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 최재효 2008. 2. 10. 18:05

 

 





 

                          

               

                                      


 

 

 

   


                     날개(최종회)

 

 

                                                                                                                                  

                                                                                                                                                            - 여강 최재효


 



 두 번, 세 번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춤을 추었지만 도저히 황금 가면

속의 남자를 알 수 없었다. 혹시 남편이 나에게 춤을 추자고 손을

지 않을까 기대하였으나, 남편은 끝내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잠시 앉아있으면 얼근해진 황금가면들이 틈을 주지 않고 집요하게

건배를 제의해 왔다.


 파티가 서너 시간 동안 진행되면서 황금가면 속의 실체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춤을 추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은 남편과 짝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이 었고, 남편의 담당의사와 그의 두 친구 그리고 남편의 사업상

파트너 두 사람이 돌아가며 열정적으로 나를 비롯한 일곱명의 여인들과

춤을 추었다.


 건배와 춤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의 뱃속은

철판으로 된 것 같았다. 황금가면들이 수 없이 건배를 하여도 그녀들은

한번도 거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들의 단련된 위장을

존경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반면 나는 파티가 점점 열락으로 흐르면서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

다. 자꾸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대형 화면에서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

만이 주연하는 '아이즈 와이드 샷'의 판타스틱 하고 몽상적인 장면이

내 분위기를 서서히 달구기 시작하였다.


 부부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의 감춰진 욕망은 현대인들이 성욕

이라는 것을 도덕적 의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인내하며, 감추고 살아왔

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톰 크루즈는 직업상 여자환자의 가슴을 만지더

라도 아무런 성욕도 느끼지 않는다고 아내에게 고백하자,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냉소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에게 육체는 물론 정신적 정절을 당연시하는 남편에게

자신을 스쳐갔던 남자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적이 음을

고백하게 된다. 정숙한 아내로 생각했던 톰 크루즈는 충격을 받는다. 정

숙하다고 믿고 있던 아내가 다른 남성들과 관계를 맺는 영상이 자꾸만

떠오르는 톰 크루즈는 괴로워 한다. 


 그는 매춘부를 만나 성욕을 해소를 하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피아

스트인 친구를 따라 간 어느 저택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를 두른 남자들과 나체의 여자들. 그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택 안에서 온갖 성적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주체하지 못할 성욕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감

추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행태를 표현한 것일까. 아내의 고백을

듣고 자신이 다녀 온 저택에서 벌어졌던 혼음(混淫)의 충격적 장을 오

랩 할 수 밖에 없는 톰 크루즈. 혼란과 정체성의 혼돈. 저택에서의 판

타지와 아내의 꿈은 분명 유사한데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왜

톰 크루즈가 겪은 현실과 아내가 겪은 꿈이 맞닿아 있는지 해결하지 못

하고 고민한다.

 

 성욕, 섹스에 대한 감독, 스탠리 큐뷰릭의 사색이 깊이 담겨있는 듯

하지만 십년 묵은 체증 같은 것이 뱃속에 있어 답답한 영화로 비쳐졌다.

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암울하고 무서운 피아노 배경 음악도 상적

로 뇌리에 각인되고 있었다. 차차 나는 환각상태에 빠진 것같아 허벅지

꼬집어 보았지만 통증만 전해졌다. 


 “자, 여러분. 재미있습니까? 오늘의  이벤트는 평소 여러분들이 경험

해 보지못한 판타스틱하고 매우 열정적인 행사 일 것입니다. 이제 제1

부 행사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제2부 행사에 들어갈까 합다.

 

 제2부 행사는 파트너와 평생 추억에 남을 아름답고 화려한 밤을 보내

될 것입니다. 파트너는 공주님들이 불행히도 일곱분 밖에 안 계시기

때문에 공주님들이 남성 파트너를 간택하는 방식으로 제2부 행사를 시

작할까 합니다. 왕자님들은 소지품을 하나씩 가져오셔서 저에게 주시

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아름다운 공주님들과 파트너가 되신 황금가면께서는 2층

에 마련 된 별도의 객실로 가셔서 내일 아침까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방에 가시면 색다른 준비물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간택되지 못한 세분의 황금가면들께서는 이곳에

서 여흥을 즐겨주시던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셔도 되겠습니

다.

 

 간택되신 황금가면과 공주 세분께서는 제2부 행사가 끝날 때 까지

절대로 가면을 벗으면 안 됩니다. 명심하세요. 또한 파트너가 되신 분

들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질문이나 개인적인 말씀을 하셔도 안 됩니다.

의사 전달은 탁자에 준비된 펜으로 종이에 써서 하시기 바랍니다. 일곱

의 파트너가 함께 하실 수 있는 시간은 내일 아침 6시까지 입니다.


시간을 절대 엄수해 주세요. 객실에 가시면 할 수 있는 오락, 게임, 그리

고 기타 행동들에 대한 소개는 이 안내서에 적혀 있습니다. 그럼, 즐거

추억 많이 쌓으세요.“


 산장 주인의 이야기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파트너와 단 둘

이 한 방에서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니 나는 겁부터 났다. 


 ‘남편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외간

남자와 함께 밤을 새도록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 또한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화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미 시간표처럼 잘 짜여진 단막

극의 여배우로서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는 입장 아닌가?  좋아, 끝까지

가보는 거야. 지옥을 가든, 천국을 가든, 갈데까지 가보는 거야.‘


 다른 여인들은 이미 여러 차례 겪어본 행사인 양 놀라거나 허둥대지

않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산장 주인이 나눠준 용지를 읽어보았다. 객

에 비치되 있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임의 종류와 즐기는 방법이적혀

있었다. 오락 역시 노래방 수준이나 아이들이 즐겨 하는 술래놀이 등

유치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성인들이 밤새워 할 수 있는 놀이는  함께 애로물이나 액션 영화를

보는 수준이었고, 간이 바에 준비된 양주, 맥주, 토속주를 마실 수 있

는 정도 였다. 생면 부지의 남녀가 객실에 들어 밤새워 할 수 있는 행

위는 원초적 행동 이외에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안내서를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황금가면들이 각자 소지품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자동차

키홀더, 손수건, 말보로 담뱃갑, 은단통, 만년필 등이 불빛에 반짝거렸

다. 낯익은 소지품은 보이지 않았다. 여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내가 흰색 실크 수건을 잡자 나머지 여섯명도 각자 취향에 맞는 황금

가면의 소지품을 하나씩 잡았다.


 나는 그 장소 에서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오고 싶었으나, 남편이 호기

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을 것을 생


각하니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향긋한 향내가 풍기는 흰색 실크

손수건을 잡고 뺨에 대보았다. 칠공주들이 각자 선택한 소지품을 흔들

어 보이자 황금가면들이 다가와 공주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나의 선택을 받은 황금가면이 나를 부축하여 2층으로 안내했다. 2층

객실은 특급 호텔수준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바닥은 붉은색 양

탄자가 깔려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20평이 넘어 보이는 객실

에 대형 라운드 침대와 간이바(Bar), 초호화 욕실, 대형 스크린의 텔

레비전, 컴퓨터, 노래방 기기, 황금색 원탁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위에

각종 양주와 음료수 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대에는 각종 여성용과 남성용 화장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조그만 장식장이 있는데 안에는 성인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검정색과 흰색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외국산 남성이

사이즈별로 진열되어 있었고, 생전 처음보는 가죽 채찍, 눈가리개,

수갑, 남성용 기구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데 보기만 하여도 가

슴이 울렁거렸다. 이런 것 들이 왜 객실에서 나를 맞아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금 가면이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는 듯 객실 조명의 조도를 소등한

상태로 조절하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후 샤워하는 소리가 환

희의 전주를 알리듯 문틈으로 전해졌다. 캄캄한 방에 티브와 컴퓨터

화면, 노래방 기기에서 반짝거리는 반딧불 같은 엘이디 불빛이 겨우

이곳이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만히 벽면을 살펴 보았다.


 5분쯤 지나니 실내의 사물들이 어렴풋하게 파악되었다. 에는 르


네상스의 거장(巨匠)들이 그린 대형 명화가 걸려 있는데 흐릿한 조

을 받아 겨우 알아 볼 수 있을 정도 였다. 조명이 어찌나 낮은지 

옆에 서 있는 사람의 가면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몽롱한 상태에서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금방이라도 살아서 걸어

나올 것만 았다. 여신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1부 파티에서 마신 술이 뱃속에서 화학작용을 하는 듯 했다. 나

마치 오늘밤의 이벤트를 오래전 부터 기다려온 것 같아 자신에게 부



끄럽기도 하였지만 현실의 육신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는 듯 했다.

황금 가면이 화장실에서 나오고 나오자 나는 비비치적거리며, 화장

실로 들어갔다.


 허벅지가 거의 드러난 붉은치파오를 입고 가면을 쓴 낯선 여인이

거울 속에서 나를 보면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새 깃털이 장식된 하얀

색 가면 속 여인은 한 마리 바람 난 백조가 분명했다. 

 

 화려한 날개옷을 입고 곧 승천을 하기 위하여 달 뜨는 밤을 기다리

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변기에

대고 억지로 토악질을 하려고 하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간신

히 양치질만 하고 나오자 황금 가면은 포트와인 한잔을 따라 나에게

건넸다.


 혀의 감각이 고도의 알코올에 지배된 상태라 와인의 맛을 전혀 음미

할 수 없었다. 마침 입안이 칼칼하던 차라 단숨에 잔을 비웠다. 황금가

면은 내가 잔을 비우자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욕기지를 느꼈는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나를 부축해 이 방에 함께 들어온 황금가면의 신분이 궁금했다.

분명한 것은 황금가면들의 체격과 옷 그리고 걸음걸이 및 행동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규칙을 깨고 가면을 벗자고 요구하고 싶었으나,

만약 그럴 경우 서로에 대한 신비감과 규율을 어기됨은 물론 호기

심과 신비감이 반감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막힌 이 매작지근한 객실에서 내일 새벽까지 무엇을 하며 미

지의 황금가면과 시간을 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전등의 스위치를

찾았으나 실내가 너무 어두워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이 방의 모든 것이 외부에서 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

이 들어 있는 객실의 모든 일들이 외부 모니터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감시 당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수사기관에서 중요한 사건에 연루 된 피의자를 신문할 때 밖에서 피

의자의 말과 일거수 일투족을 빠짐없이 녹화해두었다가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비슷한 조처가 나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

다. 화장실에 들어간 황금가면은 이십 여분 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

다.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면서 몸롱한 상태가 되었다.


 마치 구름 위를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느새 창공을 날고 있

었다. 두 마리 하얀 새가 구만리 창천(蒼天)을 날고 있었다. 부부 새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애정 표현은 강렬해 보였다. 두 마리 새는 서녘을

향해 날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앞서 날다가 갑자기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자 뒤 따르던

수컷으로 보이는 새가 더 빠른 속도로 낙하하였다. 거의 지상에 아슬아

슬하게 닿게 될 순간 앞의 새가 다시 창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충분한 전희(前戱)를 즐긴 두 마리 새는 흰 구름 위로 솟아오르더니

각자 한쪽 날개를 단단히 고착 시켰다. 이전 보다 더 높이 그리고 빨리

창천을 날 수 있었다. 두 마리 새는 쉬지 않고 솟아오르다가 수직 하강

을 반복하면서 화려한 원무를 추었다.


 두 마리 새 뒤에 또 한 마리 새가 앞의 두 마리 새가 눈치 채지 못하

도록 조심하면서 날고 있었다. 그 새는 두 마리 새가 날개를 마주붙이

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할 때마다 속으로 울면서 두 마리의 비상을 축

복해 주었다.

 

 잘 어울리는 한 쌍 비익조(比翼鳥)가 환상적인 춤의 율동을 선 보일

때마다 뒤 따라 날던 새는 그만 분노를 참아가며, 눈물을 흘리면서 두

마리 새의 격정적인 사랑의 행위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두 마리 새가 거의 서천에 다다르자 다시 한번 환상적인 원무를 추

었다. 암컷이 늘 아래서 날다가 이번에는 암컷이 위에서 날기 시작했

다. 암컷이 상하 위치를 바꿔가며 날아가는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였

다. 곧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두 마리 새의 춤은 뒤 따라

날던 새에게 행복, 환희, 분노, 한탄 그리고 능숙하게 춤을 추지 못하

는 자신에게 대리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서천에 다 왔는지 두 마리 새는 강렬하게 빛을 발산하는 불덩이 속

으로 빨려들어 가더니 활활 타며 원무를 그렸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

으로 수십 바퀴를 돌다 기진맥진한 수컷이 타버려 재가 되어 공중에

흩뿌려졌다.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마리 새가 끼어 들었다.

  

 뒤따라 날던 새였다. 그 새는 암컷 모르게 뛰어들어 불새가 되어 춤

을 추기 시작했다. 비록 재가 되어버린 좀 전의 새보다 춤사위가 자

유롭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추는 춤에서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춤이 끝나자 두 마리 새는 어느새 다정한 비익조가 되어 출발지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서서히 동녘이 밝아 오면서 피곤함을 느낀 두

마리 새는 커다란 계수나무에 둥지를 틀었다.


 머리가 아팠으나 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20

분 쯤이었다.  내가 선택한 파트너와 함게 있도록 허락된 시간은 6시

까지 였다. 분명히 긴 시간 동안 꿈을 꾼 것도 같았고, 어떤 환영을

보기도 한 것같기도 하였다. 밤새도록 몽유병 환자가 되어 밖을 쏘다

녔던 것도 같았지만 내 뇌리에 영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하였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살며시 손을

뻗쳐 내 육신을 더듬어 보았다. 치파오의 미끈거리는 감촉이 느껴졌

다. 옷 차림은 처음 객실에 들어와 침대에 쓰러졌을 때와 같았다.

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몸을 옆으로 돌리려하자 약간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

을 감고 내 뇌리나 동공에 혹시 이미지나 소리로 남아있을 지도 모를

단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람의 오감(五感)은 의식이 있을 대 제 기능을 정확히 수행하지만

무의식 속에 있을 때에도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는 이상이 없다.

다만,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작용하였던 사실이 얼마나 기억

장치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필요할 때 재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여자가 아무리 술에 취해 곯아떨어 졌다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호기

(好奇)나 기행(奇行)을 충복시키기 위해서는 시체처럼 누워있어서는

불가능하다. 피부와 머리칼, 침대 시트 등 인체 외부에 감쪽같이 흔

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의식 속에는 의식이 있을 때 행해졌

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들이 그대로 잠재해 있을 수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어젯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내 신체에 기록으

로 남겨진 것들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들어 머리칼을 만져

보았다. 약간 끈적거리는 것이 만져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간밤에

파티에서 튄 술이거나 안주에 묻었던 물질일 가능성이 컸다.


 눈과 코 그리고 입술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입술의 루즈는 거의 남

아 있지 않았다. 어두운 상태에서 얼굴에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양 어깨를 만져보았다. 왼쪽 어깨가 약간 뻐근할 뿐이

었다. 가슴에도 특이할 만한 점은 감지되지 않았다. 브레지어 역시

제자리에 반듯하게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체를 더듬어 보았다. 언더웨어는 정상적인 위치에 있었고 어느

곳에도 이물질이나 추저분한 흔적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누운 상태

에서는 편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허리, 엉덩이, 다리, 

허벅지 어디에도 특이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너무나 말짱한 상태

에 안도의 한숨대신 섭섭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손의 감각에 의존한 나의 1차 검사에서 이렇다할 이상 징후나 단서

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일단 안심하였다. 아침 6시가 훨씬 넘은 시각

이지만 겨울의 낮은 어두웠고, 커튼이 쳐진 객실은 더욱 어둠의 세계

를 조성하고 있었다. 나는 언뜻 손에 만져지는 물체를 감지했다.


 고개를 들어 옆을 살폈다. 검푸른 어둠 속에서 황금가면이 보였다.

비현실적이고 무척 낯선 풍경이 었다. 나의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

라지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몇번하고 옆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황금가면이 은은히 빛을 발산하고 누워 있었다. 나는 사내의 얼굴이 궁

금했다. 사내의 얼굴을 꼭 보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살며시 황금 가면을 벗겼다. 사내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순간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황금 가면속의 얼굴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잠들어 있었다.

의 자유롭지 못한 징후가 있기했지만 나는 살며시 몸을 일으켜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내려다 보았다. 평안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낯익은

얼굴이 천천히 클로즈업 되었다. 

 

 '비로소 나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날개를 단 것인가? 그러나 한번

날개를 바꿔단 새는 미지의 환영을 그리며, 더 멀리 날 수 있는 날개

필요할 텐데......'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진정한 구만리 창전을 날기 위하여 황금가면

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