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비(최종)
천년 비(終)
- 여강 최재효
여왕, 만(曼)은 시중에게 대각간의 유고(有故)를 대비하여 대각간의
소임을 맡아서 처리할 것과 장례등 제반 사항에 대하여 은밀하게 지시
를 내렸다. 우선 조정과 서라벌의 민심을 평온하게 하고, 행여 대각간
의 유고를 틈타 있을지 모를 불순한 무리들의 역모를 사전에 철저히 대
비하도록 시켰다. 또한 여왕은 대각간 위홍이 유명을 달리 할 경우 준흥
을 중용 할 것은 넌지시 내비쳤다.
“폐하, 소신은 성심을 다 바쳐 폐하를 보필 할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소서.”
“고맙소, 시중.”
“폐하, 신 이만 물러가옵니다. 이 길로 등청하여 비상체제를 가동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겠습니다.”
“시중, 고맙소. 내 시중만 믿으리다.”
시중, 준흥이 물러간 뒤 위홍은 잠시 정신이 들어왔다. 가늘게 뜬 눈으로
위홍이 거친 숨을 쉬면서 여왕을 올려다보았다.
“숙부, 소첩이옵니다. 어서 쾌차하셔야지요?”
여왕이 위홍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신이, 폐하께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용서
하소서.”
위홍의 두 눈에 물기가 어리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숙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죄라니요?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시어
조정을 호령하셔야지요. 소첩이 숙부에게 대각간이란 벼슬을 내렸습니다.”
“폐하, 황공하옵니다. 신에게 너무 과분하옵니다. 고맙습니다. 폐하."
"아닙니다. 벌써 승차시켜드렸어야 했습니다."
"폐하, 방금 신이 꿈을 꾸었습니다.”
“숙부, 무슨 꿈인데요?”
“소신이 커다란 새를 타고 끝없이 서천(西天)을 향해 날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한 지점에 도착해 보니 금빛으로 빛나는 지붕과 붉은
기둥으로 화려한 전각에 부처님 한분이 계시는데 너무 밝은 빛으로 감히
그 부처님을 뵐 수 없었사옵니다. 소신은 그 부처님에게 수백 수천 번 절
하면서 신국토(神國土)와 폐하의 안위를 생각하였습니다.”
“오오, 언젠가 숙부께서 강양군에 있는 붕국행인수에 한 쌍의 비로자
나불(毘盧遮那佛)을 봉헌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숙부
께서 가 보신 그 곳은 바로 비로자나불께서 살고 계신 연화장(蓮華藏)
세계 같습니다. 숙부의 염원이 연화장 세계 부처님에게 까지 전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숙부의 쌍둥이 부처님을 조성하여 봉헌하신 정성이 부처
님이 아시고 계신 듯 합니다. 그분은 법신불로 이 우주 자체를 뜻한다
지요.”
“폐하, 저는 곧 이승과 인연을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폐하와 오래도록 복락을 누리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현실입
니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못 다한 인연을 저승에서 다시 잇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신이 한 쌍의 불상을 봉헌하
였습니다. 사람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간다고 했습니다. 내세에
서 폐하를 다시 만나게 되면 이승에서 못 다한 인연을 반드시 이루겠습
니다. 소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가서 춤도 추시고 노래도 하셔야지요. 벌써 가시려 하시다니 에서의 짧은 인연에 대하여 가슴아파하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홍의 손을 들어 자신의 두뺨을 만져보도록 하였다. 이 이승에서 폐하를 모신 것은 모두 전생의 인연 때문이며, 이승에서의 인연은 또한 내세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세에는 폐하 를 만나게 되면 영원히 이별이 없는 곳으로 가서 부부의 연을 다시 맺겠 습니다. 먼저 떠나가는 신을 용서하소서.” 을 의지하시면서 이 신국(神國)을 평안히 하시고, 부디 성불하시길 빌겠습 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님의 묵시적 승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탁하셨습니다. 또한 특별히 폐하를 성심으로 잘 받들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후로 조정에서 권력을 독식하다시피 한 숙부가 어린 조카들로부터 왕위를 찬 탈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고마워했다. 사실 대각간 김위홍은 마음만 먹으면 얼 마든지 어린 조카들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를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습니다. 특히 저를 예뻐해 주셔서 소첩 무엇으로 그 하해와 같은 은덕을 갚아 야 할지요?” 여왕과 아들 양패는 몸부림치면서 통곡하였다. 먼동이 훤히 터오는 새벽 위홍은 세상을 버렸다. 소량리는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어 뽀얀 안개 속에 묻혀있었다. 위홍의 급서(急逝) 소식을 전해들은 대신들과 왕실사람들이 소량리 위홍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 여왕을 남몰래 흠모하던 신료(臣僚)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많은 서라벌 백성들에게는 동화의 주인공이면서 화제를 만들어내는 주인 공이었다. 시중의 명에 따라 장례절차가 착착 진행되었다. 김 위홍의 장례는 여왕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고, 여왕은 대각간 위홍에게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는 시호를 추존했다. 또한 여왕은 궁궐 북쪽에 원당(願堂)을 짓고 밤낮으로 위홍의 혼령을 달래주었다. 여왕 이 국사도 돌보지 않고 원당에 들어있자 대소신료들도 서서히 불만을 드러 내기 시작했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슬퍼하시다가 결국 병이 나시고 말게요.”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치 천기(天機)를 누설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의 씨인지 모르지 않소?” 도 다 아는 사실 아니오?” 다. 요가 더 적임자이지요. 요 왕자께서 이제는 나이도 보위에 오를 만큼 충분합니다. 만약 폐하께 변고가 생긴다면 당연히 요왕자가 보위를 물려 받아야 합니다.” 게요?” 해서 그렇습니다.” 에 담았다. 여왕은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국사는 여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시중 준흥이 맡아서 처리하다 시피 했다. 여왕이 실의에 빠져 정사(政事)에 소홀히 하는 날이 빈번해 지자 지방에서 는 조세가 걷히지 않고 병제(兵制)가 법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나라 안이 소란해져 지방 각지에 군웅이 할거하였다. 북원(北原)에서 양길(梁吉)과 궁예(弓裔)가 봉기하자, 관군을 파견하여 토벌하려다가 도리어 실패하였다. 삼국이 정립하는 형세에 이르렀다. 여왕은 대소신료들과 귀족들의 강력한 요구대로 오빠인 헌강왕의 서자 요(嶢)를 태자로 옹립하였고 재위 11년 만에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태자에게 양위한 뒤 강양군에 있는 북궁해 인수에 머물렀다. 병색이 완연한 여왕은 아들 양패와 함께 칠월칠석날 한 쌍의 비로 자나불을 보기 위하여 법당을 찾았다. 빈도들이 밤낮 정성을 다해 불공을 드리고 있나이다." 비백산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양패가 급히 탕약을 지어 숟가락으로 여왕 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여왕은 간신히 탕약 몇 모금을 넘겼다. 여왕은 탕약을 마시고도 계속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오소서. 소신과 함께 저 길을 가고 싶습니다. 소신 홀로 떠나가는 길이 외 롭습니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입니다. 조금 전 어떤 보살을 만났는데 저 설산(雪山)만 넘으면 부처님이 계신 서천(西天) 이라 하옵니다.” 졌다. 여왕이 아무리 손을 내밀어 위홍의 손을 잡아보려고 하였지만 잡히 지 않았다. 함께 가겠습니다. 소첩의 손을 잡아 주소서. 당신이 떠난 후로 불철주야 당신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지금은 이곳 북 궁해인수에 와 있습니다. 당신이 저와의 변치않을 사랑을 위하여 조성하 신 부처님을 뵙고 소첩은 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떠나오고 보니 후회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옵니다. 좀더 폐하를 성 심성의껏 모셔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신을 용서하소서.” 올려놓으셨습니다. 아버지도 당신의 충심에 크게 감복하고 계실 겁니다. 저희 세남 매는 당신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소첩은 이승에서 또 저승에 들더라도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소첩을 버리지 마 소서. 숙부.” 있었다. 야 했지만 소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 니 모든 것이 한 순간의 꿈이었습니다. 소신 부처님 곁에 가게 되면 신라 의 안위와 평화를 위하여 남낮으로 기도 하겠습니다. 폐하를 모시고 함께 가고 싶습니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날이었답니다. 저를 데려가 주세요. 숙부.” 버리지 마세요, 숙부.” 따라가려고 발버둥쳤지만 위홍은 이내 모습이 푸른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여왕이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리에서 일어난 여왕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췌해진 모습을 보고 가슴이 져 려왔다. 위홍과 정겹던 시절 여왕은 화용월태(花容月態)의 모습이었고, 위홍 뿐만 아니라 많은 신라의 남성들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었다. 그런 꽃 같은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낯선 여자가 거울 속에 있었다.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 가세요. 어머니. 몸도 편찬 으신데요?” 을 하시더구나. 네 아버지나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느니라. 어서, 어서 나를 안내해 다오.” 번쩍거릴 때마다 푸른 불빛이 여왕의 소복을 더욱 희게 보이게 했다. 신 뒤를 따르려고 합니다. 소첩의 이승에서의 운도 이제 다했나 봅니다. 꺼 져가는 촛불 같은 심정입니다. 먼저 가셔서 소첩을 기다리신다고 했습니 다. 부디 그 약속을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조금만 기다려 주소서. 조금 만요…….‘ 있었다. 없습니다. 부처님이 당신의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나무 비로나자불, 나무 비로자나불, 나무 비로자나불. 부처님, 그 이가 지금 쯤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한 게 틀림없는지요? 만약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 이의 손을 잡아 주소서. 나무비로자나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 모니불…….” 즈음 간신히 천배를 마친 여왕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내 생전에 예수재(豫修齋)를 올리지 못한 것이 원통하구나. 이럴 줄 알았다 며 자주 부처님을 찾아 공양을 올렸어야 하는 건데, 나무비로자나불, 나무 비로자나불, 나무비로자나불, 나무비로자나불.......” 안하구나, 내 너를 두고 어찌…….” 수건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고, 편안한 얼굴의 여왕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법당 창문이 푸르게 밝아올 무렵 한줄기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두 분 비로자나불 위를 몇 번 맴돌더니 이내 밖으로 빠 져나갔다.
대각간 위홍은 여왕의 손을 잡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숙부,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일어나셔야지요? 예전처럼 월지에
이 소첩, 누구를 의지하라고요.”
“…….”
“아니 되옵니다. 숙부. 소첩 숙부를 이대로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여왕은 앙상하게 마른 대각간 위홍을 안고 오열하면서 위홍과의 이승
“폐, 폐하. 소신을 용서하소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대각간 위홍의 손이 바르르 떨리면서 여왕의 볼을 만지려하자 여왕은 위
“숙부, 이대로 가시면 소첩 어찌 살라고요? 네에?”
여왕이 흐느끼자 위홍도 어깨를 가볍게 떨면서 길게 흐느꼈다.
“폐하, 사람의 생은 이번 이승에서 한번의 삶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
“숙부-.”
“폐, 폐하 너무 슬퍼마소서. 소신이 떠난 후 일념으로 부처님께 모든 것
위홍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갔다.
“소신이 그동안 폐하와 실질적인 부부로 지낸 것은 신라 천년 사직과 형
“아버님의 승낙?”
“그렇사옵니다. 경문대왕이신 형님께서 소신에게 조카님들의 안위를 부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제가 왕위에 오를 것을 미리 예견하셨단 말씀이세요?”
“네에, 폐하. 형님은 예지력이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아, 아버님.”
여왕은 잠시 후덕한 모습의 아버지, 경문대왕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 이
“숙부, 고마워요. 어린 조카들을 위하여 그동안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
“폐, 폐하…….”
“숙부…….”
“폐하, 소신 떠나겠습니다. 부디 옥체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
“숙부, 여보…….”
“아버지, 아버지…….”
“여보, 여보…….”
“대각간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각간 어르신…….”
대각간 위홍이 여왕의 볼을 잡았던 손에 힘이 빠지면서 숨이 멈추었다.
살아생전 대각간 김 위홍은 크게 민심을 잃지 않았다. 여왕과 위홍의 염문
“폐하께서 죽은 대각간의 혼령을 달래주는 것도 좋지만 국사를 소홀히
“얼마 있으면 정상적으로 돌아오시겠지요. 좀 참고 기다려 봅시다.”
“아니오, 소신 생각에는 폐하께서 계속해서 죽은 대각간 위패를 끌어안고
“거 무슨 불경한 말씀이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소이다.”
한 신료가 대책이라는 말을 꺼내자 다른 신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맞아요. 만약을 위하여 후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폐하께서 무슨 일이 있다면 누가 보위를 물려받아야 한단 말이오?”
“양패공이 있지 않소?”
“아니 되오, 양패공(公)은 죽은 대각간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누구
“허허, 양패공이 대각간과 폐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라는 것을 삼척동자
“폐하께서 젊은 시절 어디 죽은 김 위홍하고만 정분이 났었습니까?”
“어허, 큰일 날 소리들 하시는구려.”
“절대로 양패공은 아니 되오. 선왕이신 헌강왕의 적자, 요(嶢)도 있습니
“이보시오, 폐하께서 아직 시퍼렇게 살아 게신데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폐하께서 밤낮 죽은 대각간 원당에 들어가셔서 국사를 잊고 계시니 답답
대소신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벌써부터 후계자를 공공연히 입
또 완산(完山)에서 견훤(甄萱)이 일어나 세력을 확보함으로써, 신라는
“나무아미타불. 소승, 여왕 폐하를 뵙습니다.”
“대사, 두 분 부처님을 뵙고자 왔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폐하, 승하하신 혜성대왕께서 봉헌한 두 분 부처님은
"고맙소, 대사."
법당에 모셔진 한 쌍의 불상을 보는 순간 여왕은 그만 정신을 놓았다.
“폐하, 폐하, 정신 차리소서."
“어머니.”
양패는 여왕을 들춰 업고 요사채로 달렸다. 주지승과 여러 스님들은 혼
“폐하, 소신 위홍이옵니다. 소신 배가 고프고 너무 춥습니다. 폐하, 이리
머리를 풀고 몹시 지쳐 보이는 위홍의 혼령을 본 여왕은 가슴이 미어
“아, 숙부, 여보. 소첩 여기 있사옵니다. 많이 여위셨습니다. 소첩이
“폐하, 살아생전 폐하를 위하여 소신 몸과 마음을 다 바쳤습니다만,
위홍은 여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여보, 아닙니다. 당신께서는 어리고 여린 조카 세 명을 차례로 왕위에
여왕이 손을 뻗어 위홍을 잡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위홍은 저만치 앞서
“숙부, 여보, 같이 가요. 소첩하고 같이 가요.”
“공주마마, 소신이 좀더 이승에 머물면서 마마와 부귀영화를 더 누렸어
“아닙니다. 숙부. 소첩도 때가 되었습니다. 소첩을 데려가 주세요.”
“폐, 폐하. 아직 때가…….”
“숙부, 저 혼자 남겨두지 마셔요. 숙부 없는 이승이 하루하루가 고통의
“폐하, 아직 더 계세야 합니다.”
“아니에요. 숙부, 저도 숙부와 함께 서천으로 가고 싶어요. 그러니 저를
“폐하…….”
위홍이 손을 흔들며 점점 여왕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여왕이 위홍의 뒤를
“숙부, 여보…….”
“어머니, 어머니. 소자 양패이옵니다. 흉몽을 꾸셨나 봅니다.”
여왕이 땀에 흔건하게 젖어 눈을 뜬 시각은 자시가 조금 넘어서 였다. 자
‘아아, 세월 앞에 무엇이 당당하리요.’
여왕은 빗으로 머리를 빗어 단정히 묶고 소복으로 갈아입었다.
“양패야, 이 어미를 법당으로 데려가 다오. 쿨럭, 쿨럭-.”
“어머니, 내일 날이 밝거든 가세요. 야심한 시각이고 밖에 비가 내리고
“아니다. 방금 꿈을 꾸었는데 네 아버지가 자꾸 나를 오라고 하시며 손짓
여왕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 쌍의 불상이 안치 된 법당으로 향했다.
우르릉 콰쾅-
여왕이 요사채를 나오자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번갯불이
'아아, 숙부. 소첩, 당신이 내리는 비를 맞고 있습니다. 이 소첩도 이제 당
여왕이 법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 두 불상의 이마에서 푸른빛이 발산되고
“아아, 숙부. 당신 모습입니다. 방금 꿈속에서 본 당신의 모습이 틀림
밖에 비가 약하고 두 분 부처님 이마에 은은히 여명(黎明)이 드리울
“어머니, 어머니, 정신 차리소서. 소자, 양패이옵니다. 어머니......”
“야, 양패야, 내가 죽거든 이곳에서 나와 네 아버지의 천도재를 올려다오.
“어머니,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어머니. 아직은 아니 되옵니다.”
“야, 양패야. 미안하구나. 너에게 왕위를 물려주지도 못했구나. 정말로 미
"아아, 어머니, 아버지……."
양패는 여왕을 무릎에 눕히고 오열했다. 여왕의 손에 쥐어진 하얀 비단 손
-끝-
긴 글 읽어주신 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해인사에 모셔진 두상의 비로자나불은 위홍과 진성여왕의 사랑을 저숭에 까지
이으려는 1000년전 애틋한 사랑의 발로에서 비롯 된 것으로 필자는 믿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만사형통 하소서.............!
_()_ 나무 관세음보살
2006. 12. 3. 인천서 여강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