정적인 사진을 확보한 뒤에 순지와 결혼한 이후에 장만한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집과 부동산에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아내 모르게 처분하

기 시작하였다. 순지는 남편이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순지는 사흘에 한번 꼴로 지훈을 만나고 있었다. 그때마다 김승호의 손에

민망한 사진과 비디오로 촬영된 필름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물론 두 사

람이 만나는 시간, 장소, 행동 등이 흥신소 직원에 의해 세세하게 보고되고

있었다. 승호는 아내를 만나고 있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며칠후 아내를 만나고 있는 사내가 유명대학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승호는 충격을 받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잘난 사내를 아내가 만나고 다닌 다는 사실에 분노와 질투를 느끼면서도 왜

아내가 지훈을 만나 밀애를 즐기게 되었는지 원인을 분석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승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아내에게 잘못한 게 없다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복수의 방법을 연구했다. 처음에는 자신도 대기업 중견간부

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지훈이 근무하는 대학교에

찾아가 지훈을 두들겨 패면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면 화가 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너무 유치할 뿐더러 그간의 마음 고생과 물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시 장고(長考) 끝에 김승호는 지훈의 아내가 어떤 여인인지 궁금했다.

흥신소 직원은 승호의 궁금증을 금방 해결해 주었다. 승호는 지연이 운영하

카페를 찾아가 매너 좋고 돈 잘 쓰는 재벌 2세처럼 행동하였다. 이틀에

한번 꼴로 찾아와 비싼 술을 마시고 지연의 미모를 칭송하는 승호가 미연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지연이의 미모에 반한 김승호는 지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

순지보다 월등히 뛰어난 미모를 지닌 지연에게 김승호는 서서히 빠져들었

다. 김승호는 아내에게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을 지연에게 느끼면서 자신

지훈이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김승호는

지훈이 지연이를 만나게 해준 데 대하여 속으로 고마워 하기도 했다.


 김승호는 며칠을 두고 고민하다가 아내와 지훈의 불미스러운 장면이 담긴

사진과 기록을 정리하여 지훈이 근무하는 대학교로 발송하였다. 물론 발신

자의 이름과 주소는 타인의 가상의 인물이었다. 지훈은 큰 충격과 함께 순

지를 의심하였다. 순지가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기 위하여 남편

과 짜고 음모를 꾸민다고 판단하고 순지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다그쳤으나

순지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순지는 분명 남편이 한 일이라고 판단하였지만 남편에게 사진을 들이

대며 따질 수도 없었다. 사진을 보낸 사람이 가명이라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전달되고 승호는 지훈에게 정중하게 전화

를 걸었다. 


 “교수님, 사진을 보낸 사람입니다. 저녁에 잠시 뵈었으면 합니다. 제가

학교 근처로 6시까지 가지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일방적인 전화를 받고난 지훈은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둘 거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아아,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구나. 어쩌지? 이젠 어찌해야 한단 말

인가?”


 지훈은 우황청심환을 복용하고 신경안정제를 투여했지만 좀처럼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지훈에게는 판, 검사, 변호사, 경찰, 기타 권기관에

근무하는 친구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떳떳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사진과 자료 잘 보셨지요? 나는 이순지 남편 되는 김승호란 사람입니다.”

 승호는 지훈을 학교 근처 공터로 불러냈다. 물론 근처에 승호의 후배들이

숨어 있었다. 승호는 지훈이 믿지 않을까봐 주민등록등본까지 떼어 와서

지훈에게 내밀었다. 잔뜩 주눅 든 지훈은 낚싯바늘에 코가 꿴 물고기에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

시오. 지훈은 승호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그 모습은 너무 가련해 보였다. 당당하던 지훈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 일어나십시오. 유명대학교 교수님께서 이 무슨 추태입니까?”

김승호는 지훈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지훈은 순지의 남편이 자신을

보면 달려들어 싸움을 걸어올 줄 알았다.


 “교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제 아내를 그 동안 잘도 데리

노셨으니 저도 교수님의 아내인 지연씨를 사랑해야 겠습니다.”
 “뭣? 뭐라고요? 제 아내를 사, 사랑하겠다고요?”

 지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

다.


 “왜요? 그리해야 공평한 거 아닙니까?”

 “승호씨, 안 됩니다. 그건, 그건 짐승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교수님도 짐승이고, 나 또한 짐승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가능한 일 아닙

니까? 만일 그것이 싫다면 그 동안 교수님이 데리고 논 아내의 몸값과 저의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승호는 당당하게 말하면서 지훈의 빤히 노려보았다. 마치 뱀이 먹이를

삼키기 전에 혼을 빼고 있는 모습 같았다.


 “승호씨, 좋습니다.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김승호는 지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경멸해 온 김승호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연

손에 넣기 위하여 승호는 인내하였다.


 “오십억 내십시오.”
 “네에? 오, 오십억씩이나요?”

 지훈은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 대충 오천만원 정도를 보상금으로 주면 마무

리 될 줄 알았다.


 “왜요? 너무 비싼가요? 아내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였습니다. 남

보물을 그리 흠집을 내놨으니 그 정도 보상금은 내놔야하지 않겠습니까?”

 김승호는 느물거리며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승호씨, 오십억이라뇨. 너무 과하십니다.”
 “그럼, 교수님의 아내를 저에게 넘기십시오. 그럼 모든 일이 깨끗하게 마무리

될 거 아닙니까? 어때요?”
 “승호씨, 그럼. 한 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좋습니다. 한 달 드리죠. 제 아내도 교수님이 사진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겠

죠? 이렇게 하세요. 사진은 교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보냈는데 돈

을 주고 잘 무마 하였다고요. 교수님이 제 아내를 안심시키세요. 그리고 계

제 아내 순지를 만나셔도 됩니다. 명심하세요.”

 김승호는 지훈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받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니, 저놈이 미친놈 아닌가? 제 아내를 계속 만나라니? 그러나 저놈이

아내를 알고 있다면 카페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저놈이 아내와 그런 짓까지?’

 지훈은 아내 지연이 그 동안 자신과 오랜기간 잠자리를 갖지 않은 사실을

생각 해냈다.


 ‘맞아, 한참 나이의 여인이, 그 것도 남자 없으면 견디지 못할 아내가 오랜

기간 나에게 아무런 시도가 없었다는 것은 그 놈과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반

이야. 참으로 우습게 되었군. 이건 완전히 스와핑이나 다름없군. 이 참에

서로 마누라를 바꿔? 내 사회적 지위로 봐서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고.

 

 돈 오십억은 그 놈이 그냥 불러본 가격일거야. 빌어먹을 놈, 일 이억이라면

어느 정도 감안해 보겠지만 오십억 이라니? 도둑놈 같으니.’

 지훈은 허탈하웃으며 순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주 가던  주점으로 나오라

고 하였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빠르게 흘러갔지만 여전히 태평했다.

연말이 되자 사람들은 괜히 바쁜 척 하였다. 여인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명동이나 강남 등 쇼핑가를 서성거리고 중년의 갈 곳 없는 남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부딪치면서 세상일을 안주로 삼았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지연의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지연은 아직 카페

나오지 않았다. 이경진이 던힐을 피워대면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

댔다. 지연이에게 연신 문자를 발송하였지만 지연에게서 답신은 없었다.


 “계집애, 한참 떡방아 찧고 있는 중인가? 아무리 떡을 쳐도 중간에 답장은

한번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벌써 5시가 다 되어 가는데......”


 이경진은 반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이경진은 요즘 사내들에

대하여 시들해져 있었다. 얼마 전 냄새가 심한 냉이 흘러 병원 갔더니 의사는

트리코모나스 질염(膣炎)으로 이경진에게 당분간 성적 접촉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너무 잦은 방사(房事)로 인하여 거기가 심하게 부어있고 물 사마귀 같은

것이 항문 주위까지 오톨도톨하게 생겨났다. 남편이 다행히 외국에 나가

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국내에 있었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었다. 아무리

부부 사이에 정이 없다고 하나 어쩌나 가뭄에 콩 나듯 부부행위는 하기 때

이었다.


 “승호씨, 나 이제 가봐야 해요. 연말이라 카페에 손님들이 많아요. 요즘에는

점심때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에요.”

 오전에 지연은 법조계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변호사 M을 만났다. M은

외모도 외모이려니와 다양한 테크닉으로 지연을 열락의 늪으로 잘도 인도했다.

 

 동시다발로 여러 사내를 만나면서도 지연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보다

새록새록 사내와 여자의 차이를 느끼면서 사내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보물을 캐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연이, 나, 아저씨하고는 어찌되어가고 있어? 이혼 안 해?”

 김승호는 촉촉이 젖은 지연의 젖가슴을 지분거리며 점점 식어가는 열기를

아쉬워했다.


 “이혼이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자긴 언제 하는데요?”


 “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혼할 준비가 되어있어. 자기만 이혼할 마

음만 확고히 먹는다면 내일이라도 법원에 이혼소장을 낼 거야. 그리고 참,

아저씨 앞으로 재산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전부라는 게 정말이야?”


 승호는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고 있는 지훈의 처사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연이 늘 곁에 있으니 그리 급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집은 그리 큰 집은 아니지만 당장 부동산에 매물로 내놔도 20억

이상은 갈 거예요. 그런데 요즘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서 내놔도

금방 임자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거 에요. 아마 모르긴 해도 요즘 집이 잘

팔려서 이혼하지 못하고 있는 부부가 서울에도 상당히 많을 거예요.”   


 “그 부동산, 자기가 아저씨하고 결혼한 뒤에 장만한 거잖아. 만일 자기가

아저씨하고 이혼하면 동산에 상당 부분을 위자료로 받을 수 있어.”
 “자기, 내가 받을 위자료가 탐나서 그런 건 아니죠?”


 “나도 당신 먹여 살릴 돈은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 어서 이혼하고 나한테 오

라고. 난 매일 이렇게 당신의 알몸을 껴안고 싶단 말이야.”

 승호는 아내 순지와 결혼한 이후 부동산 투자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강남에 아파트가 한 채였고, 서울 근교에 대지(垈地)도 좀 가지고 있어 시가

총액 30억은 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지연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카페가 들어있는 건물이 지연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승호에게 말하지 않았다. 요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나갔다. 상가건물은 지훈과 결혼 이후 지훈의 지원으로 취득하였다.

건물 취득 당시 지연은 지훈이 대학 교수의 신분을 이용해 은행권에서 상

당한 액수를 대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대출금을 모다 갚은 상태지만 남편 지훈의 도움이 없다면

취득하게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동산 명의를 자신의 단독 명의로 한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혼한다면 내 명의로 된 건물은 어찌한다? 반반씩 나눠야

하나?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그 건물이 어떻게 마련한 건데. 절대 안 돼.

그 건물은 나에게 피와 살 같은 생명이라고. 그 건물은 내가 늙어 죽을 때

까지 내 단독 명의로 있어야 해.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줄 필요도 없어.

나 죽은 뒤에는 아이들이 알아서 나눠 가지겠지.’

 

 지연이 여러 사내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중 김승호와는 내연의 관계

라고 있었다. 박철민이나 기타 다른 남자들은 자주 만나는 경우가

아니어서 지연마음에도 김승호를 가장 가까운 사이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연은 김승호와 지훈의 밀거래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훈도, 승호도

굳이 지연에게 두 사람의 밀거래를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고, 만약

지연이 두 사람의 밀약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에게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

하고 있었다.

 

 김승호가 지훈에게 최후 통첩을 보낸 뒤에 지훈은 승호에게 두 번이나

기한연기해 달라고 하였다. 명분은 아내와 이혼을 준비 중이고, 부동

산을 처분하려고 하여도 금방 처분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승호

는 날이 갈수록 답답해했다. 지금도 아내 순지는 지훈을 만나고 있었다.


 “자기야, 좀 더 있다 가면 안 돼? 난 바로 집으로 퇴근 할 건 데. 출장 간

다고 말하고나왔거든. 좀 더 있다가라. 내가 잘 해줄게. 응?”
 “어머? 여태껏 주물러 터트리고 또?”

 김승호는 다시 불끈 솟아오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지연을 지분거렸다.

 

 화려한 러브호텔 객실은 두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지연은 휘발유 같은 여자였다. 뭉근하게 있다가도 불길이 닿으면 금방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 같은 여자였다.


 “아아, 승호씨이.”

 지연의 모든 혈관은 빠르게 공급되는 혈액으로 인하여 터질 듯 하면서 세

포들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김승호는 다양한 기술을 총동원하여 지연을 열

락의 늪으로 몰아갔다.

 

 김승호의 혀와 두 손이 빠른 속도로 지연이 터질 듯한 육신 구석구석을 훑고

지날 때마다 지연은 쾌락에 몸부림치면서 비음(鼻音)을 연속적으로 토해냈다.

옆 객실의 손님들조차 모든 행위를 중단한 채 김승호와 지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화음에 귀를 기울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자기야, 가급적 아저씨하고 관계를 빨리 끝내야 해. 알았지? 나는 당신만

나에게 와준다면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다 줄 거야. 내 목숨도 당신에게 바칠

거라고.”


 “정말?”

 사워를 마치고 화장을 하고 있는 지연의 등 뒤로 승호가 다가와

지연을 꼭 안았다. 승호와 지연이 모텔에서 나올 때 밖은 캄캄했다. 그때

모텔 주변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두 사람이 큰 길로 나올 때 까지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서 자동차들은 거북이가 되

어 있었다. 지연이 카페들어서자 이경진이 반쯤 취한 상태에서 지연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계집애, 너 얼굴이 빨갛게 변한 것을 보니 애인하고 막 헤어진 게로구나?

나 오늘은 너하고 술 좀 마시고 싶었는데 도대체 주인이 나타나야지. 좀 전화

좀 받아. 아무리 애인의 품안이 그리워도 전화는 받아야지.”


 “왕비님이 초저녁부터 웬일로 혼자서 술을 마시고 계실까? 일벌들은 다 어디

가고?”


 “계집애. 이리 앉아봐. 너 박철민 사장하고 한판 붙고 오는 거니? 아니면

승호씨하고? 그도 아니라면 그 헐크호건 처럼 생긴 운동선수?

 이경진은 카페가 떠나가도록 깔깔 거렸다.


 “계집애도. 맞춰봐. 내가 누구랑 있다 왔는지?”
 “너 얼굴이 상기된 거 보니까 30분 전 쯤에도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으렷다? 거시기는 아직도 열기로 가득 차 있을 테고?”


 “얘, 너는 오늘 누구 안 만났어?” 새침해 있는 이경진에게 지연이 비아

냥댔다.


 “응, 나 요즘 휴지기야. 의사가 너무 기운을 많이 소진시켰다고 좀 쉬

었다가 그 짓을 하래잖니 글쎄.”


 “의사가 네가 애인이 열 명이 넘는 것을 다 알고 있나보구나?

 지연은 갈증이 나는지 맥주 한 병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나, 이제 일벌들 좀 정리하려고 그래.”
 “어머나? 웬일이니? 한 이십 마리쯤 거느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이 얘기

하더니? 벌써 지친거야? 우리 나이에 벌써 지친다는 것은 말도 안 돼 얘.


 “지연아, 이젠 남자고 싫고 돈도 싫어. 만약 내가 돈이 없더라면 저 일벌

들이 내 곁에 머물러 있으려고 할까? 아니겠지?”


 “경진아, 너에게는 미모도 있잖니? 서울서 한 미모 하잖아?”

 지연이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경진이 안 돼 보였다. 가만히 보니 친

구 이경진의 그 화려하던 미모는 어디로 가고 시든 할미꽃이 앉아있는 것처

럼 보였다.


 “미모? 얘 여자가 아무리 한 미모 한다고 해도 세월 앞에서는 별수 없는

거야. 요즘 아침저녁으로 거울보기가 두려워. 그리고 어제는 큰 아이가

울면서 나에게 말하더라.”

 커티샥 한 병이 거의 비어가고 있었다.


 “왜? 영호가 왜 울었는데?”
 “나에게 제발 저녁에는 집에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서럽게 울더라.

영호가 어쩌다 친구 집에 가면 친구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친구가족과

함께 먹을 때가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는 거야.

 

 난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느끼는 게 많았어. 내가 그동안 너무 아이

들에게 소홀한 게 아닌가? 깊이 반성도 했고.”

 이경진의 눈가에 잔잔히 물기가 번지고 있었다.


 “영호가 다 컸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
 “그 동안 그 애가 무척 쓸쓸 했나봐. 아빠는 일 년 내내 거의 밖 있으니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같이 저녁을 먹어본 일이 거의 없다는 거야. 하긴,

나도 남편 얼굴이 기억이 안 날 정도니 아이들이야 오죽하겠어.”

 

 이경진은 던힐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던힐이 타들어 가면서 발광하는

빨간 불꽃이 마치 인생의 절정기를 누리고 있는 이경진의 불꽃같은 삶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했다. 지연이도 한 개비 입에 물고 연기를 길게 뿜어

냈다. 두 연인이 뿜어내는 하연 연기는 욕망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 넘쳐나는 음욕을 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이 우리 두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지. 애 아빠는 결혼하고 나와

아이들과 오붓하게 저녁식사 한번 한 기억이 없어. 예전에는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빙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는 일은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

이었어.

 

 가장인 아버지는 자식들과 식사를 하면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위치와 체면

흡족하게 생각하였을 거고, 어머니는 자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밥과

음식으로 남편과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광경을 보며 한 남자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큰 기쁨을 누리며 여자로서 보람을 느끼셨을 거야.


 지금이 아무리 산업사회고 핵가족 사회라 하여도 밥상머리가 훈훈한

가정은 절대 무너지지 않지. 그저 못 배운 사람들이 일을 핑계로 밖에서

밥을 먹거나 피치 타인의 사람을 흠모하거나 헛된 것에 정신이 팔려 가정

소중함을 잊고 있어. 남자 없으면 단 하루도 못살 계집애가 눈물을 보이

것을 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네.

 

 아, 얼마 만에 아이들을 생각해보는 건가. 엄마 카페를 운영한다고 매일

새벽에 집에 들어오니 아이들 또한 아이들대로 나에 대한 원망이 많을 텐

데. 오늘은 일직 집에 들어가 봐야겠어.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네.‘

지연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에 두 아이 휴대전화로 안부 문자를 발송

보았다. 그러나 답신은 금방 오지 않았다.


 지연이는 지배인에게 카페를 부탁하고 이경진과 위스키 잔을 기울였다.

남편과 김승호, 박철민, 그리고 현재 만나고 있는 다른 사내들과의 떳떳

하지 못한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연이 남편과 이혼을 하고 김

승호에게 경우 자신이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을 따져 보았다.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물론 지훈과 이혼하고 김승호

에게 갈 경우 두 아이의 거취문제며, 지훈과의 재산 분배 그리고 김승호가

두 아이들을 맡을 경우 승호의 두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등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연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

내들 문제로 골몰해 있을 때 휴대전화가 깜빡거렸다. 지연이 얼른 문자를

확인해 보았다.

 

[ 엄마, 오늘 저녁에 엄마가 해주는 간식이 먹고 싶어. 치킨도 좋고, 빵도

좋고 아무거나 다 좋아. 엄마 사랑해 - 성미 ]

 지연이는 중학교 다니는 딸 성미의 문자를 받고 콧등이 시큰했다.


 ‘아아, 이 얘가 얼마나 엄마가 해 주는 간식이 먹고 싶었으면 이런 문자를

다 보냈을까?’

 지연은 아침에 아이들이 등교할 때 과분한 용돈을 주면서 부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돈 보다 지연이의 관심과 정

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