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울(4)
황새울(4)
- 여강 최재효
“우리 가족은 장호원으로 이사 간 뒤 처참했어요.”
“처참하다니요?”
“어머니는 이사 가고 얼마 안 돼 뇌경색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어요. 그렇게
자리에 누워 사오년 고생만 하시다가 어머니는 그만 세상을 뜨셨어요. 오빠도
얼마후 세상을 떴고요.” 미선이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나는 평소에 잘 피우지도
않는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갑자기 가녀린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생각하니 담배 맛도 달아
나 버렸다. 반쯤 피우다 만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볐다. 나는 수건을 꺼내
미선이에게 건넸다. 미선이는 한참 석고상처럼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다가 소주잔
을 연달아 비웠다. 미선이 혹시나 술기운에 돌출행동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
었다.
만약 그녀가 당시의 일을 상기하고 슬픔에 빠져 저 차가운 한강으로 곧장 뛰어든
다면 어떻게 구조를 하여야 하나, 혹은 미선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미선
이를 침몰시키면 그 이후에 어찌 대처해야 좋을지를 놓고 나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
해보았으나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내일 신문에 '술 마시던 중년 여
인 한강에 투신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미리 걱정도 해보았다.
나는 미선이 한눈을 팔 때마다 소주병에 마시던 물을 채워 넣었다. 어차피 혀의
감각 마비로 입 안에 들어오는 액체가 알코올인지 물인지 분간하기 힘들 거라고 판
단하였다.
“난, 난 정말이지 억울해요.”
미선이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였지만 난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잠시 당황하였다.
무엇이 왜 미선이를 억울하게 만들었는지 몰라 나름대로 공상에 빠져 보았지만
그녀의 입을 빌리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던힐 한 개비에
불을 붙여 그녀의 입술에 물려주었다. 빨갛게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모습을 그녀가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몰라도 나는 그녀의 입술을 주시
하며 다음에 또 어떤 폭탄 발언이 나올까 불안하였다.
맛있게 한 생명을 소진해 버린 미선이는 슬며시 내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선이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빗방울이 좀 전보다 굵게 변해 있었다.
우리 곁에서 술을 마시던 데이트 족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더니 마침내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우산도 지니고 있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하여도 아까 왔던
방향으로 걸어서 되돌아간다면 우리 둘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게 뻔했다.
할 수없이 나는 소주 한 병과 오징어 볶음, 오뎅을 주문하였다. 손님이 우리 둘
밖에 없자 우울해진 포장마차 주인은 시름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미선이는 내가
따라주는 소주에 전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주는 대로 비워버렸다. 이제는
술이 사람을 마시고 있었다.
“형님은 세상에 나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가고 말았군요.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리 되셨어요?”
“엄마요?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는 시름시름 몇 년을 앓다가 세상을 뜨셨어요.
우리 집안이 풍비박산 난거죠. 난, 그 책임이 황새울을 가족들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팔아버린 그 원수 같은 남자에게 있다고 봐요."
"원수같은 남자요?"
나는 순간 미선이 아버지의 무덤덤한 얼굴을 떠 올렸다. 밝은 인상은 아니지만 늘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 남자는 나중에 어머니에게 준 전답마저 몽땅 팔아갔어요. 우린 알거지가 되었
지요. 당시에 우리 엄마가가 법에 대하여 좀 알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마치 우리 집안의 이야기를 미선이의 입을 빌어 듣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미선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록 나의 심장은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그러면
서 미선이가 그 남자라고 지칭한 남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물론 그남자는
저승에 들었지만 말이다.
“얘야, 미안하구나. 네 아버지가 나에게 전답을 주었을 때 나나 네 앞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놨어야 하는 건데. 내가 그런 분야에 무지하여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구나. 너무 원통하고 답답하구나. 네 아버지와 정식으로 이혼한 것이 아니어서
언젠가는 너희 아버지가 회개하고 돌아 올 줄 알았는데, 그 믿음이 산산 조각 난 것은
물론 우리 생명줄 같은 전답마저 모두 처분하였다는 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니.”
“엄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외삼촌들이 주위에 계시니
모른 척 하시지 않을 거예요. 힘내세요. 어머니. 저와 오빠 그리고 동생이 있잖아요."
“그래, 고맙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대학도 포기하고 나 때문에 ......”
미선이는 몸져누운 어머니 때문에 집을 떠날 수 없었다. 일 년을 어머니 병간호를
하던 미선이는 어머니가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자 취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골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 다는 것은 인생을 좀 먹는 일이라고 판
단하였다. 이듬해 봄 서울에서 대기업체 다니는 큰 외삼촌의 주선으로 서울 영등포
에 있는 무역회사 경리부에 취직하게 되었다. 미선이는 면학의 꿈은 잠시 접기로 하
였다. 성실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인 미선이는 주위의 동료사원 뿐만 아니라 상
사들에게도 상당히 호감을 얻게 되었다.
일 년 정도 서울 생활에 익숙하게 되었을 때 미선이는 야간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면서도 마음은 늘 고향에 계신 병약한 어머니에게 가 있었다.
미선이는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필요한 돈 이외에는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시골에
있는 어머니 병구완에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외출할 수 있일
정도로 몸이 호전되자 장호원에있는 둘째 외삼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차차 집안의 분위기는 안정을 되찾아 가는 듯 했다.
미선이는 아버지에게 원한을 갖게 되면서부터 똑순이로 변모해 갔다. 고향에서
다방 마담과 살림을 차린 아버지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미선이 아버지는 미
선이에게 가장 모범적이면서 세상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각인되었었다. 그런
모범적인 아버지가 읍내에 있는 복덕방을 들락거리며 돈 맛과 여자의 분 냄새에 취
하면서 가족들과 담을 쌓게 되었다.
미선이 아버지는 수완이 좋아서 금방 목돈을 만지게 되었고 본인이 직접 복덕방
을 새로 열어 본격적으로 땅장사에 뛰어 들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돈
을 물 쓰듯 하여 읍내에서도 한량으로 통했다. 그런 미선이 아버지는 병들어 행동
이 부자연스러운 아내와 병신이 된 큰 아들에게 단 일원도 돈을 쓰지 않았다. 오로
지 새로 얻은 마누라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에게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미선이 아버지는 팔았던 황새울 논을 다시 사들였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동네
사람에게 도지(賭地)를 주었다. 미선이 아버지는 아버지와 좋지 않은 감정으로 서로
만나는 것을 꺼렸다. 어쩌다 읍내에서 아버지를 마주치게 되면 짙은 선글라스를 쓴
미선이 아버지는 일부러 아버지를 외면하거나 못 본 척 하였다. 오랜 고민 끝에 미선이는 복덕방으로 떼돈을 벌었다고 소문난 아버지를 찾아 갔다.
“아버지, 어머니와 저희들을 버릴 셈이세요? 어머니는 병든 몸으로 식당에서 품을
팔고, 오빠는 그 흔한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저 또한 아버지 때문에 제 인
생이 왜곡되어 가고 있어요. 불쌍한 어머니와 저희들에게 보상을 해주세요. 아버지
는 땅 장사로 떼돈을 버셨다고 서울까지 소문이 났다고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언젠가 네가 찾아 올 줄 알았다. 우선 네가 나로 인하여 네 꿈을 접어야만 했다니
미안하구나. 내 네 엄마 너희 형제들을 위하여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다. 전에
농사짓던 땅을 줘도 농사지을 사람이 없을 테니 내 장호원에 터전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네 엄마에게 주마.”
“아버지, 그렇게 돈으로 입막음을 하시고 저희들과 인륜을 정리하실 건가요? 저희
몸에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요.”
“네가 알다시피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단다. 네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어떻게 이해하시라는 거죠? 아버지가 엄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
림 차린 것을 이해해 달란 말씀이신가요? 풍비박산 난 제 꿈과 병든 어머니 그리고
돈이 없어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오빠의 갈가리 찢어진 마음의 상처는 어떻
게 하실 건가요?”
“......”
“말씀해 보세요. 누가 엄마와 우리 형제의 상처를 치유할거냐고요? 네에? 말씀해
보세요.”
“미, 미안하구나. 그래서 내가 네 엄마와 너희들에게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
겠다는 거야. 나로서도 이정도하면 네 엄마와 너희들에게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어. 이 못난 아비를 이해해 다오.”
“저는요. 죽을 때 까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슬픈 기억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요.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심신에 병
이 든 엄마,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저희 형제들은 앞으로 아버지와 모든 인연을 끊
고 살거에요.”
미선이는 아버지에게 찾아가 담판을 짓고 돌아오면서 통곡하였다. 며칠 후 미선이
아버지는 장호원에 다녀갔다. 미선이 어머니에게 위자료와 자식들 양육비조로 거금
을 놓고 가면서 어머니와 정식 이혼을 요구하였고, 미선이를 비롯한 자식들의 친권
을 포기한다는 각서도 놓고 갔다.
석 달 후 법원에서 이혼 결정판결문이 날아들었고 미선이 어머니는 앓던 이가 빠
진 것처럼 시원해 하면서도 아비 없이 세파를 헤쳐 나가야 할 자식들의 걱정으로
밤잠을 잊었다.
반신불수에서 약간 호전되기는 하였지만 고혈압과 협심증으로 이중으로 고생을 하
는 미선이 어머니는 이를 악물었다. 전 남편이 주고 간 돈으로 집을 장만하고 조그만
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자꾸만 악화되어가는 몸으로 인하여 어찌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 마지못해 세상을 살아가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우리 어머니를
통해 미선씨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어요. 이제 미
선씨에게 그 당신 급박하게 돌아갔던 미선씨 집안 이야기를 들으니 의문들이 해소
되었지만 답답하기만 합니다. 한 남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겪어야 하는 아
픔이 전류처럼 지르르하게 내 심장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 대충 미선씨 집안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는 미선씨와 나와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감정의 굴곡에 대하여 이해를 구하고 싶어요. 나는 미선씨에게 여러 통의 편
지를 보냈어요. 그러나 답장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받지 못한 상태구요. 지금
이라도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고 싶어요.”
“동신씨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지 못한 이유를 25년 만에 변명할게요.”
“좋습니다. 아마 이 밤을 새야 할 것 같네요.”
빗방울은 잠시 멈칫했다. 나는 소주 한 병을 주문하면서 식은 오뎅을 데워달라고
하였다. 주인은 자꾸 시간을 보면서 어서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눈치였
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 하였다. 인선이는 나보다 술이 센 것 같았다.
‘이 여자 그동안 술만 마셨나? 웬 술이 이리 센 거야? 이러다 내가 먼저 정신을 잃
고 쓰러지면 개망신인데.’
“동신씨, 그땐 너무 고마웠어요.”
“뭘 말인가요?” "그 남자가 우리 땅장사에 미쳐 날뛰고 다닐 때, 어느 여름 날 밤 동신씨가 황새울 우리 논에서 피를 뽑아 준 일 말이에요.”
‘아아, 그럼, 그때 미선이가 달밤에 피를 뽑던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더란 말인가?’
“나는 미선씨네 논에서 피를 뽑은 적이 없는데요?”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난, 그날 밤, 동신씨가 우리 논에 들어가서 피를 뽑는 광경을 목격하고 너무 고맙고 슬퍼서 집에 돌아와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울었
어요. 물론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콧날이 찡하면서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어요. 그날 달빛이 쏟아지는 논에 들어가 홀로 잡
초를 뽑는 동신씨의 모습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이제는 슬픈 추억이 되어
버렸네요.”
“아, 알고 있었군요. 난 아직도 그때 일은 나와 달님만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미
선씨와 미선씨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니 괜히 창피한 생각이 드네요.”
“엄마는 동신씨네 집안과 어색하게 된 일에 대하여 늘 가슴 아파했어요. 그 남자의
욱하는 성질만 아니었으면 나와 동신씨의 운명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죠. 엄마는
돌아 가실 때 까지 동신씨를 무척 보고 싶어 하셨어요.”
"나를?"
“그래요?”
“어머님은 달밤에 우리 논에 들어가 피를 뽑아주던 동신씨를 고마워하셨어요. 내
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때 그 일이 엄마에게도 잊지 못할 좋은 기억 남아있었을
거에요. 고향을 떠나 올 때 엄마는 동네 사람 모두를 저주하면서도 동신씨 한 사람
만은 축복해 주셨어요. 어쩌면 엄마 마음 속에 동신씨를 사윗감 쯤으로 생각하고 계
셨는지도 모를 일이에요.
편지 답장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안해요. 전 아직도 답장을 주지 못한 일이 가
슴 속 깊은 곳에 앙금으로 남아 있어요. 답장을 써놓고도 차마 용기가 없어 전하지
못했어요. 편지를 써놓고 열 번 아니 백번도 더 읽었답니다. 그러다 때를 놓쳤고 예
비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그때 내가 동신씨에게 쓴 답
장은 이성을 그리워하는 시와 노래였어요.” “나에게 무심해서 답장을 안 쓴 게 아니라 써놓고도 보내지 못했다니 미선씨 답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그 답장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때 그 시절이라? 좋지요. 세상시름 모두 잊고 우리 타임머신 한번 타보죠?”
[주] 도지 - 일정한 대가를 주고 빌려쓰는 전답이나 대지.
- 계속 -
수선화 - 꽃별(해금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