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록(銅綠)
동록(銅綠)
- 여강 최재효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
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천년 전 갈릴리 호수 북쪽 마을인 가버나움(Capernaum)의 세리(稅吏)였던 마태오
(Matthew)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신약성서(New Testament), 마태복음
제6장20절에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의 재물관에 대하여 위와 같이 기술하였다.
국어사전을 보면 동록(Copper Rust)은 구리 표면에 녹이 슬어 생기는 푸른빛의 독성
물질이다.
오늘은 예수가 태어난 지 2008년 되는 날이다. 내가 처음 예수를 영접한 곳은 시골의
허름한 예배당이었다. 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그때는 일 년 내내 하나님을 잊고 있다가 성탄
절이 되면 예배당에서 떡을 준다기에 호기심에 가곤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미션스쿨도 나왔고 웬만한 성경구절이나 찬송가는 입에서 술술 나온다. 수많은 시간을
귀가 닳도록 복음(福音)을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성인(聖人)의 말씀을 거역하는 삶을 살아왔다.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한줌의 권력을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곤 했다. 모래도 씹어 삼킬 나이에 약간의 궤변이면 하늘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도 했었다. 언제는 그 궤변이 통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쌓은 재물을 고스란히 신기루와
같은 땅과 건물에 묻어 버리고 10배 또는 100배로 가치가 상승하기를 기다렸다.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미국 판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즉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 Prime Mortgage)의 몰락은
전 세계 경제 공황을 촉발시켰다. 처음에는 북아메리카에 한정 된 일이겠거니 아니하게
생각하였으나 곧 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그 여파는 기타 자본주의 기간 사업을 뿌리째 흔들었고 허황된 숫자 놀음에 유명 금융
회사 및 자본가들은 파산을 맞게 되었다. 모두가 지상에 재물을 쌓아 두려고 혈안이 되어
빚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성인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였다. 정작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는 상당수
재산가들도 성인의 그와 같은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면서 한낱 성경 속 말씀으로 치부해
버렸다. 결과는 살인, 경쟁, 질투, 시기, 암투, 배신, 불신 등 아마 판도라의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사바의 모든 번뇌가 지상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우리의 삶을 겁박하고 있다.
이대로 1세기만 더 지난다면 지금의 우리 인간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과연 어디에 재물을 보관해야 할까? 어차피 지구상에서 만들
어진 모든 재화(財貨)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지구에서 소멸되기 마련이다. 쌀, 빵,
보석, 자동차, 집, 기름, 돈 등등. 인간이 창조한 모든 재물은 인간이 쓸 수밖에 없는 것
이다. 해와 별 그리고 달은 인간이 창조한 재물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더더욱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도 우리 인간이 만든 재물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지상
에 존재하는 이승의 재물에 눈이 멀었다.
유년시절 예배당에 가면 예수가 화려한 천국의 궁궐에서 수많은 제자들과 측은한 눈길로
지상을 굽어보는 성화(聖畵)를 자주 보았다. 아마도 그곳에 재물을 쌓으면 나도 저렇게 예수의
제자가 되어 천국의 시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 믿음은 아직도 건재하다.
지구가 위치한 태양계는 지름이 10만 광년(光年)에 달하는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2/3의
지점에 있다. 그 상상을 초월하는 광막한 공간에 태양계는 한 점에 불과하다. 지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햇빛이 굴절, 분산, 산란되어 보아는 파란 허무의 공간일 뿐이다. 내가
수백억의 재산가로서 죽음에 임박해 하늘에 재산을 쌓고 싶다면 어디에 쌓아야 할까?
예수는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자신을 따르는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배를 채우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였다. 만약 불평불만으로 가득 찼다면 떡 5개와 2마리 물고
기로 어찌 5,000명이 넘는 무리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믿기지 않는 일을 보여줄 수 있겠는
가? 고전주의 경제학자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은 개인과 사회의
연관성을 주장하면서 경쟁시장의 이론을 설명하였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성인(聖人)의 말씀에도 물구하고 더욱 심화될 것 같다. 이승에서 모은 재물은 이승
에서 의롭고 정당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이승에서 모은 재산을 저승까지 짊어지고 가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에서 나는 슬픔을 감출 수 없다. 역사 기록시대가 시작된 이래 어느 누구도 이승의 재물을
저승까지 가지고 가서 떵떵거리고 잘 살았다는 기록을 찾아보지 못했다. 아방궁을 짓고
영생불사(永生不死)를 꿈꿨던 진시황도 결국 영생을 포기하고 진흙으로 사후 세계를 지배
해 보려는 야욕으로 수많은 용병을 만들어 놨을 뿐이다.
이제는 그것들이 중국을 찾는 세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는 허황된 광인(狂人)의 본보기가 될 따름이다. 그가 만약, 당시에 최초로 중국
전체를 통일하고 자신만의 영달이 아닌, 자신의 제국 백성 모두에게 복음과 은혜를 베풀었
다면 예수보다 훨씬 이전에 극동 아시아에서 구세주로서 죽어서도 영생을 누리고 있을 것
이다.
나는 주위에서 평생 모은 재산이 좀이나 동록 또는 도적에 의해 허공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아픈 일을 자주 목격하였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
로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어 입에 물고 있던 고깃덩이
까지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꽤 많다. 그들의 공통적 관심과 목적은 하나 같이
지상에 재물을 쌓아 두려 한다는 점이다. 이승에서 재테크에는 귀재(鬼才)일지 모르겠
지만,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는 데는 둔재(鈍才)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現世)가 극락이요 천국인 것이 틀림없다. 죽어서 저 혼자 천국
혹은 극락에 가겠다고 수전노(守錢奴) 뺨치며 허황한 토템(Totem)에 빠져 주변을 등한시
하는 인사를 보면 역겹다 못해 함께 대천(戴天)하고 있는 나 자신이 밉기만 하다. 나 보다
못한 이웃, 나 보다 없는 사람, 나 보다 적은 분들에게 나의 것 일부를 미련 없이 건네어
함께 평등, 평안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세가 바로 요셉의 아들이 바라던 바 아니었 던
가?
대왕께서 만약에 나에게 차사(差使)의 임무를 잠시라도 맡긴다면 나는 제일 먼저 분수
를 모르고 날 뛰는 자와 인륜과 천륜을 어기며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아귀다툼하는
자놔 이승에 태산처럼 재물을 쌓아두고 천년을 살겠다고 안하무인으로 기고만장하는
망령(妄靈)들을 번개처럼 잡아 갈 것이다. 재물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물은
인간 삶의 수단일 뿐인데 주객이 전도된 요즘이다. 주객이 뒤바뀌다보니 이승이 지옥
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언젠가 TV에서 본 영등포 역전 근처 쪽방에서 말기 자궁암의 아내를 간병하던 어느
초로(初老)의 초췌한 얼굴이 생각난다. 그 부부는 한때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도적들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리고 역전에서 구걸하며 하루 하루
연명하는 딱한 처지로 전락되었다고 했다. 이미 그 부인은 이승의 사람이 아닐 터. 일주일
째 회사 근처 경로당을 돌며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식사 대접 봉사활동을 하고 퉁퉁 부은
손을 아내 몰래 연고를 바르고 있는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재물을 하늘에 쌓았는지 몹씨
궁금하다.
- 창작일 : 2008. 12.25. 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