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 여강 최재효
또 한 녀석이 슬슬 강을 건넜다
이제 막 고개를 넘어섰는데
모래와 자갈을 삼켜도 끄떡도 하지않던
불가사리 같은 친구였다
기뻐서 한 잔
슬퍼서 또 한잔
화나서 석잔
그렇게 평생을 슬슬 마신 것이
연못이 되었고
다리에 힘이 빠진 녀석은
실족하여 그만 불귀의 객이 되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허공으로 하얗게 산화(散華)하면서
벗은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은 슬슬 마셔야 해, 술을 슬슬’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따라준 술에 취한
고우(故友)는 휘청대며 하늘을 걸었다
강가에 몰려든 살아있는 손들이
슬슬 기억을 지우고
저쪽으로 간 녀석은 행복해 하고
남아있는 씨들은 합장한 채 석고상이 되었다
파랗게 나서
붉게 살더니
한 줄기 연기로
슬슬 피어오르는구나, 친구여 !
- 故 정민희 군을 애도하며 -
2006. 12. 11. 11:30