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8. 11. 17. 01:14

 

 

 

 

 

 

 

               

 

 

 

 

 

 

                   소녀素女(2)

 


                                                                                                                                            - 여강 최재효

 

 

  “오오, 탱큐 베리 머치, 그레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 어쩔 줄 무르는 나를 보자 T는 배꼽을 잡았

다. 나는 T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T는 못 본체 하고 박수까지

쳐가며 즐거워했다. 방금 전까지 촉촉해 있던 그녀의 눈은 환하게 웃

고 있었다. 그녀에게 손을 잡힌 채 나도 그녀의 두 눈동자를 유심히 보

았다. 갈색 눈동자에 내가 그만 빨려 들어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

했다.


 “This is my gift for you.”
 내가 한국서 준비해 온 예쁜 복주머니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문양의 복주머니를 보더니 그녀는 신기한 듯 바라보며 조심

스레  받았다.


 “Please open that.”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떡거리

며 어서 풀어 보라고 의사를 전달했다. 복주머니를 풀더니 그녀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Oh, Jade ring ! Mr, C, Wonderful, Wonderful ! I love your Country

and your culture.”
 나는 서울 떠나기 전날 종로의 귀금속 가게를 돌며 그녀에게 무엇을 선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비취반지 한 쌍을 선물하기로 했다.


 한국적인 것이 그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 일 것 같았다. 쌍가락지 비취반

지를 고르면서 그녀의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 내 손가락 보다는 약간 작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구입하였다.


 “그레실과 그대 남편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
 “오오, 원더풀. 원더풀. 미스터C."


 T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반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반지를 선

물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부부의 연을 맺거나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주는 선물이지만 나는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30년 전 주고 싶었던 선물을 30년이 지나서 준다

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의 선물을 받은 그레실은 약간 들뜬 기분

이었다. 내가 하는 말끝마다 오버 액션을 취하는가 하면 얼굴은 웃고

있었다.

 
 페퍼민트 한잔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나서야 떨리던 가슴이 진정될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에는 짙은 우수(憂愁)가 배어 있었다. 태

어난 나라가 틀리고 가정이 다르고 환경이 전혀 다른 두 문화권의 남녀

의 만남은 전혀 어색하거나 이방인들의 해후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녀

는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대를, 그대를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떤 날은 한국영화 비디오를 하

루 종일 보기도 하면서 그대를 상상해 보았어요.”
 그녀는 어렵게 말을 마치고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갑자기 나를 보자

눈물샘이 터진 것인지 나는 약간 의아해 했다. 나를 한번 바라보고 그레

실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눈 가장자리로 가겨갔다. 


 ‘당신 남편은 몇 살이고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몇 명의 아이들을 두었으며 그동안 나를 얼마나 자주 생각했었

어요? 한국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혹시 한국에 와 본 적은 있어

요? 당신은 30년 전 나에 대하여 얼마나 호감을 가졌었나요?’


 내가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면 금방 입에서 속사포처럼 나올 법 한

질문들이었다. 물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할 뿐 내가 의도한 내

용은 꼭 영어로 만들어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띄엄띄엄 영어

를 구사하는 나는 보면 그녀가 얼마나 답답해 할까.


 “그레실, 남편과 아이들은 잘 계시지요?”
 “.
 “그레실, 가족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요?”


 “Family? My family ?”
 “Yes.”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Of course, I'm married but no child”
 ‘아이들이 없다고?’
 내가 자신에게 질문공세를 펼 것을 미리 짐작이나 한 것처럼 그레실은 정

색하더니 약간은 어색하지만 한국말로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그동안 서울에 두 번 다녀왔어요. 그때마다 당신을 찾으려고 우리

나라 대사관에 협조를 구했지만 당신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

어요. 그리고 나는 30 중반이 되어서 결혼을 하였어요. 혹시 하고 서울에

갈 때마다 당신에 대한 아련한 마음과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아

쉬움을 금할 길 없었어요. 저는 병원 소아과 의사로 재직하고 있어요. 나

는 30년 전 당신이 나에게 한 약속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약속?’

 나는 30년 전 내가 내손으로 써서 보냈던 편지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다.

2년 동안 나는 60여 통의 편지를 그레실에게 썼고 그녀는 50여 통의 답

장을 보내왔다. 물론 내가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었고 편지 내용

또한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100여 통의 편지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었다. 분

명 내가 그레실에게 ‘사랑한다.’, ‘언젠가 그대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 갈

것이라.’고 여러번 강조한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나에게

기억을 환기하도록 요구하는 그 ‘약속’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레실, 그 약속이 혹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그녀가 먼저 이야기 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먼저 그 약속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

다. 자신은 지난 30년 동안 내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지조를 지켰는

데 느닷없이 내가 그 약속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눈물을 뿌리고

미련 없이 일어서서 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왜 이제 오셨어요? 나는 당신이 보내 준 사진을 보며 지금도 당신을

그리고 있었답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여러 장의 투명한 지갑 갈피에서 빛

바랜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지갑을 가까이 가져다

눈 가까이 대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련복을 입고 찍은 내 사진이 그

녀의 손에 있었다.


 ‘아아, 내가, 내가 이 여인의 지갑 속에 있다니?’
 나는 그만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그만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최근 T에게서 내가 그

녀를 만나러 온다니까 앨범이나 어디 처박혀 잠자고 있던 내 흑백 사진을

찾아 지갑에 끼워 넣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자 T가 얼른 손수건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 고교시절의 흑백 사진을 외국 여인 지갑 속에 있

었다.


 “그레실, 아직도, 아직도 내 사진을.
 “나는, 당신 사진을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보아 왔어요. 잘 생긴 당신

 얼굴, 여인을 사로잡는 순한 미소,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말한.


 “내가 당신에게 말한?”
 나는 잠시 다시 한 번 머리를 짜보았다. 30년 전 펜팔 내용이 모두 기억

난다는 것은 기계라도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당신, 나에게 청혼했잖아요? 꼭 우리나라에 오셔서 저와 결혼하시겠다

고 하신 말씀 잊지 않으셨지요?”
 ‘아, 내가, 내가 그레실에게 그런 약속을 했었나?’


 “으응, 물론 당신에게 한 그 약속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말고요. 그러나

그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늘 소화 안 된 음식물 찌꺼기처

럼 뱃속에 묵직하게 말 못할 그 무엇인가 남아 있었어요. 그레실, 미안해

요. 내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아요. 용서해주세요.”
나는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서 허리를 반 쯤 굽혔다.


 “오오, 노노. 그러지 말아요. 저도, 저도 결혼했잖아요. 이제 와서 30년

전 약속을 들먹거린 제가 죄송해요. 미안해요.”
 “그레실, 아니오. 내가, 내가 나쁜 놈이오. 나를 용서해주오.”
 “아니예요. 제가 나쁜 여자예요. 좀 더 기다리려고 했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더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어요.”


 ‘아니, 그러면 이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10년 전 까지도.’
 나는 빛 바랜 내 사진과 그레실을 번갈아 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T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가뜩이나 눈물이 많은 탓에 아이들과

TV 연속극을 보면서도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자주 사내가 눈물을 함부로 흘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

다.


 “우리 저녁 먹으러가요. 저희 가족이 저녁을 준비했어요. 꼭 가셔야해요.”
 ‘꼭 가야한다? 이건 또 무슨 제안인가?’


 “그레실, 어디 맛있는 음식점 있으면 안내해요. 저녁은 내가 사겠습니다.”
 “오오, 노노. 파파와 마마 그리고 마이 허스번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요.”



 ‘응? 아빠, 엄마 그리고 남편이 나를 기다린다고?’
 “그레실 가족들이 나를 기다린다고요?”
 “네에, 우리 가족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이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인사도 안 하고 나를? 내가, 지금 외국

여우에게 홀린 건 아니겠지? 아냐, 이건 분명히 현실이야. 나는 술에 취하

지 않았어.'



 “그레실, 나는 당신 가족을 전혀 모르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30년 전부터 당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요.”


 ‘응? 30년 전부터? 거참, 갈수록 묘하네. 도대체 뭐가 어찌된 거야? 차마 나

를 어디 으슥한 곳에 가두고 돈을 빼앗으려고 하거나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

는 건 아니겠지?’


 나는 혹시 이 여인이 정말로 내가 30년 전 펜팔을 하던 여인이 아니고 그레

실을 가장한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슬그머니 지갑 속을 열었다.

달러와 페소(Peso)로 환전한 화폐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

사관과 대사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확인하였다.


 만일 내 앞에 앉아있는 여인이 T와 짜고 어수룩한 한국 남정네를 사기 치기

위한 범죄 조직이라면 나는 하나밖에 없는 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얼마 전에

는 유명 개그맨이 돈을 모두 잃고 몇 년째 이곳에서 고생을 했다는 연예 기사

를 읽은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 사나이가 까짓것 이국의 여인을 겁낸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강아

지도 웃을 일이야. 암, 그렇고말고. 범을 잡으려면 범굴로 들어가야지. 가보

자. 이 여자의 표정을 보아서는 분명히 30년 전 인연을 맺은 그레실 터그방

이 분명해. 그리고 T도 이 나라 유명 일간지 기자가 분명하고. 이미 내가 미

리 다 알아본 것 아닌가?’
 나는 문자로 여행사 가이드에게 밤늦게 들어 올 테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

다. 그리고 T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뒷좌석에 나와 그레실이 타고 앞에 T가 앉았

다. 남국의 밤 향기가 코끝에 전해 졌다. 서울서 느끼던 그런 향기가 아니었

다. 어딘가 풋풋하면서도 약간은 비릿했다. 택시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저리 복잡한 도로를 잘도 헤쳐 나갔다. 20여분 정도 달리던 택시는

10층 규모의 아파트 앞에서 멈췄다. 아파트는 도로변에 한 채만 있는데
굉장히 크고 화려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갔다. 엘리

베이터가 10층에 멈추자 그레실은 웃으며 나를 문 앞으로 안내했다.


 “그레실,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는 우리 파파와 마마가 사는 곳이에요. 그리고 제 남편도 와 있고요.

점심때부터 당신 맞을 준비를 하셨을거에요.”
 ‘점심때부터?’


 나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로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지만 더 이상 물어 보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일까?’
 그레실이 벨을 누르자마자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쏟아

져 나왔다. 순간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대한민국~~”
 “안-녕-하-세-요?”
 “어-소-오-세-요. 화-녕-하-니-다.”



 여섯 명의 남녀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거의 그들에게 등을 떠밀리다

시피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면서 나는 또 한 번 놀래야

했다. 거실에 아리랑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자세히 보니 벽에 대형 태극기

와 P국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나는 그만 외국인들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파트는 대충 40여 평은

넘어 보였다. 고급스러운 가구며 벽에 걸려있는 대형 그림으로 보아 그레실

아버지의 경제력을 가늠할 있었다.


 “오우, 어서 오세요 미스터C. 나는 그레실 아버지입니다. 58년 전 한국에

파병 나갔다 왔답니다.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


 그레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을 자랑스

럽게 보여주었다. 수십 번 외국을 드나들었지만 외국인들로부터 이러한 대

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먼데 나갔다 돌아 온 자식처럼 그레실

아버지와 가족들은 나를 반겼다. 그레실의 여동생들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두 자매가 나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거실 한쪽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십 중반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간 그레실의 남편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백의 사나이인데 다리 한쪽이 없었다. 천천히 나에게

휠체어를 움직여 다가오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코라손 이라고 합니다. 그레실의 남편이기도 하고요. 나는 한국에

서 오랫동안 기술자로 일했답니다. 이렇게 미스터 C를 만나게 되어 반갑

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입니다.”
 나와 코라손이 악수를 하자 그레실은 환하게 웃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 모두가 지한파(知韓派)같아 보였다.


 그레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M시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상당

히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세 딸들 모두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고

했다. 자신은 한국전 때 의무병으로 차출되어 3년 가까이 대구에서 근무했

다고 하면서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면서 아리랑을 불렀다.


 그레실 어머니는 김치와 삼겹살을 구워 식탁에 올리면서 연신 나에게 들

라고 손짓을 하였다. 어떻게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는지 알고 김치와 삼겹살

을 구했는지 신기했다. 미처 그레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당초에 없는 갑작스런 스케줄이어서 정당한 변명거리는 있지만 생전 처

음 방문한 그레실 부모에게 최소한의 무엇으로도 예의는 지켜야 했다. 온

가족이 식당에 둘러 앉아 만찬을 즐겼다. 내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대화

를 하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T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

다. 그럴 때 마다 그레실의 가족들은 웃으며 환호했다.


 갑작스런 초대에 당혹해 하면서도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혹시 납치되

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생각이라는 것이 금방 확인

되는 순간이었다. 그레실 남편은 불편한 몸이지만 나에게 자꾸 건배를 제

의 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만 빼고, 추석이나 설 명절날 객지

에 나가 있던 온 가족이 빙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과 같았다.


 그레실 어머니는 계속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자주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의미가 대충은 나와 관련한 그 무엇일거라 생각하면서

모르는 체 했다. 그레실 아버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혼자 이야

기 하면서 기분 좋아했다. 이야기는 대충 한국전쟁 당시 당신이 본 한국

의 이야기 같았다.


 한국 전쟁 이후 한 번도 한국을 찾지 못해 서운하다는 말과 함께 곧 온

가족을 데리고 서울을 방문할 거라는 이야기 였다. 휠체어의 사내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에 몰두 해 있는 것 같

았다.


그레실를 비롯한 가족들은 술을 별로 즐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

레실 부모가 나를 위해 내 놓은 술은 스카치위스키 였다. 커티샥 두 병

이 비워지고 나는 일어나려고 하였다. 시간이 거의 12시를 향하고 있

었다. 멀리 한국에서 큰 딸의 30년 전 친구가 온다고 하니까 파격적인
환대가 준비된 듯 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 호텔로 돌

아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레실은 좀 더 파티를 즐기다 가라고 하였다.

내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자 그레실이 따라 나섰다.


 “Good night, Gresil. See you tomorrow."
 “오, 노노. 아니에요. 나는 그대와 함께 할거에요.”
 ‘응? 함께?’


 “Yes, Tonight I'll be there with you.”
 ‘응? 데어?’
 T가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금방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나와 그레실이

뒷 좌석에 타고 T가 먼저처럼 앞 좌석에 앉았다. 택시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 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