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9. 6. 20. 18:35

 

 

 

 

 

                                              

 

 

 

                                                    


 




 

                                   쩐

 

 

                                                                                                                                               - 여강 최재효

 

 

 

                                                                                



 

 [과장님, 재미있게 보셨는지요? 조금 전에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셔야겠지요? 아니면 과장님은 졸지에 세계적인 포르노 스

타가 되실 겁니다. 그리고 양손에 쇠고랑도 차야 하겠지요. 돈

이 입금되는 대로 모든 것은 없었던 일이 될 것입니다.]

 이씨의 휴전전화에 메시지가 떴다.


 이씨는 컴퓨터전문가와 상의하여 보았지만 외국에서 운영되고 있

는 사이트라서 국내의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하여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그는 여러날을 고민하였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아, 내가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보았구나. P가 결국 나를 파

멸시키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접근 하였더란 말인가? 만약 내가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찌될 것인가? 나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말겠지. 그놈들이 구체적인 내역을 가지고 있으

니, 그리고 사진이 성인 사이트에 공개되면 나는 졸지에…….


 나쁜 년. 내 제년을 그리 예뻐해 주고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는데 내 목덜미를 물다니. 십억쯤이야 내 그동안 긁

어모은 전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좋아, 윤회장과 하사

장 그리고 황회장에게 세무조사를 미끼로 돈을 뜯어내야지.’

 

 이씨의 전 재산은 부동산과 동산을 합하면 50억 원이 훨씬 넘

었다. 이씨는 다음날로 평소 호형호제하던 기업체 대표들에게

전화를 걸어 은근히 세무조사 운운하면서 돈을 뜯어내기 시작하

였다. 이씨의 협박에 대항하는 간 큰 사업가는 없었다. 일주일

만에 기업체사장들로 부터 목표 금액을 수금한 이씨는 돈을 입

금시켰다.

 

 그러나 P와 두 사내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이씨의 뇌물

수수혐의가 관할 경찰서 정보팀에 포착되면서 이씨는 경찰조사

를 받게 되었고 곧 구속되었다. 이씨는 징역 2년의 실형과 벌금

40억 원을 추징당했다.


 1년을 감옥에서 보낸 이씨는 정신착란 증세와 신경쇠약, 고혈

압 등으로 병보석이 허가되어 출감하였고, 가족과 주변의 싸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였다. 이씨의 나머지 재산은 C국

에서 귀국한 그의 처가 모두 처분한 뒤였다. 이씨는 수도권 역전

을 전전하가 이곳으로 흘러들어 간신히 병든 몸을 지탱하고

있는 딱한 지였다.

 

 “아, 저런 진짜 나쁜 연놈이네. 그러니까, 이씨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였구먼. 그저 남자는 여자 조심해야 혀. 이씨 부인도 지각

이 없는 여인이구먼. 남자가 무슨 돈 버는 기계인가? 요즘 기러기

엄마니, 기러기 아빠니 하는 정신 빠진 것들 때문에 이 사회는

점점 우습게 되어가고 있다고. 한국말도 다 배우지 못한 얼뜨기

아이들을 덜컥 외국에 보내놓고 걱정이 되니까 따라가는데, 그럼

국내에 남아 있는 남편이나 아내는 무료해서 어찌 살아가누?

 

 뭐니 뭐니 해도 신이 인간에게 내린 지상 최고의 선물은 섹스야,

섹스. K반장님, 안 그렇습니까? 한창 즐길 나이에 서로 헤어져서

살아간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요? 사람은 아무리 사

랑하는 사이라하여도 장시간 함께하지 않으면 멀어지게 되어 있

다고요.


 그것들이 아이들 뒷바라지한다고 이국에 가서 다른 이성을 만

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만 국내에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멍

청한 가장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지. 정말 이 나라에는

한심한 놈들도 많다고. 자식은 자식이고 나는 나야. 아직도 자식

에게 연연해하는 등신들이 한국에는 엄청 많다니까.

 

 이야기를 마친 이씨는 심하게 기침을 하였다. 기침하는 통에

선글라스가 반쯤 내려와 겨우 콧등에 결렸다. 김씨는 갑자기 기

러기 아빠, 엄마 이야기를 꺼내더니 침을 튀겨가며 열을 올렸다.


 K는 이씨에게 마침 지니고 있던 감기약을 주려고 하자 이씨

는 손사래를 쳤다. 대신 이씨는 한바탕 기침을 하고나서 소주를

따라 원샷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멀리 지나가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마친 이씨의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혔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은 이씨는 속이 후련한 듯 온화

한 낯빛이었다.

 

 한 여인 때문에 패가망신 당한 이씨는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아이들의 법적 후견인이 아내로 되어 있어, 집에 찾아갈 엄두

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는 이씨의 몸

상태에 K는 걱정이 되면서 매일 매일 이씨의 건강 상태를 살폈

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여도 이씨는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겠

느냐면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매일 술심으로 버티는 것 같았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K는 영구에게 완벽하게 사기를 당하고 너무나 원통하여 날마

다 알코올에 의존하다 시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순진

한 탓도 있었지만 자신을 등치기 위하여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한 영구를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K는 영구를 찾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기 시작하였다.

 

 동창 중에서 평소 영구와 자주 접촉이 있었던 동규를 찾아갔

다. 동규는 이미 K와 영구 사이의 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터

라 선뜻 영구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K는 영구를 찾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대고 며칠을 동규에게 매달렸다. 겨우 연

락처를 알아낸 K는 어렵게 영구를 만났다.

 

 “미안하다. 내 처음부터 너를 속이려고 한 게 아니야. 네가 운

영하는 뷔페를 좀 더 혁신적인 운영시스템과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하여 네가 확실히 그 업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로 만들어 주려고 했었어.”


 영구는 끝까지 K를 속이고 있었다. 뉘우치거나 진정으로 미안

해 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K는 영구를 만나면 죽이

려고 품속에 등산용 칼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영구는 얼굴이

누렇게 떠있고, 모습이 곧 죽을 것처럼 손을 덜덜 떨면서 자주

눈을 껌벅거렸다.

 

 머리는 백발로 변했고 깡마른 노인이 된 영구는 다방 아가씨

에게 따뜻한 물 한잔 달라고 하더니 무슨 약들인지 모르지만

약을 한움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는 프랜차이즈 회사의 영업

전무라는 그럴듯한 명함을 가지고 전국의 요식업소를 찾아다

녔다. 그는 K에게 했던 수법으로 수많은 요식업소 사장들의 등

을 치고 다니다가 사기혐의로 고소되어 실형을 살다가 병보석

으로 감방에서 나온 지 며칠 안 되었다고 했다.

 

 영구는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프랜차이즈 사장에게

동업을 제의 받고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영구의 주역할은 현재

잘 나가는 대형 가든이나 뷔페만 찾아다니며, 자신이 영업전무

로 있는 프랜차이즈에 가입시키는 일이었다.

 

 붙임성과 언변이 뛰어난 영구 덕분에 프랜차이즈 회사는 전

국에 걸쳐 여려 업체로 부터 상당한 돈을 뜯어낼 수 있었다.

일이 잘못되어도 조직 폭력배들과 연계된 프랜차이즈 회사에

대항하는 지방의 업주는 거의 없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프랜차이즈 회사는 자취를 감추었고, 영구는 주범으로 지목

되었다.

 

 회사에 이용만 당한 영구는 살고 있는 집을 저당 잡혀 경매로

넘어갔다. 영구는 회사가 한참 잘 나갈 때 프랜차이즈 회사 사

장으로부터 투자를 제의 받고 집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고향의 

옥답(沃畓)까지 은행에 저당 잡혀 투자를 하였다. 영구는 뒤 늦

게 재물운이 따른 다며, 좋아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모든 것을

날린 뒤 남은 것은 수억 원에 이르는 빚뿐이었다. K를 만난 영

구는 울먹였다.

 

 “친구야, 미안하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다. 방금 네가 보다

시피 나는 하루하루 이 약 기운으로 버티고 있단다.”

 친구와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쏟게 했던 영구의 화려

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고혈압, 당뇨, 협심증, 간경화를 앓고

있었다. 영구를 만나면 죽이겠다고 벼르던 K는 가지고 있던 돈

을 영구에게 주고 헤어졌다.

 

 벤츠를 몰며 걸어 다니는 명품관으로 통했던 영구의 초라한 모

습에 K는 통쾌한 웃음대신 눈물이 나왔다. 만나면 복수를 하려

고 벼르고 있었으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영구를 보고 눈물을 흘

리던 K는 인생무상과 이 세상은 악인(惡人)과 선인(善人)이 적

절한 비율로 유지되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음이 있으면 양

이 있고, 행이 있으면 불행이 있어 세상만사는 적절한 상태로 유

지 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리떼 같다면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기 때

문에 곧 멸종이 될 것이고, 반대로 세상만사가 공평하고 모두가

순한 양들 같다면 세상이 무료하고 사는 의미도 없을 것이며, 성

취하고자 하는 동기 또한 없을 것이다.

 

 세상은 더럽고 추한 것과 깨끗한 것이 적절한 상태에서 융합되

어 선과 악이 구분되어지며, 존재와 부재가 요철(凹凸)처럼 맞

물려야 피차의 가치를 느낄 수 있으며, 극과 극을 달려야 그 안

에서 평범이라는 그럴듯한 미사(美辭)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인간의 현상계에서 파악되는 그 상반된 철학과 진리의 바

탕에 돈이라는 명제가 따라야 모든 것이 설명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이 현대인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염병할, 소주를 넉 잔이나 마셨는데도 뼛속에 찬바람이 스며

들려고 하는가 보네. 오늘은 이불은 단단히 덮어야 할 거여.”

 나이가 가장 많은 박씨가 이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신의 자

리로 돌아가 자리를 잡으려고 일어나려 하였다.


 “아저씨, 소주 두병이나 남았는데 일어나시면 판이 깨져요.

한잔 더 하세요.”

  “아녀, 난 그만 하려네. 이씨 이야기 들으니 남의 이야기 같지

않으이.”


 “어르신 잠도 안 오실 텐데 한잔만 더 하시지요. 오늘은 성탄절

전야라 역사 안 이고 밖이고 할 거 없이 어수선할 거 같네요. 오

늘 드시는 술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니 사양하지 마시고 몇 잔 더

하시지요?”

 

 K가 박씨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막걸리를 따랐다. 조쌀해 보이

는 박씨는 소주보다 막걸리를 좋아하였다. 그는 소주를 좋아하는 

동료들에게 자주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나이는 제일 많지만 늘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었다.


 그는 술은 웬만큼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으면 통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도 하고 시도 읊어 주변 동료들에게 즐거움

을 선사하기도 하여 시인 가수로 통하였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역사와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

는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만 갔다. 김씨는 박씨에게  ‘고요한

밤’ 이나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불러보라고 주문하면서 박씨의

종이 잔에 막걸리를 가득 채웠다.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박씨

의 낡은 통기타로 집중되었다.

 

 “허허-, 이거 오늘 밤 곱게 잠들기는 다 틀린 거 같군.”

 박씨는 낡은 통기타를 마치 애인 다루듯 살살 만지며 줄을 골랐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박씨의 미성(美聲)이 역사에 울려 퍼지자 지나가던 행인들

은 잠기 멈춰 서서 박씨의 노래를 들었다. 박씨가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행인들은 박씨에게 지페와 동전을 박씨의 모자

안으로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오천원이나 만원권을 내려놓

기도 하였다. 동료들은 박씨의 캐럴 송을 들으며, 각자 가족들

을 생각하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박씨는 이어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불렀다. 나이가 지긋하고

거의 매일 술로 살다시피 한 노인의 입에서 가사 한마디 틀리지

않고 아름다운 노래가 나오자 동료들은 박씨의 정신력에 감탄

하였다. 30분 이상 여러 곡의 노래가 연주되었고 많은 돈이 박

씨의 모자 안에 쌓였다. 그 돈은 행인들이 성탄 전야를 맞이하여

역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노숙하는 처지를 생각해서 기부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예수님 탄신을 축하하며 한 잔 더 해야겠는 걸…….”

 박씨는 노래로 번 돈을 K에게 전달하면서 오늘 밤은 역사에 있

는 동료들에게 술이라도 한잔씩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다. 김씨

박씨 덕분에 성탄전야 파티는 풍성해 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역사에 항상 얼굴을 내미는 행여자들 뿐만 아니라 역사 이곳저

곳을 떠돌며 혹시 행인들이 적선이나 해주지 않을까 두 눈을 번

뜩이던 축들까지 몰려들었다.

 

 박씨는 자신이 노래해서 번 돈으로 늘 춥고 배고픈 행려자들

에게 간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 뿌듯해 했다. K와 일

행은 박씨의 기타 연주에 감탄하면서 성탄 전야를 풍족하게 해

준 박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소주, 막걸리, 맥주, 통닭, 피자,

음료수가 노숙자들을 잠시나마 넉넉하게 해주었다.

 

 “오늘밤은 나도 귀동냥을 공짜로 하였으니 그 보답을 해야

겠네.”

 “어르신은 기타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셨잖아요.

 K와가 웃자 김씨, 차씨, 이씨, 허씨도 따라서 웃었다.


 역사 한쪽이 술 한 잔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면서 K를

비롯한 일행들은 박씨의 입에서 과연 어떤 기막힌 이야기가 나

올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오늘처럼 기쁜 날 여러분의 귀를 더럽히게 될까 걱정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러한 일들도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해서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그러나 제 이야기는 여러분이 판단해서

들으세요. 제 이야기와 내가 사업을 경영할 때 목격한 이야기

입니다.”

 

 막걸리에 기분이 좋아진 박씨는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박씨는 수도권에서 오랜 기간 숙박업에 종사하였다. 최근 들어

젊은 데이트 족들과 바람난 기혼남녀들이 많이 찾는 곳에 모텔

네 개를 소유하였는데, 돈 버는 일은 누워 떡먹기였다. 네 곳

모두 도심의 요지에 위치한 모텔이라 밤낮으로 손님들로 북적

였다.

 

 예전에는 손님들이 밤 10시 이후에 술이 거나해서 모텔을 찾

았는데, 요즘은 아침 10시 경이 가장 붐볐다. 아침 손님 중 여성

은 직업이 없는 듯 하며, 남자들은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

들이 많았다. 남자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오는 여인들은 대부분

업소에 종사하거나 전업 주부로 보이며, 최근에는 미혼의 젊은

아가씨들도 상당수 있었다.

 

 사적인 비밀을 절대 보장 받아야 하는 커플들은 짙은 선글라

스와 가발은 필수이며, 한 업소를 세 번 이상 찾지 않는 철저함

을 보였다. 박씨는 갑자기 이야기 도중에 좌우를 살피더니 목소

리를 낮췄다.


 “모든 업소가 다 그런 건 아닌데, 이런데 종사하다 보면 생포르

노 감상을 자주 할 수 있어. 이런데 종사하다 보면 그런 거 보는

일은 기본이야.”

 

 박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모텔 네 곳 중에 시설이 가장 잘 갖추

어진 두 모텔을 선정하여 호화로운 객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

하였다. 손님 중에 외모가 뛰어나거나 젊은 커플들이 들어오면

몰래 카메라가 설치된 객실로 안내하여 박씨는 밀실에서 커플

들의 원초적 행위를 녹화하거나 감상하여 왔다.

 

 의심이 많은 중년들은 객실에 들어서면 대부분 객실의 전등

을 끄거나 화장실 전등만 켜놨다. 그들은 혹시 모를 몰래 카메라

에 주의를 하는 반면 젊은 커플들은 샹들리에의 조명을 밝게 하

거나 색조 전등을 켜놓고 성스러운 작업을 하였다. 주말에는 희

한한 일도 많았다.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는 두 커플이 이삼 분 간격으로 서로의

객실에 드는 경우가 있는 데 나중에 객실을 빠져 나갈 때 보면

여자 파트너의 상대 남자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또 어느 때는 중년의 여성이 아들 같은 파트너를 데리고 모텔을

찾는 우도 있고, 70이 훨씬 넘는 여인이 새파란 남자와 함께

객실에 드는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커플은 객실에 들더니 업소 아가씨를 불러 달라는 경우

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황당한 일은 불륜으로 보이는 커플 중 한

참 일을 치르다가 여자나 남자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구급차로

실려 가는 경우였다. 그럴 경우 상대방은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가관이었다.

 

 “히야, 박씨는 기가 막힌 장면들을 많이 보았겠군요? 정말 부

럽습니다. 객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몰래 카메라로 녹화를

나요?”

 

 “아니지, 몸매가 뛰어나거나 얼굴이 반반한 여자 손님이면 그

렇게 하는데, 대부분은 눈요기만 하고 말어. 내가 그동안 녹화한

커플들만 해도 수천 쌍은 넘을 거야. 자자, 지금까지는 전초전

에 불과한 이야기 였어. 내가 여기까지 흘러들게 된 사연을

개하지.”

  박씨는 또 뜸을 들였다. 성질급한 김씨는 마른 침을 넘기며

빨리 박씨 입이 떨어지기를 기대하였다.


 “박씨 아저씨, 얼른 이야기 해봐요. 전 초전이 아주 흥미로워

서 죽여주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다혈질의 김씨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며 박씨

에게 독촉하였다. 모두 술에 취한 듯 했는데도 두 눈에 불을 켜

고 곧 이어질 박씨의 요지경속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

었다.

 

 “자네들 절대로 여자들을 믿지 마시게. 하기야 지금 노숙자로

있는 상태니 믿고 자시고 할 여인이 없어 다행이지만.”


 박씨는 혼기를 놓쳐서 늦장가를 가게 되었다. 유통업에서 돈을

모은 박씨는 숙박업에 뛰어 들었다. 개발붐을 타고 수도권에 신

도시가 들어서는 바람에 덩달아 숙박업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박씨는 숙박업에서도 대박을 터트렸다.

 

 어느 정도 숙박업에 자신이 생긴 박씨는 모텔 운영을 아내에

게 일임하고 자신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하여 국내는 물

론 동남아를 누볐다. 박씨가 모텔 운영을 아내에게 맡긴 것이 화

근이 되고 말았다. 근무자흑(近墨者黑),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면 회색빛으로 질되기 십상이었다. 매일같이 불륜 커플들이

모텔에 드나드는 것을 보고 박씨의 젊은 아내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사업으로 늘 바쁜 박씨는 아내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를 단순히 모텔을 운영하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순진한 여인

으로 생각하였다. 일 년이면 서너 차례 부부로서 의무를 치룰 뿐

이었다. 차차 외부에 시선을 주기 시작하던 박씨의 아내는 새로운

남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는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전국

다니며 땅 장사를 하는 질이 안 좋은 건달이었다.

 

 말이 땅 장사지 친구들이나 묘령의 여인들과 놀러 다니며, 한 세

상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다. 박씨의 아내는 박씨가 해외에 나가

있는 기간이면 늘 남자와 붙어 다녔다. 박씨와 사이에 아이도 없

는 처지라 박씨의 아내는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었다.

 

 박씨가 아내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이미 그의 아내는

부동산 사장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주 집

을 비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다가 차차 아내의 행동

이 눈에 거슬리자 아내와 말다툼이 잦게 되었다. 착한 줄 알았던

아내는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남자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사업을 한다고…….”

 박씨는 어느 날 부부싸움 중에 아내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

자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였다. 한번 시작한 손찌검은 부부 싸움

때마다 습관처럼 이어졌다. 박씨는 생김새는 그럴 듯 하나 그것

이 부실해 아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는 사업을 구상하고 현장을 누비며, 새로운 사업을 위하여

뛰어 다닌 결과 돈을 벌었지만, 아내에게 사내답지 못하다는 말

을 들어도 참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박씨는 아내에게 정부(情

夫)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부 싸움 도중에

박씨가 손찌검을 하여도 군소리 없이 묵묵히 참고 있는 아내

이상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의 지인으로부터 아내가 어떤 사내와 붙

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척이나 친구들

이겠거니 생각하였지만 또 다른 지인들로부터 아내에 대한 이

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박씨는 아내의 뒷조사를 흥신소에 의뢰하였다. 결과는 박씨

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흥신소에 직원이 보여준 사진은 다양

했다. 식당, 공원, 극장, 운동장, 백화점, 찜질방에서 아내는 정

부의 팔짱을 끼고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장면과 남자의

볼에 키스하는 장면 등 사진 속의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고 믿

기 어려운 장면들이었다.

 

 흥신소 직원은 뜸을 들이더니 또 다른 사진 수십 여장을 내

밀었다.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아내가 사내와 다정하게 호텔

이나 모텔로 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었다. 충격

을 받은 박사장은 당장 달려가 아내를 경찰에 간통죄로 고소

하고 싶었으나 흥신소 직원은 서두르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

다며,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씨가 사진을 달라고 하자 직원은 나중에 더 많은 물증을

확보한 뒤에 모두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직원은 박씨에

게 웃돈을 요구하였지만 박씨는 당초에 정한 계약금을 들먹이

며, 요조건을 들어주지 않았다. 흥신소 직원은 박씨와의 계

조건을 어기고 박씨 아내에게 접근하여 양쪽으로부터 돈을

우려냈다. 물론 거액을 조건으로 사진은 모두 박씨 아내의 손

에 들어갔다.

 

 남편이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씨의 아내

는 정부와 짜고 박씨를 정신병자로 몰아갔다. 박씨 아내는 박

씨가 만취한 때를 이용해 정신병원에 연락하여 박씨를 강제로

입원시켰다. 물론 박씨 아내와 정부(情夫)의 고단위 처방이

동원되었다. 정신감정서도 없이 박씨는 정신 병동에 영어(囹

圄)의 몸으로 전락했다.

 

 박씨의 아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신병원에 뇌

물을 주고 박씨를 철저히 파멸로 몰아갔다. 박씨의 아내는 모

텔 종업원들을 모두 돈으로 매수하여 박씨가 평소에도 이상

한 행동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가짜 진술을

받아냈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은 간단했다. 보호자 2인의 동

의서만 있으면 되었다.

 

 평소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박씨는 어디에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수전노라고 소문난 터라 형제자매로 부터도 일

년 내내 연락 한번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박씨의 아내는

그동안 박씨가 손찌검한 사실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놓고 병원

에서 진단서를 확보하여 놓는 등 미리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여 놓고 박씨의 손찌검

을 유도하는 등 자료 확보에 주력하였다. 졸지에 정신병자로

몰린 박씨는 어떻게 손 써볼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

이지만 박씨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자마자 박씨의 아내

는 박씨 소유의 모텔을 모두 처분하였다.

 

 박씨의 아내는 안심이 안 되었는지 박씨를 첩첩산중의 기도

원으로 옮겼다. 말이 기도원이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기

도원에서는 오로지 주먹만이 통할 뿐이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도원에 수용되어 있던 박씨는 정말로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 기도원에 있는 동안 이틀이 멀다하고 박씨는 구타를

당하고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박씨는 서서히 폐인이 되어갔고, 아내와 세상을 저주하며,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가슴에 병으로 남게 되었다. 기도원

에 수용된 지 4년이 넘는 어느 날 여름 밤, 박씨는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였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하여 산속에서 일주일을 숨어 지내다

모텔로 찾아왔지만 누구도 박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50

초반의 박씨는 4년 사이에 노인이 되어 있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텔은 이미 아내에 의해 남의 손에 넘어간 상태고 자신은

아내와 이미 합의 이혼되어 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법률적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재산과 아내는 남의 손

넘어가 있었다. 박씨는 아내를 찾아 수도권과 전국을 헤

매고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심신이 피폐해진 박씨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기타 하나 들

고 부랑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역을

배회하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은 생활

에 점점 익숙하게 되면서 지금의 역사로 흘러들었다. 박씨

는 이야기를 마치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인맥도 돈 있을 때 구축해놔야 해."



 “어르신, 깊은 상처가 있었군요. 저희들이 괜히 말씀해 달라고

조른 것 같습니다.”

 K는 박씨에게 미안해 하였다


 “아냐. 내 가슴 속 응어리 진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운 걸......”

 박씨가 이야기를 마치자 동료들은 우울한 기분을 풀자고 건배를

하였다.

 

 박씨가 번 돈으로 사온 술은 거의 다 떨어지고 안주도 과자 부스

러기만 남아 있었다. 차씨와, 허씨는 술에 취하여 종이 판지를 깔

고 비스듬히 누워 잠이 들어있었다. 이씨는 잠들지 못하고 쿨럭

거리며 가래를 뱉어내고 있었다.


 K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 내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앉아 있는 박씨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그는 길고 지루한

고행(苦行)을 끝내고 경지에 오른 수도승처럼 보였다.


 아내에게 하루아침에 수백 억대 재산을 빼앗기고 수년 동안 정

신병자로 살아야 했던 박씨의 전력에 비하면 K는 그나마 다행이

라고 스스로 위안하였다.


 새벽 2시가 넘어서자 젊은 사람들만 오갈 뿐 역사는 한산해 졌

다. 차씨, 허씨, 이씨, K는 박씨의 화려하고 슬픈 과거사를 듣

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부담감이 양 어깨

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김씨만 두 눈이 말똥말똥할 뿐 다른 동료들은 술에 취해 새우잠

을 자거나 버거운 운명을 감내해 내느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

(寒氣)를 견뎌내기 위하여 거적대기같은 신문을 겊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김씨만 전력을 말하지 않은 듯 하네.”

 K가 벌겋게 달아오른 김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체구의

김씨는 바늘로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 같았

다.


 김씨가 K의 빈 소주잔에 잔을 채우고 담배 한 대를 건넸다. 두 사

람은 묵묵히 담배만 빨아대며, 허탈한 시선을 역사 천정에 고정시켰

다. 이씨는 계속 쿨럭 거리며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두꺼운 종이 상자를 2중으로 바닥에 펴서 몸을 누이고 이불 이

나 신문지를 덮으면 그만이었다. 그나마 한데가 아니라 참을 만

했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운 김씨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남아있던

소주잔을 비우고 다시 담배 한가치에 불을 붙였다.

 

 “반장님, 집 생각나시지요?”

 “…….”

 김씨가 무거운 침묵을 깼다. 그 역시 성탄절을 맞이하여 가족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 바닥에 누워 찬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쪽잠을 자는 영혼들 마음이 편하랴.

 

 “김씨, 잠이 안 오우?”

 “네에. 마누라와 새끼들은 잘 있는지. 한걸음에 달려가 보고

싶지만…….”

 김씨가 말끝을 흐리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집이 가깝다면 내일 잠시 다녀오시지?”

  “이 꼴로 어떻게 집에 들어갑니까. 굶어 죽건, 얼어 죽건

여기서 죽어야지요. 반장님은 집이 멀어요?”

 K는 김씨의 말에 말이 없었다.



 ‘여기서 전철타면 1시간 내에 집이 있지. 그러나 무슨 낯으로

집을 찾아가나? 가당치도 않은 일이야. 나야말로 여기가 내 집

이려니 하고 지내야지. 별수가 없어.’

 혼자 주억거리던 K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김씨도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나보구먼?”

 김씨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그의 전력이 술술 쏟아질 것 같았다.

역사의 군기 반장 역할을 하느라 김씨는 본의 아니게 동료 행려자

들에게 무서운 척 하거나 냉정한 사람처럼 굴기도 하였지만, 본성

착한 사람이었다.

 

 “반장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전력을 이야기 했으니, 저

도 말씀드려야 하겠지요?”

 “너무 늦었는데 다음에 하고 눈 좀 붙이지.”

 K는 김씨의 사연을 궁금해 했던 것이 미안하였다.

 

 “아닙니다. 저도 제 속에 웅어리진 사연을 이야기해야 속이 시

원할 것 같네요.”

 “그래? 그럼, 해보시게나. 다들 잠들었으니 김씨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먼.”

 김시가 또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었다.

 

 김씨는 Y읍에 있는 소규모 금융기관에서 10여년 넘게 근무하던

은행원이었다. 본사가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닌 지방에서 자생한 단

위 금융기관으로 그 지역 유지들은 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

도 였다. 잘 나가던 김씨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주식이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백만 단위로 투자가를 하다가 몇 번 재미를

보자 간이 커지고 말았다. 백만 단위에서 천만 단위 얼마 후에는

억 단위로 단위가 급상승하면서 김씨는 인생을 건 건곤일척의 

박을 하고 있었다. 고객의 돈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하고 빼낸 돈은

다른 고객의 돈으로 메우는 수법으로 수년 동안 별 탈 없이 주

식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김씨는 한때 10억원 넘는 거금을 손에 쥐기도 하였다. 점점 욕심

커진 김씨는 주식에서 해외펀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S증권사의

펀드매니저를 알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C국과 V국의 펀드에 집중

투자하게 되었다. 김씨는 곧 재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얼마 가지 않아 쪽박이 나고 말았다.


 고객 돈을 빼돌려 시작한 투자가 예상치 못한 주식시장의 변동

으로 김시는 깡통을 차게 되었다. 당장은 자리를 보전 할 수 있었

지만 얼마 안 가 곧 횡령사실이 들통 날 것 같았다. 김씨는 잠적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거액의 고객 돈을 횡령한 사실을 알게 된

은행에서 김씨를 사법기관에 고발하였다. 그는 출금금지 조치와

함께 전국에 지명수배되었다.


 김씨는 전국을 떠돌게 되었다. 잠적한지 두 달 만에 김씨는

거되었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김씨 재산은 졸지에 고객들 돈을

횡령한 대가로 벌충되었다. 김씨는 정상이 참작되어 얼마 후 석

방되었다.

 

 “한 순간이었어요. 그때는 내가 곧 재벌이 될 것 같았어요. 욕

심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을 텐데

요.”

 김씨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좌우로 흔들었다.

 “김씨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먼. 그래, 부인과 아이들은 어찌

지내고 있나?”

  “모르지요. 저는 석방되자마자 전국을 떠돌며 빌어먹다가 이곳

으로 기어들었으니까요. 얼핏 들리는 소문으로는 아내가 가출하

여 어떤 놈팽이랑 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만…….”


 “아이들이 불쌍하구먼.” 

 이야기를 마친 김씨는 졸음이 오는지 고개를 반쯤 숙이고 벽

에 기댄 채 가늘게 코를 골았다. K는 돈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곧 생명선과 같은 것이기

에 돈이 없으면 그 사람은 곧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

지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도록 발명된 돈에 사람들은 노

예로 전락되어가도 있는 현실이 담담할 뿐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돈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젊

어서 돈을 많이 벌어 놔야 늙어서 고생하지 않고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간을 돈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렇다면 시간낭비 하지 않고 백년 이백년 사는 사람들은 부자

가 될 것이다. 논리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

지 않다.

 

 어떤 집단의 구성원들이 같은 해에 태어났더라도 40년이나 50

년 후에 보면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돈의 가지를 살펴보면 천차

만별이다. 똑같이 같은 액수를 지니고 있다면 무슨 역사(歷史)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인간의 도구로 만들어진 돈에 인간이 목을 매

고 있는 현실을 보면 주객이 전도(顚倒)된 상황을 넘어 돈이 주인

의 목덜미를 물고 있다.

 

 돈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돈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단돈 몇 만원을 빼앗고자 사람 목숨을 파

리 목숨쯤으로 여기는 세태다. 누구나 돈의 중요성을 잘 안다.

그렇지만 좋은 데에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나쁜데 돈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인간은 천부적인 기질을 타고 났다. 불쌍한 이

웃을 위하여 일 년에 단돈 천원도 쓰지 않는 돈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놀음을 하고 사치하는데 수십, 수백 심지

어 수억 원을 쓰는 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

어가고 있다. 이 밤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들과 헤어져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나와 저들도 돈에 노예가 된 사람들

이다.


 정신 개조를 시키지 않는 한, 저들에게 예전의 생활로 복귀시

켜봐야,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이 자리에 모여 시국을 탓하

며, 자신이 불운을 탓할 것이다.



 돈, 과연 돈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돈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저렇게 만든단 말인가?


 K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때 욕심이 불러 온 사건으로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준 것에 K는 견딜 수 없었다. K의 양쪽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는 뒤척거리며 잠을 자지 못하였다. 아내

와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 아른 거렸다.

 

 “K반장님, K반장님, 일어나보세요.”

 김씨가 깨우는 바람에 선잠에 든 K는 눈을 떴다. 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K반장님, 이씨가, 이씨가 이상해요.”

 K가 이씨에게 달려가 그의 맥을 집어보고 동공을 까보았을 때

이씨는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당황한 K는 김씨를 시켜 역전

파출소로 달려가 119를 부르도록 하였다. K는 이씨를 흔들어 정

신이 들도록 하였지만 이씨의 맥박은 점점 약하게 뛰면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씨, 이봐요 이씨. 정신 좀 차려 봐요.”



 추운 겨울에 노숙자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과 같다. 그들의 양

어깨에는 항상 저승 차사가 앉아있어서 잠시 정신을 놓으면 바로

체포해 가곤 했다. K가 큰 소리로 이씨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차씨, 허씨, 박씨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연락을 받고 출동한

119 대원이 왔을 때 이씨의 심장은 멈춰있었다.

 

 한때 이 땅의 세리(稅吏)로서 기업체 사장들에게 저승차사로

군림했던 이씨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

만 뼈와 가죽만 남은 이씨의 주검이 복마전 같았던 그의 생을 말

해주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밖은 포근한 은세계로 변해 있

었고, 역 뒤편에 있는 교회에서 성탄절 새벽 예배를 올리는지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