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8. 4. 20. 15:05

 

 

 



           [경고]


        미성년자의 감상을 금합니다.




 

            

 

 

                    

                    

  

 

 

               손 톱(1)

 

 

 

                                                                                                                                                                                         - 여강 최재효

 

   

                                                                   

 

 
 기획실에 근무하는 동혁은 민지에게 늘 일방적이었다. 마치 상전이 하인 대하듯
자신의 말만 전할 뿐 상대의 의견을 듣는 법이 없다. 금요일 늦은 오후는 괜히 사람

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특히 민지처럼 남편이 회사일로 해외에 나가있어 일요일

까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 금요일 오후는 황금과도 바꿀 수 없을 게다.


 삐리릭 -
 “비서실입니다.”


 “민지씨, 형욱입니다. 오늘 퇴근 후에 좀 만났으면 해서요.”
 “글쎄, 뭐 특별한 스케줄이 있는 건 아닌데 회장님이 어떤 명을 내리실지 몰라서
약속하기가 좀 그러네. 시간되면 전화하고 전화 안 가면 무슨 일 있는 걸로 아세요.“


 “그래요. 전화오기만 기다릴게요.”
 ‘바보, 남자가 되서 설득하려하지 않고 앉아서 감이 떨어지길 바라니…….


 같은 회사 내에서 두 남자와 일정한 간격과 긴장을 유지해 가면서 시소게임을 시작
한지 5년이 넘은 상태에서 민지는 하녀와 공주의 신분을 유지해야 했다. 동혁에게
철저히 하녀 취급을 받았고 형욱에게는 공주 대접을 받아왔다. 동혁이 초원을 달리

는 야생마라면 형욱은 동물사육사들에게 잘 길들여진 순한 사슴 같았다.


 “언니, 오늘 데이트 있나봐요? 언니는 좋겠다.”

 “뭐가?”


 “나도 언니처럼 멋진 애인이
 있으면 금요일 오후가 따분하지 않을 텐데…….
 “순영씨, 여태껏 애인도 없단 말이야?”


  2년 전 순영은 같은 회사 내 동료사원과 결혼하였지만 남편의 심한 여성편력
으로 곧 이혼녀라는 딱지를 붙여야 했다. 그런 순영은 남성 사원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민지가 부러웠다. 민지의 화장법과 액세서리 심지어 말투부터
남성사원을 대하는 법까지 따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민지처럼 행동하면 수많은
남성사원들로부터 민지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언니, 오늘은 매니큐어를 어떤 색으로 칠할 건데요?”
 “왜? 순영씨도 네일 아트(Nail Art)에 관심이 있는 거야?”


 순영은 민지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하기만 했다. 순영은 민지가 책상 서랍 속
에서 수백 개의 인조손톱이 보관된 예쁜 상자를 꺼내자 눈이 휘둥그레 졌다.


 민지는 금요일 밤 도발적이고 섹시한 원숙한 여성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붉은색
바탕에 화이트 플라워가 그려진 인조손톱을 양손 중지(中指), 약지(藥指), 새끼
손가락에 붙이고 검지에는 검정색 바탕에 백합이 그려진 손톱을 부착하였다.
엄지에는 하얀색 바탕에 큐빅이 박힌 손톱을 붙였다.


 “어머나, 언니 너무 너무 예뻐요. 이렇게 많은 인조손톱을 어디서 구한 거예요?”
 
 “애인이 생기면 알려줄게. 사용법하고 손톱을 건강하게 하는 법도.”


 “정말이죠?”
 “오늘 당장 성인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애인을 만들어야지. 언니를 보니
너무 부러워요. 그런데 언니? 
외국에 계신 아저씨도 언니 손톱을 좋아하세요?”
 

 민지는 언제가 남편과 외식을 하기위하여 서울에서 꽤나 이름 난 레스토랑을
찾은 적이 있었다. 민지의 화려한 네일 아트에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민지에게
모아지자 이에 부담을 느낀 남편은 불편한 듯 자주 헛기침을 해댔다. 집에 돌아
오자마자 남편은 앞으로 절대 자신과 외출할 때 손톱으로 인하여 신경 쓰이지
않게 하라고 은근히 협박하였다. 민지는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에 나갈 때 거의
맨 얼굴이나 아니면 립스틱만 하고 나가자 남편은 불편함 심기를 은연중 들어
냈다.


 ‘남자들은 단순해. 복잡한 여인네들 속을 잘 모르지.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한

다고 여자가 자기 사람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건 착각이야. 평생을 몸을 섞고 살아

도 한번도 자기 여자의 마음을 가지지 소유하지 못하는 불쌍한 남자들도 많이 있지. 반대로 눈길 한번에 남극의 빙하처럼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버리는 경우도 있

고 말이야.


 결혼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날개를 달고 훨훨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고 한탄하는 백조들이 이 서울에만도 수 백마리는 더 될 거야. 그들을 백조라고 하기보다는 바보 새인 알바트로라고 부르는게 더 합당할거야. 여자나 말이나 자기를 알아주고 예뻐해 주는 사람에게는 간과 쓸개도 빼주는데 말이야…….‘


 목련꽃이 하나 둘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손톱화장을 마친 민지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우울해졌다. 여자의 일생도 어쩌면 바람에 날리고 있는 저 목련꽃 같을

지도 모른다는 생이 들었다.


 ‘나나 흉하게 시들어 봄바람에 날리는 저 목련꽃잎이나 무에 다를까?’
 황사가 심하게 날릴 거라는 일기 예보에 민지는 하얀색 블라우스 위에 검정색

피스를 입고 베이지색 버버리를 걸쳤다. 순영에게는 자신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으면 회장님 수행하고 업무차 출장 갔다고 답변하라고 하고 회사를 나왔다.


 “민지, 여기야. 여기.”

 호텔 라운지에 동혁이 앉아있었다. 회사 가까운 곳이라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
까봐 짙은 색의 안경을 착용하고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검정색 정장에 감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넥타이가 참신해 보였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응, 상무새끼가 자기가 잘 아는 카페로 한잔 하자고 했지만 몸이 아프다고 핑계

대고 바로 나왔지.“


 동혁은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장군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제나 처럼

동혁은 민지와 데이트를 할 때 자신이 통이 크고 세상에서 가장 사내다운 행동을 한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동혁의 거만한 태도가 민지의 가슴속

깊은 곳에 독사처럼 똬리를 튼 채 도사리고 있는 음심(淫心)을 자극하기에 충분조

건이 되었다.


 민지가 동혁과 만나고 있는 시간에 홍보실 형욱은 혹시 민지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시계만 바라보고 있다. 손가락만 움직여도 금방 민지의 저녁 스

케줄을 알 수 있지만 행여 민지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민지에게 전화 오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넥타이를 단정하게 하고 입안을 가그린으로 청결하게 하였다. 형욱은 지난 연말에 있었던 민지와의 야릇한 이벤트가 생각나자

미소를 지었다.


 ‘언제 또 그런 환타스틱한 이벤트가 있을꼬?’
 지난해 연말 창사 35주년 기념행사가 L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서울 본사
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원과 지방 지점장들이 참석한 행사장은 마치 유명 방송
사들의 연말 대종상 시상식을 방불케 했다. 그날 행사의 꽃은 민지였다.


 비서실에 근무하는 유리한 조건도 작용했었겠지만 무엇보다 쳐다만 보아도 현기

증을 일으킬 정도의 뛰어난 미모가 뭇 사내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민지는 행

사진행 사회를 이벤트 전문회사의 전문 MC와 호흡을 맞추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

회장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서 3부 행사가 끝이 났지만 대부분의 사원들은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날 밤 형욱은 만취한 민지를 집에 까지 에스코트하였고 역사는 이루어 졌다. 운동장보다 넓어 보이는 민지의 아파트는 썰렁하다 못해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형욱과 민지는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길고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래, 오늘도 그날의 꿈이 펼쳐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올 들어 벌써 몇 번이나 데이트를 신청했지만 겨우 한번의 만남이 있었단 말이야. 오늘밤은 꼭 민지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데…….‘


 형욱은 민지의 지시로 구입한 물건이 든 가방을 바라보았다. 지난달 민지는 형욱과 데이트를 마치면서 메모지를 전해주었다. 메모지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익히 아는 물건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가죽채찍/안대/수갑/전기 충격기/마사지 오일/팬티에 부착된 딜도/애널 플러그/
선글라스/가죽 끈/비디오카메라/빨강색 가죽장갑…….

 
 형욱은 창피를 무릅쓰면서 서울 시내 성인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민지가 주문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준비하였다. 한번도 성인용품점에 들어간 본적 없는 형욱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성인용품점을 드나들었다. 성인용품점 남자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형욱에게 물건을 보여주었고 그때마다 형욱은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오늘 저 물건들을 민지에게 전해줘야 하는데. 그런데 저 물건들을 누구 하고 사용하려고 하는 거지? 나 말고 다른 남자랑 써 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혹시 레즈비언 친구와?‘


 형욱은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휴대폰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했다.


 “민지야, 오늘은 랍스터 먹을까?”
 “동혁씨, 돈 많이 들 텐데.”


 “돈은 쓰라고 있는 거고, 다 쓰면 또 훔치면 되는 거고. 멍청한 회삿돈 좀 빼내 쓴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놈 있어? “
 “동혁씨 마음대로 해요. 난 무얼 들어도 좋아요.”

 “오늘은 금요일 밤이니, 술도 한잔 하지?”

  

 민지는 동혁의 팔짱을 끼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누가 두 사람을 보면 연인이나
부부로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식당은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격이 수억 원 정도 나갈 것 같은 샹들리에가 홀 중앙에 마치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어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고 그 아래 단위에 하얀 피아노가 놓여 있는데 하얀 드레스를 입은 30초반의 요염한 여인이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시선을 주면서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민지, 건배하지.”


 일방적인 동혁의 건배 제안에 민지는 거역할 수 없었다. 민지는 이미 동혁의 리모컨에 의해 조정되는 꼭두각시였다. 동혁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잡은 민지의 손을 바라보았다. 동혁이 묘한 미소를 흘리더니 민지의 손을 잡았다.


 “못 보던 패션인데,  오늘 무슨 의미심장한 날이야?”
 
민지는 동혁의 입에서 무슨 답변이 나올지 불안했다. 만일 좀 이상하다거나 너무
천박하다고 하면 두 시간을 할애한 공이 허사가 되고 자칫 오늘밤에 있을 동혁의 기발한 이벤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랍스터에는 이 포트와인이 저격이지. 세상에는 격이 맞지 않거나 주제넘은

일들이 비일비재해. 민지, 오늘 내가 준비한 이벤트가 기대되지 않아?”
 “네에, 엄청 기대가 되요. 저 벌써 몸이 달아오르는 걸요.”

 
 동혁과 민지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레  그랬

던 것처럼 동혁은 민지에게 자동차 키를 넘겨주었다.


  “오늘은 아주 질펀하게 놀아보자고. 먼젓번보다 더 판타스틱하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오늘을 위해서 몇 가지 소품도 준비했거든. 어때, 기대돼지?“

 “네에, 엄청 기대돼요.”
 “민지야, 차를 양수리 방향으로 몰아.”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