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내린 눈(7)
유월에 내린 눈(7)
- 여강 최재효
오랜만에 피워보는 억센 사내와 정염의 불꽃은 밤새도록 꺼질 줄 몰랐다.
최선달의 두툼한 손이 박씨녀의 야들야들한 젖가슴과 둔부를 지분거리자 박씨녀
는 달팽이처럼 몸을 움츠리며 사내의 더욱 강한 움직임을 원하고 있었다. 사내의
뜨거운 혀가 박씨녀의 입 안을 휘젓자 박씨녀는 자신도 모르게 사내의
등을 힘껏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이성의 지배가 아닌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서서히 원초적 자웅의
힘찬 몸놀림을 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 본 사내에게 내가 왜 이러나? 그러나 이 사내의
품이 왜 이리 포근하고 따뜻하단 말인가?’
박씨녀는 스스로 사내의 격정적인 행위에 감탄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문약한
남편 정진경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바보 같은 남자. 제 아내 하나 건사를 못하고 제 어미 눈치만 보고 있다니. 그런
남자가 어떻게 한 가정을 이끌고 훗날 한 가문과 조정의 수장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사내의 억센 손이 박씨녀의 저고리와 치마를 벗겨 내리려고 하자 박씨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사내의 손이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왔다.
“항아님, 정말로 천상에서 방금 하강한 선녀 같습니다. 이런 영광을 주시어 고맙
습니다. 오래 오래 항아님을 인애하고 싶습니다.”
“고, 고마워요 선달님. 저도 선달님이 좋아요. 그러나 주막에 있다고 하여 아무에게
함부로 몸을 놀리는 여인은 아니랍니다.”
“알고 있소. 그대의 눈매와 얼굴에 고매한 기품이 어려 있음을 보았답니다. 이대로
, 이대로 천년만년 있고 싶습니다.”
사내의 억센 근력이 박씨녀를 마치 공기돌 놀리듯 하였다.
활화산 같은 두 몸이 하나 되자 봉놋방은 갑자기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사내
의 조용하면서 완만하고 강한 몸놀림에 따라 박씨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오르다가 끝없이 추락하기를 수십 번 사내의 몸놀림에 따라 박씨녀의 심신은
희로애락을 반복하며 오색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윽-. 새벽닭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사내의 희열에 찬 신음이 터졌다. 사내와 박
씨녀는 땀에 흠뻑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항아님, 너무 기쁘오. 내 생전에 그대 같은 여인은 처음이오. 내일 새벽 주막을 떠나
면 곧 다시 그대를 찾아오겠소. 내가 다시 이 주막을 찾으면 나를 맞아주시겠소?”
“......”
최선달은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힌 박씨녀를 살포시 안아주면서 속삭였다.
봉놋방에 고요가 찾아왔다. 정력이 절륜한 최선달은 박씨녀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오랜만에 행복한 잠을 청했다. 박씨녀는 오랜만 사내다운 사내를 만났다고
생각하면서 아직도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열정을 조용히 식히고 있었다. 동창이
밝았을 때 박씨녀는 옆 자리가 허전함을 느끼고 눈을 떴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최선달이 잠자리를 빠져 나간 것이 얼마 안 된 듯 했다. 박씨녀의
베개 머리에 엽전 200냥과 부디 몸조심 하라는 쪽지가 있었다.
‘아, 참으로 좋은 분이었는데......’
박씨녀는 간밤에 있었던 뜨거운 정사(情事)를 다시 한 번 떠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언제 그분을 다시 한 번 뵐 수 있을꼬? 경기도 여흥에서 오신 분이라고
했는데......’
박씨녀와 덕칠이는 주막에서 억척스럽게 일하면 돈을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
했다. 박씨녀는 주막에서 자주 교양 있는 선비들과 술벗이 되기도 하고 함께 밤을
지새우기도 하며 허전함을 달랬다. 그렇게 또 서너 달이 지났다. 정진경은 다시는
박씨녀를 찾아오지 않았고 박씨녀는 그런 남편이 야속했다. 박씨녀의 가슴 속
한편에 아이들이 보고 싶은 그리움이 솔솔 일기 시작했다.
‘ 아이들이 보고 싶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그래, 다시 한 번 아이
들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해야겠어. 그냥 아이들만......’
국화향기 진한 늦가을 어느 날 박씨녀는 덕칠이와 시댁을 향해 갔다. 덕칠이
미리 칠보에게 기별을 넣어 박씨녀의 두 아들들을 점심 때 집 근처 주막으로
데리고 나오도록 부탁했다.
박씨녀는 일 년 만에 만나 볼 아들 근영과 근수의 얼굴을 그리며 초조하게 기다
렸으나 두 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두 아이들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갈 즈음 칠보가 풀이 죽어서 나타났다.
"칠보야, 어찌 된 거니? 왜 이제 나타나는 거야? 아씨가 얼마나 초조하게 도련님들을
기다렸는데. 도련님들은 어찌하고 너만 혼자 나타난 거야?"
"아씨, 이놈을 용서하세유.“
칠보는 박씨녀를 보자 흐느겼다.
"칠보야. 무슨 일이니? 울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아씨, 두 도련님들에게 아씨를 만나러 가자고 하니까. 도련님들이 ' 할머니가
절대로 엄마를 만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따라 나서지 않으셨습니다요. 그리고
도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씨께서 오랑캐가 좋아 다시 오랑캐에게 시집을 갔
다’고 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요."
박씨녀는 칠보의 이야기를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 요망한 늙은 여우가 이제 내 자식들에게 까지 나를 나쁜 년으로 매도를 해.
나쁜 년! 내 너희들을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그냥두지 않을 거라고......"
박씨녀는 실성한 여자처럼 울부짖었다.
두 자식에게 까지 자신을 오랑캐가 좋아 오랑캐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으니,
두 아이들이 어머니 박씨녀에 대한 적개심이 어느 정도 일 것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박씨녀는 아이들 가슴에 못을 박는 파렴치한 시어머니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
다. 얼마든지 좋게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바람난 여자로 취급한
것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덕칠아, 나하고 시댁으로 가자. 지금 당장."
"아씨, 지금 저녁 때가 다 되었어유. 가시려면 내일 가세유. 먼저처럼 대문도 열어
주지 않을 것 같구먼유."
"아냐. 어서 가자. 어서."
박씨녀가 비틀 거리며 일어서자 덕칠이 부축했다. 늦은 밤 시집에 도착한 박씨녀
는 있는 힘을 다해 대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쾅쾅쾅-.
"근영아, 근수야! 어미가 왔다. 네 어미가 왔어. 얼른 문을 열어라. 네 엄마는 오랑
캐에게 시집가지 않았어. 어서 나와 보렴. 어서."
박씨녀는 울면서 대문을 두드렸다. 박씨녀가 다시 찾아와 대문을 두들긴다는
보고를 받은 시어머니 김씨는 손자들을 후원으로 숨겨 박씨녀가 찾아 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고, 즉시 남자 하인들은 불러 모아 명을 내렸다.
"지금 어떤 미친년이 찾아와 우리가문을 욕보이기 위해 대문을 두드리며 난리를
치고 있다. 저 미친년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패서 저 멀리 내다 버리고 오너라.
만약 내 말을 어길 시에는 네 놈들부터 몽둥이찜질을 받을 터이니 명심하거라."
시어머니 김씨의 서슬 퍼런 명이 떨어지자. 하인들은 차마 울고있는 박씨녀를
그냥 두들기지 못하고 빈 가마를 덮어씌우고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퍽-, 퍽-. 수십 차례의 몽둥이세례가 박씨녀의 등짝을 강타했다. 몽둥이를 내
리치는 하인들 눈에도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이놈들, 네 놈들이 감히 상전을 치다니. 네놈들이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어서
물러가지 못해.”
“아씨, 죄송허구먼유. 저희들도 살기 위하서는 어쩔 수 없구먼유. 용서하세유.”
남자하인들이 몽둥이찜질을 한다고 하지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김씨의 명을 받잡기 위해 형식적으로 치는 매질이었다. 그러나 약한 남자
들의 매질에도 박씨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어찌, 제집을 찾아 온 사람에게 매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이것이 정녕 내가 자식을 낳아 준 가문의 대접이란 말인가? 이것이 ......"
박씨녀는 가마 속에서 땅을 치며 피 눈물을 쏟았다. 한 밤에 여인의 애끓는 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종로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높은 벼슬아치들
이었다.
“쯧쯧쯧……. 진경이 놈이 바보같어. 제 여자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조정에
나가 무슨 일을 한단 말이여.”
“이 사람아, 상감님도 해결하지 못하는 환향녀 문제를 일개 벼슬아치가 무슨 힘이
있어 오랑캐에게 잡혀갔다 돌아 온 제 계집을 집안으로 들인단 말여? 자네는
장유인가 뭔가 하는 미친놈이 청나라에서 돌아 온 제 며느리를 제 놈의 아들과 이혼
하게 해 달라고 상감에게 장계올린 것을 몰라서 그래?”
“그놈도 미친놈이고 상감인가 땡감인가 하는 놈도 미친놈이여.”
“쉿 -. 이 사람아 죽고 싶어 환장했어?”
“이런 나라에서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이여? 참으로 답답하이. 그놈에 가문의
영광이 무엇이 관대 제 며느리를 미친년 취급하며 내 친단 말이여? 두고 보게
저 정가네도 얼마 못가 망조(亡兆)가 들걸세. 나 같으면 며느리를 일단 집안에 들였
다가 덕칠이에게 재가(再嫁)시켜 멀리 떠나게 하던지, 아니면 모른 체 할 걸세.
험-."
이웃의 나이 지긋한 남자들은 박씨녀의 통곡을 들으며 저 마다 한마디씩 내 뱉
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아씨, 용서하세유……."
몽둥이찜질을 받던 박씨녀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하인들은 박씨
녀를 업고 가까운 의원으로 데리고 갔다. 박씨녀의 몸을 만신창이가 되어 머리
이외에는 모두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박씨녀 곁에서 덕칠
이 통곡 하며 간호하였다.
“아씨, 아씨........”
덕칠은 박씨녀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얻어주며 한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평안도 어느 산골에 갔을 때 아씨를 모시고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한 백년 세상모르고 살아야 하는 건데. 한 백년 아무 생각 없이 말이야.’
덕칠이는 방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후회하였다.
“아씨, 미안하구먼유. 내가 바보 같아서 아씨를 이렇게 되도록 하였구먼유.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씨를 강제로라도 제 각시로 삼을 걸 그랬어유. 그래서
심심산골에서 콱 틀어 박혀서 살 걸 그랬어유.”
“아아, 안돼. 근영아! 근수야! 엄마는, 엄마는 오랑캐에게 시집가지 않았어.
안돼.”
박씨녀는 자주 악몽을 꾸는지 두 손을 허공에 들고 휘저으며 두 아이 이름을
불렀다. 그런 박씨녀를 바라보며 덕칠이는 비 오듯 눈물을 쏟아냈다. 덕칠이 흘린
굵은 눈물방울이 박씨녀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박씨녀가 늦은 밤 집에 왔다가 어머니 김씨의 명에 의해 하인들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난 일을 하인들로 부터 전해들은 정진영은 어머니의 서슬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슴을 쳤다.
"이일을 어찌 하누. 이일을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이런 몹쓸 짓을 하다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천벌을...... 가문의 명예가 뭔데 불쌍한 사람을 잡는단 말
인가. 집 나간 짐승이 찾아와도 반기거늘……."
정진영은 어찌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환향녀에게 비정한 상감과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놈들이로다. 사지에서 돌아 온 제 백성을 내치는 이 몹쓸 나라가 조선
말고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이더냐?”
박씨녀는 이틀을 의원에 누워 진료를 받은 후 주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주모는 도망간 줄 알았던 박씨녀가 돌아오자 반색하였다. 주막에 돌아와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박씨녀는 무서운 독기를 품었다. 덕칠이와 봉희는 그런 박씨
녀가 안타깝고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덕칠 오라버니, 언니가 너무 가엾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지요?”
마음의 안정을 찾은 봉희가 어느새 덕칠이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글쎄.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안 서는구나.”
“우리라도 이 주막에서 열심히 일해서 언니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드려야
겠어요.”
“그래, 봉희야 고맙다.”
박씨녀는 차차 몸이 회복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 반드시, 반드시 이 원한을 풀고 죽으리라. 한 때 자신의 며느리이고
자신들의 핏줄을 낳아준 나를 어떻게 개돼지 보다 못한 취급을 할 수 있단 말
인가.“
박씨녀는 서럽고 외로운 심정을 달랠 길 없었다.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이 원통하고 서러운 원한을 갚지 못할 터, 내 기생이
되어 꼭 이 원수를 갚을 테다.’
박씨녀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김씨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
다.
‘내가 당한 수모 이상으로 갚아 줄 것이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이튿날 오후 박씨녀는 주막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덕칠이와 함께 제법
이름난 기루(妓樓)가 많다고 소문난 다동(茶洞)을 찾아 갔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
다가 찾은 곳은 태흥관(泰興館)이라는 제법 규모가 큰 기루였다. 솟을 대문과 푸른
기와 그리고 붉은색 기둥이 기루의 규모와 번영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취객들로 기루는 분주해 보였다.
“명옥아, 내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지? 꺼억 -”
“아이고, 서방님. 저도 서방님 없으면 못산다고요. 그러니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들려주시와요. 이년 가슴에 불만 질러놓고 다른 년한테 가지마시고요. 아셨
죠?”
“고년 제법 말할 줄 아는구나. 알았다. 알았어. 내일 또 오마.”
큰머리를 칭칭 동여매 얹은 젊은 기생이 비취색 비단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대갓집 도령으로 보이는 남자를 대문까지 나와 배웅하고 있었다.
한 남자를 배웅하자 금방 또 다른 중년의 양반차림 남자가 점잔을 빼며 태흥관
으로 들어섰다. 제법 의젓한 차림새로 보아 권문세가의 자제나 돈 좀 있는 집안
자제 같았다.
“하이고오. 서방님, 어서 오시와요. 이년, 산월이 서방님 오실 때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요."
“호, 고년 주둥이는 갈수록 가관이구먼.”
노랑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반쯤 걷어 올린 기생이 사내의 팔을 잡더니 기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 사람은 기생들의 입씸에 혀를 내둘러다.
‘내가 기생이 된다면 저 여인들처럼 할 수 있을까?’
박씨녀는 방금 본 두 기생의 행동에 주눅이 들어 어쩌면 자신은 기루의 생리에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씨, 어서 들어가 보세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유.”
“그래, 덕칠이 네 말이 맞다. 그런데 기생을 모집한다는 방(榜)도 없는데 무조건
들어간다는 것도 우습구나.”
“아씨, 기왕 마음먹으셨으니 그냥 들어가보자구유. 혹시 알어유? 이집에서 특별채
용이 있을지 말여유.”
“언니, 덕칠 오라버니 말씀대로 일단 들어가 보세요. 저도 기생이 될 수만 있다면
언니를 따라서 기생이 되고 싶어요.”
박씨녀가 우물쭈물 거리자 덕칠이와 봉희가 박씨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기루 안으로 들어서자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박씨녀 일행을
바라보면서 낯선 남녀가 대낮에 왜 기루를 찾았는지 의아해 했다.
“이 보슈들, 어떻게 왔우?”
중년의 남자가 덕칠이를 보고 물었다. 그러자 박씨녀가 앞서며 대답하였다.
“나는 기생이 되고 싶어 왔습니다.”
남자가 박씨녀 일행을 보고 껄껄 웃었다.
“아니 왜 웃는 거유?”
덕칠이 남자를 쏘아보며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여기는 기생을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기생들과 남자 손님들이 어울려 시화서
(詩畵書)를 논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곳이라네. 집을 잘못 찾았어. 기생이 되고
싶으면 기생청(妓生廳)으로 가야지 어찌 이곳엘 왔나?”
“이보세유. 우리 아씨는 이 곳에서 기생 생활을 하고 싶어 하시네유. 이집 주인을
만나게 해주세유.”
“허. 여기는 기생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술 마시는 곳이라니까. 그러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다른데 나 가보슈. 어서.”
“이봐유. 안 돼유. 우리 아씨는 이집에서 일해야 해유.”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만. 어서 사람들을 불러 내 치기 전에
썩 나가지 못할까?”
“안돼유. 우리 아씨는 여기서 일해야 해유.”
사내와 덕칠이 정원에서 옥신각신하자 마침 지나가던 태흥관의 여주인 춘매가 이
광경을 보고 다가왔다.
“행랑아범, 무슨 일이야?”
“아, 글쎄 이 사람들 기생이 되겠다고 찾아와 막무가내로 주인마님을 만나게 해달
라고 떼를 써서 막 쫓아내려던 중입니다.”
춘매는 박씨녀와 봉희의 자태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흠-, 두 여인 모두 자색은 곱구나.’
“이 두 여인을 내 방으로 들여보내거라.”
주눅이 잔뜩 들어 춘매의 방으로 들어온 두 여인은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 날카로워 봉희는 얼굴을 숙였다.
“이름이 무엇인고?"
“박녀라 하옵니다."
“......”
“너는 이름이 없느냐?”
“보, 봉희라 하옵니다.”
춘매가 봉희에게 이름을 묻자 봉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였다.
“그런 이름 말고......”
춘매는 기생의 경력이 있는 줄 알고 다시 기명을 물었다.
"다른 이름은 없사옵니다."
박씨녀는 춘매에게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자매가 간신히 살아오다가 기생이 되
기로 마음먹었으며, 기루에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환향녀라는 사실과
혼인했던 사실을 숨겼다.
"그럼, 너희 둘은 아무 재주가 없는가 보구나, 이곳에서 일을 하려면 시(詩),화(畵),
서(書) 그리고 노래와 가야금 장구 등 악기 연주에도 능해야 하느니라. 그래,
글은 배웠느냐?"
춘매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시 박씨녀와 봉희의 수줍은 얼굴에 꽂혔다.
"예"
박씨녀가 모기소리 만하게 대답하자. 춘매를 지필묵을 박씨녀와 봉희 앞으로
내밀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시 한 수씩 써 보고 그림을 그려보거라.“
박씨녀는 익히 어릴 적부터 엄부(嚴父) 밑에서 공부를 한지라 시화서에는 능통
했다. 한참 만에 박씨녀가 한시 한 수와 난초도 한 폭을 그려 주모에게 내밀었지
만 봉희는 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주저거렸다.
誰斷崑山玉(수단곤산옥) 누가 곤륜산 옥을 잘라
裁成織女梳(재성직녀유)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 직녀는 견우님 떠나신 뒤
愁擲壁空虛(수척벽공허) 시름하며 허공에 던져두었네
박씨녀가 쓴 한시는 조선 중종 임금 때 개경의 뛰어난 기생인 황진이의 영반월
(詠半月)이란 임을 그리는 시였다. 춘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루 생활
20년이 넘도록 여자가 이리도 초서체를 잘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난초 그림 또한 일품이었다.
"오, 정녕 이것이 네가 쓴 글이더냐? 정녕? 황진이가 환생하였구나. 그림 또한
빼어났구나."
춘매는 경이로운 눈으로 박씨녀를 바라보며 존경스러워 했다. 행색으로 보아
얼굴은 미색이나 머릿속에 별로 들어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자신이
얼마나 큰 착오를 저지를 뻔했는지 속으로 미안해했다. 춘매는 봉희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박씨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노래는 할 줄 아느냐? 또 악기는 다룰 줄 알고?"
"노래는 집에서 가끔 혼자 가야금을 타며 해보긴 했습니다만……."
박씨녀가 말끝을 흐리자 춘매가 가야금을 내어 주며 아무거나 한 곡조 해보라고
하였다.
박씨녀는 한참을 망설였다. 전쟁이 터지기 전 가끔 후원에서 시어머니 김씨가
출타하고 없을 때 가끔 울적한 심사를 가야금을 연주하며 풀곤 했다. 어릴 적 친정
오빠한테 배운 가야금이라 연주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뚱땅-. 박씨녀가 가야금을 고르더니 노래를 시작하였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 바리고 가시리 잇고 ,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 위 증즐가 태평성대
박씨녀는 한양에서 심양까지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오며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졌다. 그 감정을 노래에 실어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자 듣는
사람들 가슴이 울컥하였다.
"오 그래, 됐다. 됐어. 그만 하면 네가 기생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여도
이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기생 뺨치게 되었구나. 이제부터 너는 내가 거두어 줄
터이니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나에게 기생 교육을 받거라. 네 이름이 없으니
가을 추(秋), 물결 랑(浪) 추랑이라고 하겠다. 어떻냐? 마음에 드느냐?“
“네에. 마음에 드옵니다.”
“그리고 너는 네 언니에 비해 여러가지로 많이 떨어지는구나. 너도 언니를 따라 나
에게 기생 교육을 받도록 하여라. 네 이름은 봄 춘(春), 눈 설(雪)이라고 지어주마.
어떻냐? 마음에 드느냐?”
“네에 마음에 드옵니다. 고, 고맙사옵니다.”
춘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생각지도 않는 박씨녀와 봉희가 찾아와
기생이 되겠다고 자처해 시험 해본 결과 타고난 미색의 박씨녀를 조금만 가꾸면 한양
제일의 기생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복 덩이가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며 속
으로 쾌재를 불렀다. 태흥관에는 여러 관기(官妓)가 아닌 일반 기녀들이 있었지만
잦은 이적(移籍)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돈 많은 양반들이 마음에 드는 기생이
있으면 꼬드겨 첩으로 삼거나 다른 기루로 옮기도록 하여 자신의 음욕을 채웠다.
"당장 오늘부터 나에게 교육을 받고 한두 달 뒤부터 손님을 받으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하구나. 그런데 너희와 함께 온 남자는 누구냐?"
"네에, 저희 집에서 살던 총각인데 지금은 저의 수발을 들어 주고 있답니다. 이곳
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기거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박씨녀가 사정을 하자 춘매 또한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박씨녀와 봉희는 전에 춤을 배우지 못했지만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춘매
로부터 춤과 장고 노래를 배웠다. 달포 쯤 되자 박씨녀는 어느 기생 못지않은 최정
상급의 기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봉희는 겨우 노래와 춤을 배우고 계속해서 춘매로
부터 교육을 받아 차차 기생의 자질을 익혀 나갔다. 박씨녀는 두 서너 달 춘매에게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특히 다동은 한양에서 최고로 가는 기녀들과 화려하고 품격 높은 시설로
명성을 드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기녀는 역시 방중술의 묘기에 그 진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춘매는 어느 날 추랑을 부르더니 어디 갈
데가 있다고 하면서 가마 두 대를 준비 시켰다.
“어서 타거라.”
“어디로 가시는지요?”
“너는 알거 없다. 절대로 가마 밖을 내다보지 말거라.”
젊은 가마꾼 네 명이 멘 두 대의 가마는 다동을 출발하여 한 식경 쯤 가더니 조용한
집 앞에 멈추어 섰다.
“어서 내리거라.”
“여기가 어디에요?”
“......”
처음 보는 집이었다. 허름한 기와집인데 대문에 붉은 깃발이 꽂혀 있어 왠지 으스
스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이보시게 저 아이 두 눈을 가려주시게.”
“......”
춘매의 명에 따라 가마꾼 중에 한명이 다가와 추랑의 눈을 검정색 헝겊으로 가렸다.
“어머니, 저를, 저를 어디로 데리고 가시는거에요?”
“명기(名妓)가 되기 위한 마지막 교육이니라. 그러니 너는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
나도 나를 믿고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받은 모든 교육이 수포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추랑은 춘매의 손에 이끌려 이상한 집안으로 인도 되었다. 춘매의 손에 잡혀 따라
가는 추랑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작은 대문이 열리고 한참
더 걸어가자 별채로 보이는 집이 나타났다.
“어서 오시게. 오랜만일세 그려. 이번에는 또 누군 인가?”
“우리 태흥관을 부흥시킬 아이에요. 최고의 명기로 만들어 달라고 이렇게 내 손수
데리고 왔어요. 한 사나흘, 이 아이를 맡길 테니 조선 최고의 명기를 만들어
주세요. 내 수고비는 섭섭지 않게 드리리다.”
“보아하니 꽤나 미색인걸. 이번에는 나도 재미 좀 보겠는걸.”
남자 목소리였다. 추랑은 깜짝 놀랐다. 춘매가 자신을 남자에게 맡게 명기를 만들
작정이라면 가무나 악기를 다루는 기술은 아닐 터, 그렇다면 또 다른 기술이라면
뻔했다.
“추랑아, 이 분은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분이시란다. 조선팔도에서 최고의
명기를 만드는데 이분을 따를 자가 없단다. 너는 사나흘 동안 이 분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을 하고, 살라고 하면 살아있는 시늉을 내야한다. 이 분은 종종 궁중
에도 불려가 공주와 왕자들에게도 교육을 시키신단다. 나는 돌아갈 테니 이분에게
모든 것을 전수받도록 하여라.”
춘매가 돌아가고 추랑은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 이상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눈이 가려진 상태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곳은 조선 최고의 기생을 만들어 내는 곳이오. 이곳을 거친 많은 기생들이
한양과 평양 등 전국 팔도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소이다. 그대도 명기가 되고 싶다
면 절대적으로 내 말을 신뢰하고 따라야 할 것이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순간부터 정절이니 절개니 하는 무의미한 것들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리
시오.
그대가 처녀이든 남자가 있는 여자든 상관없소. 조선의 기생은 왕실 사람들
이나 사대부, 즉 양반들에게 음주와 가무 그리고 밤일로 안락을 제공하기 위하 만
들어진 제도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오. 기생이 되는 순간부터 몸뚱이는 자신의
것이 아니요. 명심하시오.“
추랑은 남자의 안내에 따라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다. 추랑이 방에 들어서자 눈가
리개가 벗겨졌다. 작은 방에 중년의 여인이 추랑을 맞아주었다. 대낮인데도
황촛불이 켜져 있고 사방 벽에는 하얀 휘장이 쳐져 있는데 휘장 뒤에는 무슨 비밀
스러운 물건이 숨겨진 듯 했다. 아래 위를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은 머리에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8괘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있어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이상한 기가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나는 소녀(素女)라 한답니다. 그대는 나에게 방중술에 대하여
교육을 위임받았습니다. 나에게는 주로 실습을 위주로 배워야합니다. 물론
이론도 중요합니다만 실제 상황에 맞는 실습이 남정네의 마음을 사로잡데는
최고지요. 만약 하기 싫다면 일찍 포기해야 할 겁니다. 나는 그대에게 황제의
소녀경(素女經)을 위주로 비법을 전수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녀경입니다.
우선 이 책을 보기 전에 내 이야기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여인은 냉수 한 사발을 마시더니 소녀경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녀경은 도교의 자연주의 사상과 옛날 중국의학을 토대로 쓰인 남녀교접에
관한 최초의 사상서이며 의술적 측면에서 기술한 성의학서입니다. 남녀의 결합
이란 하늘과 땅의 결합처럼 매우 신성한 것이며, 그 신성한 남녀 교접법도의
핵심에는 사정억지의 법도가 있지요. 따라서 이 법도를 잘 실행하게 되면 남녀
교접을 통한 쾌락은 물론 장수와 튼튼한 신체를 유지하는 비법을 얻을 수 있답
니다.”
추랑은 여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 빠짐없이 기억하였다.
“소녀경의 궁극적 지향점은 쾌락과 동시에 건강과 장생의 추구이며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법이 바로 방중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중술은 중국의 신선들에게서 비롯되었지요. 신선사상이란 중국의 조물주로
여겨지는 황제(黃帝)를 신선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불로장수와 불로불사에
이르는 도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선도 사상에 장자의 무위 자연적 사상이
보태짐으로써 만들어진 사상입니다. 이는 세속을 초탈하여 언제나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그럼 어떻게 불로불사할 수 있을까요? 그 고뇌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방중술입
니다. 방중술의 본래 의미는 침술 또는 남녀교접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남녀 음양의 교접의 기술, 즉 음양교접의 비법이 된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가장 대표적인 남녀 교접의 체위를 골라 말씀드리지요. 먼저 항아님
께서 입고 입는 옷을 모두 벗어주세요.“
“......”
“어서 벗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교습을 할 수 없습니다.”
“옷을 벗지 않고 교습을 받을 수는 없는지요?”
“남녀의 교접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옷을 몸에 걸치고 어떻
게 교접의 희열을 느낄 수 있어요? 어서 옷을 모두 벗으세요.”
여인의 말에는 은근히 명령적인 투가 섞여있어서 못을 벗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
어질 것 같았다. 여인은 일어나더니 벽장(壁欌)에서 빨간색의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크고 작은 다양한 색깔의 남근(男根)이 들어 있는데 그 모양이 너무
정교하고 앙증맞게 만들어져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하였다.
여인이 벽에 처진 휘장을 걷어내자 차마 눈뜨고 보기에 민망한 남녀교접의 다양
한 체위의 그림이 나타났다. 그림이 얼마나 정교하고 외설적인지 추랑은 그림을
보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마치 그림속의 남녀가 질러대는 신음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림은 물감이 입혀져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살아 움직이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림 아래에는 번호가 순서대로 붙여져 있었다.
“음-, 육덕이 아주 좋군요. 남정네들이 좋아하는 육신을 지니셨네요. 나흘 동안
수많은 남녀교접의 비법 중 특별히 남자를 사로잡아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몇 가지만 전수할 테니 그리 아시고 내 말에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
“왜 대답이 없어요? 아시겠지요?”
“네에”
추랑은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다음에 또 어떤 말이 나올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낯선 여인 앞에서 발가벗겨지자 추랑은 묘한 감정이 들
었다. 여인은 그림을 이것저것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교접의 법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고 온화하게 행하는 것을 으뜸
으로 삼습니다. 남정네가 여인의 아랫배 단전(丹田)을 살살 문지르다가 더 깊이
들어가 쓰다듬고 또 조금 흔들어 주면 여자의 기(氣)가 발동됩니다. 즉 귀가 빨갛
게 달아오르고, 유방이 부풀어서 이를 두 손으로 쥐면 손바닥 안에 가득 차며,
고개를 자주 꼬고 다리를 촐싹이며, 요염한 자태로 남정네의 손길을 원하게
되지요.
이와 같이 되었을 때 약간 오그리고 얕게 집어넣으면 남자는 여자의 정기
(精氣)를 흡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장의 진액(眞液)은 반드시 혀에 있는바,
이것을 옥장(玉醬)이라 부르고 이것을 먹으면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교접을 할 때 이 진액을 침과 함께 많이 빨아먹으면 뱃속이 산뜻
해지고 약을 먹은 것처럼 소갈이 금세 치유되며 혈액 순환도 좋아지고 피부도
처녀의 살결처럼 윤기가 돌게 된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남정네들에게 자주 이 옥장을 빼앗기면 아무리 튼튼하고
육덕이 튼실한 여인이라도 곧 몸이 빼빼 마르게 되니 절대로 교접시 남정네들
에게 옥장을 자주 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남자는 불이고 여자는 물입니다.
따라서 불과 물이 잘못하며 서로를 죽일 수 있습니다. 이 불과 물의 적절한
사용법을 아는 것이 바로 방중술의 핵심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인은 침을 튀겨가며 추랑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럼, 남녀가 교접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지요?”
“이미 교접을 경험하였다면 지속적으로 교접을 하여야 합니다. 천지(天地)에
열림과 닫힘이 있고 음양(陰陽)에 추이(推移)가 있지요. 사람은 이 음양의 법칙을
쫓아 춘, 하, 추, 동의 사계절에 따라 삶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접을
그만두신다면 이는 신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되어 신기(腎氣)가 펴지지 않고
음양의 길이 막혀 버리는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으로써 생명의 근원인
원기를 스스로 보충할 수 있겠습니까? '
성인이 음양 교접을 하지 않으면 옹저병이 생기지요. 그래서 감옥에 갇힌 죄수
라든지 홀아비, 흘어미는 병이 잦고 수명이 짧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욕정이 발동하는 대로 아무런 절제 없이 교접을 자행하면 그 또한 수명을 단축
시키는 첩경이랍니다. 오직 절제 있는 교접만이 건강의 손상을 피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옹저병(癰疽病)이란, 이른바 농독성 체질로서 혈액이 정체하여 죽은피가
되어 고름이 나오는 종기와 같은 것이 생기기 쉬운 체질로 변하는 것을 말합
니다. 이것을 다스리는 데는 어혈을 몰아내는 이른바 구어혈제인 복숭아씨,
모란의 근피 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여인이 있고, 남자가 있는 경우는 적절한
교접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병이랍니다.
남녀의 교접에서 여인은 자신의 육신을 보전해야 오래오래 남정네들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남정네에게서 정기(精氣)를 빼앗겨서는
아니 됩니다. 환정(還精)이 곧 그것인데 교접시 한정된 정기(精氣)를 쓸데없는
곳으로 새어 나가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접을 할 때마다 반드시 남자가 사정(射精) 한 것만큼의 정기를 되찾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녀는 자신이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남자의 옥경(玉莖) 귀두를 화심(花心)의 입에 맞추게 한 다음 움직이지 않게
하고서 남녀의 모아진 정기를 남자가 먼저 흡수하기 전에 여인이 먼저 흡수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흡수된 정기는 척추를 거쳐 배꼽 밑의 단전(丹田) 으로 들어가
는데, 그 효력은 인삼이나 녹용과 같은 약을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탁월하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환정의 방법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실행할 수 없는 것으로서 피나는 수행(修行)을 거치지 않고는 터득하기
어렵습니다.
연기(練氣)'의 방법을 자주 행함으로써 낡은 기운을 몰아내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여 스스로 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옵니
다. 또한 옥경(玉莖)도 자주 쓰지 않으면 결국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마옵니다. 여인들도 마찬가지로 옥문(玉門)을 굳게 닫아버리면 온갖 잡신이
범접하여 질병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도인(導引)'의 방법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 여인은 마치 여선(女仙)처럼 사바세계의 희로애락을 훤히 꿰뚫고 있나보
구나.’
추랑은 여인의 거침없는 말에 속으로 감탄하였다.
“인간의 생명은 기(氣)와 혈(血)의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서로 어울려 유지
됩니다. 기(氣)는 양(陽)이고 혈(血)은 음(陰)에 해당하므로, 본래 혈이 많고
기가 적은 여자는 총체적으로 음으로 분류되고 그와 반대인 남자는 양으로
분류되지요. 여자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월경(月經)을 통하여 혈(血)을 잃기
때문에 혈 부족이 되고 상대적으로 기(氣)는 과다해 집니다.
또한 남자의 경우는 정액(精液) 이 몸 안에 가득 괴게 된답니다. 원래 정액
(精液)과 혈액(血液)은 그 본체(本體)가 하나이므로 사정(射精)으로 조절해 주어
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혈이 과다한 결과로 상대적으로 기 부족이란 현상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여기에서 여성의 과다한 기(氣)를 남자가 취할 수 있게 된다면 기와 혈이
모두 충실해져 오래오래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방에 있는 여인들은 이 기를 많이 축적해 놔야 끊임없는 방사(房事)를
가질 수 있답니다. 남자란 일단 끝나면 그것으로 그만 만족하고 잠에 떨어지고
말지만 여자는 그와 반대로 쏘이면 쏘일수록 더욱더 좋아하여 그치려하지
않는답니다.
이것은 남자는 화성(火性)이기 때문에 일단 물을 뒤집어쓰면 금세 꺼져 버리
고 말지만, 여자는 수성(水性) 이기 때문에 화기(火氣)를 받으면 부글부글 끓어
올라 불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끓기를 그치지 않기 때문인데 이렇듯 남녀의
미묘한 차이를 잘 활용 것도 남정네들을 사로잡는 비결이기도 하답니다.
소녀경에서 그 기(氣)를 구하는 방법과 혈(血)을 주는 방법이 바로 방중술의
핵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구체적인 교접의 방법에 대하여는
이 그림을 보면서 설명해 드리지요.“
여인은 그림을 집어가면서 9법(九法)과 8익(八益)이라는 체위에 대하여 다시
침을 튀겼다. 9법은 청룡, 호랑이, 매미, 거북이 등의 형상을 본 떠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온 체위이며 이 체위를 하나하나 체험하면, 교접의 쾌락은 물론, 몸이
건강해지고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남녀 교접의 방법에는 8익(八益)
이 있는데, 이는 성적으로 음양조화를 가져다주는 체위라고 하였다. 여인은
수많은 남녀의 교접 방법 중 남자를 사로잡는 비법 두 가지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였다.
제일 먼저 토연호라는 자세인데 이 자세는 토끼가 매우 가는 털을 빨고
있는 형상으로 남정네가 먼저 다리를 곧게 편 채 반듯하게 드러눕고 여인은
그 위에 걸터앉아 두 무릎을 남자의 바깥쪽에 두고 등을 돌려 남자의 발쪽에
마주하는 자세를 취하게 한다. 여인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지탱하면서
머리를 낮게 숙인 다음 옥문의 핵심을 자극시키면서 음경을 옥문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여자는 쾌감으로 인해 애액을 샘물처럼 내 쏟게 될 것이며 쾌감으로 온 몸을
뒤틀게 될 것이다. 교접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의 절정에 도달 했을 때 중단
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인데 그렇게 해야 남정네들이 여인에게 애걸복걸하기 때문
이다. 여인이 설명을 마치자 남자의 모형의 인형을 가리키며 방금 설명한
자세를 취해보라고 하였다. 남자의 인형에는 기름이 발라져 번질거리는 옥경이
불쑥 올라와 있는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추랑은 멈칫거리다 할 수 없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벽에 있는 그림 속 여인의
자세를 취하자 여인이 인형에 설치되어 있는 남근을 추랑의 옥문에 맞추더니
서서히 움직여보라고 하였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추랑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천천히 여인의 요구에 응하였다. 여인은 이틀 동안 추랑이에게 토연호의
자세를 수십 수백 번을 연습시켜 추랑이 눈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토연호에 이어 여인은 이번에는 어접린(魚接鱗)이란 교접방법에 대하여 설명
하느라 열을 올렸다. 물고기가 서로 비늘을 문지르는 형상으로 남정네가 반듯
하게 드러누우면 여인이 그 위에 걸터앉아 두 가랑이를 안쪽으로 향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때 옥경을 옥문으로 천천히 밀어 넣지만 아주 조금만 삽입시켜
야 한다. 깊이 넣지 말고 젖먹이 어린애가 젖꼭지를 물고 있듯이 옥경의 귀두만
살짝 물고 있는 듯한 자세에서 여인만 움직이게 하여 오래도록 지속시켜 쾌감의
희열을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남녀가 절정에 이르게 되면 아쉽지만 여인이 교접을 중단하여야 한다. 남정
네는 구름 위를 걷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기분으로 여인에게 애걸할 것을 염두
에 둔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방중술의 체위는 남성이 이끄는 형태이
지만 이 두 가지는 여인이 남정네를 이끄는 형식으로 여인의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남정네들의 애간장을 녹일 수 있는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여인은 추랑에게 인형위에 걸터앉아 설명한대로 어접린의 체위를
실습할 것을 요구하였다. 벌거벗은 상태로 남성의 인형위에 걸터앉아 있는
자신이 왜 이런 행위를 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한양에 제일가는
기루의 명기(名妓)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길이라면 기어이 해내고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추랑은 여인의 요구에 응하였다.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 너무 빨라요. 그렇게 되면 남정네가 금방 방정(放精)
을 하게 되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답니다. 자 다시 한 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인형을 미남자라고 생각하고 다시해 보세요.”
아-. 추랑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呻吟)을 토해 냈다. 여인이 비음(鼻音)을 질러
대자 여인의 눈이 빛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음 -, 이 연인은 타고난 음부(淫婦)로다. 내 말 한번 듣고 이렇듯 실습을
잘 하다니 앞으로 한양의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모두 이 여인 사타구니 아래
무릎을 꿇게 생겼어.’
여인은 속으로 추랑을 부러워하면서 추랑의 미끈한 육덕을 만져보았다.
‘분명 산고(産苦)의 흔적이 있긴 한데 웬만한 사람은 알 수 없겠구나.
이 여인은 성실히 교육을 받으면 최고의 방중술을 익혀 마음대로 남정네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겠어.’
여인의 교육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두 가지 비법 말고도 옥경을 옥수(玉手)와
혀 그리고 온 몸으로 남정네들을 열락으로 인도하는 비법 등 다양한 방중술을
터득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각종 최음제를 이용해 교접시 환락을 배가 시키는
조제 기술도 터득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추랑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방중술 성심을 다하여 기술 연마에 열중하였다. 여인은 불평 불만하지 않고 자신
의 명에 따르는 추랑이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마지막 날이었다. 소녀는 가장 난관(難關)이라며 아침부터 추랑이에게 귀띔해
주었다.
‘가장어렵다고? 도대체 무슨 비법을 전수하려고 그러지?‘
“점심을 들고 목욕을 하세요.”
“......”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비법이니 잘 따라야합니다.”
“......”
해거름이 되었을 때 여인은 추랑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커다란
촛불이 동서남북으로 밝혀져 있고 그 가운데 붉은 비단으로 된 원앙금침(衾
枕)이 깔려 있었다. 이상한 향내가 방안에 진동하여 금방 정신이 몽롱해 졌다.
비단 금침이 갈려진 옆으로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
“오늘 밤은 나와 지옥과 극락을 다녀와야 겠습니다.”
하얀 휘장이 쳐진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 저 목소리는 내가 처음 이 집에 올 때 들었던 그 목소리?’
휘장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자는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향을 태우며
제단에 절을 하였다. 추랑은 숨을 죽이며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 식경 후에 남자는 의식을 마치고 추랑에게 다가왔다. 남자가 술상에 앉더니
추랑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자, 이 밤은 그대 한양 최고의 명기로 태어나는 밤이 될 거요. 자, 우선 한잔
받으시오.”
중년의 잘 생긴 남자 추랑의 의지와 상관없이 옥으로 된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추랑에게 건넸다. 술잔을 안 받을 수 없었다. 한양의 최고 명기로 거듭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남자의 술을 받아 마셔야 했다.
“자, 우리 합환주를 건배 하십시다.”
‘합환주?‘
“방금 합환주라 하셨나요?”
“이 방은 나와 내 신부가 첫날밤을 맞는 장소입니다.”
“신부가 누구인데요?”
추랑이 몽롱한 상태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두 세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대는 오늘 밤, 내 신부라오.”
‘내가?’
추랑이 정신은 드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술에 무엇을 탔기에 내가 꼼작도 할 수 없단 말인가?’
“자자, 한잔 더 드십시다. 나는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이오. 하계(下界)에 잠시
내려와 부부애가 안 좋은 분들이나 남자의 영혼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여인들에게
하늘의 정기를 내려 준다오.”
남자는 정신이 몽롱해진 추랑이 곁으로 다가와 추랑이를 덥석 안았다.
“자, 이제 그동안 배운 여교관에게 배운 비술은 나에게 써봐야 하오. 실전을 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고 말거요. 그대가 정 싫다면 그만두리다.
어찌하겠소.”
“조, 좋아요. 소녀에게 정기를 내려주시고 비법을 체득(體得)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남자는 순식간에 추랑의 옷을 모두 벗기고 소녀경의 체위를 시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청룡이 용트림을 하면서 날고 있는 용번(龍飜)이라는 형상이다.“
남자는 추랑을 금침에 눕히고 팔천이심(八淺二深)의 묘법을 실행하였다. 몽롱한
상태에서 추랑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음은 호보(虎步)라는 형상이니라.”
남자는 추랑을 둔부를 높이 쳐들어 엎드리게 하고 머리를 낮게 숙이게 하였다.
남자의 부드러운 손길에 추랑은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술 한 잔 마시고 쉬었
다가 추랑을 상대로 밤늦도록 원박(猿搏), 선부(蟬附), 귀등(龜騰), 봉상(鳳翔)이
형상을 차례로 시연하였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추랑이 여인으로부터 집중 훈련 받은 토연호와 어접린의
형상을 해보라고 하였다. 추랑과 남자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즐거움
에 만끽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밖에서 추랑에게 방중술을 전수한 여인이 살며시 방문에 구멍을 내고 방안
에서 벌어지고 있는 질펀한 방사(房事)를 훔쳐보며 몸을 비비꼬기도 하고 조용히
탄식을 지르기도 하였다. 새벽닭이 울고 통이 터오기 시작할 무렵 추랑과 남자는
달콤한 잠자리에 들었다.
“추랑아, 많이 배웠느냐?”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깨닭게 되었습니다.”
“고맙구나. 너의 진가를 이제부터 발휘해 보거라.”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고 기존에 태흥관에서 일하던
기녀들은 아우성이었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지닌 춘매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랑에게 정성을 쏟았다. 시서화(詩書畵)를 제외한 춤, 장구, 창(唱)을 보강하여
노력한 끝에 단 시일 안에 추랑은 태흥관 최고의 기생으로 거듭났다.
“추랑이 어머님께 절을 올립니다. 하찮은 소녀를 이렇듯 친 딸처럼 거두어 주신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추랑아, 비록 네가 우리 기루에 온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 기루
뿐만 아니라 이 곳 다동, 아니 한양에서 너는 최고로 뛰어난 기녀가 될 것이 분명
하다. 이제는 우리 태흥관의 흥망성쇠가 너에게 달렸다. 앞으로 기방에 나가게
되면 너의 재주를 마음껏 발산해 보거라. 그리고 너 춘설은 한 일 년 정도 더 배워
야 네 언니 반쯤 따라 갈 듯싶구나. 일 년뒤에 너도 네 언니처럼 방중술을 연마하
도록 해주마. 내 앞으로 너희 자매를 친 딸 이상으로 대할테니 너희도 허심탄회하게
나를 대해주기 바란다. ”
“네에. 어머님.”
“내일부터 시험적으로 기방에 나가봐야겠다. 어떤 사내가 너의 첫손님이 될지
나도 꽤나 궁금하구나.”
추랑과 춘설이는 춘매를 ‘어머니’라고 부르면 의지하였고 춘매는 자색이 고운
두 딸을 얻게 되어 기뻤다. 덕칠이 두 여인의 변화에 속으로 기뻐하였다. 늘 아씨,
박씨녀와 봉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면서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는지
신경을 썼다.
춘매는 박씨녀에게 치마저고리 두벌과 장신구, 화장품, 가야금, 장구 등을
선물로 내렸고 봉희에게는 치마저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또한 태흥관 소속
기녀들과 모든 소용되는 물품들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음 날, 드디어 추랑이 첫 손님을 받는 날이었다. 박씨녀는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맞는 사내가 과연 누굴까 궁금해 하면서 박씨녀는 가슴을 진
정시키려고 무진애를 썼다. 늦은 오후 말 우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남정네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춘매가 추랑이 기거하는 방으로 달려왔다.
“추랑아, 오셨다. 오셨어.”
“......”
“내가 언젠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니? 왕실의 종친이신데 아주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신 분이 계시다고, 그분께서 벌써부터 나에게 참한 여인이 있으면 소개
시켜 달라고 하였었단다. 헌헌장부로 얼굴도 아주 잘 생기셨어. 너 오늘 그거
없지?”
“......”
“추랑아, 꽃물이 아직 마르지 않으면 안 된다. 꽃물이 다 마른 게 확실하지?”
이십 여명의 기생을 관리하는 춘매는 기생 한명 한명의 꽃물이 비치기 시작하는
날부터 꽃물이 완전히 마른 날까지 상세히 알고 있어야 했다. 만약 사내들이
술자리에 나온 기생이 마음에 들어 정분 맺기를 원할 경우 응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꽃물이 덜 마른 기생을 들여보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고 태흥관의
명성에 먹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에, 없어요. 며칠후면 시작해요.”
“그러니? 아무래도 네가 그 분과 인연이 닿을 모양이구나.”
“......”
“아이고 우리 기루의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오늘 너의 손에 달렸다. 잘 부탁한다.”
“......”
춘매는 직접 추랑의 머리에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검정색 큰머리를 얹고 금으로
된 비녀를 꼽아 화려하게 머리를 장식하였다. 볼과 눈을 진하게 화장하고 입술에는
석류향기 진한 붉은색 연지를 발라 색기가 철철 흘러넘치도록 하고 향내가 진한
비단 속곳을 입게 하였다. 노랑색 삼회장저고리와 붉은색 치마를 입게 하고 백설
보다 하얀 속치마가 살짝 보이도록 치마를 약간 여며 걷어 올린 추랑의 모습은 너
무 요염하여 보는 이의 눈을 혼란스럽게 했다.
“곱구나. 너무 고와 여자인 내가 봐도 질투가 나는구나. 되었다. 그 분께서
십중팔구 너를 보며 한 눈에 반할 것이다.”
“어머님, 그 분이 누군데요?”
“알거 없다.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느니.”
“......”
단장을 마친 추랑을 앞세우고 춘매가 지체 높은 분이 들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