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선醉仙
취선醉仙
- 여강(驪江) 최재효
지난 하세월 앵무새가 되어
공맹孔孟의 혀 위에서 낮잠을 즐기다
진실로 목석木石이 되고 말았다
나는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하늘을 기망한 것이 분명하다
어제까지도 해와 달
그리고 뭇별들이 모두 나의 편인 줄 알았다
심지어 붉은 립스틱들도
늘 나에게 호의적이었으니까
백년화百年花로 나온 맑은 눈의 소년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꽃을 피워본적이 없다
평생을 알아주는 이 없이
휑한 들녘에서 슬픈 조연助演으로 살아 온
허수아비 뻥 뚫린 가슴에
또 찬바람이 무시로 드나드는 계절이다
성장이 멈춘 소년은 벌써부터
스스로 키를 줄이고 있다
벗들이 하나 둘 하늘 사다리를 타고
석양이 마왕의 얼굴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아침이 오면
습관처럼 합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 한 잔술에 취해 꽃을 보면
그 꽃도 취해서 나를 보고 있다
- 창작일 : 2008.09.29. 20:45
[주] 醉 - 술취할 취 仙 - 신선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