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전선(2)
제2전선(2)
- 여강 최재효
남자는 회장의 주선으로 여사원 중 회장이 총애하던 비서실 여사원인 미연과
결혼하였고 사내(社內)의 잉꼬부부로 통했다. 미연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팔등신의 상당한 미모를 지닌 파므파탈이었다. 지현이는
이대로가 미연이와 결혼하는 날 하루 종일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찾아 온 팔자에도 없는 복덩어리는 순탄하지 못했다. 남자는
첫날밤부터 어딘가 모르게 아내 미연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녀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첫날 밤 자신을 리드하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성향으로 보아
도저히 숫처녀라고 믿을 수 없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남자의 아내는 사직했고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의 거액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남자의 아내가 퇴직한 이후로도
회장은 회식 장소에 이대로의 아내 미연이를 자주 불러냈다. 처음에는 아직도 아내에
대한 회장의 회사원에 대한 정이 남아있어서 그렇겠거니 했으나 회식 때 마다 회장이
아내를 불러내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사내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분명 자신과 결혼하기 전 회장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회장은 먼 친척뻘이라 하였다. 해서 자신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고민도 해 보았다. 낮 시간에 아내는 철저히 집에만
있었다. 사내가 수시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사내의 아내는 늘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 것으로 미루어 자신이 쓸데없이 아내를 의심했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늦은 나이에 결혼하였고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하게 아이는 없었다. 남자가
아무리 아이를 가지려고 별의별 시도를 다해보아도 아내에게 아이는 들어서지 않았다.
사내는 결혼 후 얼마 안 돼 아내의 제의에 따라 물 좋은 3층 주상복합 건물을 구입하였다.
서울서 가장 잘 나간다는 지역이었다. 물론 집들이에는 회장이 여러 사원들이 보는
앞에서 선물로 거금이 든 금일봉을 사내의 아내에게 전달하였다.
사내를 뺀 나머지 사원들은 회장의 선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유독 사내만 그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결혼 후 사내는 인사발령에 따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해외
영업부서에서 일하게 되었고 일 년에 10개월 이상은 현지 근무를 해야 했다. 해외지사 근무
4년차 되는 어느 봄날 사내는 갑자기 아내가 보고 싶어 본사에 보고도 하지 않고 입국
하였다. 아내에게 줄 선물로 진주 목걸이와 루비 반지 세트를 준비하였다. 사내는 키를
가지고 있기에 차임벨을 누를 필요가 없었다.
한낮이라 혹시 아내가 낮잠을 자거나 밖에 외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열쇄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자 사내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아내의 비음(鼻音)이 었다. 사내는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살며시 소리가
나는 곳을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다가갔다. 소리는 분명 자신과 아내만 들어 갈 수
있는 안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내는 순간 심장이 뛰고 정신이 혼미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사내는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안방을 향해 다가갔다. 다행히 안방
문이 닫혀있지 않고 약간 열려있어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사내는 후둘 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 신음소리의 주인공이 아내가 아니길 간절히
기원했다. 자신이 집을 잘못 찾았거나 혹은 아내가 아내의 친구에게 하루 이틀 빌려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헉 -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짧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대낮인데도 안방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오렌지색의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아내의 미끈한 등과 풍만한 히프가 조명에
촉촉이 젖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들썩이고 있었다. 사내는 마른 침을 삼켰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후 3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사내는 안방 문틈 사이로 보이는 환상적인
광경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냐. 이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맞아 꿈이야.’
사내는 현관으로 다시 나와 남자의 구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에 잊은 명품이었다.
'아니. 이 구두는 ....... 그렇다면 그 분이?'
서민들은 평생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명품의 구두였다. 사내는 자신이 목도(目睹)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집을 나온 사내는 즉시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공항에 도착한 사내는 세 시간 후 이륙할 비행기를 예약하고 면세점에 들러 꺄뮤X.O
한 병을 사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냐. 여긴 서울이 아냐. 여긴 도쿄나 홍콩이 분명해. 내가 그만 서울 간다는 것이 엉뚱한
곳으로 온 게 분명해. 분명하다고.......’
사내는 순식간에 코냑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독주(毒酒) 한 병을 마셨지만 사내는 정신이
말짱했다. 사내는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통증이 없었다.
‘그래, 맞아. 여긴 한국이 아닌 것이 분명해. 내가 괜히 이상한 것을 보았어. 일단 지사로
갔다가 다시 와야지. 난 오늘 아무것도 본 것이 없어. 여긴 홍콩이나 동경 쯤 될 거야.’
사내는 두 시간 정도 화장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간신히 일어나 예약한 비행기에 탑승
하였다. 사내는 오늘 보았던 충격적인 장면을 못 본 것으로 하였다. 만약 그분에게 정면
으로 항거하거나 일말의 반감을 가질 경우 자신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못 본거야. 나 하나 모른 체하면 만사가 편해. 나는 지현이가 있으니 당신은 미연
이를 가지라고. 나는 지현이를 가지면 되니까.‘
해외지사로 돌아 온 사내는 자주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자신은 해외지사 근무가 마음
편하고 잘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지극히 평범한 안부를 전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대로씨, 아니 술 마시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응? 아무것도 아니야. 집에 먹다 남긴 떡이 있어서 혹시 그 떡을 누가 훔쳐가지않았나
걱정이 돼서.”
“뭐에요?”
“......”
“당신, 지금 아내 생각하고 있죠?”
“......”
“당신 아내는 처음부터 당신의 여자가 아니었어요, 당신은 꼭두각시였다고요. 회사에서
키우는 영혼 없는 꼭두각시요.”
“아니야. 아니야. 난, 난 꼭두각시가 아니야.”
사내는 약간 취기가 오른 듯 말소리가 둔하게 들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 난 꼭두각시였어. 철저히 회사에서 조정하는 인형이었다고. 빌어
먹을 ......’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훌쩍거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여인이 사내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사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바보, 울긴 왜 울어. 복수하면 되잖아. 바보같이 왜 우냐고?”
여인이 사내의 등을 다독거리며 위로의 말을 건네자 사내는 더욱 서럽게 흐느꼈다.
“울지마 대로씨. 술 마시다 말고 이게 무슨 청승이야. 울지마. 자기가 울면 나도 괜히 슬퍼
진다고. 울지말아요.”
여인은 사내가 흐느끼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전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모범적이고 격식에 맞는 언변으로 늘 회사에서 표본으로 통할 만큼 사내는 빈틈이 없는 사람
으로 통했던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흐느끼고 있었다.
“내일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야. 우리 기분 좋게 보내요. 당신 나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기
위해서 회사에 통보도 하지 않고 귀국한 거 아니에요?”
“맞아. 당신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려고 왔어.”
남자는 소줏잔을 비우고 담배플 빼 물었다.
“며칠만 있다가 출국하세요. 본사에서 알면 안 좋잖아요.”
“알았어요. 내 알아서 할 테니 술이나 마시자고.”
“그래요.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명동의 시간은 너무 더디 흐르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들뜬 기분으로 나온 사람들의 즐거
움을 배가 시켜주기 위해서 시간은 일부러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한편 대로의 아내 미연은 그 시각 집에 있었다. 서울 k동에 위치한 집은 3층으로 1층은
자신이 쓰고 2층은 형식적 법적인 남편이 사용하고 있었다. 말이 부부지 서로 얼굴한번
제대로 보는 경우가 없었다. 남편과 합의 이혼하기로 한 뒤부터 미연은 남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 들였다.
불러들인 사람들 대부분은 미연이 대학동창이나 비서실에 근무할 때 친분이 있던 동료
사원들이었다. 그러나 토요일에는 남자 한 사람이 초대되는데 그 날은 아침부터 요리사를
불러 음식을 장만하고 미연이 손수 시장을 보아 손님 대접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
였다. 단독주택이지만 1층의 유리창문은 모두 짙은 색의 커튼이 쳐져있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미연이, 딱 한잔만 더 하고 우리 밖으로 나갈까?”
“아니요. 여기가 왜 마음에 안 드세요?”
“응? 그, 그건 아니지만 왠지 좀 꺼림칙해서.”
“그냥 여기 있어요. 지금 나가면 교통이 체증으로 길바닥에서 시간을 깔고 다니실지 몰라요.
제가 대신 최선을 다할게요.”
“그럴까 그럼? 난 미연이에게 뭔가 좀 색다른 선물을 사주려고 했는데.”
“나에게 최대 선물은 바로 당신이에요.”
“그으래? 그거 듣기 좋은 소리로군.”
“당신 남편은 지금 미국에 잘 있는 거지?”
“그렇지 절해고도.”
마른 침을 넘기며 바라보면서 흐뭇해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국내 미인대회에 초대받아
갔다가 미연이 사내의 눈에 들었다. 사내는 미인대회에서 포토제닉상을 수상한 미연을
자신의 회사에 특별 채용하여 비서실에 앉혔다. 사내가 바이어들과 저녁 약속이 있거나
지방에 출장을 갈 때 으레 미연은 사내와 동행하였다.
그런 미연을 두고 회사 내에서는 미연이 사내의 애마(愛馬)니 또는 정부(情婦)라고 쑥덕
거렸다. 아무리 자신의 회사이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미연에게 큰 평수의
아파트를 얻어주고 살게 하고 사내는 밤에도 자주 미연의 집에 드나들었다. 사내는 미연과
오랜 시간 밀애를 즐기면서도 주변의 여론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미연이 차차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사내는 미연에게 회사내에서 그럴 듯한 남자사원을 골라 결혼하도록 주선하였다.
미연이 결혼한 이후에도 사내는 미연의 남편을 해외지사로 발령을 내어 두 사람의 신혼
생활을 훼방하였다. 미연을 잠시 다른 남자에게 맡겨 놓고 마음 편하게 밀애를 즐기려는
사내의 사려 깊은 계산이 작용한 것이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사내의 음욕의 탐구 대상이 된 미연은 이제 사내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여인이었다. 짙은 화장을 마치고 페르몬성분의 향수를 은밀한 부위에 뿌린
미연이 눈보다 흰 백색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푹신한 소파에 묻혀 브랜드를 홀짝거리던
사내의 품에 안겼다.
“사모님은 좀 어떠세요?”
“길어야 한 달이야.”
“어머나? 그러세요?”
“아까도 병원에 잠시 들렸는데 해골이 다되어 있더군. 뼈만 앙상하게 남았어. 불쌍한 여자지
나 하나 성공시키기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운 여잔데......”
“빨리 쾌차하셔야하는데......”
‘아니지 빨리 악화되어야지.’
여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쿠바산 시거를 빼 물고 깊이 빨았다. 사내의 아내는 3개월
전 간암 판정을 받고 현재 모대학병원에서 투병중이지만 가망이 없다는 의사진단을 받고
하루하루 무의미한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외동딸은 10년 전 미국에 건너가 공부
하고 있어 국내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종종 병상의 어머니와 통화를 할 뿐이다.
‘언제 한 달이 후딱 지나가나? 한 달이라, 한 달이면 나는 명실상부화 S그룹 안주인이 된단
말이지? 한 달 후면 ......’
“미연이 준비되었어?”
“어머나? 벌써요?”
“술 마시고 노래도 듣고 그대 풍만한 실루엣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생각 나는 것.
”
“어휴, 늑대.”
“늑대? 그렇지. 나는 늑대지.”
“맞아요. 나는 늑대에게 모든 것을 준 백설 공주라고요.”
“그래 맞아. 맞아. 자 공주님 우리 한판 붙을까요?”
마치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적 습관처럼 사내는 미연을 덥석 안고 권투경기가 벌어지는 링처럼 비슷한 사각의 장(場)으로 올라갔다. 혈투가 벌어졌다. 미연의 날카로운 금속성 기합소리와 동시에 사내는 어흥 어흥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미연에게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미연은 그런 사내의 등짝을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미연은 10년 전
사내의 부탁으로 새디즘에 빠진 다음부터 남편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사내는 전적으로 미연에게 의지해 마조히즘의 극치를 맛보고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여성들을 상대로 마조히즘의 극치를 구가(謳歌)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미연이 만큼 확실히
만족을 주는 여성은 없었다. 미연은 완벽하게 방음이 방에 이중으로 커튼을 설치하고 삼중
으로 된 문을 걸어 닫고 빨간 전등을 켰다. 하얀 시트가 정육점 쇼윈도처럼 진한 분홍색
으로 변했다. 능숙한 솜씨로 전라(全裸)의 미연이 채찍을 휘둘렀고 사내는 비명을
질러댔다.
“약속 꼭 지킬 거지?”
“그, 그럼요 공주님.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지금?”
“무엇으로 그걸 증명하지?”
“공주님 분부라면 무엇이라도 받들게요.”
“정말이지? 틀림없는 거지?”
미연이 채찍을 휘둘렀다.
“아이쿠, 공주님 정말이라니까요.”
“자, 그럼. 나를 태우고 말처럼 뛰어봐.”
- 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