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3)
동행(3)
- 여강 최재효
“지연아, 너 요즘 재미가 좋다면서?”
“재미는 무슨? 계집애, 서울에서 멋지다고 소문난 사내들은 네가 모두
섭렵했다고 하던데? 동창 애들 사이에 네 소문이 자자해. 모두들 너를 부러
워하고 있어.”
지연이 늦은 오후에 자신의 카페를 찾은 대학동창 이경진과 코냑을 마시고
있었다.
이경진은 신흥재벌가에 시집가서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이경진이 주변의 시샘과 질투에도 불구하고 자주 남편과 다투고 있었다.
원인은 남편의 끊일 줄 모르고 터지는 연예인과 비서들과의 염문설 때문이
었다.
“어머? 계집애도. 부러우면 너도 해봐. 인생 뭐 있니? 죽으면 한줌 흙으로
돌아갈 텐데.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즐겨. 정조니, 도덕이니, 현모양처니
하는 남자들 입발린 소리는 땅에 묻어버려. 너, 작년에 음독자살한 미애년
봐봐. 뼈 빠지게 남편 내조해서 성공시켜 놓으니까 그 남자 퇴물 같은 배우
하고 딴 살림 차리는 거.
오죽하면 그년이 자살을 했겠니? 다 쓸데없는 일이야. 그저 돈 있고 젊음
있을 때 인생의 묘미를 만끽해야지 늙어지면 다 소용없다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란 노래도 다 있잖니. 그 노래가 딱 맞는 말이야. 우리 시어머니
보니까. 인생이 불쌍하더라. 곁으로는 고고한 척 하면서도 가슴 속에는
응어리가 있고 찬바람이 불고 있어.
시아버지는 회사 일을 핑계로 발정난 수캐처럼 일 년이면 십 개월 이상을
외국으로 쏘다니니 시어머니가 무슨 재미가 있겠니? 시어머니는 젊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모진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오년 전 덜컥 병을 얻어
일 년 내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으니, 그게 뭐니?
두 남자들은 하나 같이 제 세상 만났다고 천방지축인데. 늙어서 돈 많은
거 다 필요 없어. 남자들이 눈길도 안 주는데......”
이경진은 브랜디 잔을 비우고 던힐을 입에 물었다. 지연이 얼른 라이터를 들
었다.
“얘, 벌써 그런 처량한 소릴 하면 어떻게 하니? 한참 나이에......”
지연이 이경진을 보며 눈을 하얗게 흘겼다.
“지연아, 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게 뭔지 아니?”
“뭔데?”
지연도 던힐 한 가치를 입에 물고 이경진의 입을 바라보았다.
“제 기능 상실한 여자.”
“여자?”
지연이 이경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 나올 지 기대하였다.
“그래, 우리 같은 여자. 십대중반부터 월경하다가 어느 날 그게 딱 끊어지면
여자는 인생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여자들은 모르지만 남자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리지. 폐차장에 갈 때가 되면 수십 년을 아끼고 위해주던 주인도 애마 를 냉정하게 버리는 게 인심이야.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니?” 이경진이 담배를 쪽쪽 빨며 맛있게 피워댔다.
“경진아, 우린 아직 멀었잖아?”
“얘, 십년 세월 잠깐이다. 멀은 게 아냐. 금방 닥친다고. 여자에게 그게 끝
나면 여자들의 몸은 금방 쭈그렁방탱이가 되고 말지. 탱탱하고 허리까지
올라가 있던 엉덩이는 푹 퍼져 볼품없이 변하고, 젖가슴은 늙은 젖소의 그것
처럼 탄력을 잃고, 두덩에는 비린내가 폴폴 나거나 아래 숲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고.
그러니 아무리 얼굴에 분을 떡칠한다고 해도 사내들이 달려들겠니?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그러니까 젊을 때 살아있는 기쁨과 조물주가 인간
에게 하사한 최대의 선물을 마음껏 누리라고. 늙으면 죽은 송장이나 마찬
가지야. 여자들 후리는데 귀신같은 남자들의 눈치가 보통이 아냐.”
이경진은 지연의 대학동창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하였다. 학교를 대표
하여 미인대회를 나갈 정도로 타고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에 시집에서 낚아챘다. 이경진의 아버지 역시 중견 건설 회사를 운영
하고 있었는데 남편 가문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경진은 주변에서 쉬쉬하며 겨우 대학 졸업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패션모델 뺨칠 정도의 미남인 경진이의 남편은 늘 바빴다. 시아버지 회사
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이경진의 남편 주변에는 미모의 여성들이
늘 들끓었다. 사업차 지방으로 출장을 가거나 해외 출장을 가면 이경진의
남편은 젊은 여비서를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다.
처음 결혼해서 엄격한 시어머니 밑에서 신부수업을 받아야 했던 이경진은
새장 안에 갇힌 미숙한 한 마리 새였다. 10년을 하루같이 황금성 안에서 아이
낳고, 남편 뒷바라지 하며, 시부모 수발 거드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이경
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경진의 시어머니는 외부와 단절된 채 오로지 자신의 가문을 위하여 헌신
하는 며느리가 고마웠다. 그런 이경진이 10여명의 애인을 갖게 된 것은 아이
들이 중, 고등학교 다니면서 부터 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진 이경진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뒤늦게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VIP 여성 고객만 특별히 지도하는 수영반에서 20대 중반의 수영강사 K를
만나면서부터 이경진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남편 이외에는 다
른 남자의 손도 잡아 본적이 없는 이경진에게 K는 솜사탕 같은 남자였다.
처음에는 K가 업무상 수강생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로 신경을 써주는 K에
게 이경진은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다.
같은 반에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인들이 서너 명 있었고, 나이 어린
여인들도 있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점심
한 끼였지만 K의 반응은 놀라웠다. 두 사람은 다른 수강생들의 시선을 의식
하면서도 차차 가까워졌다.
우수에 찬 듯 하면서도 조각 같은 얼굴과 미끈한 몸매는 여자 수강생들의
정신을 빼놓기 충분했다. 이경진은 수영장 가는 일에 인생을 건 여인 같았다.
이경진 역시 비록 집에만 있었던 여인이지만 아직은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타고난 미모는 아무리 숨겨도 티가 났다.
K는 이경진을 여신처럼 떠받들었다. 강습이 끝나면 K는 이경진을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처음에는 전용기사가 이경진을 수영장과 집을 태워다 주었
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전용기사는 K로 바뀌었다. 이경진의 남편은 일 년이면
대부분을 해외를 전전했다.
두 아이들은 오로지 엄마인 이경진만 알았고 아버지는 하숙생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낮에는 황금성에 파출부 아줌마와 이경진만 덩그러니 남아 거대한
성을 지키는 신세였다. 집 지키는 강아지나 마찬가지였다. 이경진의 남편은
아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잦은 출장과 주변에 흔하게 널린 여인들과 아첨꾼들에 둘러싸인 채 이경진의
남편은 밤낮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이고 남편이면서 두 아이
들의 아버지인 남편을 이경진은 탓하지 않았다. 친정과 남편의 회사가 뗄 수
없는 관계도 이경진의 길고 긴 독수공방을 침묵으로 일관하게 하였다.
만약 이경진이 남편과 파경을 맞게 된다면 친정 또한 파산을 하게 되기 때문
이었다. 이경진은 십년 쯤 지난 뒤에 자신이 정략결혼의 희생물이었다는 사실
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경진의 팔다리에는 너무 많은 족쇄들로 채워
져 있었다.
한번 도둑질에 맛 들리면 아편과 같아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K는 이경진의
독실한 애욕의 분풀이가 되었다. 이경진을 통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아
버지와 남편은 업무를 핑계로, 시어머니는 병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이경진은 10년 가뭄에 물 만난 물고기나 마찬가지였다.
K와 잦은 정사(情事)는 금방 싫증을 느끼게 하였다. 그런 여인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던 K는 이경진에게 선배 S를 소개시켜 주었다. K의 선배는 상당한
재력가 였다. 이경진은 화려한 외모의 S에게 금방 모든 것을 주고 말았다.
수영장에서 기본 코스를 배우고 나서 이경진은 수영장에서 골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의 이틀간격으로 이경진은 S와 서울 근교의 골프장을 찾
았다. 골프를 치기 시작하면서 이경진은 많은 사내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현직 대학교수, 유명 탤런트, 고위 공직자, 법조인, 정치인, 의사,
변호가 등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인사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경진을 공주처럼 떠받들었다. 이경진은 여자가 미모와 재력 그리고 젊음
을 겸비 할 경우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경진이 눈만 찡그려도 사내들은 만사 제쳐두고 달려들어 이경진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었다. K와 S에 이어 이경진은 L, M, H, J, A, B, Y, P와 연쇄
적으로 접촉이 이루어 졌다. 이경진이 이들과의 관계는 너무 은밀하여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를 정도였다. 이경진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오직
지연이 밖에 없었다.
지연에게 이경진은 그날그날 전화로 사내들과 데이트한 내용을 자랑하듯
털어 놓았다. 처음에는 지연이 이경진의 이야기를 재미삼아 들어주다가
자신도 은연 중에 이경진을 화려한 남성편력에 호감을 가지게 되면서 오염
되고 말았다.
이틀 전, 지연은 남편 지훈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 샌님 같던 남편의 자존
심을 건드린 일이 강간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아무리 부부사이라도 배우자가
원치 않을 경우 강제적인 섹스는 강간이나 다름없었다. 지훈이 지금은 외국
에 나가 있지만 지연은 그날 밤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분명히 남편에게 뭔가 변화가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날 밤, 지훈은 지연의
두 발목과 두 팔목에 수갑을 채웠다. 지연에게 수갑이라는 물건도 생소할 뿐
더러 강단에 있는 남편이 상상도 못할 섹스 도구를 준비하였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연은 충격적인 그날의 장면을 떠 올렸다.
“이년, 내가 그 동안 네 년이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모르는 줄 알아?”
지훈은 지연이에게 수갑을 채운 후 옷을 몽땅 벗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라 지연은 미처 저항하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훈은 전혀 다른 남자로 변해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지훈은 지연에게 가죽 채찍을 휘둘러 댔다. 지 연은 욕망의 화신으로 급변한 남편에게 매를 맞으면서 한편으로 묘한 희열 을 느끼고 있었다.
찰싹 -, 찰싹 -.
“여보, 왜 이래요? 당신, 당신 학자잖아요. 학자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어요?”
지연은 소리를 질러댔지만 지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보, 이러지 말아요. 어서 불을 꺼요. 어서요.”
“불을 왜 꺼? 난 어두운 것은 싫다고. 오늘은 아이들도 없고 우리 둘만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래?”
지연은 낮에 두 명의 정부(情夫)와 격렬한 정사를 가진 뒤였기 때문에 혹시 은
밀한 부위에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앞이 캄캄했다.
지훈은 몇 번 더 가죽 채찍을 휘두른 후에 지연의 몸을 수색하듯 이리 저리 살펴
보았다. 이어서 지훈은 아내 지연의 은밀한 곳에 코를 들이 밀고 킁킁 거렸다.
지연은 승호와 철민이 토해낸 욕망의 씨앗이 몸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거란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흠-, 아주 잘 여물었군. 내가 그동안 바빠서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다른
놈들이 들락거렸군. 오늘밤에는 내가 당신을 지옥과 천당을 오가게 해주지.”
지훈은 다시 가죽 채찍을 휘둘러 댔다. 지훈의 얼굴은 희열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화신이었다. 전혀 다른 사내로 돌변해 있는 지훈을 지연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흑-, 여보. 방금 그게 무, 무슨 소리에요? 이상한 소리하지 말아요. 어서,
어서 이 수갑 풀어줘요. 어서요.”
지연이 악울 쓰며 거칠게 반항해 보았지만 남자의 완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동안 연구 밖에 모르는 샌님으로만 여겼던 남편이 욕망의 화신으로 변해
있었다. 채찍을 휘둘러 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지연에게 고통을 느끼게
해주면서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나는 어엿한 당신의 법적 남편이야. 남편이 마누라와 합법적으로 섹스를 하겠
다는데 뭐가 잘못 된 게 있느냐고?”
지훈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채찍을 휘둘러 댔다. 지훈은 지연에게서 다
른 사내의 흔적을 찾았다기 보다 그냥 넘겨짚고 아무렇게나 떠들어댄 것이었다.
지훈의 채찍 세례가 계속 이어지자 지연은 체념하고 지훈의 처분에 따르기로
하였다.
제풀에 지친 지훈은 어디서 익혔는지 모르지만 다양한 체위를 구사해 가면서
지연을 압박하였다. 지연의 뇌리에 지훈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쓰여지고 있었
다. 아내를 별의별 기괴한 행위로 지분거리며 밤을 하얗게 보낸 지훈은 새벽
녘에 아내 지연에게 욕망을 쏟아냈다.
“얘, 너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니?”
이경진은 혼자 코냑 길버트 한 병을 거의 다 비우다시피 하였다. 밖으로 자주
돌아다니면서 이경진은 자주 술을 마셨다. 거의 남자들과 마시는 술이었지만
처음에 약한 맥주 한두 잔이 이제는 독주 한 병 정도는 충분히 마시는 수준이
되었다.
곧 들어 올 거야.” 지연은 이틀 전 남편의 격렬한 행위를 떠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이경진이 비아냥댔다.
“응? 아무것도 아냐. 애 아빠를 생각하고 있었어. 지금 밖에 나가 있거든.
“네가 웬일로 지훈씨를 다 생각하니? 이혼할 거라며?”
“이혼? 해야지. 그런데 이혼이 마음 같지 않더라고.”
이혼을 하려고 결심한 게 벌써 백번도 더 돼. 이젠 이혼하는 것 보다 이혼하지 않고 잘난 사내들과 아기자기하게 사귀는 것이 더 짜릿하고 흥분 돼. 너도 이혼하지 말고 나처럼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신세계가 눈 앞에 있어." 이경진은 다시 던힐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이경진이 담배 연기를 길게
“계집애. 이혼이 그럼 밥 먹듯 쉬우면 누구나 하게? 나도 그 인간이 미워서
뿜어내면서 맛있게 담배를 피우자 지연이도 던힐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얘, 지연아. 결혼이라는 게 얼마나 구시대적 발상인 줄 아니? 아니지, 구시
대적 발상이 아니라 구석기시대, 아니야 아담과 이브가 탄생될 때 만들어진
아주 비합리적인 모순덩어리야. 생각해봐. 하나님이 여자에게 후세를 잉태
하는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인간 세계는 여자의 세상이야.
남자들이 아이를 낳고 집안 일 돌보고 아내의 뒷바라지 하는 일을 상상해봐.
얼마나 통쾌하니? 너 남자들 믿니?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가정을 이끌고 가족
들을 먹여 살린다는 미명하에 지금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저지르고 있는지
아니?
여자들은 집안에 꼼짝 못하게 가둬두고 자기들은 별짓 다하고 다니잖니.
나는 그런 아담의 시대에 남자들 위주로 만들어진 남녀관계에 강하게 부정
하고 싶어. 결혼한 남자나 여자 모두 배우자 보다 더 섹시하고 멋진 사람을
보면 호감 갖는데 당연한 거야. 그리고 그 호감이 심신의 묘한 반응으로 이어
지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런데 쓸데없이 부부는 일심동체니, 부창부수(夫唱婦隨)니 하는 구역질
나는 미사여구를 만들어 여자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한, 지금의 개떡
같은 결혼제도는 허물어야 해. 난 석기시대 모계사회가 부러워.
수천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가부장적 부계사회(父系社會)는 마음
에 안 들어.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남아메리카 아마존 정글에 여인국(女人
國)이 있다고 하잖아. 난 그런 여인국에 가서 살고 싶어. 물론 전적으로 여인
들만 산다면 재미없겠지.
이웃에 남자만 사는 나라도 있어야 하겠지. 그래야 남자 없이는 못사는
나 같은 여자들이 살아갈 수 있지. 남자와 여자의 나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드는 거야.
그 완충지대에 오일이나 십일 간격으로 만남의 행사를 갖게 하여 마음에
드는 남자랑 이틀 정도 함께 하면서 어떠한 짓을 하여도 전혀 도덕적으로
탓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언젠가 그런 유토피아가 만들어 질
거라고. 다만 내 젊음이 유지되고 있을 때 그런 천국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
울 뿐이야.“
이경진은 얼굴에 홍조를 띠고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말이 백번 지당
하다며 혼자 미소를 짓기도 하고 테이블을 탁탁 내려치기도 하였다.
“계집애, 너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잖아. 네가 여왕벌이고 너의 다양한 족속의
사내들은 오로지 너를 위해 존재하는 일벌들이잖니? 굳이 여인천하를 만들지
않아도 너는 이미 여인국의 여왕이야. 남들이 부러워하는 여왕이라고.”
이경진이 까르르 웃자 창가에 앉아 있던 남자손님들이 이경진이 앉아있는 쪽 으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여왕? 내가?”
“그래? 네 마음에 드는 일벌들을 불러 너는 별짓을 다하고 있잖아. 나도 너의
그런 절제되면서 방탕한 삶이 부러워 죽겠어. 정말이야. 너처럼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마음껏 살아보는 것도 세상 모든 여자들의 꿈일지도 모르지.”
이경진은 던힐을 빡빡 피워대면서 깔깔 거렸다.
“지연아, 너도 이미 여왕벌의 단계에 들어선 것 같은데? 아니니?”
‘그렇지. 나도 이미 여왕벌이 되었지. 너 만큼은 아니지만 내 주변에 다섯
명의 충성스러운 일벌들이 있으니, 나도 여왕벌 반열에 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
앙큼한 계집애. 저는 열 명이 넘는 일벌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별 해괴한 짓을 다
하는 주제에......’
아니니?” 지연은 이경진에게 은근히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 앞서서 축하를 해주겠다나 뭐라나.” 이경진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댔다. 이경진의 태도는 당당하면서 하찮 은 남자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마력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난 이제 여왕벌의 생리에 대해 배우고 있을 뿐이야. 진정한 여왕벌은 너
“지연아, 나 여기서 5시에 L을 만나기로 했어. 내일이 내 생일이잖니. L이
“경진아, 너의 일벌 중에 L이 가장 일을 잘 한다면서? 어떻게 일을 잘하는지
알려주라. 응?”
“계집애도. 소문 들으니 너 박철민 사장하고 잘 맞는다며? 잘 맞는 사람이
라고 간까지 빼주지 마라. 남자들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괜히 남자들에게
발목 잡히면 여자 인생 순식간에 박살나게 돼있어.
남자는 항상 목마른 상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뤄야해. 그렇지
않으면 여왕벌의 뒷덜미를 물려고 하지. L은 내가 알고 있는 사내 중에 최고
야. 그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몸이 뜨거워진단다.”
“L이 그 정도니? 그럼, 그 남자와 아예 살림을 차리지 그러니?”
“계집애. 여왕벌이 어떻게 일벌하고 살림을 차리니. 일벌은 내가 필요할 때
부르면 되는 거야. 내가 열 명의 일벌들은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납작 엎드리지. 난 그들의 시중을 받으면 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일벌들이 종종 착각을 하여 자기들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멍청이들 같으니. 난 그런 일벌들을 가차 없이 목을 물어
죽여 버리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위험해 지거든.”
“너 이제 보니 일벌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두 여인은 카페가 떠나가도록 깔깔거렸다. 창가에 앉아있던 남자 손님들은
두 여인에게 시선을 주며 괜히 실실 웃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