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길
길 잃은 길
- 여강 최재효
태초부터 길은 없었다
다만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이나
활화산 같은 용기들 그리고
이승의 마지막 밤을 맞는 영혼들이
강과 산을 넘고
하늘과 바다를 건너 스스로
제 몸을 찢어 길을 만든 적은 있었다
물신(物神)의 가면을 뒤집어 쓴
해괴망측한 망령들이 갑자기 나타나
함부로 길 아닌 길을 만들고 있다
세상 모든 여린 가슴들에게 한숨을
강요해 놓고도 그들은 되레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고 있다
자고나면 팔방(八方)으로 난 길 위로
행선지를 알 수 없는 길들이
무더기로 들어서면서
잠자리 눈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길 위에서 풍전등화 신세로 전락 되었다
복 많은 사내가 돈벼락에 맞아 죽듯
21C 꼭두각시들이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초부터 길은 없었다
- 창작일 : 2008.06.25.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