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9. 6. 20. 18:09

 

 

 







 

                                       

 

 

 



 

 

                                                    

 

 

                                                                                                                                                      - 여강 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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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론적 사고방식이 비하되거나 구차해 보이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반 된 상황에서는 감히 입에 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아무리 고매한 인품의 선남선녀라 할지라도 사흘 굶으면 도둑질

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앞에 철학이 어떻고 예술이 저렇다고 말하는 자체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으리라.

 

 1차 산업이 소득원의 주류를 이루던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감히

암탉이 새벽을 알리거나 홰를 치는 일은 금기시 되거나 최소한 돌

팔매질에 의한 극형을 받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세태의 변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즈음에는 남의 나라 이야기에 속하고

있다. 



 K는 밤새 이웃들과 어울려 술타령을 하다가 아침 첫차를 타기 위

해 몰려드는 승객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곤 했다. 3년차

에 접어드는 부랑인(浮浪人) 생활에 어느 정도 이골이 그는 한때

잘 나가는 시절이 있었다. K는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부

랑인들과 소주잔을 나누는 것이 이제 밤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처음 1년은 전혀 색다른 생활에 적응하기 몹시 힘들어 옆 사람과

잠자리를 두고 자주 타투기도 하였다. 3년차에 접어들자 역사(驛舍)

를 관리하는 사람들과도 안면이 트면서 눈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

가 되었다.


 밤마다 벌어지는 술타령에도 어느 정도의 질서가 필요했다. 역

사를 돌아다니며, 어질러 놓거나 아무 곳에 서의 방뇨(放尿)나 방분

(放糞)은 역에서 기생(寄生)하는 동료 전체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런대로 역사 밖에서 잠을 잘 수

있지만 찬바람이 뼛속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역사를 관리하는 사람들 심기를 건드릴 필

요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터였다. 덩치도 있고, 다른

행려자 보다 젊어 보이고 완력 또한 강해 보이는 K는 자의반 타의

반에 의해 질서 반장이 되어 역사를 관리하는 사람들과도 말이 통

하는 사이였다. 그는 성정이 대체로 거늑한 편이었고 어떤 경우에

는 강파르게 변하기도 하였다.


 역사를 관리하는 직원 지하도를 잠시 정비할 경우 그들은 K에

게 부탁하곤 하였다. K는 역사를 주 무대로 살아가는 백여 명의 동

료 행려자들에게 하룻밤쯤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이기도 했다.


 “K반장님, 이리 오세요.”
 초저녁부터 K와 뜻이 잘 맞는 김씨가 썰렁한 역사 한구석에 신

문지를 깔고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씨, 박씨, 차씨, 허씨 등,

가출한 지 2년 이상 된 자들끼리 모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논하

며 침을 튀기고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돈에 속고 돈 때

문에 보통사람들에게 지탄받으며, 돈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

이었다.


 불과 몇년전 지금 쯤 성탄절 분위기에 젖어 회사 동료들과

회사 주변 대폿에서 삼겹살을 구워가며, 오늘 회사에서 있

었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거나 세상 이야기로 한창 소주잔

들때 였다.


 구수하게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잘하는 차씨가 오늘은 웬일

인지 시무룩하게 앉아서 동료들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중소 건설업체 사장님이었다. 키가 작달막하고

살거리가 투실한 그의 말로는 자신이 사십대 중반쯤 되었다고

하지만 머리가 귀와 뒷부분만 남겨두고 대머리인 것으로 보아

50대 중반은 훨씬 넘어 보였다.

 

 술자리가 만련 되면 걸쭉한 입담으로 그는 노숙인들의 대변

자라도 되는 양 정부의 복지정책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어느 여

가수와 개그맨이 열애에 빠진 내용까지 그럴듯한 기사거리를

인용해가며, 동료 행려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감초 같은 존재였

다. K는 차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차씨 곁으로 다가

다.


 “차씨, 어디 아프우?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아픈데

있으면 말 해봐요. 노숙인 생활도 몸이 단단해야 하는 거지. 빌빌

거리면 이 짓도 못한다고.” 


 K는 마치 차씨의 맏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씨의 등을 다독거

렸다. 오후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눈이 주먹만 한 함박눈으로 바

서 도심의 거리는 차차 은색의 세상으로 변하였고 성탄절

분위기에 휩쓸려 행인들도 달뜬 분위기 였다.

 

 전철 승객들은 종종 걸음으로 역사 이리저리 뛰면서 귀가를 서

두르는 모습이었다. 명목상 반장인 K는 가족처럼 돌보고 있는

동료들이 걱정되었다. 근처에 시에서 마련한 행려자를 위한 시

설이 있었지만 동료들은 그 곳이 불편하다면 들어가면 곧 바로

뛰쳐나왔다. 시설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되어 버린 음주(飮酒)

금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명의 노숙자들이 알코올 중독 수

상태였다. 


 “아뇨, 그냥 세상 살기 싫어져서요.”
 K가 관심을 보이자 그제야 차씨는 앞에 있던 소주잔을 반쯤 비우

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따, 차씨만 세상 살기 싫은 줄 아슈? 이 역사에 기생하는 사

람치고 살고 싶어 사는 목숨들이 어디 있우? 목숨이 붙어있으니

할 수 없이 숨 쉬고 있는 거지.” 


 술자리를 마련한 김씨가 음전하게 앉아있다가 차씨의 말을 듣

고 심사가 뒤틀린 듯 쏘아 붙였다. K가 차씨에게 자꾸 무슨 일이

있느냐고 채근하자 차씨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이 내 생일이오. K반장님과 형씨들에게 가슴 속 응어리진

이야기를 해야 잠이 올 것 같소.”
 차씨는 남아있던 소주를 마주 비웠다. 그는 차가운 소주가 마시고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징어를 찢어 입에 넣고 씹어대는 그의

모습이 세상에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심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오늘 낮에 그 연놈들을 보았소. 서울서 일을 보고 내려가려고

기차를 타러 온 모양입디다. 쫓아가서 그년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차씨는 눈의 초점을 잃고 멍하니 천정을 응시하였다.


 그는 P시 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사장이었다. P시에서 발주

하는 상하수도 관련 공사를 도맡다 시피 하였다. 공사를 수주하고

외부 인사를 대접하는 일은 전무가 맡았다. 전무는 P시 출신 전직

공무원인 관계로 P시에서의 차사장의 건설회사의 사세(社勢)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건설회사를 차리고 얼마 안 돼 늘 고생만

하던 차사장의 아내세상을 버렸다.


 

 돈 많은 홀아비를 주변에서 그냥두지 않았다. 지역구 국회의원,

시의원, 군수, 지역유지들은 차사장에게 죽매를 서겠다고 자처하

고 나섰다. 차사장은 시의원 소개로 P시에서 한정식당을 크게 운

하는 40대 초반 이혼녀와 재혼하였다.


 아내는 비록 이혼녀이긴 했지만 타고난 미모로 P시의 상류층에

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시의원과 인연을 맺은 차사장

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며 흐뭇해

했다. 


 지역구에서 제법 방귀 뀌는 소리가 큰 시의원은 자주 차씨를 불

러내 술자리를 함께하였다. 그런데 시의원은 술자리에 꼭 차 사

장의 아내를 불러내도록 하였다. 시의원이 나타나면 수행비서도

함께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차사장보다 먼저 차사장의 아내와 친

분이 있었던 시의원과 비서는 스스럼없는 사이 같아 보였다.

 

 시의원은 차사장에게 옛날 자신이 공직에 있을 때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을 전무로 기용하면 시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하였다. 시의원 말대로 한 결과 차사장의

회사는 시에서 발주하는 각종 토목공사를 독식하다 시피하였다.

시의원, 수행비서, 전무는 차사장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사흘이

멀다 하고 나타났다. 물론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은 모두 차사장

이 계산하였다.


 등잔 밑은 어둡고, 커다란 둑의 붕괴도 쥐구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고정불변의 금언(金言)인 것 같았다. 차사장의 회사는 송충

이들이 달라붙어 솔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마치 굶주린 이리 떼

들이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상태였지만 차사장은 전혀 알지 못했

다.

 

 차사장의 건설회사가 한창 잘 나갈 때 그의 아내는 남편과 상의

한마디 없이 갑자기 식당을 처분하였다. 명목은 차사장의 뒷바라

지를 성실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했다. 차사장의 아내는 식당을 처

분하고 회사에 나와 경리 분야의 일을 보게 되었다.


 차사장은 그런 아내가 믿음직스럽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

나 너무 믿는 것도 탈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차사장은 전

무와 아내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

다.


 사세(社勢)는 날로 확장되어 차사장은 P시 건설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뒤에는 시의원과 수행비서 그리고 전

무와 차사장 아내의 보이지 않는 힘이 얽히고 설켜 차사장의 회사

를 지탱하고 있었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존의 세계가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그 연놈들의 관계를 눈치 챘어야 했어.”
 차씨는 피우다 만 담배꽁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차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다음에 차씨의 입에서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

가 나올지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어찌되었다는 거우?”
 성질 급한 김씨는 소주잔을 비우며, 차씨에게 다음의 전개될 레퍼

토리를 빨리 하라고 재촉하였다. K도 반쯤 피우다만 꽁초에 불을

붙이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시간이면 아내는 무능한 자신을 탓하며, 맥주잔을 홀짝

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잘 나가던 뷔페식당을 부도내고

3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

을 생각하려니 K는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고 콧등이 시큰 해지는

것을 느꼈다.


 ‘ 나 역시 사람을 너무 믿은 것이 실수였지. 자기 자신도 믿지 못

하는 세상에 30년 만에 찾아온 동창생을 덜컥 믿다니. 나도 참으

로 한심한 놈이지…….’ 


  K는 구렁이 같은 초등학교 동창생 영구를 떠 올렸다. 허여멀

겋게 생긴 영구는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는 주변에서

일명 걸어 다니는 명품관으로 통했다.


 시계, 반지, 모자, 구두, 라이터 등 그가 몸에 걸친 악세서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였다. 입고 있는 옷 또한 서민들은 평생

입어보지도 못할 명품이었다. 세상 인심은 잘 차입은 거지에

게는 후하게 인심을 쓰지만, 비루해 보이는 자에게는 냉정하게

마련이다. 30년 만에 사업가로 변신해 나타난 영구에게 K

2달 만에 전 재산을 맡기다 시피 했다.

 

 그가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에 K를 끌어 들인 것이었다. 말

이 새로운 사업이지 사실은 전문 브로커와 짜고 K를 말아먹기

위하여 철저히 계획된 음모였다.


 “너도 잘 알다시피 이 업종은 이제 물 건너갔어. 지금 네가 운영

하는 사업장 내부를 모두 털어내고 새롭게 단장한다음에 본사에

서 시키는 대로 하면 너는 이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뷔페 사장

님이 되는 거야.” 


 K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영구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앵앵거리고

었다. K도 처음에는 30년 만에 나타나 새로운 아이템의 사업을

권하는 영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이틀이 멀다하고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찾아와 새로운 사업

구상과 전망 등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영구의 말에 K는 차차 귀

가 솔깃해졌다.

 

 결국 영구의 말대로 K는 지금까지 운영하던 뷔페를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하기 위하여 영업을 중단하였다. 새로운 프랜차이

는 기존의 장소에 본사에서 공급하는 물품을 쓰는 것은 물론 운영

방식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형식이었다. K는 오랜 요식업 운영에

싫증을 내고 있었던 터여서 더욱 영구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아름답고 향기가 진한 꽃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거나

치명적인 독이 있어.”


 K는 작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며 주억거렸다. 차씨의 전력이

다시 소개되었다. 차씨의 아내는 자신의 돈으로 차사장에게 고급

외제 승용차를 뽑아주었고 그전에 타던 오래된 국산차는 바로

폐차장으로 보내졌다.


 차사장은 아내를 더욱 사랑하며 미더워 했다. 아내가 가로 치밀

하게 짜놓은 거미줄에 그는 꽁꽁 얽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

었다. 밤마다 이어지는 시의원과 술자리에서 차사장은 머지않아

자신이 P시에서 제일가는 사업체 대표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

었다.


 아무리 사업이 좋더라도 건강을 잃으면 허사였다. 거의 날마다

이어지는 술자리와 절륜한 아내와의 빈번한 방사(房事),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차사장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뒤 보름 후 였다.

유학 중인 차사장의 두 딸들은 뒤 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괜찮다'는 계모(季母)의 말만 듣고 다시 비행기를 탔다. 회사 운

영 전반을 아내와 전무에게 맡긴 뒤에 휴양을 떠났다. 두 달간의

휴양은 차사장이 피땀 흘가꾼 성(城)이 철저히 해부되는 기간

이기도 했다.

 

 회사의 모든 것을 빼돌린 뒤 고의로 부도를 낸 전무와 아내는

차사장이 돌아왔을 때 종적을 감춘 뒤였다. 충격을 받은 차사장

은 다시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고, 실어증과 함께 정신이 오락가

락하는 상태에서 퇴원해야 했다. 정신이 나간 뒤 찾아 간 곳이 한

다리였으나, 모진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이곳으로 찾아

든 불쌍한 인생이었다.


 “휴우-, 인생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것이야. 도는 일장춘몽이

라고도 하던가? 염병할…….
 차사장의 뒷맛이 개운치 않는 이야기에 김씨는 애꿎은 담배만 축

내면서 허공에 동그랗게 만든 연기 과자를 띠웠다.


 옆에서 잠자코 차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허씨가 자꾸 헛기침

을 해가며, 무슨 이야기를 할 듯한 표정이었다. 눈치 빠른 김씨가

얼른 허씨의 빈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고 허씨의 눈치를 살폈다.


 “허씨도 무슨 싶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혼자만 가슴에 묻어두

고 있지 말아요. 오늘 같이 지저스 크라이스트께서 강림하신 날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나 해보슈.” 


 나서기 좋아하는 김씨가 허씨의 전력을 듣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천근이나 되는 자물통으로 채웠는

지 허씨는 뚱한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K는 허씨에게도 무슨 기가 막힌 사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한 언젠가는 그의 전력을 들을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김씨가 빈 속에 술잔을 급히

털어 넣은 탓에 금방 어량 해지면서 허씨에게 노숙자 신세가 된 사

연을 말해보라고 재촉하였다.

 

 역에서 편히 지내기 위해서는 김씨의 요청을 묵살할 수도 없었

다. 누구든 K보다 김씨의 세치 혀를 경계하였다. 김씨는 역사 안

에서 K다음 위세를 부리는 군기 반장이었다. 눈이 그쳤는지 역사

를 지나다니는 승객들의 옷차림과 신발이 깨끗해 보였다.


 “허-, 무슨 말을 하라는 건지 원.”

 허씨가 떨떠름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내가 보기에 허씨도 굉장한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한데, 술안주도

떨어져가니 허씨 이야기를 안주 삼으면 되겠구먼.” 


 김씨가 쥐포를 질겅거리면서 K의 눈치를 보았다. 좌장격인 K

는 김씨에게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은연중 김씨의 말을 지

지하였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그럼 한번 들어 보슈.”
 턱수염이 탐스러운 허씨가 누런 이빨 사이에 낀 쥐포 조각을

손톱으로 빼내고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묵상하는 자세를 취했다.

 성질 급한 김씨는 허씨의 그런 자세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눈을

찡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 허씨는 D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였

다가 1년 반 만에 5억 원 가까운 돈을 까먹은 이력을 가지고 있었

다. 그는 원금은 고사하고 원금 만큼의 빚더미를 안고 가출하였다.

 

 허시는 30년 넘게 몸담았던 공직을 3년 정도 남겨두고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정년 퇴직하고 다른 일을 찾

보아도 되지만 허씨는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1년 전부터 허씨는 주변 여러

시를 다니면서 목 좋은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는 다리품을 팔며 다니다 우연히 D시에 목 좋은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허씨는 속으로 하늘이 자신에게 인생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기뻐하였다. 며칠을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살펴본 결과 만약 그 자리에 사업을 펼치면 대박 날 것 같았다.

퇴직금과 살고 있는 집까지 저당 잡혀 마련한 돈으로 허씨는 편

점의 간판을 걸었다.

 

 처음 일 년은 그런대로 되는 듯 했는데, 일 년이 좀 지나자 길

건너에 허씨 편의점 보다 규모가 크고 실내. 외 장식을 잘 갖춘

편의점이 들어섰다. 매출이 급감하면서 허씨는 평소 즐기지

던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와 자식들은 허씨에게 더 늦

기 전에 편의점을 정리하라고 충고 하였다. 그러나 허씨는 길 건

너의 편의점을 의식해 물건 값을 할인해 주면서 살아남기 위하여

몸부림 쳤다.

 

 잠시 매출은 다시 예전의 수준을 유지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였다. 길 건너 편의점에서는 같은 상품을 허씨의 편의

점 보다 더 많이 할인퍈매 하였다. 허씨와 길 건너 편의점 사장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신경전이 오래 지속되자 불량배를 동원한 길 건너 편의점 사

장의 집요한 공세에 허씨는 시달려야 했다. 하루 종일 불량배들

허씨 편의점 앞에 진을 치고 앉아서 허씨 편의점을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눈알을 부라리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두 달간의 공포 분위기는 허씨의 편의점을 고립시켰다. 어떤날

은 하루 종일 한 사람의 손님도 볼 수 없었다. 결국 신변에 위협

을 느끼고 소심한 성격의 허씨는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심하였다. 

일 년 반 만에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급전으로 사채를 끌어

것이 화근이었다. 


 편의점 실패에 따른 자금 압박은 허씨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

아가고 있었다. 제 때에 이자를 불입하지 못하자 해결사들이 난

입하여 편의점 내 물건을 싹쓸이 해갔다. 상품을 싹쓸이 해간 뒤

도 사채업자는 수시로 허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값으로 제한

나머지 돈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해 왔다. 허씨는 고심 끝에 아내

와 협의이혼하고 잠적하였다.


 사채업자들이 고용한 해결들에게 잡히면 끝장이었다. 허씨는

국의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형편이 여의치 않자 이곳에 자리

를 잡게 되었다. 말 수가 적은 허씨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이면 지하도 구석진 자리에 혼자앉아 소주병을 끌어안았다.

그는 혼자 소주잔을 홀짝거리며, 울분을 삭혔다.


 “허씨나 나나 세상에 당하고만 살았구려. 염병할-.”
 허씨의 지나간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씨가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K는 허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기분이 우울해

졌다.


 ‘영구놈은 지금 쯤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아직 살아 있

다면 나를 바보, 멍청이, 얼간이, 칠득이라고 비웃고 있지는 않

을까?'


 K는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기 전에 영구를 찾아다녔다. 서울시

내와 주변 도시를 이잡듯 헤매고 다닌 끝에 간신히 영구를 만날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거야? 너의 새로운 프로젝

트고 뭐고 난 다 싫으니까 내 뷔페를 원상태로 돌려놔.”


 “야, 임마,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고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너는 그 사업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할 자격 없어. 우리가 하

는 방식대로 따르면 되는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지금 준비 중이

야.”


 K가 운영하던 뷔페는 모두 철거 되었다. 영구는 그 장소에 새로

운 시스템의 뷔페가 다시 들어설 거라 했다. 그러나 철거된 지 육

개월이 넘어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K는 뒤늦게 영구에게 속았

다고 판단하였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문의하였지만 다소 문제가

생겼으니 잠시만 더 기다리라는 답변 뿐이었다. K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영구한테는 전화 한통도 없었다.

 

 K는 영구를 찾아내 그의 멱살을 잡고 계약을 취소하고 자신의

뷔페를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하였다. K는 영구를 따라다니는

장한 청년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일주일 만에 퇴원한 K는 프랜차이즈 본사를 찾았지만 회사는

이미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영구도 바람처럼 사라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을 너무 믿은 자신의 불찰을 탓하면서 K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고

말았다. 가출 후에도 영구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아

도 영구의 행방은 묘연했다.


 ‘모든 게 다 내 탓이지.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겠어. 50년을 헛

산 거야. 참으로 내 자신이 한심하지.’
 K는 소주잔을 비우며 잘 피우지 않던 담배를 찾았다. 눈치 빠른

김씨가 얼른 아끼던 담배 한 가치 뽑아서 K의 입에 물려주고 라이

터를 켰다.


 “허씨. 그 이후 이야기 좀 해보슈.”
 묵묵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K가 허씨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

금한 모양이었다. 물론 K뿐만 아니라 옆에서 소주잔을 홀짝거리

며 비우고 있던 동료들도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김씨가 또 허씨의 허리춤을 찔러대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

였다. 허씨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

이 자신의 입에서 나올 사연을 기대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렇지만 그는 아픈 자신의 과거를 회상해야 하는 고통을 감

내 해야 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여기를 좀 봐봐요.”
 허씨가 윗도리를 들고 왼쪽 옆구리를 보여 주었다. 20센티쯤 난

자상(刺傷)이 선명했다.


  허씨는 그 흔한 휴대폰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악귀(惡鬼)같

은 사채업자에게 자신의 위치가 추적될 것을 우려해서 였다. 아

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은 허씨는 어느 날 늦은 밤에 집을 찾았다

가 그를 잡기 위하여 끈질기게 허씨의 집 주위를 감시하고 있던 

사채업자 일당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개새끼-, 네가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 이지…….
 허씨가 끌려가 곳은 허름한 공장이었다. 폐쇄 된 곳이어서 다른

사람의 이목으로 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사채업자 사장은 몽둥이를 들어 다짜고짜 허씨를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다. 30여 분간 분풀이 하고 나니 사채업자 부하 똘마니

들이 달려들어 허씨에게 린치를 가했다. 사채업자는 허씨에게

3일 안으로 자신들에게 빌린 사채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으면

가족들과 허씨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였

다.

 

 각서를 쓰고 간신히 풀려난 허씨에게 사업자는 그의 똘마니 두

명을 붙여 감시하도록 하였다. 3일이 무의미하게 지나자 사채업

자는 길길이 날 뛰면서 허씨를 그 허름한 폐공장으로 끌고가 거

의 죽기 직전까지 린치를 가했다. 계속 족쳐봐야 허씨에게서 돈

나올 곳이 없다고 판단한 사채업자는 허씨에게 신체 포기각서를

쓰도록 하였고 허씨는 어쩔 수 없이 각서를 작성해 주고 사인을

하였다.


 그들은 허씨를 두들겨 패서 혼절하게 만들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한참 만에 깨어 난 곳은 병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양손이

결박당한 상태라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허씨는 그곳을 빠져 나

오지 못하면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체포기 각서의

내용을 기억해내고 허씨는 절망하였다. 마침 자신을 감시하던 자

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허씨는 운좋게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나의 중요 장기(臟器)

가 잘려나가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고 나는 장기를 적출당한 시신

이 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되었을 거요. 그놈들은 저승사자나

찬가지요. 그들이 있으니 함부로 사채를 쓰는 사람이 적겠지요.

쩌면 그들은 이 사회의 필요악 같은 존재들이지요.”


 허씨의 두 눈에 눈물이 갈쌍갈쌍했다. 그는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야기를 마친 허씨는 두리번거리며,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미 몇 년 전 일이지만 허씨는 지금도 악

몽에 시달려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채업자는 수시로 허씨의 아내에게 찾아

가 행패를 부리며, 남편을 찾아내라고 협박을 하였다고 했다. 허

아내는 자신은 남편과 이미 이혼한 상태니 아무 상관없다며,

경찰을 불렀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채권 채무관계라며 당사자들

끼리 잘 해결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리곤 했다. 

 

 허씨가 이야기를 마치자 모두들 자신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



각하는 듯 했다. 잠시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아내에게도 영구가 보낸 깍두기들이 몇 차례 찾아와 나의 행

방을 묻곤 했었지. 나쁜 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영구는 K모르게 K명의로 사채를 끌어다 썼다. 채무를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K는 자신의 불찰로 고통을 받게 될 가족을 생각해 울

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유로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여 사채

를 갚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원통하고 분한 일이었으나, 사

업에 몰두하느라 사회를 잘 몰랐던 K는 자신의 순진함을 탓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은 법을 지키고 사는 사람에게는

지옥이고 무법자들에게는 천국이지. 오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

는 걸 듣고 있자니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법없이도 살아갈 선량

한 분들이구려. 그러니 이곳이 지옥이 될 수밖에…….


 눈이 퀭하게 들어간 이씨가 불콰한 얼굴로 침묵을 깼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이씨는 쿨럭 거리며, 기침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

다. 이씨는 술이 한잔 들어가야 입을 여는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얼굴은 가죽만 남아 오랜 노숙생활의 피곤함을 잘 대변해 주고 있

었다. 이씨가 끼어들자 김씨가 이번에는 이씨에게 이곳에 오게 된

연유를 이야기 해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 전야가 마치

노숙자 자신들의 고해성사하는 날 같았다.

 

 이씨는 낮이고 밤이고 심지어 잠잘 때에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

고 있었는데, 심한 대인 기피증세까지 보이곤 했다. K의 리더십이

발휘되기 전까지 이씨는 하루 종일 역 구석에 홀로 쭈그리고 앉

아 있거나 근처 공원 벤치에 누워 하늘을 이불 삼아 누워 있곤

하였다.

 

 K의 설득으로 낮에는 자원 봉사도 하게 되었고, 밤이면 서서

히 동료들과 어울려 차차 자신의 응어리를 풀려고 노력하는 중

이었다. 이씨가 어제 오늘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얼굴

도 창백한 것이 곧 병원에 실려 가야 할 판이었다.


 “내 이야기 듣다가 욕지기가 나거나 메스꺼우면 안 들어도

오. 나는 공무원이었지요. 그것도 아주 아주 잘나가는 공무원이

었지요.”


 세무 공무원이었던 이씨는 주로 법인을 담담하면서 치부(致

富)한 전형적인 탐관오리라고 할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국가

의 녹을 먹으면서 덤으로 사복(私腹)을 채우는데 귀재(鬼才)였

다. 사업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을 들

을 정도였다.

 

 하청업체나 일반인들에게 뻣뻣하게 굴던 수많은 사장들이 그

앞에만 서면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비굴하게 굴어야 했다. 그의

눈 밖에 나면 당장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그에게 괘씸죄에 걸려 부도나거나 위기에 몰린 기업이 상당수

에 달했다.

 

 그는 재테크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아파트 10채, 수

도권 노른자위 땅 수십 필지를 친인척과 지인들 명의로 가지

고 있었다. 지인 명의로 벤츠를 두 대식 굴리면서 출. 퇴근

는 낡은 중고 국산 자동차를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살고 있는 집은 25평 정도의 허름한 아파트였으나 서해안

목 좋은 곳에 3층 규모의 호화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그 별장의 주인을 서울에 큰 회사의 사장으로

고 있었다. 그 별장은 이씨가 아주 특별한 사람 이외에는 초

대하지 않기 때문에 이씨의 친인척 및 친구들도 그가 초호화

별장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동시에 이씨는 전

형적인 기러기 아빠였다.

 

 아들은 3년 전 C국에 유학을 간 상태였고, 그의 아내는 아

들의 뒷바라지를 이유로 C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씨에

P라는 애인이 있었는데, 이씨보다 10살 정도 어린 여인이었

다. P는 한때 지방 미인대회에 출전했던 미모의 소유자이혼

녀였다. P와 1년 이상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해 오던 어느 날,

이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과장, 나는 당신의 모든 사생활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오.

당신 좀 찾아봐야 겠소. 사무실로 갈 테니 어디가지 말고 자리에

있으시오.”


 괴전화를 받고 이씨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직까지 자신

에게 그 같은 내용의 전화를 건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씨는 만

약 사무실에 있다가 괴한들이 찾아 올 경우 망신살이 뻗칠 것 같

아 근처 다방으로 피하고 부하 직원에게 손님이 찾아오면 전화

라고 하였다. 


 “어이구 이과장님, 자리에 계시라니까 이리로 납시었습니까?

신수가 아주 훤하십니다 그려?” 


 등치가 남산만한 두 사내가 이씨를 보자 거만한 태도로 이씨

게 봉투를 내밀었다. 그 봉투에는 애인 P와 노골적인 정사 장면

이 찍힌 사진과 그동안 이씨가 기업체로부터 받은 뇌물의 액수

가 적혀 있는 서류가 들어있었다. 이씨는 충격을 받고 봉투의 출

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 P아니면 이런 짓을 사주할 사

람이 없었다.

 

 이씨가 P에게 자신의 속내를 모두 털어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씨는 P와 동거를 계획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이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돈을 요구 하였다. 공무원 신

분에거 잘리고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묻지

말고 10억원을 15일 내로 입금하라며 은행계좌번호를 적어

었다.

 

 이씨는 일단 알았다고 하고 사내들을 돌려보낸 뒤 잘 아는 형

사들에게 사내들의 뒷조사를 의뢰할 방침이었다. 이씨가 사무

실로 막 돌아오자 방금 전에 만났던 사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내는 www.flickr.com이라는 사이트 주소와 접속 아이디와 비

밀번호를 알려주며, 갤러리에 들어가 보라고 하였다.


 이씨가 사이트에 접속하여 갤러리를 열자 낮 뜨거운 사진 수

백장과 동영상이 올려져 있었다. 애인 P와 지난 1년간 은밀히


가졌던 정사(情事)가 그 갤러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씨

는 충격을 받고 P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고객의 사정으로 받을

수 없다는 멘트만 흘러 나왔다.

 

 그제야 모든 것이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P가 파놓은 함

정에 빠졌다는 것을 감지한 이씨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씨가

수백 장이나 되는 자신의 정사장면을 찍은 사진을 다 보았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