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8. 11. 24. 22:11

 

 

 




 

                            

 

 

 

 

 

 

 

                     엑스X(2)  
                                                                                                                                                                            - 여강 최재효 
 

                          

                               


 
 이틀 전 나는 기성이와 헤어진 뒤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때 기성이의 편지가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

었다. 분명 알 수 없는 음모가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대학 입학에 실패하여 서울에 올라가 절치부심 혼자 공부하는 딸에게

행여 해가 될까 고의로 기성이의 편지를 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

이르자 더 이상 궁금증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20년이 지난 일에 대하여 바로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당시의

사정을 꼬치꼬치 묻는 다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 고향

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고향까지 왕복 6시간이면 족했다. 기찻길 옆으로

개나리며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야산과 들녘이 활동사진처럼 지나갔다. 늘 남편

이 운전하는 승용차로 친정을 찾곤 했지만 오늘은 고속열차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수백 번도 더 탔던 열차였다. 이 고속열차 만큼이나 나는 지난

세월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것도 완행열차도 아닌 급행열차 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여고와 대학교에서 나는 줄곧 일등이라는 노예에 속박당해 왔다.

어머니 아버지는 늘 일등만 하는 막내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기대에 반해 나는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문학도의 길을 걷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혼 후에 남편은  나의 그런 꿈을 이해해 주는 눈치였다. 신혼시절

건축관련 회사에 다니면서도 신춘문예 시(詩)부분에 도전하였지만 늘 이무기로 만족

해야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나는 꿈을 접어야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시 펜을 잡을 계획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초등

학교에 들어가면서 케케묵은 문학 이론서를 펼치고 다시 문학에 대한 열정의 꽃을

피우려 했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뇌는 나의 의지를 따르지 못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수불석권(手不釋卷)해야 하는 것을 나는 가볍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읽어도 글자만 눈에 익을 뿐 뜻은 정확히 뇌리에 입력되지 않았다.

유명 대학교수의 ‘현대시작법’을 서너 번 독파하여도 감이 잡힐 듯 말뜻 했다.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뼈저리게 힘든 것인지 나는 원론서를 읽으며 탄식

했다. 남편은 뒤 늦게 시작한 나의 문학공부에 그리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나는 내 전공과 관련한 인테리어디자인 공부를 하였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웠지만 다년간 꾸준히 노력한 끝에 디자인이 나에게 꽤

익숙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미술과 건축설계는 불과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혼자 여러 가지 망상을 하다 보니 금방 고향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

다. 어머니가 미리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온 막내딸을 어떻게 맞이할지 궁금했다.

10년 전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시고 어머니는 큰 오빠가 모시고 있다.

오빠의 집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이라야 더 정확할 듯 싶다. 큰 오빠는 아버지의

대부분의 재산을 큰 아들이라는 명분으로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고향 역사(驛舍)는 새롭게 단장되어 마치 내가 다른 도시를 방문한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택시를 타자 20분도 안 되어 집 앞에 도착했다. 20년 전에는 우람한

나무들이 우거진 뒷동산에 늘 산새들이 울곤 했었는데 산은 온데 간데없고 마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거대한 아파트 군단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파란 하늘 선을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적 문양으로 찢어 놓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뒤로 아늑하고 양지바른 곳에 내가 태어나고 소녀시절을 보낸

집이 나타났다. 옛 기와집을 헐고 지은 3층 양옥으로 살아생전 아버지가 반듯하게

지어놓으시고 얼마 호사를 누리지 못하셨다. 어머니와 올케는 나를 보자 깜짝

놀란 토끼처럼 서서 내가 무슨 일로 기별도 없이 왔는지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는

눈치였다.


 “고모, 기별도 없이. 혼자 내려 오셨어요?”
 “박 서방은 어떻게 하고 너 혼자 왔니?”
 두 사람은 나에게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미리 연락도 없이 내려왔어요. 박 서방은 외국에 있

고요?”

 “그럼, 애들은 ?”


 내가 결혼하고 한 번도 혼자 온 적이 없었던 관계로 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한 것 같았다.


 올케가 차려주는 아침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자 어머니의 취조가 다시 시작되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다 시피 했고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내려온 탓에 잠이 솔솔

쏟아지려 했다. 노모에게 20년 전의 일을 선뜻 물어 볼 수도 없었다. 해마다 어머니의

건강은 쇄약해지고 있었고, 그러한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20년 전 일을 정확하게

생각해 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불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야, 너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니? 어젯밤 너희 아버지가 오랜만에 꿈에 나타나시

더구나.”
 “아버지가요?”


 “그래. 그래서 너를 보는 순간 너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었지.”

 “아이참, 엄마두. 난 엄마가 보고 싶어 왔다니까요?”


 “정말이지? 정말로 이 에미가 보고 싶어 온 거 맞지?”


“아니, 엄만 이 막내 딸년을 못 믿으면 세상에 누굴 믿는 단 말이에요?”


 나는 어머니의 불안해하는 눈치 때문에 좀 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20년

전의 일을 물어보기로 했다. 생각같아서 당장이라도 그때의 일을 묻고 싶었다.

어머니와 올케에게 남편과 아이들의 근황에 대하여 일일이 모두 고하자 그제야

어머니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조카들 소식을 물어가며 괜히 웃기도 하고 박수를 쳐대기도

했다. 자식 자랑에 신이 난 올케는 과장된 표현을 지어가며 군대 간 둘째 조카의

면회 갔던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제지하지 않으면 올케는 하루 종일 자식자랑만 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나 혼자 독차지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했다. 마침 어머니 머리가

염색한지 꽤 된 듯 했다. 흰머리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파마도 거의 다 풀어져 있

었다.


 ‘올치, 그거야.’
 나는 무릎을 치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 나하고 미용실에 가요. 엄마 머리한지 꽤 된 것 같은데. 염색도 하시고

파마도 해요. 오늘은 막내딸이 예쁘게 해드릴게요. 파마하고 시내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안 그래도 머리를 만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잘되었네요. 저도 머리 좀 만져야 할 것 같아서요. 셋이 다 같이 가면 좋은데,

올케는 머리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내 말에 올케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만약

올케가 눈치 없이 미용실에 동행한다면 나의 목적은 틀어지게 될 것이며, 괜히

분란거리만 만들 것 같았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 여인으로 큰 오빠에게 자주 핀잔을

듣곤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왕이면 나들이 하는데 예쁜 옷으로 입으라고 했다.


 “이 미용실에서 제일 비싼 파마로 해주세요. 염색은 흑갈색으로 하고요. 화장도

예쁘게 해주시고요. 우리엄마 내일 시집가시거든요.”

 “어머, 얘가 누굴 망신주려고 그러니?”


 칠순 중반의 어머니는 그만 내 농담에 얼굴이 빨개지면서 좌우를 두리번거리셨

다. 나는 미용실에 갔다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어머니 곁에서 함께 파마를 하며

어머니에게 살갑게 굴고 싶었다.


 굳이 20년 전 편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모녀가 나란히 앉아 파마를 한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머니의 옆모습을 자세히 보니 훗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비록 아버지가 10년 전 돌아가시긴 했어도 어머니 얼굴에서 외롭

다거나 쓸쓸해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건강도 좋은 편이어서 경로당에서

총무 일을 보신다고 했다.


 “엄마, 정말 시집가도 되겠어.”
 “어머나, 얘가 점점.”


 미용실을 나오자 시장기를 느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막내딸하고 화사하게 치장을

하니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까지 부르며 소풍가는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엄마, 우리 저기 갈비집가서 점심 먹어요.”
 “으응, 그래. 파마했더니 배가 고프구나.”


 “우리엄마, 그러고 보니 정말 곱다.”
 “너, 오늘 아무래도 수상하다? 생전에 안 하던 아첨까지 다하고.”
 “아이, 엄만. 막내딸이 예쁘다고 하면 예쁜 거예요. 저기, 저 할머니도 나이는 엄마

보다 덜 들어 보이는데 얼굴은 아니네 뭐.”
 “아무튼 막내딸에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긴 좋다.”


 어머니는 막내의 의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맛있게 갈비를

뜯으며 즐거워 하셨다. 갈비를 드시는 어머니를 보자 그만 왈칵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진작 자주 내려와 어머니와 갈비 집에 갔더라면 좋았을걸’하는 생각에 자꾸만

콧등이 시큰해 왔다.


 “아니 정미야, 넌 안 먹니?”
 “머, 먹어요.”
 “왜 그러니? 어디 속이 안 좋은 거야?”


 “아니, 엄마가 이렇게 맛있게 갈비를 드시는 걸 보니까 내가 왜 자주 이런 자리를

갖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원, 애두. 네 올케가 자주 고기반찬을 해줘서 먹긴 한다만 어디 네가 사주는 것만

하겠니?”


 “엄마,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애, 음식 앞에서 청승떨지 말고 어서 먹어. 너도 먹어야 나도 먹을 맛이 나지.”
 “네에.”


 나는 어머니가 기분 좋게 갈비를 드시는 것을 보고 가슴 한편이 찡했지만 건강하신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갈비로 점심을 해결하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백화점엘

들렸다. 지하 매장에 들러 한약 한재를 구입하고 4층 여성의류 매장에서 어머니에게

연보라색 투피스를 사드렸다. 어머니는 연신 좋아라 하시면서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

였다.


 “얘, 너 이렇게 비싼 옷을 나에게 사주면 박 서방한테 혼나지 않니?”
 “엄마, 딸이 엄마에게 옷을 선물하는데 박 서방이 뭐라고 할까봐?”
 “너무 비싼 옷을 사주니까 그렇지.”
 “엄마, 우리 집에 쌓인 게 돈이야. 그러니 아무 걱정 마. 박 서방도 내가 엄마에게

옷사드렸다고 하면 무척 좋아할 거야. 알잖아 박 서방 엄마에게 잘하는 거?”
 “…….”

 
 백화점을 나온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백화점 근처에 있는 대형 찜질방으로 들어

갔다. 어머니만 모시고온 것이 올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금방 파마한

머리가 풀어질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목욕과 찜질은 하지 않고 시원한 휴게실에서

쉬고 싶었다. 어머니는 휴게실에 들어오자마자 피곤하시다며 잠시 눕겠다고 했다.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나는 어머니 곁에 누어서 내가 대학에 낙방하고 서울서 혼자

재수하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그때 나에게 넉넉하게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엄마, 그런데.”
 “그런데? 뭐가?”
 “응, 혹시 그때 건너 마을 살던 차기성이란 남자애 기억나?”


 “아아, 너를 죽자 사자 쫓아 다녔던 그 차 서방네 큰 아들 말이니?”
 “네, 맞아요. 그 집 아저씨는 목수였잖아요.”
 “그래, 근동에서 알아주는 큰 목수였지. 그런데, 그 집 큰 아들은 왜?”

 
 “엄마, 혹시. 나 서울서 혼자 재수하고 있을 때 그 남학생에게서 편지 같은 거

안 왔어?”


 어머니는 내가 편지 이야기를 꺼내자 두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한참동안 한숨을 몇 번 내리쉬시더니 조용히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정미야, 이제 와서 네가 왜 그때의 일을 묻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남학생에게서

온 편지를 공부하고 있는 너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었어. 네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봐서 말이야. 그런데, 편지가 거의 한 달에 한통씩 배달되다보니까 너에게 전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요?”

 나는 일어나 앉으며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당시의  일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할 수없이 그 남학생이 우리 집에 찾아와 나에게 건네준 두툼한 편지 한

통과 여러달 동안 우체부가 전해준 편지를 네 친구 미영이에게 주었지.”


 “미영이?”
 “그래, 너 재수할 때 그 애는 서울서 회사에 다고 있던 네 친구 미영이 말이다.

애가 자주 고향에 오길래 너에게 편지를 전해 주라고 내가 미영이에게 부탁했었

단다.”



 ‘아아, 이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미영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으로 지내면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였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똑똑해 늘 주변에 남학생들이 꼬이곤 했었다. 내가 순정파라

그 애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활화산 같은 열정파였다. 내가

들녁에 홀로 수줍게 피는 들국화라면 미영이는 칠월의 장미였다. 중학교 때까지

같은 반에서 함께 지냈지만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미영이는 실업계로 나는 인문계

서로의 길이 갈렸다.


 미영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였다. 학교에서 고적대

들어가더니 한껏 멋을 내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남학생들을 휘어잡고 다녔다. 나는

그런 자유분망한 미영이가 부러웠지만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었다.

 

 인문계에서 줄곧 수석을 하던 나는 은근히 질투심 많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미영이는 나에 만큼은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자주 우리 집에 놀러오

했다. 한번은 내가 기성이와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보자고 하더니

다짜고짜 기성이와 헤어지라고 요구하기도 했었다.


 어머니는 기성이를 가운데 두고 나와 미영이가 벌였던 치정에 얽힌 내막을 전혀

알 리가 없었다. 나하고 기성이 때문에 말다툼을 한 후에도 몇 번 우리 집에 찾아와

겉으로는 친한 척 했으니 어머니는 내가 미영이와 연적(戀敵) 사이라고 상상도

지 못했을 것이다.


 ‘아아, 왜 하필이면 미영이에게…….’
 내가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멍하니 찜질방 천정을 바라보자 어머니는 일어나 앉

시며 나의 상태를 살폈다.


 “얘, 정미야, 왜 그러니? 갑자기.”
 “엄마, 그럼 몇 번이나 정미에게 그 사람 편지를 보내셨어요? 나에게 전해주라고.”


 “글쎄다. 서너 번 되는 것 같은데. 왜? 편지를 다 받지 못했어?”
 “엄마, 난, 미영이에게 한 번도 편지를 전해 받지 못했어요.”


 “뭐여? 한 번도 전해 받지 못했다고? 아니 그러면 그년이 그 편지를 모두 누굴

다는 거야 그럼?”


  어머니도 내가 한통의 편지도 미영이를 통해 전해 받지 못했다는 말에 약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나는 얼른 매점으로 달려가 냉수를 떠다 어머니에게 드리자 어머니는

단숨에 마셔 버렸다.


 “아니, 정미야. 너 방금 한말이 틀림없는 사실이지? 그 남학생이 보낸 편지를 미영이

편에 보내 너에게 전해주라고 한 그 편지들을 한통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게 사실

이지?”


 “네에, 엄마. 전 미영이에게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어요.”
 “아아, 이런 못된 계집애가 다 있나? 아니, 제 편지도 아닌데 왜 남의 편지를 전해주지 않은거야?"


 "엄마, 이제 20년 전의 일인데 뭘 어쩌겠어요. 다 잊어버리세요.“
 “아냐, 내 그 계집애를 만나면 그냥두지 않을 거야.”
 “미영이는 부모 다 돌아가시고 고향에 아무도 없는데 어디서 그 애를 찾는단 말이

에요.”
 나는 어미니 마음을 진정시키고 찜질방을 나왔다.


 서울에 올라와 먼저 미진이에게 미영이의 소식을 물었다. 미영이는 동창회에

딱 한번 나오고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최초 동창회 총무에게 알려 준  미영이의

휴대 전화는 이미 엉뚱한 사람의 번호로 등록되어 있었다. 나는 미진이에게 남편이

해외에서 사온 값비싼 양주를 선물로 줘가면서 미영이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했다.

미진이가 한 달을 걸려 겨우 알아낸 미영이의 최근 소식은 미영이가 부산서 어디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거 였다.


  나는 다시 한 번 미진에게 용돈까지 줘가며 미영이가 정확히 어디에 살고 어디서

호프집을 하는지 그리고 미영이의 휴대전화 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내가 갑자기 미영이에게 집착하자 미진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기성이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 왔었지만 나는 미영이를 만나 그 당시의

자세한 내막을 알 때 까지 해외에 있는 남편에게 갔다 온다는 핑계를 대고 당분간

만나지 않기로 했다. 보름 만에 미진이가 알아온 것은 미영이가 운영하고 있다는

호프집 이름과 부산의 동명(洞名) 뿐이었다.


 ‘그래, 이정도면 충분해. 내일 직접 부산에 내려가 미영이를 찾아볼 거야.’
 남편이 자주 마시던 레미마틴 엑스트라를 꺼내 언더락스 잔에 부었다. 황금색의

술이 맛이게 보였다. 한잔 또 한잔 목 안이 서서히 타올랐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그 계집애는 알고 있을 거야. 나쁜 년,

뻔뻔스럽게도 편지를 감추고 나를 만났다니.’


 정미는 재수시절 미영이 서울서 회사에 다니면서도 자주 만나 어울렸던 기억을

살려냈다. 자신이 서울서 재수하면서 집에 내려가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20년 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 내, 꼭 그년을 찾아낼 거야. 찾아서 편지도 찾고 내 사랑도 확인 해 볼 거야.’

 정미는 온 몸이 알콜에 활활타 한줌 재가 되더라도 오늘 밤에는 알콜에 의존하고

싶었다.  


 

 

 

 

 


                                                                                                                                       - 계속 -

 

 

 

 

 

 

                                % 아직 탈고 전이라 약간의 오탈자가 있을 수 있으니 깊이 이해 해 주시고 감상해 주세요.......여강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