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몽(1)
상사몽(1)
- 여강 최재효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라.”
군관이 소복에 머리를 산발한 여인에게 눈알을 부라리며 거들먹거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쌀쌀한 늦 가을 아침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며 가랑잎들이 허공으로 솟아
올랐다. 조용히 흐느끼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나으리, 마지막으로 귀성군(歸城君)을 만나게 해주세요. 저승가기 전에 꼭 귀성군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네년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본관이 들어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라. 그 밖에 다른 할 말이 없느냐?”
“나으리, 소첩 이미 지엄하신 상감마마의 어명에 따라 이승을 하직해야 하오나, 잠시
소첩이 그간의 회한이 남아있어 이승을 뜨기 전에 마음속으로 정리를 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소서.”
“어허, 해가 뜨기 전에 네 목에 밧줄을 걸어야 하느니. 좋다 해가 뜨는 순간 교수형을
집행할 것인즉 그때까지 말미를 주겠다.”
군관은 마치 큰 자비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여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인은 자신이 어떻게 하여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는가를 지나간 영욕의
세월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덕중아, 밤마다 네 얼굴이 아른거려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내 소원을 들어다오.
딱 한번이면 모든게 형통하느니라.”
“대군마마, 어찌 소녀처럼 비천한 계집에게 마음을 주신단 말씀이세요? 행여 누가 보면 어쩌시게요.”
“보긴 누가 본단 말이냐. 이 방안에 너와 나 말고 누가 있더란 말이냐?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렴.”
수양(首陽)이 대군 시절 잠저(潛邸)에 기거하고 있을 때 미천한 신분의 덕중은 수양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보잘 것 없는 여자였다. 그러나 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미모로 수양의 눈에 들어 늘 수양의 가슴을 뛰게 했다. 조선국 대군(大君)의 신분으로 시비(侍婢)를 건드린다는 것은 마음 먹기에 간단한 일이지만 만일 담장 밖으로 소문이 은밀한 사실이 새어 나간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양의 정실인 낙랑대부인 윤 씨의 눈초리가 늘 두 사람의 사이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지아비가 머무는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는 알 수 없었다. 수양의 세숫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 온 덕중은 간밤에 마신 술로 취기가 남아있는 수양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오똑한 콧날, 도톰한 입술, 뽀얀 피부, 늘씬한 키에 풍덕한 젖가슴, 뭍 남성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한 터질듯 풍만한 엉덩이. 수양은 지금이 여종 덕중을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구애의 차원을 넘어 애원하고 있었다.
“덕중아, 딱 한번만이야. 딱 한번만......”
“나으리, 만약, 만약 대부인께서 이 사실을 아시는 날이면 소녀는 죽은 목숨이옵니다.
제발 소녀를 이 방에서 얼른 나가게 해 주세요. 나으리.”
“이 집안의 어른은 나인데 누가 감히 너를 건드린단 말이냐?”
“혹여, 대부인 마님께서 아시면 소녀는......”
“걱정하지 말거라. 이방에 너와 나 둘 밖에 없지 않느냐?”
덕중은 수양에거 말해보았자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을 지켜줄 언약을
받아내고 싶었다.
“대군마마, 그럼 약조 하나 해주실 수 있는지요?”
“약조?”
“네에 대군마마.”
“말해보거라. 무슨 약조인지?”
“소녀가 나으리에게 정조(貞操)를 받친 후에도 소녀를 예뻐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또한 소녀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방패막이가 되어주실 수 있으시겠는지요?”
덕중의 눈이 마치 보석처럼 빛을 발산하면서 수양의 게슴츠레한 눈을 바라보았다.
“네가 아주 당돌하면서도 영리하구나. 네가 나의 여인이 된다면 이 조선팔도에서
상감마마를 빼고 너를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말거라.
내 너를 내 여인으로 둔다면 항상 너를 은애할 것이야.”
수양의 단호하고 자신의 찬 목소리에 덕중은 스스로 치마와 저고리를 벗고 속곳차림으로 수양의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오, 과연, 과연 이 조선 땅에서 최고의 몸매와 미색이로다.”
수양은 덕중의 속곳을 벗기면서 찬사를 늘어놓았다. 덕중은 이부자리에 누워 수양의
손길에 모든 것을 내맡겼다. 수양은 알몸으로 변한 덕중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여자다루는데 경지에 오른 수양의 손과 손가락이 봉긋한 덕중의 젖무덤과 엉덩이를 차례로 애무하자 덕중은 가늘게 떨면서 신음을 토했다.
‘흠, 내가 왜 진즉에 이 계집을 탐하지 못했을꼬? 집안에 이런 보물을 보고 가슴만 태웠다니.
내가 참으로 한심했구나.’
수양도 알몸이 되어 덕중을 지그시 누르며 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입술로 덕중의 입술을 더듬었다. 간밤에도 다동(茶洞)에서 조정에서 내로라하는 권신(權臣)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시중들던 기생의 입술을 훔쳤던 입술로 이번에는 덕중의 보드라운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불과 불의 만남이었다. 두 불기둥이 이불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설전(舌戰)이 길게
이어지더니 수양의 그것이 용광로 보다 뜨거운 곳을 파고들었다. 덕중은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달아올랐다. 두 사람 모두 수 없이 열락의 세계를 넘다들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이불속 행위는 은밀하면서도 격랑이 치고 이내 잔잔한 호수 같으면서도 금방 태풍이 불었다.
'끙-' 하는 남자의 신음에 이어 가냘프면서도 쾌락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의
비음(鼻音)이 방안에 오래 머물렀다. 한바탕 바람이 지나간 뒤에 수양은 비로소 자신의 여인이 된 덕중의 젖가슴과 튼실한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눈치 빠르고 똑똑하기로 소문 난 낙랑대부인 윤 씨의 시선을 피하여 집안에서 다른 여인의 여체
(女體)를 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허술한 틈은 있게 마련이었다.
“덕중아, 고맙구나. 내가 이제 본 여인중에서 네가 최고로구나.”
수양의 한쪽 손이 덕중의 무성한 숲속을 지분거리며 속삭였다.
“대군마마, 소, 소녀를 절대 버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제 소녀는 죽을 때까지 대군마마 한 분만을 생각하면서 살 것입니다. 그러니, 소녀를 절대로 내치거나 외롭게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 순간 부터 소녀는 대군마마의 여인입니다.”
‘흠-, 고것이 말도 예쁘게 하는구나.’
“그럼, 그럼. 조선 땅에서 너만한 미색도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제 내 여자가 되었으니 내 책임지고 너를 보호할 것이니라. 정말로 아름다운 마음씨와 육덕을 지녔구나.”
수양을 금방 다시 살아 꿈툴대는 욕망을 한 껏 부풀려 덕중을 다시 한 번 지그시 눌렀다.
“아-, 대군마마. 소녀, 이대로 마마 품에서 죽는다하여도 아쉬울 것이 없나이다.
오래오래 인애하여 주세요.”
덕중은 열락의 파도를 타면서도 조선 제일의 한량인 수양의 여인이 되었다는 것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였다. 미천한 신분의 여인으로 왕이 될 수도 있는 수양의
애첩이 된 것이 자신 분만 아니라 집안의 경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덕중은 더욱 마음이
들뜨고 행복했다.
수양대군의 정실부인인 낙랑대부인은 수양과 덕중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 하고 넘어갔다. 수양이 덕중을 총애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수양의 아이를 임신
하자 윤씨는 덕중을 수양의 첩실로 삼도록 하였고, 얼마되지 않아 덕중은 수양의 아들을 출산
하였다.
수양의 아들을 출산한 덕중의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노비에서 수양대군의 첩실이
되었다는 것은 신분의 수직상승을 의미했다.
세월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흘러갔다. 상감이 병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붕어하자 수양의 조카인 열 세살의 노산군(魯山君)이 왕위를 이었다. 상감은
죽기전에 영의정부사 황보인을 비롯하여 남지(南智)·김종서 등 대신들에게 노산군을 왕으로
보필하도록 유지를 남겼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노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국정혼란 스러웠고 이런한 틈을 타
세종의 아들들이며, 왕의 숙부들인 일곱 명의 대군(大君)들은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세력이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으로, 안평대군의
잠저에는 문신이 출입하고 있었고, 수양대군의 잠저에는 모사꾼인 권람(權擥)·한명회(韓明
澮)와 무인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1453년 늦 가을 어느날 저녁 수양대군의 잠저에 홍달손(洪達孫)·홍윤성(洪允成)·양정(楊汀) 등 삼십 여명 이르는 정예 무인들이 모여 거대한 음모를
계획했다.
수양대군은 먼저 이들 심복 무사들을 거느리고 삼정승 가운데 가장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여 그와 그의 가족을 척살하고 이어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의정부찬성 이양(李穰) 등 자신의 반대세력에 속하는 중신들을 주살하였다. 마침내 정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로서 국정을 총괄하였고, 이어 취한 여러 조치들을 바탕
으로 정난(政亂)을 일으킨지 2년만인 1455년 조선 제7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곧 이어
1457년 가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가 있던 조카 노산군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수양대군이 권좌에 오르자 덕중도 수양의 가족 일원으로 경복궁에 들어왔고, 수양의 정실
부인인 낙랑대부인 윤씨는 왕비(王妃)에 책봉되었고, 덕중은 후궁으로서 소용(昭容)이라는
내명부 정3품의 품계를 얻게 되었다. 주변에서 노비 출신인 덕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주] 귀성군(龜城君) - 세종(世宗)의 4째아들 임영대군(臨瀛大君) 구(龜)의 둘째아들로 휘(諱)는
준(浚)이며 세조(世祖) 12년(1466) 무과 (武科)에 장원급제하였고 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며, 용모가 매우 수려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