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4)
편지(4)
- 여강 최재효
차 문은 열리지 않고 운전자는 잠시 멈춰 서서 미용실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살피는 것 같았다. 차 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우산을 펼쳐들
고 경수에게 다가갔다. 여인은 잠시 멈칫하다가 경수를 흔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자가 경수를 흔들자 경수는 웅크린 채로 옆으로 픽 쓰러졌다.
“겨, 경수 오빠가?”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여인은 우산을 집어던지고 경수를 끌어
안았다.
“경수오빠, 경수오빠, 정신 차리세요. 오빠, 이게 어찌된 일이세요? 저 미연
이에요. 이미연이라고요. 오빠…….”
가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경수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미연이는 얼른 119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어서 도와주세요. 여기 중앙동
230번지 미용실입니다. 어서요.”
미연이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에 119에서는 앰블런스를 출동시켰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비에 흠뻑 젖은 남자를 여인 혼자서 차 안으로 옮긴다는 것은 불
가능했다.
곧 경수의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라도 있으면 빨리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아, 하나님, 부처님 오빠를 살려주세요. 경수오빠를 살려주세요.”
미연이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경수를 끌어안고 통곡하였지만 누구 한 사람 다
가와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빠, 정신 차리세요. 오빠-.”
미연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경수는 일어나지 못했다. 점점 더 경수의 의식은
바람 앞에 펄럭이는 거의 다 탄 촛불같았다.
“119차는 왜 이리 느린 거야?”
미연이는 앰블런스가 빨리 나타나지 않자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 했다. 비가
다시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빗물이 경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
지 않도록 미연이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경수를 덮어 주었다. 싸늘해진 경수
를 안고 미연이는 혹시 경수가 어떻게 될까 걱정되어 가슴이 벌렁거리고 정신이
아득했다.
그때 119에서 출동한 앰블런스 한대가 비상등을 깜빡거리며 미연이 타고 온
차 뒤에 서더니 간호사와 두 명의 구급대원이 들것을 가지고 내렸다.
“여기에요, 여기.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해요.
빨리요.”
“119에 신고하신 분이죠?”
“맞아요. 어서, 어서 이분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해요. 몸이 굳어가고 있어요.
어서요. 아저씨.”
구급대원들이 경수를 들것에 올려 앰블런스에 싣고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달
렸다. 비상등이 위급함을 아는지 빨간 불빛을 발산하여 도심 속으로 미끄러지
듯 달렸다.
“경수오빠, 오빠, 정신 차리세요.”
미연이 앰블런스에 함께 타고 경수의 손을 꼭 잡았다. 얼음장 같은 경수의 손
을 미연이 꼭 잡고 녹여 보려고 하였으나 손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산소마스크
를 착용시킨 채 간호사가 경수의 상태를 살폈다. 청진기를 경수의 가슴에 대고
심장 박동을 체크하면서 경수의 상태를 기록을 하였다. 간호사가 경수의 눈꺼풀
을 까보며 동공을 살펴보았다.
“간호사님, 어때요? 우리오빠 괜찮지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주 큰일 날 뻔했어요. 환자의 심장박동이 거의 동사(凍
死) 상태의 수준까지 갔었어요. 이 분이 평소 다른 질병은 없었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동생 아니세요? 오빠라고 부르시면서?”
“…….”
5분도 채 안 돼 경수는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대형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
다. 응급 의료진의 급히 투입되어 경수의 간략한 상태를 체크한 뒤 곧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다. 미연이 경수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 측이 제시한 서류에
사인을 하였다.
보호자 이름을 이미연 대신 엉뚱한 이름인 김경태라고 쓰고 연락처와 주소도
가짜로 써 넣고 사인을 하였다. 그리고 직원에게 나중에 혹시 환자가족이 물으
면 웬 중년남자가 사인을 했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수의 상태를 담당한
의사에게 미연이는 매달렸다.
“선생님, 환자의 상태는 어떤지요? 아무 이상 없는 거죠?”
“아주머니 되시나 봅니다. 조그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네에?”
미연은 경수가 이승을 달리할 뻔 했다는 의사의 말에 다리에 힘이 빠져나
가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이 아득했다.
“전에도 환자께서 자주 의식을 잃으신 적 있었나요?”
의사가 미연이에게 경수의 이전 상태를 물었다.
“이전에요? 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부인이 아니고 고향 동생 되는 사람인데
오늘 두번째 뵈었어요. 서너 시간을 비를 맞고 계셨나봐요?”
의사는 미연이 아내가 아니라는 말에 더 이상 경수의 상태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
“선생님, 환자의 상태가 아주 안 좋은가요?”
“다행히 119응급팀이 비상조치를 해서 간신히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틀정도
치료를 받으면 안정을 되찾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충분히 쉬게 해야 합니다.”
‘이틀?’
미연은 경수의 집이 걱정이 되었다. 만약 남편이 아무 소식도 없이 집에 돌아
오지 않는 다면 백방으로 남편의 소재를 수소문 할 것이고, 결국 자신을 찾아
오다가 변을 당한 것을 알면 상황이 굉장히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연은 빨리 경수가 의식을 회복되기만을 바랬다. 만약 경수의 아내가 이 사실
을 알면 오해를 할 것이고 그리되면 경수의 가정에 큰 위험 요소가 될
것이었다.
중환자실로 들어간 경수는 네 시간 정도 지난 뒤 겨우 의식을 회복하였다.
자신이 병원에 누워있는 것을 인식한 경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마
치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팔뚝에 꽂힌 링거바늘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 차렸다. 서울서 전철을
타고 S시 역에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미연이가 운영하는 미용실까지 간 것
까지는 희미하게 기억이 났지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 누워있는거지? 나를 누가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인가?
내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 누워 있었지? 집에서 걱정할 텐데…….’
팔에 주사바늘이 꽂혀져 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간호사도 보이지
않아서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어떤 노인이 쿨럭 거리며 누워 있는데 간간이 누구를 부르는 것 같았다.
‘혹시 미연이가 나를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시킨 것은 아닐까?’
경수는 심장이 약해 평소에도 자주 병원을 찾곤 했었다. 갑작스러운 정신적
또는 신체적 충격을 받을 경우 심장 박동이 빨라져 자칫 심장마비증세를 일으
킬 수 있는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경수의 아내는 자주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을 데리고 병원 다니면서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거나 과로로 쓰러질까봐 늘 노심초사하였다. 그런 남
편이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연락도 없으니 아내가 얼마나 답답해 할 지 경수
는 아내의 불안해 하고 있을 얼굴을 그려 보았다. 낮에도 통화를 하였었다.
지금쯤 평소 남편과 절친한 경수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여 남편의 소식을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경수가 아무리 간호사를 불러보았지만 목이 착 가라앉아 겨우 옆에 앉아
있는 사람만 알아들을 정도였다. 경수는 누워서 큰 소리로 발성연습을 해보
았다. 소리를 낼 때마다 목에 통증이 왔다.
바늘로 찌르는 듯 한 고통이 수반 되었다. 고통을 감내하고 경수는 계속
발성연습을 해보았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보았다. 숨이 차고 가슴
이 벌렁거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 조차 없었다.
‘아아, 내가 어쩌다 이 낯선 곳에 누워있단 말인가? 어쩌다가.’
경수는 자신의 신세가 꼼짝할 수 조차 없는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에 대
하여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시간조차 알 수 없는 시각 병원에 누워 있는 자
신이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하였다.
‘빨리 집에 알려야 하는데……. 그런데 아내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첫사랑을 찾아 헤매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누워있노라고 하면 아내가 무
슨 반응을 보일까? 아, 바보로다. 나는 정말로 바보야. 도대체 내가, 내가 어떻
게 이곳에 누워있단 말인가?’
시계는 새벽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미연이는 중환자실 복도 소파에 앉아
자주 병실 안을 들여다보며 담당 간호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물었지만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말만 반복했다. 두 손을 모으고 속으로 또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경수 오빠를 살려 주세요. 저를 보기 위하여 빗속을 뚫고 달려왔다
가 변을 당하였습니다. 오빠가 제발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세요. 제가 25년 전 쓸데없는 인연을 맺어 오늘 오빠가 저리 되었습니
다. 앞으로 어떠한 벌도 달게 받을 테니 제발, 제발 오빠에게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호해 주소서. 이렇게 빌고 또 빕니다.’
기도를 올리고 있는 미연의 양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경수가
미용실에 왔을 때 뒤 따라 나가 경수를 만나 회포를 풀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미연은 첫눈에 선글라스를 낀 경수를 알아보았다. 내실에 들어가 벌
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드레스롤 갈아입은 뒤 패티김의 초우를 틀면
경수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보고 반가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시치미 뚝 떼고 있는 경수가 얄밉기도 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하였으니 미용실을 나가자마자 전화를 걸어 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가 한번 오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미연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세상사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잘 나가던 미용실을 집어 치우고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경상도나 전라도
지역으로 내려가 살고 싶었다. 바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폐쇄 시키려고 하였으
나 분명히 경수가 미용실 홈페이지를 다시 찾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곧 폐쇄
한다는 안내 문구만 올렸던 것이다.
‘아, 경수 오빠가 저리 된 것은 나에게 책임이 있어. 분명 오빠가 폐쇄한다
는 홈페이지를 보고 달려왔을 것이야. 억수같이 내리는 늦가을 비를 맞고
말이야.’
미연이는 경수가 빨리 깨어나기만을 속으로 빌며 다시 기도를 올리기 시작
했다.
‘부처님, 제가 몹쓸 년입니다. 제가 오빠를 저리 만들었습니다. 제가 어찌되
어도 좋으니 제발 오빠만은 살려주세요. 앞으로 자주 부처님을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빠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소파에 앉아 울고 있는 미연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연민의 시선을
던졌다. 미연이도 천천히 피곤이 엄습해와 지쳐가고 있었다. 경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마침 담당 간호사가 알아듣고 경수 곁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의식이 들어오셨나봐요? 회복이 빨라 다행입니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언제 이곳에 입원했지요? 그리고 누가 나를 이곳에 데
리고 왔나요? 그리고 지금 몇 시에요?”
경수가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이야기 하자 간호사는 경수 입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댔다.
“선생님, 여기는 S시 **병원이고요, 어젯밤11시경 사모님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분과 앰블런스에 실려 오셨어요. 지금은 새벽 5시 좀 넘었어요.”
‘어떤 여자?’
“선생님,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아가씨, 내 휴대전화 못 봤어요?”
“아, 저기 있어요. 제가 갖다드릴게요.”
“차암, 나를 병원에 데리고 온 여자 어디 있어요?”
“아, 사모님이요? 밖에 계세요.”
“아가씨, 나 의식이 돌아왔으니 그 여자 좀 불러 줄 수 있어요?”
“선생님, 안정을 취하셔야해요. 병원 규칙상 안 되는 일인데 제가 사모님을
모셔올게요.”
간호사가 나가자 경수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정도 가자 상대
방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 나야.”
“당신,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거에요? 지금 새벽 다섯 시가 훨씬 넘었는
데요? 전 당신 기다리느라고 한잠도 못자고 있다고요.”
수화기에서 아내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 나 여기 로마야. 회장님 모시고 갑자기 로마에 오게 되었어. 아주 중요
한 바이어를 만나야 하는 일이 생겼거든. 서울서 출발할 때 당신한테 전화하는
것을 깜빡했어. 한 삼일 정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당신한테 미리 알려주
지 못해서.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어. 여긴 저녁 아홉시 좀 넘었는데 회장님 모
시고 저녁 만찬에 가야돼. 잠을 못 잤더니 머리가 아파 죽겠어. 암튼 서울로 돌
아갈 때 전화할게. 여보, 사랑해.”
“그런데 당신 목소리가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응, 열 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탔더니 컨디션이 안 좋아.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몸조심하시고 다녀오세요.”
간신히 아내와 전화통화를 마친 경수는 큰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내를 속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자칫 두 가정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수는 어떻게 하던지 위기를 슬기롭게 넘겨
야 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덕분에 예전에도 몇 번 급히 해외에 나갔
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경수의 아내는 별 의심하지 않았다.
“선생님, 보호자분 모시고 왔습니다.”
전화 통화가 막 끝나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